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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44: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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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우리를 버리지 마시고 도우소서
본문: 시편44: 1- 26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2. 주께서 주의 손으로 뭇 백성을 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뿌리박게 하시며 주께서 다른 민족들은 고달프게 하시고 우리 조상들은 번성하게 하셨나이다
3. 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니이다
4.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5.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6.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7.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8.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
9.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0. 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12.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13.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14.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15.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16.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9.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2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23.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4.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1993년 3월 영 템즈강에서 고기잡이 하던 어부의 그물에 맥주병이 하나 걸려 나왔습니다. 그 안에 빛바랜 편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병 속의 편지를 발견하신 분의 축복을 비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랑의 편지였습니다.
“군함위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소. 당신에게 사랑을 담아 바다에 띄웁니다. ..... 사랑하는 이여 안녕!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
1914년 9월에 씌어진 것이니 무려 85년 전에 기록된 것이었습니다. 영국 정부에 전해진 이 편지의 주인공을 알아보니 본인은 12일 뒤에 전사 했고 부인은 두 딸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 197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편지는 그 딸에게 전해졌는데 그 사본이 세기의 러브레터를 소장한 웰링턴 알렉산더 도서관에 기증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 세상에서 이런저런 안타까운 탄식이 있습니다.
본 시편은 앗수르왕 산헤립의 침공시(BC.701년경, 왕하18:13-19:37) 히스기야왕 같은 분의 상황 속에서 지어진 탄원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절박한 신앙을 담고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 탄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날 때,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결국 탄원하게 됩니다.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때로 인간은 감당하기 힘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 기가 막힌 일이 나에게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쉽게 말하기 힘듭니다. 인과 응보적인 사고를 신앙에 접목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적 사고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이런 사고는 위험합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푸신 은혜를 기억합시다. 과거는 현재의 신앙을 세우는 토대가 됩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 뚜렷이 남겨져 있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오늘도 살아계셔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이루시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던 과거의 경험들을 회상하는 일을 통하여 믿는 자들은 현재의 고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과거 행적들은. 현재 위기를 당하고 있는 믿는 자들을 세우며 승리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시인은 과거의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셨는지를 신앙 안에서 올바르게 바라본 후. 이스라엘 민족의 승리가 하나님께 있었으며 조상들의 능력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실로부터 생긴 확신을 현재에 그대로 적용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하는 어려움에만 집착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족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에 직면하게 될 때 과거에 하나님이 베푸신 놀라우신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현재의 고난에만 빠져 있곤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인도하심을 받은 것을 기억하면서 힘을 얻을뿐더러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가 받은바 은혜, 놀라운 축복에 대하여 전해 줄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 145편 4절 말씀에 보면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본문 2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뭇 백성(열방)을 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뿌리 박게 하시며 주께서 다른 민족들은 고달프게 하시고 우리 조상들은 번성하게 하셨나이다”
생명체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이것을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한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는 엄청난 생명 유지비가 들어갑니다. 일단 물과 산소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심장이 뛰고, 세포가 생성되고, 먹은 음식물이 소화되고, 그것이 열량으로 변해 각 기관에 보급되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움직이고, 듣고, 보고, 걷는 것 등, 돈으로 생명을 유지하려면 하루에 1천만 원 정도의 시설비와 유지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한 달이면 3억이 되고, 1년이면 36억 원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병들면 돈 내고 병을 고치면서도 매일 1천만 원 정도의 생명 유지비를 공짜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전혀 관심도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도 보상도 바라지 않으시고 은혜로 거저 주신 것입니다.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다시 살아나게 하심을 통해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죄를 사하시고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할 조건이고 기뻐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3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니이다”
인간의 힘을 상징하는 표현은 ‘자기 칼’과 ‘자기 팔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을 상징하는 표현은 ’주의 오른 손‘과 ’팔‘ 그리고 ’얼굴 빛입니다.
이스라엘이 얻은 구원과 영광된 승리가 결코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으로 인해 주어진 것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7: 7, 8)
본문 4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이는 온 우주의 창조주요 최고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시인 자신의 삶을 주장하실 수 있는 왕이 되심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고 깨끗하게 하소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제지 공장을 방문하였습니다. 더럽고 텁텁한 폐지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 폐지들이 바로 이 제지 공장의 원료가 된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더러운 것들이...... ."
며칠 후, 여왕은 편지지 묶음을 제지 공장으로부터 선물 받았습니다.
"여왕 폐하께서 보신 그 더러운 폐지가 변하여 아름다운 편지지가 되고 폐하의 궁전에 도착된 것처럼 완악한 죄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면 주님의 날, 하나님 나라 궁전에 가 있을 것입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5:26)
본문 5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한 소년이 엄청나게 큰 돌을 옮기려 하고 있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있는 갖은 애를 써보았지만 그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것을 보고 있던 그 소년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얘야, 네 모든 힘을 다 동원해 보려므나.’ 지금까지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말씀에 용기를 내어서 소년은 다시 있는 힘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네 모든 힘을 다 사용했니?’ 소년이 그렇다고 대답했을 때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니야. 너는 네가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사용하지 않았어. 넌 아직까지 이 아빠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잖아!’
성도는 세상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 자신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빌립보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 4- 8)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지 우리 자신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시56: 3)
본문 6절을 읽겠습니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
영국 국왕 가운데 조지 3세가 있습니다. 그분은 선왕 조지 2세의 유물을 정리하다가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한 커다란 칼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칼에는 뚜렷하게 쓰여진 문장이 보였습니다.
"나는 나의 칼을 신뢰한다."
조지 3세는 선왕의 유언을 읽으면서 옆 신하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진리를 신뢰한다."
지혜로운 신하가 감복하여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굴절되지 않고 나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나아가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을 체험할 수 있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84:12)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146:3)
스크린에서 세인의 주목을 받던 어떤 외국 여배우는 얼굴 성형수술만 세 번을 했다고 합니다. 20대 초반에는 눈이며 코며 양 볼의 보조개를 성형했습니다. 30대 초반에는 이마의 주름을 없애고 팽팽하게 하기 위해 머리속으로 이마의 피부를 잡아끌어 꿰매는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늘어진 목덜미와 턱을 팽팽하게 만들기 위해 목 뒤로 피부를 비끄러매는 수술을 했다는 것입니다. 혹시 불의의 사고로 실이 풀리기라도 하면 그 얼굴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유용한 수단과 도구를 사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시험관 아기를 만들어내고 암을 정복한다고 호언장담하는 현대 과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환절기에 흔히 앓는 감기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능력조차도 없습니다. 인간이 가진 한계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먼저 우리의 전적인 무능력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간구하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본문 7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나치 수용소에 갇혀 있던 어느 포로의 마음 자세를 한번 보십시오. 그는 수용소 벽에 이런 글을 써 놓았습니다.
“비추지 않을 때조차 난 태양을 믿네. 느끼지 못할 때조차 난 사랑을 믿네. 침묵하실 때조차 난 하나님을 믿네.”
그렇습니다. 모든 예배는 선택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상황이 아무리 우리를 짓누른다고 해도,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그분을 믿고 의지하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우리가 해야 할 선택도 큽니다. 때로 그런 상황을 거쳐야만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걸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맹목적으로 행하시지 않으며 지혜로우시고 흔들림 없이 그 상황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뿐입니다. 진정 우리가 이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하늘 아버지는 거듭 우리의 상한 시절들을 취하셔서 그분 이름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휘장을 엮어 내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모진 겨울의 고통을 누구보다 더 아프게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잘못을 행하고 죄를 지어서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럼 왜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우리의 허물과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한 대속의 사랑입니다.
이사야 53: 4-6절을 보십시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심으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복음은 겨울을 당한 모든 인간의 소망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푸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생각하는 일은 고난을 당한 사람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모든 문이 닫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도움이 올 만한 곳이 모두 끊어졌다고 해도 하나님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속이고 어려움에 빠진 당신을 돌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이 온전히 의뢰할 수 있는 분입니다. 불같은 시련이 지나간 후면 우리는 그 시련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품고 내일을 대망하십시오.
본문 8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자꾸만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을 자랑하는 것은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으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먄 자랑해야 합니다. 값없이 의롭다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연약한 우리를 들어 능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리고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주는 하나님의 나라를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감추고 하나님만을 자랑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높이시며 우리를 위한 귀한 상급들을 하늘에 풍성히 예비하실 것입니다.
자랑에 관한 성경말씀입니다.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고후1:14)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찌니라”(고후10: 17)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11:30)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약1:10)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렘9:23)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찌로다”(시105:3)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사45:25)
빌립보서4: 6-7절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다니엘이 감사함으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듣습니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절망 속에 있다는 것이 결코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좋은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감사는 어느 곳에서든 캐낼 수 있는 따뜻한 선물입니다.
어느 때는 어느 곳에서든 감사를 캐어내면 감사가 되고 불평을 캐어내면 불평이 나옵니다.
부족하여도 감사를 잉태한 자는 감사를 낳습니다. 풍족하여도 불평을 잉태한 자는 불평을 낳습니다. 감사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생각의 크기이고 믿음의 크기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자랑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는 삶에 풍성한 열매가 약속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 9-12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이스라엘을 욕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군대와 함께 나가지 아니하십니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대적에게서 도망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탈취하였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잡아 먹힐 양처럼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여러 민족 중에 이스라엘을 흩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팔고 이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본문 13-16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주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웃나라에게 욕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조롱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뭇백성 중에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민족 중에서 머리를 흔드는 일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시인은 모욕당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욕설과 폭언 소리에 귀가 따갑고 미움과 보복의 눈길이 무서웠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자를 징계하셨습니다.
본문 11절, 13절, 22절 말씀은 장차 오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당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 3- 7)
본문 17-1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1월에 눈이 내리지 않은 것은 캐나다 기상대가 생기고 나서 처음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 이유를 말하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인생에게 닥치는 겨울입니다. 중요한 일은 이 모진 겨울을 어떻게 나는 것이 옳고 지혜로운 것이냐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고'(17절)
이스라엘이 근본적으로 이방민족과 다름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법도를 준행하는 자들이라는 데 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18절)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았음은 물론 행위로도 하나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어기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였다(20절)'
이 말은 분명히 그들이 받는 고난은 하나님의 어떤 섭리적 이유로 인하여.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발생한 것이라고 하는 시인의 확신은 깊은 신앙적 통찰력입니다. 시인은 비록 완전하게는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신앙 안에서 그 현실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걷는 길에 비록 이해 안되는 상황이 놓여 있을 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적극적 주장이 설 자리가 있습니다. 고난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0 ~ 21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일본에서는 자녀들을 다 출가시킨 후에 이혼하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 여성들은 자녀들을 양육할 때에는 불만이 있어도 꾹 참고 있다가, 갑자기 이혼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몇십 년을 같이 살면서도 아내의 불만을 알아채지 못한 남편들은 큰 충격을 받게 마련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실감이 나는 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 여리고의 재물을 탐내어 숨겨두었던 아간, 우리야에게서 밧세바를 빼앗은 다윗,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고 다시스로 도망가던 요나, 그 누구도 하나님에게서 자신의 죄를 숨길 수 없었습니다. 내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 눈에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시 94:9).
본문 22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이는 시인이 이스라엘이 고난 받고 핍박당하는 것을 단순히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의인의 고난, 즉 불의한 세상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미워하여 핍박하고 대적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선하게 살지라도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의 뜻을 전하자 도살할 양과 같이 취급받았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우리 죄를 위하여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십자가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신자들이 도살할 양과 같이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8:36)
초대 성도들은 핍박을 받아 도살할 양과 같았습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세상은 우리를 핍박합니다. 세상은 악하기 때문에 의인이 고난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시인은 이런 의로운 자가 받는 고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본문 23-26절을 보십시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인은 주님의 사랑을 믿고 주님께 나가서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주무시지 마시고 깨시기를 기도합니다. 일어나시고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지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주의 얼굴을 보이시고 고난과 압제를 기억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의 영혼은 진토에 파묻히고 그들의 몸은 땅에 붙었습니다. 그러니 일어나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도 주의 사랑을 신뢰해야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롬8:37)
본문 23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시편 27: 9절에 보면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하였습니다.
시편 71편 18절에도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왕상8: 57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시오며 버리지 마시옵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 애가3장 29-33절 말씀입니다.
“입을 티끌에 댈찌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찌로다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찌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본문 26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오늘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기도 응답의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 같이 한 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할렐루야!
오늘 우리는 기도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보시고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역대하16: 9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을 감찰하신다고 했습니다. 온 땅을 두루 살피실 때 어떤 자들에게 능력을 베푸시며, 어떠한 자들에게 기도 응답의 축복을 주시느냐 하면? 바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자들입니다. 바로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이 곳에서 우리들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기도해서 여러분이 찾으시는 것을 찾으시고, 구하는 것을 얻으시고, 두드리는 것이 열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구약성경 역대하 14장 1-15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쪽 유다 왕국의 아사가 왕으로 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아사는 아버지 아비야의 뒤를 이어 유다나라 왕이 되었습니다. 아사가 왕으로 있을 때 그 나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10년 동안 나라가 평안했습니다. 왜 그런 평안이 임했습니까? 그 이유로,
① 아사 왕이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했습니다(2절).
② 우상의 단을 제거하였습니다.
3절에 보시면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 상을 찍고”라고 했습니다.
③ 유다 사람을 명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했습니다(4절).
④ 또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제거했습니다.(5절). 그래서 나라가 평안을 얻었습니다. 아사 왕과 유다 나라가 복을 받은 이유는? 유다 나라 지도자인 아사 왕이 하나님 무서운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말로만 순종하는 것은 아니라, 실제로 행동을 보여 주었습니다. 실행에 옮겼습니다. 사신 우상과 그 단을 헐었고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육신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거 6.25의 폐허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철야와 금식을 하며 열심히 기도했습니까? 그 기도의 결과로 우리 민족에게 경제적인 부흥을 주셨습니다.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교회에 부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배가 부르다 보니 낭비와 허례허식으로 교만해 졌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땅을 치며 통곡하며 통회하는 심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들에게 주셨던 평안과 축복들을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과 평안 속에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더욱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그렇지 않고 교만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린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전쟁을 통한 심판이 우리들에게 오게 될까 심히 두렵습니다.
이런 유다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때 마귀는 시샘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전해 옵니다. 마치 여우와 같은 존재입니다. 평화로운 농장에 여우 한 마리가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쪽 유다에게 이방 대적이 쳐들어옵니다. 다같이 대하 14:9절을 보시겠습니다.
“구스 사람 세라가 저희를 치려하여 군사 백만과 병거 삼백승을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 아사가 마주 나아가서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 진치고.”했습니다.
하나님의 대적 구스의 세라가 군사 100만 명과 병거 300승을 거느리고 유다 접경 지역에 까지옵니다. 여기에 유다의 아사 군대는 8절에 보니까 모두 합쳐 봐야 58만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대적은 100만이라고 했습니다. 병거가 300승입니다. 인간적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대적의 군사 숫자가 유다 군사보다 갑절이나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낙심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떻게 해 볼 수 있어야 싸우겠는데 수적으로 해 볼 수가 없습니다. 싸워 봐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삼상17:47에 보면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 오늘 우리들이 바로 이런 상황과 환경에 처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가진 것이 없습니다. 많이 배운 것도 없습니다. 사업 자금도 모자랍니다. 그래서 사업의 장래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직장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릅니다. 내 주변의 환경을 보면 조금도 좋지 않습니다. 사방 팔방을 보아도 절망과 좌절뿐입니다. 동서남북이 다 막혔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들의 모든 희망과 소망이 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계십니다. 유다의 아사 왕이 그런 어려운 적군과 대치 가운데 이웃 나라에 가서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작전 전략 회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회의 많이 하는 회사 치고 잘되는 회사 없다고 합니다. 인간적인 머리를 굴려도 해결책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사는 그때 어떤 행동을 취했습니까? 그는 바로 기도했습니다.
아사는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 함께 역대하 14:11절을 큰 소리로 읽겠습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 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절망에 있는 우리들을 희망으로 안내해 줍니다.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가정도, 우리들의 생업도, 우리들의 교회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희망은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사가 어떤 하나님께 무슨 기도를 드립니까?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①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② 위기의 상황 가운데서 우리들을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다같이 따라 하시겠습니다.“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도우실 것입니다.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들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사 왕은 하나님께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보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상황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억울한 사정, 한 맺힌 사정을 다 아뢰십시오. 내 육신의 병든 몸, 내 자녀, 내 사업, 직장, 결혼 사정을 다 알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우리들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아사 왕은 자신들이 대적에게 패망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대적에게 패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여호와의 주되심을 증거 하는 것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영광과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들은 결코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낙심할 수 없습니다. 승리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들을 도와주실 분은 주님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주의 이름을 의탁합시다. 의지합시다.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도움과 평화가 임할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낙심하지 맙시다. 우리는 기도드릴 수 있지 않습니까? 기도드리지 않는 것은 교만의 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요15;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 안에 거하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내 마음속에 모셨으면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이루리라는 약속입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삶은 만사형통입니다. 예수님을 잃으면 온 세상을 잃어버린 것이요. 예수님을 모셨다면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입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온 우주를 통치하시며,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주님께 오늘 우리들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기도해서 여러분이 찾으시는 것을 찾으시고, 구하는 것을 얻으시고, 두드리는 것이 열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환난의 때는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입니다. 고난과 역경의 때는 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 우리를 버리지 마시고 우리를 도우소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도우시는 능력의 손길, 구원의 팔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 기도: 나의 도움이시며 피난처 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우리를 버리지 마시고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며, 우리로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하신 성령님의 이끄심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항상 죄사함과 부활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하소서.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인간의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소서. 구원은 제 의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세상이 위협할 때에도 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마음속까지 보시는 주님, 내 죄를 주님 앞에 내어놓나이다. 성령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임재하시고 우리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옵소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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