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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매체에 실린 최용우의 글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실린 매체를 찾을 수 없어서 올리지 못한 글도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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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2001.10월 (행복수첩) 원고
어머니의 밥그릇
올해 여름은 모처럼 고향에서 혼자 사시는 어머니와 단 둘이 보냈습니다. 집안을 정리하다가 창고에서 오그라진 양은 밥그릇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의 밥그릇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일찍 하늘로 가버리자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남겨진 3남매를 키워야 했던 어머니의 고생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차마 구걸은 할 수 없어 옷 보따리를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옷을 팔았습니다. 저녁때 집에 올 때는 돈 대신 받은 옷보따리보다 더 큰 곡식보따리를 이고 왔습니다. 그러나 곡식은 다시 시장으로 이고나가 팔았고 남은 곡식으로 3남매가 배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여, 하루에 한끼나 두끼는 죽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밥을 반 그릇씩 남겼습니다. "나는 아래동리에서 묵고 왔응께. 너그덜 째까씩 더 나눠 묵어라잉~!" 하시면서 밥을 나눠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은 여전히 밥을 남기기는 하는데 꼭 부엌으로 가지고 가셨습니다. 늘 배가 고팠으므로 우리 삼남매는 그 남은 밥그릇을 노리기도 하였지만 어머니가 부엌에서 다시 남은 밥을 드시려니 생각하고 입맛만 다셨습니다.
그 날도 어머니는 밥을 반 그릇 남겨 부엌으로 가셨는데, 우연히 설거지하는 그 밥그릇을 살짝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밥그릇 밑바닥에는 커다란 배추밑 뿌리가 깔려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머니는 밥그릇 바닥에 배추 밑등걸을 넣고 그 위에 밥을 살짝 덮어 들고 들어오셔서 자식들에게 그걸 감추기 위해 밥을 반 만 드셨던 것입니다.
벌써 25년전 이야기입니다. 그 밥그릇은 없어졌지만 (창고에서 나온 밥그릇은 그 이후에 쓰시던 밥그릇입니다.) 그 사건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그때 얼마나 배가 고프셨을까 생각하니, 지금은 늙어버린 어머니를 바라보는 눈에서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래서 휴가 기간 내내 가까운 광주에 나가 하루에 한가지씩 먹을 것을 사 날랐습니다. 피자, 치킨, 팥빙수 같은 패스트푸드와 찹쌀떡, 떢볶기도 사와서 그때 아픈 추억을 이야기하며 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아따아~ 머시 요로코롬 시콤하고 맛나다냐~"
최 용 우
'햇볕같은이야기(http://cyw.pe.kr)'라는 기분 좋은 무료 인터넷신문을 매일 발행하고 있으며, 그림처럼 아름다운 충북 보은의 깊은 산골짜기에 폐교된 학교를 빌려 꾸민 [갈릴리마을]에서 나그네들을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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