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를 향하여

마태복음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854 추천 수 0 2011.04.30 23:51:29
.........
성경본문 : 마22:34-40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08.12.28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를 향하여”
(Toward Community of Fellowship and Service)
--마태복음 22:34-40

1.

오늘, 2008년 12월 28일로써 와싱톤한인교회 네 번째 장기 계획이 완료됩니다. 우리 교회는 1986년부터 “그리스도의 비전이 이끌어 가는 교회”라는 기치 아래 장기 계획을 마련하여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힘써 왔습니다. 첫 번째 장기 계획은 1986년부터 5년 동안이었으며,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차세대를 양육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두 번째 장기 계획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진행되었고, 이 시기에는 내적 성숙을 이루는 일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세 번째 장기 계획이 추진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평신도 사역을 활성화시키는 일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이번 해에 종료되는 네 번째 장기 계획은 2004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선교 사역에 균형을 잡는 일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네 번째 장기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가 바뀌는 중대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아무런 흔들림 없이 점진적인 성장과 성숙을 도모해 왔습니다. 교우들의 기도와 총의로 인해 세워진 장기 계획은 이같은 안정적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많은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속회, 성인 신앙 교육, 영성 수양회 등을 통해 주님 안에서 거듭나고 성장하는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전도와 선교, 해외 선교와 지역 선교에 있어 좋은 열매를 맺어왔습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우리 교회는 멕시코 까깔첸에 나다니엘 센터를 세우고 선교사를 파송하여 지원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매나싸스 캠퍼스를 열어 건강한 교회 성장의 모델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네 번째 장기 계획을 통해 주신 그리스도의 비전을 따라 행한 결과로 받은 축복입니다.

2008년 3월 15일, 김병남 장로를 위원장으로 한 장기계획위원 30여명은 대예배실에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다섯 번째 장기 계획을 세우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 위원회에는 목회자 전원과 교회의 각 분야에서 봉사하고 있는 모든 평신도 대표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들은 지난 11월까지 전체 회의 8회와 수 차례의 소위원회를 모여 장기 계획을 입안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위원들이 늘 관심한 것은 ‘내가 원하는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이 계획안은 12월 2일, 합동임원회를 통과하고, 12월 9일, 교인 총회를 통과함으로, 2009년도부터 2013년까지 우리 교회가 걸어갈 로드맵이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장기 계획은 마태복음 22장 34-40절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가지 계명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장기계획위원회는 앞으로 5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사랑의 공동체’가 되라는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다서 번째 장기 계획의 표어는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를 향하여!’입니다. 사귐과 섬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사랑의 명령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어, 진실한 사랑이 교회로부터 넘쳐 흘러 세상 속으로 흘러 나가기를 기도하면서,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해 장기 계획 위원회는 다음의 다섯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째, 공동체 내에서의 사귐과 섬김의 실천을 위하여, 교우들 개개인이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하여 믿음이 깊어가며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도록 훈련하고, 교우들 간에 열린 마음으로 사귀며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섬김으로써 진정한 공동체성을 회복하도록 훈련할 것입니다.

둘째, 이웃과 세상을 향한 사귐과 섬김의 실천을 위하여,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도우며, 신실하고 효율적인 지역 선교를 위한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계발하여 집중적으로 실천하고, 해외선교를 중장기적인 선교 전략에 따라 착실히 뿌리내리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셋째, 차세대의 사귐과 섬김의 실천을 돕기 위하여, 자라나는 세대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가정과 교회와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며, 복음에 기초한 삶의 가치와 목적을 깨달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넷째, 교우들의 사귐과 섬김의 실천을 도모할 수 있는 시설을 위하여, 매나싸스 캠퍼스의 보다 효율적인 사역, 맥클린 캠퍼스가 당면하고 있는 시설 문제의 해결, 그리고 차세대 사역의 성장과 성숙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적절하고 적극적인 시설 관련 대책을 마련, 실행할 것입니다.

다섯째, 목회와 사역의 안정과 효율을 위한 운영 조정을 위하여, 목회자들이 전문적인 영역에 집중할 수 있는 행정 구조를 마련하고, 평신도 사역을 재정비하고 활성화하며, 균형 예산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재정 운영을 안정시킬 것입니다.

와싱톤한인교회는 2009년부터 5년 동안 이같은 로드맵을 기초로 하여 전진해 나아갈 것입니다. 지난 20년 동안에도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획한 것보다 더 크게 축복해 주셔서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5년 동안의 사역을 통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여 진실로 교회다운 모습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교우 여러분의 기도와 참여와 헌신을 기대합니다.

2.

오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축복하셔서 오늘과 같은 모습을 이루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거룩하고 온전한 교회를 꿈꾸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많은 성도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립니다. 인간의 야망과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높임 받는 교회가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증거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면 자화자찬하는 것 같으니, 좀 더 객관적인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평가를 해 보겠습니다. 작년에 목회 칼럼에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어떤 사람이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있는 교회의 특징을 대조해 놓은 글이 있습니다. 열 다섯 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하여 교회의 생명력을 평가해 보도록 만들었는데, 들어 보시면서 우리 교회가 얼마나 살아 있는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살아있는 교회의 지출은 언제나 수입을 초과하고, 죽어있는 교회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2. 살아있는 교회는 주차 문제를 겪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3.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이 많아 시끄러운데, 죽어있는 교회는 공동묘지처럼 고요하다.
4. 살아있는 교회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여 변화를 도모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5. 살아있는 교회는 사람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할 정도로 빨리 자라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사람들이 서로 이름을 다 외우고 있다.
6. 살아있는 교회는 세계 선교를 위해 적극적인데, 죽어있는 교회는 돈을 집 안에 쌓아둔다.
7. 살아있는 교회는 규칙적으로, 자원하여 헌금하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죽어있는 교회는 인색한 구두쇠들로 가득하다.
8. 살아있는 교회는 기도와 믿음을 바탕으로 전진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오직 눈에 보이는 것에 근거해서만 행동한다.
9. 살아있는 교회는 교회 개척에 적극적인데, 죽어있는 교회는 돈과 시간과 재능을 허비할까 두려워한다.
10. 살아있는 교회는 교회학교의 교실이 늘 부족한데, 죽어있는 교회는 언제나 교실이 남아돈다.
11. 살아있는 교회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환영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자기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만을 환영한다.
12. 살아있는 교회의 교인들은 자기 성경책을 들고 다니며 정기적으로 읽고 묵상하는데, 죽어있는 교회의 교인들은 거의 그러지 않는다.
13. 살아있는 교회 교인들은 교회의 사역을 열정적으로 지원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기능만 돌아갈 뿐이다.
14. 살아있는 교회 교인들은 도와줄 교인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죽어있는 교회 교인들은 불평 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15. 살아있는 교회 교인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에 적극적인데, 죽어있는 교회 교인들은 나눌만한 충분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떻습니까? 위에서 말한 열 다섯 가지의 요소를 가지고 평가한다면, 우리 교회는 얼마나 살아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색하게 점수를 매긴다 해도, 우리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에 속한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같은 생명력과 활력에 대해 감사할 따름입니다.


3.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외면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도 우리 교회가 잘 하고 있다고 보일까?’를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판단하실 때 위에서 열거한 열 다섯 가지 항목으로 판단하실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저를 불안하게 합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는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불합격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저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뭘까요? 하나님께서 교회를 판단하실 때 사용하시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평가했던 기준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의 교회에 대해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부할만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 교회 안에는 성령의 은사가 매우 활발하게 나타났습니다. 방언, 통역, 신유 같은 신비한 은사들이 끊임 없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바울 사도는 불합격 판정을 합니다. ‘사랑장’으로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의 서두에서 그런 암시를 던집니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고전 13:1-3).

여기서 바울은 ‘내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실은 고린도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의 주어를 ‘내가’에서 ‘여려분이’로 바꾸어 보면 그 뜻이 제대로 드러납니다.

여러분이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여러분에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여러분이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여러분이 자랑삼아 여러분의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여러분에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고전 13:1-3).

고린도교인들은 방언과 예언을 사모하며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은 예언의 은사를 받았고, 하늘의 비밀과 지식을 계시 받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적을 행하는 믿음이 있었고, 자신의 소유를 내어 주어 구제하기에 유명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말 자랑할 것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 교회는 잘 나가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보기에는 불합격이었습니다. 교회가 교회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회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랑’입니다.

바울의 기준에 의하면, 교회에 사랑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그 교회가 교회의 자격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교회에 있어야 할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가 아니라, 교회에 반드시 있어야 할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회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없다면 다른 것이 아무리 많아도 교회로서는 불합격입니다. 교회가 행하는 모든 일은 사랑에서 흘러 나와야 하고, 그 모든 일은 사랑으로 열매 맺혀져야 합니다. 교회가 행하는 모든 일을 통해서 사람들의 눈에 선명하게 드러나야 하는 한 가지 주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이 기준에 의하면 우리 교회는 어떤 판정을 받게 될까요? 이 질문 앞에서 저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위에서 열거한 열 다섯 개의 항목에서 모두 100점을 맞는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니 사랑이 부족하면, 교회로서 불합격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는 교회가 되었다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합격이면, 교회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하는 이 모든 일들은 의미 없는 몸부림이 되고 말 것입니다.


4.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각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저와 여러분 각자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대한 지식입니까? 교리에 대한 이해입니까? 규칙적이고 신실한 교회 생활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쁘게 드리는 십일조와 모든 헌금입니까? 이웃을 위한 봉사입니까? 그 모든 것이 다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있어도 하나가 없으면 안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이 모든 일들은 사랑에서 나와야 하고,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의 본문을 잠시 생각해 보십시다.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라면, 그는 율법에 대해 즉 성서에 대해 매우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까?” 이 질문은 율법학자들이 늘 토론했던 화제 중 하나였습니다. 6백개가 넘는 율법 중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율법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두 가지로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계명을 하나의 계명으로 다루셨습니다. 39절의 말씀, 즉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라는 말씀은 “둘째 계명도 첫 번째 계명과 똑 같이 중요한데”라는 뜻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은 바로 사랑의 계명이며,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40절). 성서에 나오는 모든 가르침을 요약한다면 “사랑하라!”가 된다는 뜻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의 핵심을 말하자면, “우리가 이렇게 사랑했다!”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기대하는 제일 중요한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일생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제게 무엇을 물으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김 목사, 너는 얼마나 설교를 잘 했느냐?”라고 물으실까요? “김 목사, 네가 얼마나 좋은 글을 남겼느냐?”라고 물으실까요? 아니면, “김 목사, 네가 교회를 얼마나 성장시켰느냐?”고 물으실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을 물으실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김 목사, 너로 인해 구원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실 것 같고, 이어서 “김 목사, 너는 얼마나 사랑했느냐?”라고 물으실 것 같습니다. 이 질문 앞에서 저는 두렵고 떨릴 뿐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생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네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를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네가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를 묻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큰 업적을 이루었느냐?”고 묻지도 않으실 것이며, “교회에서 너의 직분이 무엇이었더냐?”고 묻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물으실 질문은 오직 “너로 인해 구원받은 사람이 있느냐?”는 것과 “너는 얼마나 사랑했느냐?”는 것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느끼십니까?

5.

사랑입니다. 교회도 사랑이고, 믿음도 사랑이고, 그리스도인의 삶도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두가 가짜입니다. 사랑이 부족하면 모두가 불합격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이고,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아무리 신기한 체험이 일어나도, 사랑이 없으면 그 교회는 불합격이요, 그 믿음은 가짜입니다.

우리 교회의 장기계획위원회에서 앞으로 5년 동안의 삶의 지표를,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를 향하여!’라고 정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장기계획위원회는 여덟 차례의 전체 회의와 여러 차례의 소 위원회로 모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왔습니다. 그렇게 분별하는 과정에서 ‘사랑의 공동체가 되라!’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정신을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라는 말로 담아 냈습니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 22장 34-40절 말씀은 앞으로 5년 동안 우리 교회의 주제 성구가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크게 영향을 받은 신학자 중 한 분이 Duke University에서 가르치고 있는 스탠리 하우어워즈(Stanley Hauerwas)라는 분입니다. 이분이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부르짖고 있는 주장이 있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려면 가장 먼저 교회가 교회다워져야 하며,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려면 가장 먼저 그리스도인 다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이 진리라는 사실을 저는 그 동안 한국 교회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저 개인의 삶을 통해 경험해 왔습니다. 먼저, 믿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믿는 사람다워져야 합니다. 먼저, 교회가 교회 다워져야 합니다.

믿는 사람 다움은 어디에서 옵니까? 교회다움은 어디에서 옵니까? 사랑에서 옵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변덕스럽고 값싸고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드러내신 그 영원하고 값비싼,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교회는 이 사랑을 경험하도록 돕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랑을 나누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랑이 커가도록 돕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랑이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게 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이 사랑을 경험하고 이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랑의 밀도에 비례하여 교회는 교회다워지는 것이고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다워집니다. 그 때에만 교회는 바깥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믿는 사람은 소금과 빛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 활동은 무의미합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의 행위도 무의미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잠시 묵상하면서 이런 글을 써 보았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상은 독약
사랑이 없는 선행은 폭력
사랑이 없는 예배는 미신
사랑이 없는 설교는 사기
사랑이 없는 찬양은 환각
사랑이 없는 봉사는 억압
사랑이 없는 예술은 마약
사랑이 없는 문학은 유희
사랑이 없는 인생은 죽음

이 세상은 거대한 교회, 요란한 교회, 떵떵거리는 교회를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바른 교회, 제대로 된 교회를 보고 싶어 합니다. 이 세상은 성공하는 그리스도인,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을 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사람을 보고 싶어합니다. 이 세상이 갈망하는 목사는 설교를 잘 하는 목사나 교회를 성장시키는 목사가 아닙니다. 손양원 목사님같은 사랑의 사람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갈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를 향하여’ 나가자는 뜻은 바로 이런 교회, 이런 성도, 이런 목사가 되자는 뜻입니다.


6.

얼마 전, 목회자 수양회를 다녀 오는 길에 매나싸스 캠퍼스를 담당하고 계신 강현식 목사님이 제게 묻습니다. “와싱톤 부근에 있는 한인 교회 중에서, ‘교회라면 마땅히 이래야 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하는 교회가 있다면 어느 교회를 꼽을 수 있을까요?” 저는 잠시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교회가 없어서 그랬다기보다는, 제가 이 부근에 있는 교회들을 다 알지 못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화는 어뚱한 결론으로 갔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도록 힘써 봅시다.”

그렇습니다. 그런 교회가 되어 보고 싶습니다. 교회다운 교회, 진실한 사랑이 넘쳐 흐르는 교회가 되어 보고 싶습니다. 그 동안 우리 교회는 여러 가지 부족함도 있지만 그 방향으로 일관되게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완성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힘쓰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늘 부족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향한 길에 만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것에 대해 감사하며, 앞을 향해 전진할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꿈을 여러분 모두의 꿈으로 받아 주시기를 청합니다. 오늘 나누어 드린 장기계획서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시고, 그것을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고 기도에 품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충만해지게 하는 일에 사용되도록 하십시다. 우리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에 보답하는 일이 되도록 하십시다. 우리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사용되도록 하십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늘 충만하게 하십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그 사랑에서 터져 나오게 하십시다.

이제 다섯 번째 장기 계획을 시작하면서 저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장차, 우리 교회를 관찰한 사람이 우리 교회에 대해 “이 교회에는 참된 사랑이 있다”라고 결론짓게 되기를! 우리 교회 교우들의 삶을 관찰하고는 “이 교회 사람들에게서는 진실한 사랑이 느껴진다”고 결론짓게 되기를! 저를 포함하여 우리 교회 목회자들을 관찰하고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교회 목회자들에게는 진실한 사랑이 느껴진다”라고 결론짓게 되기를!

이것이 우리 모두의 갈망이며 소원이 되어, 우리 각자를 통해 그리고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생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로 인해 구원받은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할 말이 있기를 바랍니다. “너는 얼마나 사랑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주님, 한 없이 부족하지만, 그것을 제 삶의 목표로 두고 살았던 것만은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제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와싱톤한인교회 때문이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같은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2009년도에도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와싱톤한인교회에게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도 같은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사랑의 본질에 충실해지는 은총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의 주님,
저희는 사랑을 모릅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자라게 하시며
그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
저희 각자가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시며
저희 교회를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 주소서.
진정한 사귐과 섬김으로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sort
15998 신명기 건강한 신앙 문화를 대물림하는 가정 신7:6-16  김필곤 목사  2011-07-28 2861
15997 누가복음 지극히 작은 것도 눅16:10  한태완 목사  2010-11-08 2861
15996 출애굽기 내 손안에 들어있는 기적 출4:1-4  이한규 목사  2009-12-05 2861
15995 사도행전 천국의 뜨거운 환영을 받는 자 행7:54-60  이한규 목사  2009-09-24 2861
15994 마태복음 일어나라 함께가자. 마26:36-46  김동호목사  2012-01-23 2860
15993 마가복음 마음의 선순환과 악순환 막7:1-23  김필곤 목사  2010-09-11 2860
15992 잠언 효도의 중요성 잠30:17  김홍도 목사  2010-08-30 2859
15991 요한복음 춤 추시는 하나님"(Our Dancing God) 요17:20-26  김영봉 목사  2013-09-16 2858
15990 느헤미야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 느9:6-17  김필곤 목사  2010-07-25 2858
15989 로마서 산 제물로서 예배 롬12:1∼8  임영수 목사  2009-10-16 2858
15988 고린도전 그리스도인의 절제 고전9:24-27  이정수 목사  2010-08-20 2857
15987 창세기 동행하시는 하나님 창13:5-15  강종수 목사  2009-07-12 2857
15986 시편 힘과 용기를 주시는 분 시145:14  한태완 목사  2009-05-19 2857
15985 열왕기하 내 눈늘 열어 보게 하소서(송년주일) 왕하6:14-23  전원준 목사  2008-12-27 2857
15984 베드로전 그는 죽은 자들 가운데로 내려 가셨다(He descended into hell) 밷전3:18-22  김영봉 목사  2013-07-25 2856
15983 로마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자 롬11:36, 시104:28-29  최장환 목사  2010-01-23 2856
15982 고린도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고후5:17  김동호 목사  2012-09-15 2855
15981 마태복음 병원까지 안 가셔도 됩니다 마11:28-30  이동원 목사  2010-09-11 2855
15980 로마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롬9:10-13  조용기 목사  2013-01-04 2854
» 마태복음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를 향하여 마22:34-40  김영봉 목사  2011-04-30 2854
15978 여호수아 영적 삶의 주유소 수8:30-35  김필곤 목사  2010-10-18 2854
15977 누가복음 왜 어리석은 부자인가? 눅12:13-21  이정수 목사  2010-06-27 2854
15976 마태복음 하나님이 예비한 복을 받는 방법 마7:7-11  김찬종 목사  2013-10-12 2853
15975 마태복음 십자가를 따르는 치맛바람 마20:20-28  허태수 목사  2012-02-03 2853
15974 사도행전 화평의 복음 행10:34-43  유관지 목사  2010-11-23 2853
15973 요한복음 니고데모의 용기 요3:1-21  이정수 목사  2010-09-08 2853
15972 사도행전 베드로와 요한의 설교 행4:5-31  박영선 목사  2009-06-20 2853
15971 로마서 믿음의 구원 롬10:14-17  민병석 목사  2013-06-17 2852
15970 이사야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고통 사53:1-12  조용기 목사  2011-11-09 2852
15969 시편 멈추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시46:1-10  이정수 목사  2011-07-20 2852
15968 창세기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요셉 ..... 창41:17-40  이정원 목사  2010-04-01 2852
15967 요한복음 평화, 사회적 모성(母性)의 출산 - 여름 수련회 요14:27  최순님 자매  2003-09-07 2852
15966 사도행전 하나님이 상 주심을 정말로 믿는가? 행7:9-16  박신 목사  2012-01-21 2851
15965 마가복음 인생의 역풍가운데 찾아 오시는 예수님 막6:45-56  김필곤 목사  2010-08-21 2851
15964 에스겔 살아야 할 사람, 살려야 할 사람 겔37:1-10  김필곤 목사  2009-12-28 2851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