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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수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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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9·11·27
과학 문명과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세상이 이렇게 살기 좋아지는데 갈수록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인 문제들이 심각합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과 마약, 그리고 도박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다가 문득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허무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도피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지치고 실망한 사람들이 피할 곳이 없습니다. 도피처가 없기 때문에 술이나 마약, 그리고 도박과 같은 거짓된 도피처로 빠져 들어가 인생을 망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죄인이 그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는 피난처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죄는 사람을 절망시키고, 마침내는 파멸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정말 피난처가 없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그러한 피난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망 없는 인간들에게, 특히 현대인들에게 복음이 아닐 수 없다.
도피성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7년 동안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했으며, 정복한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했습니다. 19장은 “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더라”라는 말로 끝납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제 가나안 땅에서 행복하고 편안하게 사는 문제만 남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 살인죄에 관한 것입니다. 이 거룩하고 복된 땅에서 살인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입니다. 교육을 잘 받고,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고, 게다가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사람이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간증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실수는 할 수 있고, 또 다시 범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죄를 범했다 해도 놀라거나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아 더욱 근신해야 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넘어진 형제를 붙들어 주며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도피성은 사람을 죽인 자, 특히 부지중에 실수로 살인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도였습니다.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3절) 살인죄를 범했다 하더라고 그것이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된 것이라면 정상을 참작하여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피성 제도에는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존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한 사람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18:10)
교회 안에서 형제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사람을 무시하고 상처를 주며 실족하게 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교회에서 형제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형제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행여나 형제가 상처를 받거나 불편해 하지는 않겠는지 늘 조심하고 배려하십시오. 연약하고 힘들어하는 형제를 붙들어주며 세워주기를 힘쓰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부지중 실수로 살인한 자
도피성에 관한 말씀을 대할 때 우리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따뜻하신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며, 그래서 큰 위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이해하시며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심지어는 큰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연약해서 본의 아니게 된 것이라면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아 형제가 본의 아니게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관대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도피성 제도는 사람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배려에서 나온 것이며, 이스라엘이 기업으로 받은 땅이 살인과 보복의 피로 물들지 않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사람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을 때 그의 가족이나 친척 중의 한 사람이 그 사람을 찾아가 죽일 수 있었습니다.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민35:19) 그것은 정당한 복수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의 아니게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였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피의 보복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보복의 피가 끊이지 않고 흘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도피성 제도를 만드셔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살인한 사람은 배상금이나 감형이 용납되지 않고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했습니다.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 죽이면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민35:16) 도피성은 부지중에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위한 피난처였습니다.
장로들에게 고하라
부지중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도피성으로 피해 달아나야 했습니다. 만일 가만히 있으면 보복하는 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피성으로 피해왔으면 가장 먼저 그 성의 장로들에게 그 사건에 대해서 자초지종을 말해야 했습니다.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4-5절)
도피성으로 피해온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에게 일어난 사건을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고하여 용서 받는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는 무슨 죄를 지었을 때 즉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용서해주시고 해결해주십니다. 우리는 또한 형제들끼리도 서로 마음을 열어놓고 서로 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용서받고 용서하며 어루만지고 위로하여 치유하고 세우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특히 목장 모임에 힘쓰고, 목장에서 모든 것을 내놓고 서로 고하도록 하십시오. 그때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치유해주실 것입니다.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 의대 학장이었던 마이클 로이진 교수가 “젊어지는 78가지 방법”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매일 비타민을 먹으면 1.2년, 매일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으면 1.1년, 많이 웃으면 1.7-1.8년, 평생 배우는 자세를 가지면 2.5년, 손과 식품을 자주 씻으면 0.4년, 안 튀긴 생선을 주 3회 먹으면 최고 3년, 일정한 시간에 숙면을 취하면 3년이 젊어진다. 담배를 하루 한 갑 피우면 8년이 늙고, 대기 오염에 노출되면 2.8년,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해소할 방법이 없으면 30년이 늙는다. 그런데 스트레스 받은 친구를 방문해서 위로하면 8년 젊어지고, 그런 친구를 피하면 8년 늙는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심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으면 30년이나 늙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 안에서 서로 죄와 허물을 고하며 위해서 기도하면 이 모든 스트레스가 완전히 해소되어 30년이 젊어지는 것입니다. 목장에서 마음을 열어놓고 맘껏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인간적인 학문과 상식으로도 이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성령께서 친히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위로하시며 치유하십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위로와 치유와 회복과 은총이 그곳에 부어집니다. 그러므로 목장 모임에 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참여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목장에 가서 나누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고하며, 형제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도피성으로 도망친 사람은 절대로 도피성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만일 밖으로 나가면 보호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살인자가 도피성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때가 있는데, 그 때는 바로 대제사장이 죽었을 때였습니다.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6절)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 살인자는 모든 혐의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의 생명을 그 살인자의 생명과 일치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 사람도 죽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의 모든 죄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 살인자는 이미 처형을 받은 것으로 간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피성에서 나와 자기 집으로 가서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그 형벌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것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연합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3-4)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되어 죄의 몸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새사람으로 다시 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은 사람은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도망하기에 가장 편리한 곳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도피성을 지정하여 구별했습니다.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7-8절)
여호수아가 구별하여 지정한 도피성들은 요단 서쪽에 세 곳, 요단 동쪽에 세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 성읍들은 각각 북쪽과 중간, 그리고 남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도피성은 부지중에 오살한 사람이 도망하여 피하는 데 있어서 가장 편리하고 가까운 곳에 있어야 했습니다. 만일 너무 멀거나 험한 곳에 있으면 도망가는 도중에 잡혀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중에 함께 사는 이방인들, 거류민들도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거류민들을 위하여 택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9절)
도피성이 주는 교훈들
도피성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죄인들은 그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죄인이든지 예수님께로 오면 살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들어오면 살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도피성은 살인자가 도망하기에 가장 쉬운 곳에 지정되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길이 쉽고 가깝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믿음으로 사는 길이 좁고 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누구나 구원받습니다. 구원의 길이 쉽고 가깝습니다.
도피성에는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니라 타국인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면 누구나 아무런 구별 없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믿는 자는 신분과 종족과 그 어떤 구별도 없이 구원을 받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도피성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도피성이 되십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만일 신자가 그리스도를 떠난다면 위험에 처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대제사장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예표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도피성이신 주님께로 피해야만 살 수 있는 죄인들입니다. 주님께 피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탄과 사망의 권세 아래 메이게 되고, 마침내 영원한 지옥 형벌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끊임없는 환난과 시험을 만납니다. 그 어디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고, 그 누구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이럴 때 불신자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술이나, 마약, 쾌락에 빠져 보지만 만족을 얻을 수 없어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는 도피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경우에 도피성이신 주님께로 피하면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이 그의 피난처이심을 수도 없이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도피성이신 주님께 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주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전능하신 만왕의 왕이시며, 나를 지극히 사랑하사 나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즉시 주님께로 나와서 그분께 모든 것을 내려놓도록 하십시오. 도피성이신 주님 안에서 생명을 얻었으니, 또 주님 안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 받으며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과학 문명과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세상이 이렇게 살기 좋아지는데 갈수록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인 문제들이 심각합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과 마약, 그리고 도박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다가 문득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허무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도피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지치고 실망한 사람들이 피할 곳이 없습니다. 도피처가 없기 때문에 술이나 마약, 그리고 도박과 같은 거짓된 도피처로 빠져 들어가 인생을 망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죄인이 그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는 피난처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죄는 사람을 절망시키고, 마침내는 파멸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정말 피난처가 없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그러한 피난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망 없는 인간들에게, 특히 현대인들에게 복음이 아닐 수 없다.
도피성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7년 동안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했으며, 정복한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했습니다. 19장은 “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더라”라는 말로 끝납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제 가나안 땅에서 행복하고 편안하게 사는 문제만 남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 살인죄에 관한 것입니다. 이 거룩하고 복된 땅에서 살인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입니다. 교육을 잘 받고,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고, 게다가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사람이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간증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실수는 할 수 있고, 또 다시 범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죄를 범했다 해도 놀라거나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아 더욱 근신해야 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넘어진 형제를 붙들어 주며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도피성은 사람을 죽인 자, 특히 부지중에 실수로 살인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도였습니다.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3절) 살인죄를 범했다 하더라고 그것이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된 것이라면 정상을 참작하여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피성 제도에는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존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한 사람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18:10)
교회 안에서 형제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사람을 무시하고 상처를 주며 실족하게 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교회에서 형제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형제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행여나 형제가 상처를 받거나 불편해 하지는 않겠는지 늘 조심하고 배려하십시오. 연약하고 힘들어하는 형제를 붙들어주며 세워주기를 힘쓰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부지중 실수로 살인한 자
도피성에 관한 말씀을 대할 때 우리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따뜻하신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며, 그래서 큰 위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이해하시며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심지어는 큰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연약해서 본의 아니게 된 것이라면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아 형제가 본의 아니게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관대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도피성 제도는 사람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배려에서 나온 것이며, 이스라엘이 기업으로 받은 땅이 살인과 보복의 피로 물들지 않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사람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을 때 그의 가족이나 친척 중의 한 사람이 그 사람을 찾아가 죽일 수 있었습니다.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민35:19) 그것은 정당한 복수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의 아니게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였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피의 보복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보복의 피가 끊이지 않고 흘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도피성 제도를 만드셔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살인한 사람은 배상금이나 감형이 용납되지 않고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했습니다.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 죽이면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민35:16) 도피성은 부지중에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위한 피난처였습니다.
장로들에게 고하라
부지중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도피성으로 피해 달아나야 했습니다. 만일 가만히 있으면 보복하는 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피성으로 피해왔으면 가장 먼저 그 성의 장로들에게 그 사건에 대해서 자초지종을 말해야 했습니다.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4-5절)
도피성으로 피해온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에게 일어난 사건을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고하여 용서 받는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는 무슨 죄를 지었을 때 즉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용서해주시고 해결해주십니다. 우리는 또한 형제들끼리도 서로 마음을 열어놓고 서로 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용서받고 용서하며 어루만지고 위로하여 치유하고 세우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특히 목장 모임에 힘쓰고, 목장에서 모든 것을 내놓고 서로 고하도록 하십시오. 그때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치유해주실 것입니다.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 의대 학장이었던 마이클 로이진 교수가 “젊어지는 78가지 방법”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매일 비타민을 먹으면 1.2년, 매일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으면 1.1년, 많이 웃으면 1.7-1.8년, 평생 배우는 자세를 가지면 2.5년, 손과 식품을 자주 씻으면 0.4년, 안 튀긴 생선을 주 3회 먹으면 최고 3년, 일정한 시간에 숙면을 취하면 3년이 젊어진다. 담배를 하루 한 갑 피우면 8년이 늙고, 대기 오염에 노출되면 2.8년,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해소할 방법이 없으면 30년이 늙는다. 그런데 스트레스 받은 친구를 방문해서 위로하면 8년 젊어지고, 그런 친구를 피하면 8년 늙는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심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으면 30년이나 늙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 안에서 서로 죄와 허물을 고하며 위해서 기도하면 이 모든 스트레스가 완전히 해소되어 30년이 젊어지는 것입니다. 목장에서 마음을 열어놓고 맘껏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인간적인 학문과 상식으로도 이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성령께서 친히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위로하시며 치유하십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위로와 치유와 회복과 은총이 그곳에 부어집니다. 그러므로 목장 모임에 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참여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목장에 가서 나누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고하며, 형제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도피성으로 도망친 사람은 절대로 도피성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만일 밖으로 나가면 보호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살인자가 도피성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때가 있는데, 그 때는 바로 대제사장이 죽었을 때였습니다.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6절)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 살인자는 모든 혐의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의 생명을 그 살인자의 생명과 일치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 사람도 죽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의 모든 죄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 살인자는 이미 처형을 받은 것으로 간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피성에서 나와 자기 집으로 가서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그 형벌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것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연합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3-4)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되어 죄의 몸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새사람으로 다시 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은 사람은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도망하기에 가장 편리한 곳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도피성을 지정하여 구별했습니다.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7-8절)
여호수아가 구별하여 지정한 도피성들은 요단 서쪽에 세 곳, 요단 동쪽에 세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 성읍들은 각각 북쪽과 중간, 그리고 남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도피성은 부지중에 오살한 사람이 도망하여 피하는 데 있어서 가장 편리하고 가까운 곳에 있어야 했습니다. 만일 너무 멀거나 험한 곳에 있으면 도망가는 도중에 잡혀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중에 함께 사는 이방인들, 거류민들도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거류민들을 위하여 택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9절)
도피성이 주는 교훈들
도피성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죄인들은 그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죄인이든지 예수님께로 오면 살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들어오면 살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도피성은 살인자가 도망하기에 가장 쉬운 곳에 지정되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길이 쉽고 가깝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믿음으로 사는 길이 좁고 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누구나 구원받습니다. 구원의 길이 쉽고 가깝습니다.
도피성에는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니라 타국인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면 누구나 아무런 구별 없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믿는 자는 신분과 종족과 그 어떤 구별도 없이 구원을 받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도피성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도피성이 되십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만일 신자가 그리스도를 떠난다면 위험에 처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대제사장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예표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도피성이신 주님께로 피해야만 살 수 있는 죄인들입니다. 주님께 피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탄과 사망의 권세 아래 메이게 되고, 마침내 영원한 지옥 형벌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끊임없는 환난과 시험을 만납니다. 그 어디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고, 그 누구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이럴 때 불신자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술이나, 마약, 쾌락에 빠져 보지만 만족을 얻을 수 없어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는 도피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경우에 도피성이신 주님께로 피하면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이 그의 피난처이심을 수도 없이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도피성이신 주님께 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주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전능하신 만왕의 왕이시며, 나를 지극히 사랑하사 나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즉시 주님께로 나와서 그분께 모든 것을 내려놓도록 하십시오. 도피성이신 주님 안에서 생명을 얻었으니, 또 주님 안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 받으며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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