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최용우의 문서 사역

신문.잡지.방송 원고모음

각종 매체에 실린 최용우의 글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실린 매체를 찾을 수 없어서 올리지 못한 글도 많습니다.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4월 29-5월 3일 방송원고

TV.라디오.방송 최용우............... 조회 수 2022 추천 수 0 2002.04.28 21:00:14
.........

방송시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정오 12:30분 에...

<처음맨트> 차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 이야기]...
---------------------------------------------------------
월요일/ 차의 죽음!

지난달에 탈만큼 탄 트럭을 폐차시켰습니다. 시동도 잘 걸리지 않는 것을 이전에 차를 운전하였던 분이 와서 능숙한 그분만의 노하우로 시동을 걸어 폐차장까지 겨우 운전하여 간 것입니다. 차의 죽음!  
기능이 멈춘 차를 분해시킨 것이 차의 죽음이라면, 사람 육체의 기능이 멈춘 것을 사람의 죽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 차를 운전했던 운전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리 차를 폐차시켜도 운전사는 함께 폐차되지 않습니다. 그 차에서 내려버리면 그만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운전사인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다만 기능 멈춘 몸에서 나와있을 뿐입니다.  
죽음 후에 그 영혼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히9:27) 이 세상을 마친 후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 보고 드리는 일입니다. '죽으면 천국 간다'고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에베소서3:12)  

--------------------------------------------------------
화요일 / 내 안에 성령님이 사시는 증거는?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하면 매우 이상한 소리로 들릴지 모릅니다. 어떻게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서로 들어갈 수 있는가? 이것은 감각으로도 알 수 없고 체험으로도 알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매우 혼란스러워 하는 교리중의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객관적인 신앙고백을 통해서만 이해 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마음속에 들어오셨다는 첫 번째 증거는 '죄'에 대한 나의 태도로 알 수 있습니다. 내 안의 죄성을 몰아내시려는 첨예한 대립 속에서 점점 날카롭게 자기의 죄에 대해 아파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안에 내주 하는 사람이지만, 여전히 죄에 대해 무감각하며 죄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다시 한번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 하면서도 '죄'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행위를 했다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신앙행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사람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3:17)

--------------------------------------------------------
수요일/36,000km!

신앙생활을 맨 처음 시작 할 때는 누군가에 의해서 견인되어 억지로 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점점 신앙이 자라고 성숙한 믿음을 갖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며 지구 중력에서 벗어난 인공 위성은 36,000키로미터를 올라가야 비로소 그때부터는 그냥, 저절로, 가만있어도 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중력에 이끌려 사는 사람은 참으로 세상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는 중력은 돈, 직장, 명예, 배경, 학벌, 가족 같은 것 일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온 에너지를 쏟아 부어 중력을 극복하고 치솟아 오르다 보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그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별 힘 안들이고 적은 에너지로도 놀라운 일을 많이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영(靈)의 사람이 되어 무슨 일을 만나도 두려워 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더 이상 화날 일이 없고, 싫은 것이 없고, 정죄와 대립이 사라진 그런 사람, 무소유의 세계에서 맑은 물을 부으며 서로를 살리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그런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는 말입니다.
언제까지 앉은뱅이 신앙생활을 하렵니까, 자! 저 하늘로 치솟아 올라갑시다.  

---------------------------------------------------------
목요일/친구

  아침 신문에 '친구'에 대한 글이 있어서 그대로 옮겨봅니다.
<북한주민들은 직장 동료나 주위 사람을 부를 때 ‘동무’라고 합니다.. 동무는 평상시에 알고 지내는 사람정도를 일컫습니다. ‘친구’라는 말은 웬만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쓰지 않습니다.. 남한의 친구보다 훨씬 끈끈한 관계인 것입니다.. 친구 중에서도 정말 가까운 친구는 ‘딱 친구’나 ‘알쌈이’로 부릅니다.
  북한처럼 사회적 감시가 철저하고 이때문에 인간관계의 불신이 심한 사회에서 친구의 존재는 더 없이 소중합니다. 레닌이 했다고 전해지는 ‘나는 많은 사람들을 사귀지 않고 적은 사람을 깊이 사귄다’ 는 말은 북한 젊은이들의 신조입니다.
  북한체제가 아무리 무서워도 친구 사이엔 못할 말이 없습니다. 체제비난은 물론 김정일의 풍자나 비판도 서슴없이 합니다. 만약 친구가 밀고하면 끝장이기 때문에 서로 속마음을 터 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생사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 사이에는 손에 피를 내 ‘혈서’를 쓰면서 친구나 의형제 다짐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친구인지 아닌지는 감옥에 갔을 때라야 입증됩니다. 가령 남한노래를 함께 부른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 끌려가면 나머지는 밤잠을 잘 수 없습니다. 친구들 이름을 대는가 끝까지 버티는가가 우정의 시험대 입니다. 심한 고문에도 끝까지 친구들을 보호한 경우에는 젊은이들 사이에 우상으로 통합니다. 친구를 지키느라 총살까지 감수한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부모들은 친구를 만나려면 그런 친구를 만나야 한다고 자식들에게 강조합니다.
  북한 젊은이들은 정말 친한 친구는 세 명이 이상 잘 두지 않습니다. 친구가 많을수록 위험부담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친한 친구는 대개 소꿉시절부터 함께 자란 경우입니다. 어릴 적부터 오래 사귄 친구가 역시 믿을 만하고 마음이 통합니다. 물론 학교나 직장에서 새로운 친구도 많이 생겨납니다.
  한번 친구로 정해지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친구의 부모는 곧 자신의 부모이고, 자식의 친구는 친자식과 다름없습니다. 관혼상제 등 친구의 집안 일도 곧 자신의 일처럼 여깁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친구간의 우정은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더욱 깊어지는 인정의 샘과 같은 것입니다.> -조선일보 기사중에서-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한복음15:14)하신 예수님의 친구는 남한의 '친구' 보다는 북한에서 생각하는 '친구'의 개념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
금요일/ 그럴수도있지뭐 마을

  저는 여러 마을에 살아 보았습니다. 각 마을마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더군요. 먼저 오랫동안 '성공마을'에 살았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무슨 말만하면 '싫어, 짜증난다, 피곤해' 하고 대꾸합니다. 사람들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고 말에는 가시가 있고, 늘 지쳐있고, 오직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뒤 안가리고 달려가기만 하는 삭막한 동네였습니다. 물론 교회도 있었는데, 더 많은 교인, 더 큰 성전을 짓는 성공을 위해 달려가느라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실패'마을에도 살았었습니다. 사람들은 표정도 없고 대답도 희미하고, 게으르고, 주정뱅이가 많은데 '전에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하는 과거의 훈장만 주렁주렁 달고 있는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실패를 정부탓으로 돌렸습니다.
  '해야지'마을에도 잠깐 살았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해야지 하고, 도무지 하지는 않습니다. 늘 해야지 하고 걱정과 부담을 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이런 걱정과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것도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도 염려를 하고 걱정을 해서 염려와 걱정이 없는 것이 오히려 걱정이요 근심인 사람들이 사는 마을입니다.
   저는 어느 날 강 건너에 있는 숲속에도 마을이 있다기에 배를 타고 그 마을에 가 보았습니다. '그럴수도있지뭐 마을'이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어떤일을 당해도 '그럴수도있지뭐' 라고 했습니다.
   자기 생각과 가치관, 경험으로 쉽게 누구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면서 입장을 바꾸어 상대방을 헤아려 보기도 했고, 늘 열려 있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이 마을 사람들은 모든 일을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해석하고 번역하는 능력'인 '믿음'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모든 일을 감사로 받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마을을 다녀온 후 많은 감동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다짐했습니다. 나도 저 마을에 가서 '믿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쌓아 놓은 것들을 다 버리고 용기를 내서 하루아침에 그 동네로 이사를 해버렸습니다.
  조금은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전에 동네에서 살던 습관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그 마을 사람들이 그리웠지만 일단 이사를 하고 보니 너무 좋습니다. 더디기는 하지만 저도 조금씩 조금씩 '그럴수도있지뭐 마을'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
<마지막 맨트> 월간 [들꽃편지]발행인 최용우전도사님이 띄워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는 cyw.pe.kr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7월1-5일 방송원고 최용우 2002-06-30 1803
12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6월24-28일 방송원고 최용우 2002-06-24 2019
11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6월17-21일 방송 원고 최용우 2002-06-17 1937
10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6월10-14일 방송 원고 최용우 2002-06-10 1903
9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6월3일-7일방송원고 최용우 2002-06-03 2219
8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5월27-31방송원고 최용우 2002-05-27 1859
7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5월20-24일 방송원고 최용우 2002-05-20 1960
6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5월 13일주간 방송원고 최용우 2002-05-13 2051
5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5월 6일주간 방송원고 최용우 2002-05-05 2353
»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4월 29-5월 3일 방송원고 최용우 2002-04-28 2022
3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4월 4주 방송원고 최용우 2002-04-22 2141
2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 4월 3주 방송원고 최용우 2002-04-14 2484
1 TV.라디오.방송 [극동방송 한낮의 음악편지]- 4월 2주 방송원고 file 최용우 2002-04-07 2649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150 세종시 보람1길12 호려울마을2단지 201동 1608호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