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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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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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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5: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 14 예수께서 저를 경계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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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처음에는 그저 성경에 자주 나오는 대수롭지 않은 사건 가운데 하나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몇 번 반복해서 읽어보면 정말 가슴을 치는 말씀입니다. 나와 당신이 오늘 끌어안고 끙끙대는 그 엉덩이의 종기 같은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수도 있는, 일생에 있어서 일대 사건이 될만한 말씀이라 이말입니다. 일생 일대의 사건을 만드느냐, 아니면 그저 다른날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지나가느냐는 순전히 읽는 각자의 몫입니다.
'온 몸에 문둥병이 들렸다'는 걸 보아서 문둥병(한센병 환자, 성경에 나오는 대로 그냥 문둥병으로 쓰겠습니다.)의 상태가 아주 심각했습니다. 사람의 육체를 괴롭히는 질병 가운데 가장 지독한 질병은 '문둥병'입니다. 에이즈나 다른 질병은 위장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살수도 있고, 페스트같은 급성 전염병은 금방 생명을 잃지만, 문둥병은 감각없이 평생을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야 합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치의 병이 순식간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최악의 질병이 순식간에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 앞에서, 오늘 내가 안고 있는 문제도 그 문제가 어떤 문제이든 순식간에 해결함 받을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매장이 되지 않았을 뿐,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문둥병 환자의 병이 순식간에 나아버렸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문둥병 환자는 무슨 대단하고 특별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까? 아닙니다. 어떻게 그런 믿음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이 환자는 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말하는 것을 보세요.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모르지요, 어쩌면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한 말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런 마음 자체가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마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굉장히 큰 믿음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나의 작은 신뢰에도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예수님이 이 사람의 마음과 말을 얼마나 귀중하게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은 그 환자의 표현을 그대로 받아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자상한 분이십니다. 나를 격려하는 분이십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문둥병을 고침 받은 이사람의 믿음이 대단한 것이 아니고, 나도 주님 앞에 나아가 충분히 이정도는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아하, 그러나 너무 성급한 마음을 먹지는 마세요.
주님과 문둥병자의 대화를 아주 낮은 속삭임 정도의 대화체로 읽어보면, 처음부터 이 두사람은 아주 친밀한 관계였음이 금방 느껴집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같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처음 만났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마음은 서로 통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주님과의 친밀감, 주님과의 거리입니다. 종교적인 행사가 그렇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돌아오는 회심의 역사는 별로 없으며, 또 그렇게 많은 설교를 하고 듣는데도 불구하고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지 못하며, 왜 어떤 문제하나 해결 못하고 그것에 발목이 잡혀 할 일을 못하고 있습니까? 또 교회에는 그렇게 많은 기관이 있는데도 열매밎는 일이 별로 없으며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으면서도 주님께 나아와 해결받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대체 왜 문둥병자에게 일어났던 '기적'이 나에게는 안일어나는 것입니까? 대답은 매우 간단하고 쉽습니다. 주님앞에 은밀히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별로 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십시요.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떨어져서 한적한 장소에서 조용하게 거듭 자신의 사명을 되새기는 모습을.(16절)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어떻습니까? 기도합니까? 생각날 때 또는 급할 때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기도의 훈련을 하고 있습니까?
ⓒ최용우 2002.9.29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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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처음에는 그저 성경에 자주 나오는 대수롭지 않은 사건 가운데 하나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몇 번 반복해서 읽어보면 정말 가슴을 치는 말씀입니다. 나와 당신이 오늘 끌어안고 끙끙대는 그 엉덩이의 종기 같은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수도 있는, 일생에 있어서 일대 사건이 될만한 말씀이라 이말입니다. 일생 일대의 사건을 만드느냐, 아니면 그저 다른날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지나가느냐는 순전히 읽는 각자의 몫입니다.
'온 몸에 문둥병이 들렸다'는 걸 보아서 문둥병(한센병 환자, 성경에 나오는 대로 그냥 문둥병으로 쓰겠습니다.)의 상태가 아주 심각했습니다. 사람의 육체를 괴롭히는 질병 가운데 가장 지독한 질병은 '문둥병'입니다. 에이즈나 다른 질병은 위장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살수도 있고, 페스트같은 급성 전염병은 금방 생명을 잃지만, 문둥병은 감각없이 평생을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야 합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치의 병이 순식간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최악의 질병이 순식간에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 앞에서, 오늘 내가 안고 있는 문제도 그 문제가 어떤 문제이든 순식간에 해결함 받을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매장이 되지 않았을 뿐,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문둥병 환자의 병이 순식간에 나아버렸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문둥병 환자는 무슨 대단하고 특별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까? 아닙니다. 어떻게 그런 믿음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이 환자는 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말하는 것을 보세요.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모르지요, 어쩌면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한 말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런 마음 자체가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마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굉장히 큰 믿음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나의 작은 신뢰에도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예수님이 이 사람의 마음과 말을 얼마나 귀중하게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은 그 환자의 표현을 그대로 받아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자상한 분이십니다. 나를 격려하는 분이십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문둥병을 고침 받은 이사람의 믿음이 대단한 것이 아니고, 나도 주님 앞에 나아가 충분히 이정도는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아하, 그러나 너무 성급한 마음을 먹지는 마세요.
주님과 문둥병자의 대화를 아주 낮은 속삭임 정도의 대화체로 읽어보면, 처음부터 이 두사람은 아주 친밀한 관계였음이 금방 느껴집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같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처음 만났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마음은 서로 통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주님과의 친밀감, 주님과의 거리입니다. 종교적인 행사가 그렇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돌아오는 회심의 역사는 별로 없으며, 또 그렇게 많은 설교를 하고 듣는데도 불구하고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지 못하며, 왜 어떤 문제하나 해결 못하고 그것에 발목이 잡혀 할 일을 못하고 있습니까? 또 교회에는 그렇게 많은 기관이 있는데도 열매밎는 일이 별로 없으며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으면서도 주님께 나아와 해결받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대체 왜 문둥병자에게 일어났던 '기적'이 나에게는 안일어나는 것입니까? 대답은 매우 간단하고 쉽습니다. 주님앞에 은밀히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별로 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십시요.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떨어져서 한적한 장소에서 조용하게 거듭 자신의 사명을 되새기는 모습을.(16절)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어떻습니까? 기도합니까? 생각날 때 또는 급할 때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기도의 훈련을 하고 있습니까?
ⓒ최용우 2002.9.29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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