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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롯의 가정

창세기 복음............... 조회 수 3911 추천 수 0 2011.05.09 15: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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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19:1-38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롯의 가정

본문: 창세기 19장 1- 38

본문을 보면 롯이 살고 있는 소돔성에 두 명의 천사들이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두 명의 천사들은 소돔 성을 보호하거나 지키기 위하여 온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소돔 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온 하나님의 사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너무도 악하고 추하며 무서운 죄들이 많아서 도무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곳이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롯은 그 소돔 성을 방문한 두 천사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으나, 그들을 나그네로 생각하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롯은 그들을 극진하게 잘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 두 천사들을 정성껏 대접해서 복을 받은 사람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입니다. 결국 롯과 두 딸은 천사의 말대로 소돔 성을 빠져나가 소알 성에 이르러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소돔성에 남겨둔 재산과 물질을 생각하면서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다봄으로 소금기둥이 되었고, 롯의 사위들은 천사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다가 유황불비 속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에도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의 경고를 무시하는 자들이 허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을 고서에 기론된 신화정도로 여기는 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예 무신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한 문화를 신나게 즐기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깨어있는 믿음으로 천사의 경고를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를 가진 자들이 복된 자들입니다. 미래시대의 세상은 돈 많고 권력이 있는 인간들을 위한 흥청거리는 쾌락의 도가니가 될 것이 뻔합니다. 현재보다 더욱 극심한 물질만능주의와 쾌락주의와 무신론적인 지식과 문화들이 팽배하는 소돔과 고모라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로 홀연히 심판의 날이 임하게 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영적인 귀를 열고 하나님의 경고와 말씀들을 듣고 선한 믿음으로 산 자들만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가장 귀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코 심판의 날을 잊지 마십시오. 어리석은 자들은 악한 일에 심판은 더디며 이 땅에는 우연만 있고 공의가 없다고 생각하나 심판은 반드시 오며 비록 늦게 올지 모르나 인간에게 죽음이 있는 것처럼 분명히 심판이 있습니다.
사람의 구원은 우리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 구원을 받고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에 있었던 일입니다. 유교 가정에서 자란 한 소년이 가족들 몰래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그 손자를 불렀습니다. 그 앞에는 시퍼런 칼이 있었습니다. “이놈! 우리 집이 어떤 집인데 네가 예수를 믿느냐? 내가 죽어서 조상 얼굴도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게냐? 당장 교회 나가는 것을 그만 두거라. 만일 오늘 여기서 네가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한다면 네가 앞으로도 우리 집의 종손으로 귀하게 대접을 받겠지만 계속해서 예수를 믿겠다고 하면 오늘 내가 이 칼로 너를 죽이고 이 할아버지도 자결해 죽을 것이다.” 그러자 아이가 눈을 감고는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나는 죽어도 예수님을 믿으니 천국에 가요. 예수님을 안 믿을 수 없어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예수님 안 믿으니 돌아가시면 지옥에 가요.” “뭐라고? 내가 다시 묻는다. 이 할아버지가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냐?”, “네, 할아버지도 예수님을 안 믿으면 무서운 지옥에 들어가요.” 할아버지가 화를 내며 손자 뺨을 후려갈기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 그러면 그것을 왜 이제야 말하느냐? 진작 말하지 않고! 자, 다음 주부터 이제 우리 가족은 다 교회에 나간다. 우리 가족은 다 예수를 믿을 것이다.” 결국 이 할아버지도 손자를 따라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핍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미쳤다고 조롱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드리는 사람보다는 거절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금광에는 금보다 돌이 더 많지만 그 안에서 금을 뽑아내는 것처럼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분명히 받아드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믿고 전도하는 일에 힘을 다합시다.
본문은 소돔성이 죄악이 가득해서 멸망하는 내용입니다. 롯은 이 성의 멸망 때문에 소돔성을 찾아온 천사를 잘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또 삼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의 응답으로 인하여 소돔성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추구했던 명성과 재산을 잃어버리고 부끄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소돔성이 멸망 받지만 그곳에서 구원을 얻은 롯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교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1. 세상적인 성공에 몰두하지 말라.
창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네가 복되고 너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에서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롯은 일찍이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삼촌 아브라함 밑에서 양육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고아가 된 롯을 친아들처럼 잘 양육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잘 사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고 아브라함을 따라다니던 롯도 복을 받았습니다.
창 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이 너무나 많아서 함께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소는 좁은데 가축은 많으니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가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집니다. 그 때 마음이 넓은 아브라함은 롯을 불러서 말합니다. “우리는 친족인데 서로 다툼이 있으면 안 된다. 그러니 헤어지자. 네 앞에 땅이 있으니 선택해라.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손해를 보려고 합니다. 자기가 고아인 롯을 키웠으니 롯은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이 없었다면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인데 아브라함 때문에 이렇게 복을 받았습니다. 거기다가 촌수를 따져도 아브라함은 삼촌이고 롯은 조카이니 아브라함이 먼저 좋은 땅을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아브라함이 양보를 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롯이 “삼촌 무슨 말입니까. 삼촌이 저를 이렇게 키워주셨고, 제가 삼촌 때문에 부자가 되었는데 삼촌이 좋은 땅을 차지하세요.”라고 말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삼촌의 깊은 사랑을 알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이끌려서 좋은 땅을 차지합니다. 롯이 눈을 들어보니 소돔과 고모라 성이 에덴동산처럼 좋게 보였습니다. 그는 그 좋은 땅을 삼촌에게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차지합니다. 아브라함은 섭섭했겠지만 좋은 땅을 롯에게 주고 좋지 않은 땅으로 갑니다.
아브라함이 인간적으로 섭섭했겠지만 양보한 것이 복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지고 나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눈을 들어 사방을 보게 하고 보이는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식이 없던 아브라함이 자식처럼 여겼던 롯과 헤어져서 마음이 슬펐는데 땅의 티끌과 같은 자식을 주시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셨습니다.
반면에 삼촌을 섭섭하게 하고 좋은 땅을 차지한 롯은 어떻습니까? 그는 에덴동산처럼 좋게 보이는 소돔성에 가서 거하면서 세상적인 성공을 추구합니다. 1절에 보면 그가 천사들이 방문하는 시간에 성문에 앉아있었습니다. 성문에 앉는 것은 아무나 앉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그 지역의 장로들이 성문에 앉았고 성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거나 재판할 때 성문에서 했습니다. 그러니 롯은 이미 그 성의 장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성공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따라다니다가 부자가 되었고 아브라함과 헤어진 후에는 소돔 성에서 장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가 얻었던 명성도 그가 얻었던 부귀도 한 순간에 사라져버립니다.
먼저 그의 명성이 물거품인 것을 말씀합니다. 9절에 보면 그 지역의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서 천사들을 내놓을 것을 요구합니다. 동성연애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 롯이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하자 사람들이 “이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라고 말하고 롯을 밀치고 문을 부수려고 합니다. 롯은 지금까지 성문에 앉는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자기 자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또 그는 자기를 길러준 삼촌에게 상처를 주고 좋은 땅을 선택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는 많은 재산을 모으고 물질적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소돔성이 유황불에 멸망하면서 그동안 롯이 모았던 재산이 다 불에 타 없어지고 맙니다. 결국 그는 거지가 되어 딸들과 굴에서 거주하게 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은 잘 보이고 이 세상 너머에 있는 영원한 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육신적인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춤을 추기도하고 슬피 울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은 잠간이고 이 세상 넘어 있는 내세가 중요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돈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돈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링컨이 변호사로 있을 때 어떤 사람이 큰 사건을 의뢰하면서 해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링컨이 말했습니다. “나 이거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맡을 수 없습니다. 변론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하는 말이 “이것만 해결하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거절합니까?” 링컨이 대답합니다. “평생 먹을 돈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먹여 주십니다.” 여러분 내 평생 먹을 것 하나님이 먹여 주십니다. 돈, 명예, 권력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물질이 커 보이고, 명예가 커 보이고, 권력이 커 보이지만 그것들 보다 구원이 더 크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더 큰 것입니다.

2. 나그네와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복이다.
보통 사람들은 대접을 받기는 원해도 대접하기는 원하지 않습니다. 남을 섬기는 것은 자존심 상해하고 섬기는 자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남을 섬기고 대접하는 것이 오히려 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7:12에서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하셨고, 마 20: 26- 28에서는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롯이 성문에 앉아있을 때에 두 천사가 성문에 이릅니다. 이 두 천사는 날개를 달고 눈부신 광채를 입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성문에 앉아있던 롯이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라고 말합니다. 천사들이 거절하자 롯은 그들을 강권해서 집으로 모시고 대접을 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롯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다 집으로 모셔서 대접하면 살림 거덜나겠지요.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양을 치던 베두인들에게는 손님을 잘 대접하는 좋은 풍습이 있었습니다.
히 13:2에 보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이 롯에 관한 말씀입니다. 롯은 나그네를 잘 대접하여 천사를 대접하게 되었고, 소돔이 유황불로 멸망할 때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창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세 사람을 대접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은 하나님이셨고, 둘은 천사였습니다. 하나님과 천사는 종종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주님 대하듯이 그리고 천사를 대하듯이 잘 대접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종을 잘 대접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마 10:40-42에 보면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 같은 사람들에게도 주님 대하듯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원수 같은 그 사람을 통해서 나를 테스트 하실 수도 있습니다.
<대지>의 작가로 유명한 펄 벅 여사 이야기입니다. 펄 벅의 부모님은 중국선교사였습니다. 그 때는 서양인이 중국에 거의 없을 때였습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다른 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집에는 어머니와 세 자녀가 있었습니다. 가뭄이 계속되자 온 동네 사람들은 굶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중국인 남자 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계속되는 원인이 있다. 서양인들이 우리 땅에 들어 와서 땅이 부정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 선교사 가족을 죽이자. 그리고 신에게 바치자. 그러면 가뭄이 끝날 것이다.” 어머니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니 도망을 갈 수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죽이러 오는 이들을 대접하여라.” 어머니는 평소보다 일찍 아이들을 재우고 창가에 앉아 바느질을 하면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정쯤 되자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는 가정부에게 차와 케이크를 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열린 문으로 그들이 당당하게 들어 왔습니다. 그는 자고 있던 아이들을 깨워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죽이려고 온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서 들어와서 함께 차와 다과를 나눕시다. 맛있게 드세요. 준비하여 놓았어요.”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놀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인 한 명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무섭지 않소?”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이웃에 사는 여러분을 무서워할 이유가 있을까요?” 어머니는 오르간 앞에 앉아 중국말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 찬송이 끝날 때까지 방안은 조용해졌습니다. 그 곳에 모인 중국인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멋쩍어하였습니다. 조금 후 하나 둘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머니는 의자에 주저앉아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원수를 악으로 갚으려고 하지 말고 사랑으로 대접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소돔의 타락은 손님들에 대한 무례와 성적 타락에서 잘 드러납니다. 롯은 끝까지 자신의 딸을 희생할 각오까지 하면서 손님들을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오늘날의 윤리적인 기준에 비추어 보면 롯의 언행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당시에 ‘나에게 온 손님’은 주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나는 주변의 연약한 이웃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습니까?

3. 가까운 사람부터 전도하라
롯이 천사들을 잘 대접하고 있는데 소돔성의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롯의 집을 에워쌉니다. 그리고 롯의 집에 들어온 사람들을 요구합니다. 그들과 상관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관한다는 말은 성적인 관계를 갖겠다는 말인데 천사들이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동성연애를 하겠다는 말입니다. 놀란 롯이 소돔성 백성들에게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롯을 밀치고 집의 문을 부수려고 합니다. 그 때 천사들이 손을 내밀어서 롯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문 밖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만듭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롯에게 “소돔성이 멸망할 것이다. 네게 속한 자가 있느냐.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12-14절)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롯은 즉시 사위들의 집으로 달려가서 사위들에게 이 사실을 전합니다. 안타깝게도 롯의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동틀 때가 되어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니 롯이 일어나서 아내와 두 딸을 이끌고 그 성에서 도망쳐 나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지상에서 이뤄지는 ‘예비 심판’입니다. 일종의 중간 결산 같은 겁니다. 그리고 종말의 때에 이뤄질 ‘최후 심판’이 있습니다. 예비 심판은 최후 심판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은 예비 심판을 통해서 최후 심판이 어떠할 것을 보여주십니다. 소돔성이 받은 심판은 당연히 예비 심판입니다. 그런데 그 심도가 처절하여 마치 최후의 심판의 예고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롯이 사위들에게 소돔의 멸망을 알린 것은 전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롯은 자기에게 속한 자들 즉 아내와 딸과 사위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 그곳에서 나갈 것을 권면 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세상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에게 속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롯의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장인어른, 이 밤중에 왜 이러십니까? 정신 차리세요. 농담하지 마세요” 하고는 장인을 돌려보냈습니다. 결국 장인의 권면을 농담으로 여겼던 사위들은 소돔성이 멸망할 때 함께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전도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받아드리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고 거절하는 사람은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고전 1:21에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 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불신자의 눈으로 볼 때 전도하는 것이 미련한 짓거리를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 방법으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가장 큰 사랑의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롯이 그 상황에서 사위들에게 집을 사주고, 치를 사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곧 멸망할 것인데 말입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큰 사랑은 멸망의 소식을 알리고 그 성에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고 물질로 돕고 힘과 용기를 주는 것도 사랑의 실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도록 전도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큰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롯과 롯의 딸들은 소돔성이 유황불로 불탈 때 두고 온 사위와 남편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우리가 구원을 얻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갔는데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도합시다. 내게 속한 사람들에게 먼저 전도합시다.

4. 말씀을 듣고 망설이고 주저하지 말라
소돔을 찾아온 천사들은 롯에게 자기들이 소돔을 멸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13절). 그리고 다음 날 날이 밝자 천사들은 롯에게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천사들의 말을 듣고도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라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15-16절) 참 이상한 일입니다. 소돔에 멸망이 임박하여 당장에 도망쳐 나가야 할 상황에서 롯은 왜 머뭇거리고 있었을까요?
롯은 소돔에서 떠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이렇게 지속되어 오던 소돔이 오늘 갑자기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소돔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소돔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다 모든 것을 투자했습니다. 그의 모든 재산을 투자했고, 그의 젊음과 인생을 그곳에다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돔이 망할 것이라고 하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그 성이 멸망을 당할 것이니 속히 나가라고 말해도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16절에 롯이 지체했다는 것은 자신의 전 재산을 두고 나오는 사람의 근심과 걱정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재산이라고 해도 생명과는 바꿀 수 없습니다.

5.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소돔의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뒤돌아보지 말고 피난처를 향해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그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기둥이 되었더라”(26절)
롯의 아내가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마치 롯의 사위들처럼 하나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은 절대적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다해 진지하게 듣고 온전히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본 또 하나의 이유는 소돔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평생 수고해서 마련한 집과 가축들과 재산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롯과 함께 그의 아내 역시 소돔에다 모든 것을 투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모든 것을 버려두고 심판을 피해 도망을 쳐야했습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돔의 멸망을 피하지 못한 것입니다.
성도는 죄와 사탄에게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온 사람들입니다.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뒤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죽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2) 당신에게 예수 믿고 나서도 여전히 버리지 못한 세상적인 것들이 있습니까? 아직도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술을 마시고 즐기는 일이 있습니까? 그것은 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발목을 붙잡아 화를 당하게 할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세상의 죄악된 것들에 미련을 두지 말고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천사들은 롯을 소돔성에서 내보내면서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을 가라고 했습니다. 롯은 산으로 도망가기는 너무 힘들다고 생각을 했는지 소알이라는 가까운 성으로 도망가고 싶다고 합니다. 천사들은 롯의 청을 듣고 그렇게 하도록 허락합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26절에 보니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됩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성을 급히 빠져나오느라고 아무 것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집에는 평소에 아끼던 물건도 가득하고 재물도 가득했습니다. 또 많은 양떼와 소떼들을 두고 온 것이 너무나 속상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롯의 아내는 천사들의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소금 기둥이 됩니다. 주님은 눅 9:62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포기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만만한 것만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위해서 대신고난 당하셨지만 우리가 당해야 하는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만족하고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늘 성령충만 하지만은 안습니다. 밧데리가 방전 되듯이 은혜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은혜의 힘으로 하는 것인데 은혜가 떨어지면 그 때부터 만족이 사라지고 만족이 사라지면 행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믿기 전에 육신이 즐거웠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믿기 전에 육신적인 만족에 빠졌던 때를 그리워하거나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육신의 만족을 사모한다면 그것이 바로 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집착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하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롯의 아내가 지은 죄가 뭐 그리 큰 죄입니까? 소돔에서 나오면서 뒤를 돌아봤을 뿐입니다. 소돔성으로 돌아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뒤를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세상으로 간 것도 아니고 세상을 잠시 그리워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롯의 아내는 화를 입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가졌던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돌아보는 습관이 나에게 아직 남아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앞만 보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만 바라보십시오. 사람은 앞을 보고 살라고 눈이 앞에 있습니다. 뒤로 걷는 것보다 앞으로 걷는 게 편하게 되었습니다. 자동차나 고속전철을 타도 뒤로 가면 매우 피곤합니다. 사람은 앞을 보고 살도록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뒤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피곤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된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항상 어제를 생각하고 사는 게 아니라 미래를 즉 앞을 생각하고 뛰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는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에 빠져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되는 것만을 추구하는 게 아닙니다.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준비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콘웰 박사는 성공한 사람은 삶을 출발할 때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뛰었으며, 다음은 마음에 열화 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셋째는 그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는 굳은 결의의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흘러간 물로는 역사의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잘한 것이 많다고 해도 뒤를 바라보면 비극입니다. 잘못했어도 뒤만 바라보지 아니하면 되는 것입니다. 앞을 바라봅시다. 미래를 보고 달려갑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6. 중보기도에 힘쓰라
중보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롯에게 이렇게 자비를 베푸시고 그를 구원해주셨을까요? 본문 2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겠다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분명 롯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놓고 롯을 구원해주시라고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하나님 앞에서 사사로운 친척관계를 내세워 기도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했습니다. 그 성에 의인이 있다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함께 멸하셔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롯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롯을 구원해주셨던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은 소돔이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롯에게 달려가 그를 구해내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그럴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설혹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해도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롯에게 달려가서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하려 하시니 빨리 도망치라고 말했다면 롯이 들었을까요? 롯이 순순히 그 성에서 나왔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롯은 삼촌의 말에 크게 반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사 그를 강권적으로 이끌어내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직접 간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의 위력입니다. 우리가 직접 갈 수 없고, 직접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직접 가셔서 그 일을 해결하십니다. 내가 간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에 힘쓰는 성도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몸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보다 기도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일,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하시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주님의 종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기도가 나라를 지키고, 교회를 바로 세우며, 성도들의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중보 기도자 개인의 문제까지 해결해주십니다. 이것은 중보기도에 힘쓰는 성도들의 체험을 통해서 이미 증명된 일입니다.
구원받은 사람,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로 믿고 교회에 나온 성도들을 심방할 때마다 그를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해온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때 우리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중보기도가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십시오. 당신의 중보기도가 영혼을 건지고 나라를 지키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누군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사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조금만 잘못해도 개독교라고 하면서 비난을 합니다. 물론 기독교인들 중에도 상식 이하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많다보니 실수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사는 것이 이 나라를 심판으로부터 보호하는 길입니다. 이 나라에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믿음으로 신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정말 신실한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잘하는 것 만한 애국도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인 오십을 놓고 기도했지만 소돔성을 생각하니 안심이 안 됩니다. 그래서 5명을 깎아서 의인 45인을 놓고 기도합니다. 그래도 불안하니 의인 40명을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40인도 불안했던지 30명, 20명,10명까지 깎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성에 의인 10명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도를 멈춥니다. 그런데 소돔성에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결국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소돔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부족해도 기도하는 우리를 생각하셔서 응답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서 기도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아브라함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의 기도도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가족, 친척, 친구, 이웃을 위하여 비는 기도가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기도하시기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에 동참해 주십시오.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도 응답이 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더 강력한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7. 이 세상에 투자하지 말라.
오늘 우리도 이 세상에 대하여 롯처럼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3:7) 이 세상은 영원한 곳이 못됩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멸하실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우리 인생은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이 잠깐 왔다 가는 안개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언제까지나 살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다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정말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다 우리의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19-21)
우리가 이 세상에 쌓아두는 것은 다 썩어지고 없어집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다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것은 마치 철거지역에다 자신의 재산을 몽땅 투자하여 건물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롯은 소돔에다 모든 것을 투자했습니다. 그래서 소돔이 멸망을 당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가 막혔습니다. 소돔에 미련이 남아서 심판이 임박했는데도 그곳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소돔은 결국 불에 타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롯이 그곳에 투자한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오늘 어디에다 투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투자한 것이 영원히 남아있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늘나라에 투자하십시오. 여러분의 재물과 시간과 정력을 세상에다 몽땅 쏟아 붓지 말고 하늘나라에 투자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8. 술취하지 말라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죄책감 없이 행동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성경에 어디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많은 곳에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곳을 통하여 술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지만 술을 마셨을 때 가져다 주는 결과들에 대하여 살펴봄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노아는 분명히 의인이며 자기 세대에서 완전한 자 일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했던 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창6:9).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고, 모든 인류가 멸망하는 상황에서 자기의 가족들과 더불어 살아났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큰 오점을 낳게 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의 원인이 바로 술이었습니다.(창9:20-27)
노아는 술로 인하여 자녀들 앞에서 벌거벗는 모습을 보였고, 이일들은 결국 가족의 분열로 이어졌으며, 손자인 함의 아들 가나안의 저주로 그의 후손들은 저주받은 민족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노아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술은 결국 아담 이후로 새로운 세대를 시작하고자 했었던 하나님의 계획을 그르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술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롯도 우리는 술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성경이 말하기를 의로운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후2:7). 그러나 그가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두 딸은 아버지 롯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두 딸이 아버지와 동침함으로서 아들을 낳게 되는 근친상간의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창19:30-38)
비록 롯이 아브라함과의 관계에서 옳지 못한 모습들과 자기중심의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를 부패한 자가 되게 만들었던 도구는 바로 술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술은 결국 롯의 생애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술은 이처럼 사람의 이성을 잃게 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구덩이로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레10:8-9)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삿13:7)
제사장과 나실인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에게 술이 금해진 것과 같이 스스로를 제사장이요 구별된 자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술을 금해야만 합니다. 술은 주님 앞에 경건해야 할 자들이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조롱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날뛰게 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이것들에 속는 자는 지혜롭지 못한 자니라”(잠20:1)
술은 사람을 망가뜨리는 일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어디에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씀이 있느냐고 말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마시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충만한 삶과는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술 취한 자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한다면 술을 멀리하십시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악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9. 하나님의 자비
소돔에 심판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롯은 그곳을 떠나지 못한 채 지체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잠시 후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모든 것을 살라버릴 것인데 롯은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롯과 그 가족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을 강권적으로 구원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16절)
천사들은 이렇게 롯과 그 가족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내고 빨리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7절) 그러나 롯은 산까지 갈 수 없으니 저기 보이는 작은 성으로 도망하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천사는 롯의 간청을 허락하고 그가 그 작은 성에 들어갈 때까지 잠시 심판을 연기했습니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희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21-22절)

10. 마지막 심판의 때가 다가옵니다.
소돔이 멸망하던 날,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여전히 맑고 아름다운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그리고 평온한 그 아침에 소돔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소돔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심판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롯으로부터 심판의 경고를 받은 롯의 사위들까지도 심판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날도 여전히 죄악된 삶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홀연히 심판이 임했습니다.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이 쏟아졌습니다. 아무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까지 이룩해놓은 모든 것들과 함께 불타고 말았습니다. 철저한 심판이 임했던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방주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면서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120년이 지난 어느 날 노아가 만든 방주는 닫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가족 8명뿐이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와 소돔의 멸망은 마지막 심판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이 두 사건은 우리에게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이 어떻게 올 것이며, 그 심판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8)
소돔이 멸망을 당하던 그 날도 여느 때처럼 맑고 평화로운 아침이었습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태평하게 그들의 일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홀연히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던 모든 것들과 함께 완전히 불타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닥친 심판을 아무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막상 심판이 닥쳤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심판도 이런 식으로 닥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태평하게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의 죄악과 쾌락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때 오실 것입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2-3)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이 바로 결산할 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이 아니라면 언제이겠습니까? 당신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래서 자꾸만 뒤로 미루고 나태하며 세상에 빠져 있을 때 주님께서 갑자기 임하시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일단 결산을 해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지금 오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결산하신다고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은 오늘까지 마음을 다해 믿음을 지켜왔습니까? 가장 기본적으로 주일 예배는 어떻게 했습니까? 십일조는 제대로 드려왔습니까? 성경은 얼마나 묵상하고 있으며, 매일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얼마나 순종하고 있습니까? 기도생활은 어떻습니까? 새벽에 정 일어날 수 없다면 심야기도회에는 얼마나 참석했습니까? 집이나 사무실에서 혼자 기도해왔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 세계 선교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며 헌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신 봉사의 일에는 얼마나 충성해왔습니까? 형제를 사랑하는 일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 나도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직도 술과 도박과 죄악된 세상 쾌락을 끊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아마도 주님 오실 때도 그런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결산하실 때 점검하실 것을 이 자리에서 어떻게 다 열거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정도에서 여러분의 성적은 어떻습니까? 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마십시오. 소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졸지에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준비되지 못한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끊지 못한 죄악된 것들이 당신의 발목을 잡아 화를 당하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큰 일이 아닙니까? 더 이상 이 세상에 투자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투자하십시오. 지금 결단하십시오. 오늘 여러분의 결단이 정말 복된 결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결단으로 인하여 우리가 주님 오실 때 부끄러움과 후회가 없이 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 기도: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정직으로 만민을 판단하시는 주여, 주가 우리의 도움이심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가까운 이때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죄악을 멀리하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더욱 힘쓰고 서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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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sort
17538 누가복음 겟세마네의 기도 눅22:42-43  김남준 목사  2012-07-23 3938
17537 마태복음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마3:7∼12  곽선희 목사  2010-09-29 3938
17536 열왕기상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왕상2:1-3  이정수 목사  2010-06-29 3934
17535 설교자료 순복음중앙교회 조용기 목사의 설교 설교비평  정용섭 목사  2008-08-09 3933
17534 사무엘하 속죄제와 속건제 삼하21:1-9  조용기 목사  2009-05-07 3930
17533 민수기 레위지파의 구별 민1:47~54  이정원 목사  2011-11-09 3926
17532 요한복음 복된 삶을 위한 3대 권면 요10:31-42  이한규 목사  2010-11-30 3925
17531 이사야 노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사46:3-4  이상호 목사  2013-06-12 3924
17530 창세기 나와의 씨름 창32:23-3  권진관 형제  2005-02-16 3924
17529 출애굽기 어떻게 여화와를 섬길느지 출10:1-29  곽면근 목사  2013-04-18 3919
17528 누가복음 나는 과연 천국에 갈수 있을까? 눅23:39-43  이동원 목사  2010-04-08 3917
17527 고린도후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자 고후2:14-16  한태완 목사  2013-06-28 3915
17526 요한복음 역전의 인생으로 살자 요5:1-9  이상호 목사  2013-06-12 3914
17525 출애굽기 맥추감사절! 출3:16  송수천 목사  2013-01-03 3913
17524 이사야 최악을 최선으로 만드는 길 사60:1-3  이한규 목사  2010-01-14 3913
17523 요한복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11) 향유를 부은 마리아 요12:1-8  김필곤 목사  2013-07-19 3911
» 창세기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롯의 가정 창19:1-38  한태완 목사  2011-05-09 3911
17521 출애굽기 유월절 어린양의 피의 효능 출12:1-14  이한규 목사  2012-08-12 3910
17520 요한복음 손 안에 있는 행복 요13:31-38  이한규 목사  2010-12-31 3907
17519 요한계시 요한계시록 5장에서 받는 영적 교훈 계5:7~14  석원태 목사  2009-12-17 3905
17518 누가복음 마리아의 찬가 1 눅1:46-55  이동원 목사  2009-11-29 3905
17517 출애굽기 좋은 리더의 3대 태도 출18:1-12  이한규 목사  2012-09-14 3903
17516 예레미야 토기장이 하나님 렘18:1-11  정용섭 목사  2010-09-06 3903
17515 창세기 팥죽과 장자권..... 창25:27-34  이정원 목사  2010-02-12 3902
17514 신명기 모세의 무덤이 없는 이유 신34:1-12  정용섭 목사  2010-04-21 3900
17513 창세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창4:1-7  한태완 목사  2013-10-21 3899
17512 출애굽기 위기로 복 받은 두 산파 출1:15-22  최세창 목사  2012-12-02 3899
17511 이사야 상한 갈대의 감사 사42:1-9  김동현 목사  2011-11-22 3898
17510 누가복음 기도란 무엇인가? 눅11:5-13  정용섭 목사  2009-08-05 3897
17509 마가복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막11:14  한태완 목사  2007-11-14 3896
17508 누가복음 부활 신앙으로 삽시다 눅24:1∼12  우제돈 목사  2010-03-11 3895
17507 사도행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법 ..... 행1:15-26  이정원 목사  2011-05-07 3893
17506 마가복음 믿음의 능력과 그 반열 막5:32-34  권진관 형제  2003-07-24 3892
17505 아모스 정의를 외친 선지자 아모스 암5:1-15  한태완 목사  2011-01-28 3891
17504 열왕기상 빈손으로 왔다가는 인생 왕상11:1-13  최장환 목사  2013-09-04 3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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