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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

사무엘상 이윤식 목사............... 조회 수 2371 추천 수 0 2011.04.18 13:35:23
.........
성경본문 : 삼상29:1-11 
설교자 : 이윤식 목사 
참고 :  

본문 : 삼상 29장 1-11 2011.02.18

제목 :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

 

본문

1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2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3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4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5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은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6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7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8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9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네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10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본문 주제 관찰

①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에게 피신하였던 다윗에게 위기가 온다

②블레셋의 방백들로 인하여 오히려 위기를 모면

③하나님의 개입으로 문제를 해결

 

1. 다윗의 위기(1-5절). (적용 : 하나님을 신뢰할 때 위기가 극복된다)

 

①문제없는 인생은 하나도 없다

②다윗도 블레셋도 혼란을 겪는다

③블레셋의 아기스를 가까이 한 다윗

(결)다윗의 위기는 인간적인 것임을 알라

①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②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도우심

③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일시적인 방법

(결)하나님을 신뢰할 때 위기가 극복된다

①신앙생활은 실용적으로 할 수 없음을 알라

②우리의 신앙생활은 헌신과 실증적이어야 한다

③사탄 마귀는 우리가 아주 쓸어 질 때까지 포기함이 없음을 알라

(결)문제와 위기 가운데서도 흔들리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여 극복하라

 

2. 다윗의 딜레마(6-7절). (적용 : 신실하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뢰할 때 딜레마가 해결 된다)

 

①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

②노회한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윗

③자기 합리화의 신앙은 위험

(결)자기 합리화는 신앙의 적이다

①무수히 많은 종교들이 길을 제시한다

②요 14:6 길과 진리 생명 되신 예수님

③예수님이 제시한 길에는 딜레마가 없다

(결)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라

①다윗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하였기에 다윗이 위기를 자초 한다

②세상과 하나님을 선택함에 있어 누구를 선택 하겠는가?

③세상의 딜레마는 어떤 것을 택하여도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결)신실하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뢰할 때 딜레마가 해결 된다

 

3. 다윗의 이중적인 모습(8-11절). (적용 : 겉과 속이 일치 하는 삶을 살라)

 

①다윗의 이중적인 모습

②자신의 말을 식언하며 뒤집는 다윗

③표리부동(表裏不同)

(결)겉과 속이 일치 하는 삶을 살라

①믿음의 겉사람과 속사람이 일치

②기독교인들은 높은 도덕성을 요구

③영적인 세계가 있음을 기억하는 삶

(결)겉과 속이 일치 하는 삶을 살라

①노파의 진실한 믿음을 보라

②위기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신앙인이 되라

③겉과 속의 내면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라

(결)겉과 속이 일치 하는 삶을 살라

 

오늘은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이 본문은 28장 1절과 2절을 잊는 상황입니다. 블레셋 군사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군대를 모집했고 아기스가 다윗에게도 출정 명령을 내린 상태입니다. 다윗은 아기스에게 충성을 맹세한 상태였습니다. 다윗의 출정 문제로 블레셋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납니다. 블레셋의 연합 도시국가들은 전투를 앞에 두고 자칫 자중지란에 빠질 위험에 처한 것입니다. 블레셋의 방백들이 다윗을 전투에 참정시키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다윗에게 신상의 위험에 닥칠 수 있는 절박한 상태입니다. 애초에 다윗은 블레셋으로 가지 말았어야 합니다. 이방인의 땅은 하나님의 기업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흔들린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의 가드로 피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피하였으면 오늘날 이런 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위기의 순간에 개입하셔서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며 변함이 없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 다윗의 위기(1-5절). (적용 : 하나님을 신뢰할 때 위기가 극복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문제없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건강하면 아무 문제가 없겠는데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또 다른 골칫거리들이 생겨납니다. 돈이 많으면 걱정이 없겠는데 하지만 그 많은 돈 때문에 오히려 초라한 인생으로 변하고 맙니다. 미국의 재미 교포 한 분이 265억이 넘는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가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여성이 우연히 구입한 4달러 짜리 복권 한 장이 그녀의 운명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고 미 정계에 사교계의 신데렐라로 화려하게 등장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쳤습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나 파산이 되어 초라한 임대아파트에 변변한 가구도 없이 혼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남부럽지 않을 인생을 살아 갈 것으로 생각했지만 인생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하였습니다. 인생은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이 문제는 오늘 본문에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도 블레셋도 혼란을 겪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마치 창세기의 하나님께서 혼돈하고 공허한 땅을 창조 질서로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개입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서로 진을 치고 있는 가운데 블레셋의 수령들은 수백 명, 수천 명씩 잘 조직하여 나아갔습니다. 이들이 전선에 앞장서고 다윗의 일행과 가드왕 아기스가 뒤를 따라 나아갔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어의 묘미를 봅니다. 나아가다는 히브리원문 상 ‘건너가다’ ‘지나가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히브리 사람을 뜻하는 어원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히브리 사람으로 불리어졌습니다.

창 14: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때에 아브람이아모리 족속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었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유브라데 강 건너편으로 불러내 언약을 맺은 후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히브리인-강에서 건너온 자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은 히브리인 아니냐 강에서 건너온 우리와 다른 자가 어찌 전쟁에 함께 할 수 있느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는 블레셋 방백들의 말은 멸시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블레셋은 가사와 아스글론, 아스돗, 가드와 에글론의 다섯 개의 도시국가로 형성되었습니다. 블레셋의 방백들은 각각의 도시를 다스리는 있었고 그중 한 명이 연방 체제의 대표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문맥에서 보면 가드의 아기스가 연방국가를 대표하는 왕으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중 가드와는 특별하게 부딪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리적 여건상 가드가 이스라엘과 부딪칠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골리앗이 가드 출신이었고 다윗도 가드와 많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을 업신여기고 얕잡아 보는 이들은 다윗이 아기스 왕과 함께 하였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드왕 아기스는 다윗을 왕을 보호하는 시위대장으로 삼았습니다.

삼상 28:2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이처럼 가드왕 아기스는 다윗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가드로 정치적 망명을 한 후 이스라엘을 괴롭힌 족속들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을 친 것처럼 아기스에게 거짓으로 보고하였는데 이 사실을 아기스는 그대로 믿었습니다. 다윗은 아기스에게 완전한 신임을 얻었던 터라 아기스는 다윗을 자신의 머리 지키는 자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의 방백들은 다윗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사람 중에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윗을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도 정치 군사적인 방백, 수령들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다윗같이 위험한 인물을 죽이지는 못 할망정 자신의 최측근에 둔 아기스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정치적 망명을 한 지가 여러 해이나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다고 아기스가 다윗을 적극적으로 두둔합니다. 하나님께서 아기스의 눈을 가리셨는지 다윗이 그를 속여 거짓 보고를 해도 그는 다윗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방백들이 아기스에게 크게 반발을 합니다. 다윗을 돌려보낼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윗이 자신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지 못할 이유를 제시합니다. 다윗이 자신들이 대적이 될 것이 뻔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겠냐는 것입니다. 다윗이 전쟁의 와중에 사울에게 화해하기 위하여 블레셋을 치고 그 목을 베어 갔다 바친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방백들의 이 말은 타당한 주장입니다. 이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여인들의 창화하는 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21장에서도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아기스에게 갔을 때도 아기스의 신하들이 이 노래를 인용하며 경계했습니다. 이에 다윗이 미친 척을 하며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블레셋에 있어 다윗은 사울보다 더 위협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지금은 아기스의 시위대장으로 있지만 전쟁이 나면 언제든지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는 것이 블레셋 방백들의 주장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동안 다윗은 숱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거인인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그렇듯이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구하여 구원의 강을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자신을 죽이기에 혈안이 되 있는 사울의 손아귀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광야의 위험과 굶주림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기 때마다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기스를 찾아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계획대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않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므로 다윗은 동족상잔에 휩쓸릴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일시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 순간은 세상과 타협하여 위기를 벗어날 수 있지만 항구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이것은 덩 샤오핑이 말한 흑묘백묘(黑猫白描)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용주의는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실용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현실 세계는 끊임없이 우리를 현실적인 사람이 되라 요구합니다. 사탄 마귀는 우리를 적당주의가 되라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 직장과 가정과 일터에서는 그만 하면 됐다고 타협주의가 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희생적이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헌신적이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은 실증적(實證的)이여 할 줄 믿습니다.

아더 핑크의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단은 그리스도인의 한 가지 사소한 점에 굴복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며 우리의 행동이 그의 다음 유혹에 저항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유익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호의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는 우리가 아주 쓸어 질 때까지 포기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이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작 그 위기는 외부적인 요인보다 내적인 것에 기인되고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살아가고 숨 쉬는 자체가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이 내가 또 살아있구나 라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날마다 하루 하루가 위기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그 문제 가운데 역사하시어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문제와 위기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을 때 여러분들의 삶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어 해결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다윗의 딜레마(6-7절). (적용 : 다윗의 거짓 속에서도 보호하시는 하나님)

 

다윗의 전쟁 참석 여부는 블레셋 방백들의 완고한 저항으로 아기스가 손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기스가 손을 든 것은 반대로 다윗에게 위험을 벗어나게 하는 다윗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서 다윗이 위험에서 벗어납니다. 아기스는 3절에서도 다윗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고 6절에서도 다윗은 정직하고 자신에게 악이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9절에서도 다윗을 선한 자로 불렀습니다. 이처럼 아기스의 완전한 신임을 받은 다윗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장차 자신의 나라에 왕이 될 사람이 동족들과 피흘리는 싸우게 되는 중대한 문제를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다윗이 아기스의 신임이 두터웠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완벽히 아기스를 속이므로 이런 일이 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운이며 다윗의 처세로 인하여 위기를 벗어난 듯 싶습니다. 다윗은 살아오면서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여러 가지 위험한 일을 겪고 나서 처세술을 배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정결하고 순전한 소년의 모습은 어디가고 노회한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무엘서에 흐르는 주제인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이 같은 위기 탈출이 다윗의 단순한 처세술에서 나온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생각해 볼 문제도 오늘과 같은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그것을 모면하기 위하여 불법을 동원하고 편법으로 위기를 모면 했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도우셨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하겠지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반대인 경우에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정직히 행하고 정당하게 했을 때 자신이 불이익을 겪고 위험한 처지에 있을 때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아서 그렇다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현실의 처한 상태를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딜레마가 무엇입니까? 블레셋의 가드왕인 아기스의 절대적인 신임은 다윗을 사울의 손에서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기스의 터무니없는 다윗의 신임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인생최대의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아주 추운 날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서로의 몸을 붙였지만 오히려 서로를 찌르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이 바로 이와 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나라 이스라엘에 있자니 사울이 목숨을 노리고 있고 블레셋으로 피해 왔으나 위태위태한 것은 매 한가지입니다. 그 어느 것을 택하여도 다윗이 봤을 때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전혀 예기치 못하는 다윗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윗은 위험을 스스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내가 만약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하거나 도와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 급부로 인하여 이 일을 그만 두지 못합니다. 불법이 주는 달콤함을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 역시 아기스가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호막이 걷혔을 때는 맨 살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험이 오고 위기가 닥쳐왔을 때 나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요? 나의 신앙 상태는 세상과 하나님 중 누구를 의지하여야 하는지요? 세상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듯 보입니다. 그러기에 망설임 없이 세상을 택하겠지요? 신앙인들이 이런 위험에 대대수가 노출되고 있습니다. 사탄의 간교한 속임에 넘어가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이 바로 이와 같은 위험에 노출 된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 합리화로 하나님을 떠나 안전한 아기스에게 온 것이 영원한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의 집을 나간 탕자가 자기 합리화로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집을 나갔습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 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 자유와 쾌락은 잠시 잠깐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위협하는 적은 상황에 따른 자기 합리화입니다. 말씀을 저울질하며 자기에서 유리한 입장으로 하나님을 이용해서는 안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굳게 붙잡고 말씀이 이끌어가는 데로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하나님이라는 딜레마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선택해야 하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말하는 딜레마에 달리 그 선책은 후회도 없고 곤란한 상황도 없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종교들이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시한 길에는 그 어떤 딜레마도 없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그 길을 알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제시한 길에는 딜레마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는 딜레마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니 그 생명을 택한 자에게 딜레마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천하 인간에 다른 이로서는 줄 수 없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길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하였다가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해졌습니다. 만약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을 돌아가게 하지 않고 그를 죽이겠다고 했더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블레셋 방백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하며 그를 죽어야 후환이 없다고 그를 아기스에게 내 놓으라 했더라면 다윗의 운명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가야 했기에 그럴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하였기에 다윗이 위기를 자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가리라는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삼상 27: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그도 인간인지라 믿음이 떨어졌기에 그런 선택을 하였지만 결과는 자칫 최악의 상황을 맞아할 뻔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블레셋 중에서 택한 것이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둘 중 선택하여야 하는 대상이 하나는 틀렸습니다. 다윗은 애초부터 사울과 하나님 중에서 택하여 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하나님을 선택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선택하여야 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마져도 후회가 되는 잘못된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세상과 하나님을 선택함에 있어 누구를 선택 하시겠습니까? 세상이 주는 많은 프리미엄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더 좋은 세상을 선택의 비교 우위에 놓고 저울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택의 자리에 끼이지도 못합니다. 사람들은 세상과 더 나은 세상을 놓고 선택할 뿐입니다. 그러기에 그 선택은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바라직한 선택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외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할렐루야!

선택해야할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다른 이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딜레마는 어떤 것을 택하여도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이런 양자택일의 딜레마가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구원의 길을 제시할 뿐입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평안히 돌아가게 한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개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선택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선택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죽느냐 사느냐 귀로에서 사는 길을 제시한 우리 주님을 바라고 나아갈 때 위기와 위험 중에서 건짐 받고 구원 받는 형통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다윗의 이중적인 모습(8-11절). (적용 :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삶을 살라)

 

다윗은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는 7절의 아기스가 말한 말을 들으면서 내심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표정관리를 해야 했습니다. 아기스 앞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느냐 하며 오히려 억울한 듯 한 말을 하였습니다. 조금 전의 긴박한 상황을 모면했지만 다윗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 주는 아기스를 말하고 원수는 분명 사울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에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라고 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의 말을 식언하며 뒤집고 있습니다.

삼상 17: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이랬던 다윗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의 왕에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흔히 일본말에 다테마에와 혼네(建前& 本音)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표리부동(表裏不同)과 같은 말입니다. 겉마음과 속마음이 다름을 표현하는 단어로 일본인들의 특성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다윗이 살기 위하여 아기스에게 겉마음과 속마음을 다르게 품고 있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어떨 때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떠나면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에 다윗이 왕이 되고 저지른 몇 가지의 치명적인 범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영안이 가려져서 악한 영에 의해 조정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 마귀에 사로 잡혀서 앞잡이 노릇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며 속임수와 권모술수를 부릴 때면 다윗은 다른 내면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같습니다. 분명 다윗은 이 모습에서 이중 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살기 위하여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지만 애당초 다윗이 블레셋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의 이민이 아니라 다윗은 군사들을 데리고 정치적 망명이었기에 더욱 더 그러합니다. 그 땅은 여호와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 받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하시고 그를 사울의 손에서 보호하셨음에도 다윗은 겉사람을 따랐던 것입니다. 믿음에 의하지 않고 행하는 모든 것이 자신을 실족할 수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나요? 언행이 일치하며 믿음의 겉사람과 속사람이 일치하는지요? 우리의 일치하지 못하는 신앙생활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에 의해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들도 그러하지만 그만큼 기독교인들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표리부동한 삶을 살지만 이들은 자신의 삶을 판단하기에 앞서 기독교인들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그 어떤 때보다 심각합니다. 악한 영에 의하여 더욱 이런 일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하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우리가 너무 안일했습니다. 그들의 눈에 보기에도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자들이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사실은 성령님께서 우리 자신을 보실 때에 나는 겉사람과 속사람이 일치하는 삶을 사는지요?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겉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죽을 운명에 놓인 피조물을 말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인간의 육신은 후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너무 외모에만 모든 걸 평가하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 내적인,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속사람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거듭나고 성령의 충만으로 거듭난 영적 존재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잘 알려진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당시 볼세비키 혁명 때 소련 공산당의 한 무리가 주일 예배를 들이던 한 교회에 들이 닥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진을 놓고 교회 밖으로 나오면서 이 사진을 밝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불응하는 자는 총살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겁을 먹은 신도들이 하나 둘씩 예수님의 사진을 밟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런데 한 노파가 나오면서 이리저리 밟히고 침으로 얼룩진 사진을 보며 옆에 주저앉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도 부족하여 이렇게 침 뱉음을 당하고 발에 짖밟히셨냐며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비록 예수님 사진이나마 발로 밟고 침을 뱉을 수 없으니 나를 죽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공산군이 보니 진짜 예수장이는 이 노파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노파를 살려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총살을 시켰던 것입니다.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요? 나 역시 죽음 앞에 어떤 선택을 했을까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비록 사진이지만 예수님의 인격과 믿음을 부인하는 이중 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자신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늘을 찌르는 믿음이 있다가도 어느 날 갑자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현실에 다급한 위험이 닥치면 어느새 신앙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추한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과 싸워서는 안 되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싸워야하는데 왜 싸우지 못하게 하느냐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작 싸움을 말리는 사람은 블레셋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밝거든 네 부하들을 데리고 떠나라 하므로 다윗은 모든 위험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나 그 일련의 과정들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다윗의 싸움을 말리시고 생명을 구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똑 바로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가끔 보면 전혀 다른 이중적인 인격체를 가진 사람을 봅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해당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기독교인은 산 위에 있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감출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보다 더 노출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노출을 즐기기 위해서는 몸매를 가꾸어야 자신이 있지 않겠습니까? 영적인 몸매, 내면의 속사람의 변화가 필요한 줄 믿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과 늘 교통 교제함으로 겉사람을 쳐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복종시킬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게끔 통로를 열어두어 말씀이 우리를 통제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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