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왕의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

시편 복음............... 조회 수 2761 추천 수 0 2011.04.28 20:51:00
.........
성경본문 : 시45:1-17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왕의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

 

본문: 시편45편 1- 17

1.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2.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3.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4.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5.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6.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7.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8.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9.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10.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11.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12.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13.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14.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15.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16.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17.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을 다른 어떤 일과도 바꾸지 마십시오. 예수님과 비교할 수 있는 신랑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신랑이십니다. 혹 당신은 부자 신랑을 원합니까? 부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비교할 자는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분께 속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분의 신부가 된다면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을 그분과 더불어 나눌 것입니다. 지혜로운 신랑을 원합니까? 지혜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견줄 자는 없습니다. 그분의 지식은 무한해 모든 것을 통달합니다. 당신이 그분의 신부가 된다면 그분은 당신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악한 세대의 모든 공격에서 당신을 보호해 줄 힘 있는 신랑을 원합니까? 능력에 있어서 그리스도만 한 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착한 신랑을 원합니까? 그리스도처럼 선하신 분은 없습니다. 다른 신랑들도 착한 면을 갖지만, 그들의 착함이란 불완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착함은 완전하고 완벽합니다. 그분 안에는 악이 없습니다. 잘생긴 신랑을 원합니까? 그분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납니다. 그분의 외모와 사랑의 빛줄기는 눈부십니다. 당신을 사랑해 줄 신랑을 원합니까? 예수님처럼 당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값없이 베풀어지고 변덕도 없으며 영원무궁합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사54: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62:5)

 

 이 시는 왕의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입니다. 평범한 왕의 결혼 축가가 아니라 왕이요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결혼에 대해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을 위해 기록한 시편은 45편이 유일합니다. 당시 중근동에서는 왕은 곧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애굽에서 바로는 태양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신과 방불한 인간 왕은 절대 권력자였고, 이런 인간 왕에 대한 찬양과 그의 업적을 기리는 노래들 또한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왕이요, 이스라엘 왕은 단지 인생에 불과했을 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일지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보통 다른 나라에서는 왕을 보호하기 위해 수치스런 기록들은 제거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치적뿐만 아니라 그가 행했던 부끄러운 행적 또한 낱낱이 기록되었습니다. 우리야의 아내를 범했던 사건이나, 인구조사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던 일, 아들 압살롬의 반역 등이 숨김없이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왕의 절대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그 곁에는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인 선지자라는 직분이 있었습니다. 다윗뿐만 아니라 모든 왕들이 그들이 잘못을 행할 때는 선지자의 비판의 칼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에 대한 찬양이 시편에 수록된 이유는 하나님을 대리하여 다스리는 자로서의 왕의 중요성 때문이었습니다. 왕이 잘못되면 전체 이스라엘이 잘못됩니다. 왕이 제대로 서면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포로기를 거치며 이스라엘 암흑기에 이르러서는 왕에 대한 이런 찬양은 이스라엘의 해방과 회복에 대한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메시야 왕의 출현에 대한 기대로 바뀌게 됩니다. 교회에서는 이를 예수님과 교회의 영적 결혼이라는 알레고리로 해석하였습니다. 왕은 예수님이고 왕후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런 신앙적 해석을 떠나서 이 노래를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에서 누리는 결혼의 기쁨과 행복을 노래한 시라고 하여도 무방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누리던 에덴의 행복은 하나님이 본래 인간에게 주시길 원하셨던 창조의 목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시편을 노래하며 왕의 결혼에서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행복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세상과의 인연을 끊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위대하신 왕과 약혼한 모든 자들은 그 일을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중적으로 분열된 마음을 참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은 주님을 욕되시게 할 뿐만 아니라 그분의 신부에게도 고통을 안겨줄 것입니다. 사악한 친분 관계는 청산되어야 하며, 심지어 중립적인 태도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이들은 아무런 유익도 주지 않으며, 해악만을 끼칩니다. 우리는 원래 죄악의 집에서 출생했고, 죄악 가운데서 단련되었습니다. 육욕적인 마음은 하나님을 적대시합니다. 우리는 타락한 본성이라고 하는 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파멸의 도시에 지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적인 결속을 은혜로 말미암아 깨트린다는 것이 아니라, 죄악된 본성의 결속과 타락한 친분 관계를 깨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뿐만 아니라 망각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악습을 잊어버리는 일은 너무도 어렵기 때문에, 부지런히 듣고, 생각하며, 온 영혼을 거기에 몰입시켜야만 그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온 교회가 성별된 삶을 추구할 때에만, 기독교의 온전한 위엄과 능력이 세상에 빛을 발할 것이다.

 

  본문 1, 2절을 읽겠습니다.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독일에서 한 중년의 성도가 혀에 생긴 암 때문에 고생을 하다가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데, 마취 주사를 손에 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며 ‘마지막 남길 말씀은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글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는 있겠지만 혀를 사용하여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간호사, 조수, 견습의사 등 둘러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는 심각했고 잠시 침묵과 긴장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만일 나라면, 만일 내게 한 마디의 언어만 남아 있다면 누구의 이름을 부를 것인가 생각해 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드디어 뺨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르더니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세 번에 걸쳐서 되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시울도 붉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혀를 통해 언어로 된 생각을 전달합니다. 혀에서 구사되는 감동적인 연설은 글이 지닌 공간적인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가치와 능력을 가진 혀를 바르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왕이신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께 아름다운 찬양을 돌려 드려야 할 것입니다.

본문 1절의 ‘나’는 시편 시인입니다. 왕의 결혼식을 보며 즐거움에 넘친 시인은 노래를 시작합니다. 왕은 모든 인생들보다 아름답습니다(2절). 왕은 영광과 위엄이 있습니다(3절). 왕은 용맹스럽고 능력 있어 그 앞에 모두 무릎을 꿇습니다(3-5절). 왕은 무엇보다 위엄이 있어야 합니다. 왕이 위엄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진리와 정의를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왕의 권력은 칼과 위엄으로부터 나옵니다. 위엄을 잃어버린 왕은 모욕을 당하고 백성이 그 말을 따르지 않으므로 나라가 혼란스러워집니다. 진정 왕다운 왕을 지도자로 모신 백성은 행복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런 우리의 왕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존엄하며, 능력이 있으며, 또한 겸손하시기까지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자는 평화를 누립니다. 그의 능력의 손이 모든 죄악과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왕의 살이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주님은 우리의 왕 되실 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들을 왕 같은 존재로 만드십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만왕의 왕”(계19:16)이십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벧전2:9). 우리들의 삶은 다른 인생들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만왕의 왕되신 주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며, 그 왕께서 우리에게 귀중한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광스럽고 위엄이 있습니다. 이 영광과 위엄은 우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리스도로부터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만드시며 우리를 높이셔서 위엄 있게 만드십니다. 우리는 용맹스럽고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모든 원수와 장애물들을 능히 돌파합니다. 이 힘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왕으로 부르심을 받은 너희여 왕처럼 위엄 있으라!

시인은 좋은 말로 왕을 위해서 시를 짓습니다. 서기관의 붓끝과 같은 글솜씨로 시를 지었습니다. 왕은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아름답습니다. 왕은 은혜를 입술에 머금었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주시고 값을 대신 치러주십니다. 우리의 생명이 되어서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누구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께 영원히 복을 주십니다.

 

  본문 3절을 보겠습니다.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본 절은 왕이 출전하기에 앞서 화려한 갑옷을 입고 허리띠를 두르며 허리에 칼을 차는 등의 완전무장한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여기서 칼은 왕의 절대적 권세릉, 영화와 위엄은 모든 백성들은 물론 대적들까지도 그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없는 그분의 지존하심을 나타냅니다. 한편 이러한 왕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어둠의 권세 잡은 자들과 싸워 정복하는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을 예표하는 것입니다.(계1:16, 계19: 15, 16)

 

  본문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왕이 불의와 강포가 아닌 진리와 정의, 온유함과 참된 평화를 수호하고 세우기 위해 그러한 것을 위협하는 대적과 싸워 이기라는 말입니다.

본 절은 궁극적으로 진리와 온유와 의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불의한 세상을 멸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임을 예견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영국에 왕관을 쓰지 않은 괴짜 임금이 있었습니다. 카뉴트 왕(King Canute, 1016-1035)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하들이 지나치게 자기를 찬양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신하들에게 왕좌를 해변으로 옮기라고 명령했습니다. 바닷가에 놓인 왕좌에서 수평선을 응시하던 왕은 밀물이 밀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바다여, 멈추어라!’ 하고 명령했습니다. 여러 번 명령했지만 물결은 사정없이 밀려들어 왕좌의 절반까지 들어왔습니다. 파도에 밀려 임금은 왕좌에서 떨어졌습니다. 바로 이때 카뉴트 왕은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모두 똑똑히 보았느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가진 권력이란 것은 하찮은 것이다. 우주를 다스리는 권능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날 이후 그는 왕관을 벗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상에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세상의 군주와 통치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최고의 위치에 있음을 자랑하고 남들이 그것에 복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왕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와 세계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분께 찬양을 돌리며 경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사랑하는 왕의 보좌를 영원토록 보전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님은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 왕에게 가장 큰 축복은 자기의 영화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입니다. 자기 당대에 그치지 않고 자녀 대에도 영구히 보존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으로 하여금 그런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이 축복은 마지막 절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왕의 아들들이 왕의 열조를 계승할 것이라 왕이 저희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케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영히 찬송하리로다”(16,17) 우리도 기도합시다. 우리 자녀들이 우리 열조의 신앙을 계승하도록! 그래서 우리 가문이 아름다운 신앙의 가문으로 영원히 기억되도록! 그러나 하나님이 왕의 보좌를 이렇게 보전하시는 이유는 단지 그가 위대해서가 아닙니다. 그를 통하여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기 원해서입니다.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왕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를 다른 왕들보다 더 높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님을 높이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 7절을 보겠습니다.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이런 왕에게 하나님께서 인정하여 주셨음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이 시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왕직(제사장직, 예언자직과 더불어)을 찬송하는 성경말씀이기도 합니다. 바로 오늘 왕을 칭송하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에 관한 내용인 것입니다. 주님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와 승리를 성도는 믿음으로 바라보며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정의를 사랑하시고 악을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 누구보다도 높이셨고 모든 이름위에 뛰어 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칭송하며 확신하는 성도는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와 온유와 정의를 붙드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처럼 공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셨고 또한 귀히 여겨주심을 감격함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정의를 사랑하길 원합니다. 악을 미워하길 원합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22:2)

 

  본문 8절 이하는 결혼식에 대한 본격적인 묘사입니다. 왕의 옷은 몰약, 침향, 육계 등 가장 귀중한 향수를 발라 온 결혼식장 안이 향기로 가득합니다. 그 결혼식장 또한 호화로운 상아궁입니다. 왕후는 오빌 지역에서 나는 귀한 금으로 꾸미고 왕 우편에 서 있습니다. ‘열왕의 딸들’(9절)이라는 것은 아마 당시 왕들의 풍습대로 여러 왕비들이거나 후궁들을 말할 것입니다. 시인은 왕비 될 사람에게 자상하게 충고합니다. “딸이여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아비 집을 잊어버릴지어다”(10절) 왕비도 왕족 출신입니다. 이미 출가한 사람은 빨리 아비집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왕의 사랑을 받습니다. 아비집만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왕비를 어느 왕이 좋아할 것인가? 이제는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지어다”(11절) 이제 왕비는 왕과 동일한 권세와 영화를 누립니다. 두로의 백성이 왕비의 총애를 얻으려고 선물을 가져오고, 백성 가운데서 부유한 사람들이 왕비로부터 은혜를 받으려 온갖 재물을 가져옵니다(12절).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고 옷은 온통 금으로 수놓았습니다(13절).

이는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는 신부된 교회가 누리는 영화와 합당한 자세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존귀한 까닭은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이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왕과 결혼한 왕비가 왕의 권세와 영광을 누리듯이, 우리 또한 전혀 가진 것도 없고 자격도 없지만 주님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만약 예수를 믿으면서도 우리가 비굴하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이 결혼의 신비와 우리가 누구를 신랑으로 모시고 사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예수님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대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수치와 허물을 가져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행복하고도 영광스러운 교환입니다. 이제 신부된 우리가 할 일은 아비집을 빨리 잊는 일입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의의 새 옷을 입는 일입니다. 오직 신랑만을 우리의 주로 삼고 그를 경배하며 그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행복과 영광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된 교회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전 세계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왕국이며, 그 구성원들은 선민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포함한 우주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신분과 의무가 무엇이며 장차 받을 축복은 어떤 것이며, 교회의 영광이 어떠하리라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본문 9절을 보겠습니다.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주님은 교회를 존귀한 자리에 두시며, 가장 좋은 옷으로 입히십니다. 금은 가장 값진 금속이며, 그중에서도 오빌의 금은 가장 순도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신부의 순결함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에 비유됩니다(계 19:8), 신령적으로는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전가되고 할당된 의로써 신성하게 차려 입고 있습니다.

"왕의 우편 서도다“

이는 사랑과 영예와 권능의 자리입니다. 왕은 환희에 찬 모습이시며, 전사로서 무장하시고, 군주의 예복을 입으시며, 전차에 오르시고, 화살을 쏘시며, 또한 적들을 물리치신다. 그러고 나서 그는 손에 홀을 쥐고서 보좌에 오르시며, 내밀한 방에서 가져온 향수로써 궁전을 향기로 가득 차게 하시고, 수행원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서 있으며, 그중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신부가 그분의 우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영예와 사랑을 많이 받는 교회의 구성원이 된 자들은 행복합니다. 반면에 주의 사랑을 받는 백성을 핍박하는 자들에게는 불행이 임합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자기 아내가 모욕이나 학대를 당하는 것을 참지 않듯이, 천상의 남편께서도 그러한 일을 참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택함받은 자들을 위해 신속하게 보복하실 것입니다.

 

  본문 10절을 보겠습니다.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유대인 남자가 그의 아내 될 이방 여인에게 하나님 섬기는 법도를 가르쳐 우상 숭배로부터 구출하듯이, 여기서는 ‘딸’에게 자기 나라와 아비의 집을 잊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듣고 생각하며 귀를 기울이라’라며 본성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그만두도록 설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백성과 아비의 집을 떠나는 것에 대해 후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비의 집을 떠나는 슬픔보다 더 크고 영광스러운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St. Aurelius Augustine. 354-430)은 본래 젊었을 때 방탕과 술취함으로 세월을 보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된 후로는 훌륭한 성자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수도원을 나와 길을 걷고 있다가 우연히 예전에 방탕한 생활을 할 때 사귀었던 한 여인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거스틴을 보자 무척 반가운 기색으로 "어거스틴, 나예요, 나를 몰라보시지는 않겠죠?"라고 하며 다가섰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알던 어거스틴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고 난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난 새로운 어거스틴이랍니다"

그는 어이없어 하는 여인을 뒤로 남긴 채 유유히 가던 길로 걸어갔습니다.

이 어거스틴과 같이, 왕과 결혼하여 자기의 고향과 집을 잊은 신부와 같이 우리 또한 내가 속했던 옛 것을 과감히 잊고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신21: 13)

 

 본문 11절을 보겠습니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교회는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예수께만 집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지도 못하고 그분의 사랑을 온전히 누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교회가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간구하고 도모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그분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교회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으시며, 교회가 세상에 물들지 않을 때 그분의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우리 구주는 또한 우리를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아내를 위한 남편의 사랑은 아내의 순종의 의무를 경감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경외해야 하며,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해야 합니다. 그는 교회와 하나로 연합되심으로써 교회에게 자유를 주시지만 방종을 주시는 것은 아니며, 교회를 다른 모든 짐에서 벗어나게 하시지만 그분 자신의 쉬운 멍에를 교회의 목에다 메십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면 이 땅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본문 12절을 보겠습니다.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교회의 거룩성이 풍성해지면, 교회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경의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영광은 주변의 이교도들에게 감명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함께 연합할 것입니다. 교회의 중심에 은혜가 가득할 때, 그 금고에는 보화가 차고 넘칠 것입니다.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마음으로 예물을 바치는 자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꾼들이 망설임 없이 그 신성한 사역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무역하는 자들은 자신의 수익 중 일부를, 강제 징수 방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마음으로 위대하신 왕의 교회를 위해 예물로 바칠 것입니다.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은혜를 구하리로다."

부요한 자도 세인들의 어리석음에 영합하지 않고 그들의 죄악 됨을 증거하면서 예수님을 향한 신앙에 설복당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참된 신부라면 그처럼 스스로를 실추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활수해져서, 멀리서부터 풍성하고 지속적인 예물들을 가지고 평강의 왕께 드리러 나아올 것입니다.

 

  본문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신부는 내밀한 궁실 안에서 큰 영화를 누립니다. "모든"이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신랑의 모든 옷에서 향기가 날리는 것으로 언급되었거니와(8절), 이제 신부의 내적인 자태가 모두 영광스럽습니다. 여기서 초점은 전체성과 완전성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나쁜 냄새가 전혀 섞여 있지 않고, 그분의 백성 안에는 죄악 된 요소가 혼합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교회는 흠도 점도 없는 존재로 서게 될 것입니다.

"그 옷은 금으로 수놓았도다." 최상의 재료와 최상의 기량이 만난 셈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분의 의라고 하는 고귀한 재료를 이용하여 그분의 백성을 위한 옷을 지으셨습니다. 금으로 수놓은 그 어떤 자수품도 그분의 거룩하신 솜씨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신부의 영광과 아름다움에 아무런 결함이 없도록 철저히 배려하십니다.

 

  본문 14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천상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거행될 날이 이를 것입니다. 결혼식 때에 왕후가 시녀들의 수종을 받으며 왕이신 남편께로 인도됩니다. 영광스러운 마지막 날에, 만물을 완성할 날에, 우주 만물이 경탄하는 가운데 어린양의 아내인 신부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교회의 궁극적 안식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왕의 품속입니다. 교회는 주권적인 은혜의 권능에 의해 그 품속으로 인도됩니다. 이러한 일은 장래에 속한 것입니다.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교회의 주님을 위하여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도 '그날에는' 교회의 축복을 함께 누릴 것입니다. 교회의 참된 일꾼들이란 교회에 속한 자들이며, 교회의 모든 행복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한 교제를 나누도록 허락을 받은 자들이란 마음이 순수한 자들이며-"친구 처녀들"-그 걸음 또한 순수한 자들이라는-"시종하는"-사실에 주목하라. 지금 현재 정결케 되지 않은 자가 장래에 마침내 하늘로 인도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본문 15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혼인 잔치는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구속함받은 모든 성도들이 본향의 집으로 인도될 때 낙원에서 열릴 잔치는 그 얼마나 즐겁겠는가! 성도들 자신의 기쁨과 천사들의 즐거운 탄성으로 말미암아 새 예루살렘은 환희의 외침으로 메아리칠 것입니다.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왕이신 예수께서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곳이 그들의 평화로운 거처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잠긴 문 안에 거할 것입니다. 그들은 거룩한 그곳으로 들어갈 특권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은혜에 의해 인도함을 받아, 그들은 영광 가운데 들어갈 것입니다. 영화롭게 된 성도들은 천국의 들판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아니라, 집안에 거하는 아들들이요, 피 값으로 사신 바 된 왕자들이요, 또한 왕궁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승리를 통해 이 모든 낙을 누리고 슬픔의 때를 잊어버릴 행복한 때가 필시 이를 것입니다.

 

  본문 16 ~ 17절을 보겠습니다.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고대 근동의 역사를 보면 이 지역을 둘러싼 패권 다툼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을 최초로 통일한 나라는 앗수르입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지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후 B.C. 625년에 바벨론이 일어나서 90년 동안 대제국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강대한 바벨론도 B.C. 536년에 메대와 바사의 공격에 힘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후 200년 간 메대와 바사의 통치가 계속되지만 헬라의 젊은 정복자 알렉산더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함으로 B.C. 330년 정복을 당하게 됩니다. 헬라도 약 300년의 긴 세월 동안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지만 신흥 로마제국에 의하여 패망합니다. 그 이후 로마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평화시대(Pax-Romana)가 끝나고 혼란에 빠진 약체 로마는 자기들이 고용한 북쪽의 야만인들에게 무릎을 꿇게 되고, 이 지역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됩니다.

역사가 보여 주는 분명한 교훈은 세계를 다스릴 영원한 왕국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세운 제국은 필연코 흥망성쇠의 길을 가게 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만세에 기억되며 영영히 찬송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나라의 백성입니다.

16절은 결혼이라는 주제에 관한 어떤 소망을 피력하고 축하함으로써 결론을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왕의 후손들이 선왕(先王)보다 잘 될 것이라는 것, 즉 그 후손들은 세계적인 왕들이 될 것이라는 의미인데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 성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들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어 왕 노릇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듯합니다(계 5:10 ; 22:5).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위대하신 왕을 섬기는 일에 있어 선조였던 고대의 성도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영적 후손이 빈 자리를 채웁니다. 은혜의 줄은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속되는 한, 진실한 사도적 계승자들이 존속될 것입니다.

"왕이 저희로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온 땅이 그리스도를 위해 정복될 것이며, 은혜로 말미암아 그 정복에 참예하는 자들에게 영예가 돌아갈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케 하리니."(17절)

여호와는 시편 기자의 입을 빌어 평강의 왕에게 끊임없이 자손이 이어질 것뿐만 아니라 영원한 명성을 약속하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그분의 명성과 성품 그리고 그분의 인격을 담고 있습니다. 그분의 백성은 이것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들이 존재하는 한 이 사실도 항상 진실로 통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예는 항상 신선할 것이며 그분의 명성은 항상 새로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점을 보장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섭리와 은혜가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메시아의 명성은 인간에 의해 보장되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분이 그것을 보장하며, 그분의 약속은 필시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겟세마네와 갈보리에 대한 기억들은 만세토록 불멸의 광채로 빛날 것입니다. 오랜 시간의 경과나 오류의 연기 혹은 지옥의 악의마저도 구속주의 영광스러운 명성을 흐리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민이 왕을 영영히 찬송하리로다 - '찬송하다'(예호두카)는 '감사하다'입니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만민들이 감사를 올리는 왕이 있다면 그 왕은 분명히 그리스도이실 것입니다. 그 이유가 구체적이진 않지만 다시 한 번 더 영원히 인간의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 듯합니다. 만민이 주의 주 되심을 고백할 것이며, 주께 합당한 경의를 영원토록 주께 돌릴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신 분께 우리 모두가 감사 찬양을 드림은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죽음을 당하셨다가 다시 살아나사 영원히 살아 계시는, 그리고 지옥과 사망의 열쇠를 쥐고 계신 그분의 보좌에 찬양의 뇌성이 항시 울려 퍼짐이 마땅합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3- 25)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신부 되는 교회는 반드시 자신의 신분과 의무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왕비입니다. 왕비는 왕의 분신으로 왕비라는 칭호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왕의 권위와 위엄을 소유하며, 사랑과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아름다운 신부이며, 통치권자인 신랑에 의해 백성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이 처럼 교회가 왕비의 신분과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에 기인합니다. 교회는 신부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신부의 행실은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어떠한 보석보다도 더 의미 있는 장신구입니다. 성도가 누리는 구원의 축복은 썩어질 세상의 부귀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네 백성과 아비 집을 잊어버릴지어다'(10절)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신부는 이미 그 몸과 마음을 신랑에게 다 바쳤습니다. 이제 신랑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신부에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신부를 사랑하는 신랑에 대한 배신이며 모욕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일에 너무 바쁘고 자기 소유에 지나치게 애착심을 가진 나머지 신랑 되신 주님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신부된 도리를 망각하고 옛 생활과 거짓된 사고방식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면서 신랑 되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교회는 왕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를 사랑하고 복종하며 경배해야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신부의 참된 의무를 수행할 때라야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자태를 지닐 수 있습니다. 교회의 이러한 모습은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영광을 대단히 추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미래적인 것으로 일축해 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누릴 영광은 실제적이며 현실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케 됩니다. 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맺어진 교회는 또한 은혜를 베푸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두로의 딸'과 '부한 자들'이 '은혜를 구하러'온다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가진 은혜의 본질은 가난한 자나 부한 자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절실한 것입니다. 그 은혜는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신부 되는 교회를 통하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영적인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동시에 교회는 육적인 즐거움과 기쁨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불신자들과의 중매자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천국의 실제적인 삶의 예표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권을 계승합니다. 이것은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의 비유한 것으로서 구약 교회는 온 세계에 확장되어 오늘날의 신약 교회가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16절). 신약교회는 이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온 세계를 포괄하는 우주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새로운 군왕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겸손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세대의 왕은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의 영광이 모든 세대에 미칠 것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영원한 것처럼 교회의 영광도 영원할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부다운 자부심과 의무를 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본 시는 신랑, 신부의 직접적 사랑노래가 아니라 신랑, 신부에 대한 시인 자신의 찬양과 교훈 및 열방의 찬양에 대한 기원입니다. 이를 통하여 시인은 성도들로 하여금 지극한 영광과 권능의 왕이신 메시아와 영적으로 연합할 신부인 성도들이 장차 궁극적으로 누릴 영광이 실로 영원하고 복된 것임을 예견케 합니다. 나아가 그토록 영광스럽고 영원한 자리에 마침내 이르기 위해서 우리 모든 성도는 세상의 헛된 구습을 벗어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적 신부로서 합당한 성결하고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온전히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엡4:22, 벧후1;4)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만왕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귀하고 영광스러운 신분을 엳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신분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영광, 영원한 존귀함을 가져옵니다. 고로 우리는 이러한 신분을 얻게 된 것에 대해 실로 감사하고 기뻐해야 하며, 그 신분을 소중하게 지켜나가고, 그 신분을 책임있게 감당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주의 신부된 우리 성도들은 보다 순결하고 아름다운 신부로서 신랑되신 주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전의 다른 사람들과 이전의 악한 풍습들을 반드시 잊어버리고 다시는 회상하지 말아야 합니다.(엡4:22) 오직 신랑되신 주님만을 영원히 사랑하고, 끝까지 그분의 나라에 합당한 의롭고 거룩한 풍습을 좇아 살아갈 때(엡4:23, 24), 우리는 실로 마지막 날 귀하고 아름다운 신부로서(살전5:23) 신랑되신 주님을 기쁘게 맞아 영원한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 기도: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변치 않는 주님의 사랑과 거룩한 보혈의 공로를 찬양합니다. 우리 입술이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언어생활이 되게 하소서. 왕이신 주님께 경배 드리게 하소서.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게 해주소서.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밝은 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이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소서. 우리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 인도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5161 사사기 영원한 유산 삿9:50-57  김영봉 목사  2011-04-30 2135
5160 사사기 끝까지 같은 걸음으로 삿8:22-35  김영봉 목사  2011-04-30 2629
5159 사사기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삿7:1-8  김영봉 목사  2011-04-30 4140
5158 사사기 우리 안에 있는 우상 삿6:25-32  김영봉 목사  2011-04-30 2923
5157 사사기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라 삿6:11-16  김영봉 목사  2011-04-30 2916
5156 골로새서 성경에는 성공이 없다 골3:22-25  김영봉 목사  2011-04-30 2737
5155 마태복음 분노의 시대를 사는 의인 마1:18-25  김영봉 목사  2011-04-30 2879
5154 누가복음 반가운, 그러나 불편한, 그러나 복된 소식 눅1:26-38  김영봉 목사  2011-04-30 3056
5153 마태복음 영화4-밀양으로 가라 마6:5-6  김영봉 목사  2011-04-30 2104
5152 누가복음 영화3-거울을 들어 주라 눅15:11-24  김영봉 목사  2011-04-30 2290
5151 시편 영화2-값을 지불하라 시51:1-17  김영봉 목사  2011-04-30 2165
5150 마태복음 영화1-연극을 끝내라 마19:16-22  김영봉 목사  2011-04-30 2130
5149 창세기 하나님께서 주실 안식 창2:1-3  김영봉 목사  2011-04-30 2380
5148 마태복음 교회가 살아야 세상이 산다. 마18:18-20  김영봉 목사  2011-04-30 2750
5147 신명기 작은 교회, 큰 목회”(Small Church, Big Ministry) 신4:5-8  김영봉 목사  2011-04-30 2686
5146 에배소서 가정5-약속 있는 첫 계명 엡6:1-4  도건일 목사  2011-04-30 2897
5145 누가복음 가정4-믿는 사람만이 보낼 수 있다 눅2:25-35  김영봉 목사  2011-04-30 2404
5144 창세기 가정3-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이 함께 창26:26-33  김영봉 목사  2011-04-30 2253
5143 창세기 가정2-포기할 때 사랑은 시작된다 창22:1-19  김영봉 목사  2011-04-30 2748
5142 마태복음 가정1-태초에 가정이 있었다 마10:34-39  김영봉 목사  2011-04-30 2888
5141 디모데전 앞 날을 위한 든든한 기초 딤전6:17-19  김영봉 목사  2011-04-30 2483
5140 디모데전 가장 수지 맞는 일"(The Most Profitable Thing) 딤전4:6-10  김영봉 목사  2011-04-30 2787
5139 디모데전 푹 절여진 배추처럼" (Like Cabbage Completely Salted)" 딤전3:1-7  김영봉 목사  2011-04-30 2375
5138 디모데전 아름다움은 장식품이 아닙니다"(Beauty Is Not A Decoration)" 딤전4:11-16  김영봉 목사  2011-04-30 2094
5137 디모데전 나의 나 된 것"(He Made Me What I Am)" 딤전1:12-17  김영봉 목사  2011-04-30 2842
5136 마가복음 겨자씨의 믿음 막4:30∼32  류두현 목사  2011-04-29 3396
» 시편 왕의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 시45:1-17  한태완 목사  2011-04-28 2761
5134 창세기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창28:10-19  김동호 목사  2011-04-28 2744
5133 민수기 미션 임파시블. 민13:25-33  김동호 목사  2011-04-28 2413
5132 시편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하나님. 시23:1-6  김동호 목사  2011-04-28 2709
5131 누가복음 쟁기를 잡았으면. 눅9:57-62.  김동호 목사  2011-04-28 3080
5130 레위기 왜 안식년인가? 레25:1-7  김동호 목사  2011-04-28 1864
5129 히브리서 복 주시는 하나님. 히11:1-6.  김동호 목사  2011-04-28 2427
5128 시편 구원의 하나님 시3:1-3  김동호 목사  2011-04-28 2106
5127 마태복음 크리스천의 선교적 사명 마28:16-20  김동호 목사  2011-04-28 2414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