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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681 추천 수 0 2011.05.20 1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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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16:1-12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저는 가끔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하였던 고 김정문 집사님 묘지를 찾아 갑니다. 많은 세월은 아니지만 목회자와 성도로 한 교회를 섬기며 동일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했고,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에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 같습니다. 연세가 저보다 훨씬 어른이셨지만 저에게 “인생의 마지막 신앙 동지”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시자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 저를 목회자로 잘 섬기려했고 열린교회를 좋은 교회로 만들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번 주도 공원묘지에 갔다 왔는데 그곳에 가면 수많은 묘들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묘들이 저에게는 별 의미 없는 묘들입니다. 김집사님 묘에 가서 기도하고 내려오는데 군데군데 사람들이 묘지 앞에 서있었습니다. 왜 그 많은 묘들 중에 한 묘 앞에 서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관계 때문입니다. 살아 계셨을 때 돌아가신 분과 애틋한 관계 때문에 그 무덤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관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돌아가셨어도 산자의 마음속에서 살아 있는 것입니다. 내려오면서 생각을 정리하여 오늘 주보에 실은 표제시를 섰습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라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크게 세 부류의 만남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방관자로서 만남, 둘째 참여자로 만남, 셋째 직접 경험하는 주관자로서 만남입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감사하고 사는 것은 직접 경험하는 주관자로서 만남입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계속 보고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문제만 발생하면 원망을 합니다. 방관자나 참여자로 만나기 때문입니다. 홍해의 기적을 경험하고 마라의 쓴물이 단물이 된 것도 목격하고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늘 방관자 입장에 서 있고, 조금 나아가 참여자적 입장에 서 있습니다.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가나안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세의 지시에 따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쉽게 문제를 만나면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또 다시 먹을 것이 없자 신 광야에서 원망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1.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은 일어난 일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길 원하십니다(3,6).

오아시스인 엘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풍족하게 물을 먹었습니다. 광야에서 지친 몸을 편이 쉬게 하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곳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림이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었기 때문에 다시 광야로 출발했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지 한 달 만에(출12:37; 민33:3) 신 광야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또 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먹을 것이 다 떨어진 것입니다. 애굽을 출발할 때 곡식을 가지고 출발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한 달이면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상한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갈 길은 먼데 식량을 다 떨어진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지 한 달이 지났으므로 식량이 바닥이 난 것입니다. 이 때 이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2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온 회중이 원망하였다고 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온 회중입니다. 수군거리며 불평을 한 것입니다. 원망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모세와 아론입니다. 모세와 아론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원망하다는 히브리어 “테루나”의 어근 ‘룬’은 ‘밤을 지새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식량부족으로 원망하는 것이 단순한 불평 정도가 아니라 밤을 새우며 크게 농성하면서 대대적으로 불만을 토로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단어입니다. 이들은 원망의 선수입니다. 홍해 앞에서도, 마라의 쓴 물 앞에서도, 르비딤(출17:3)에서도 요단강 앞에서도 원망합니다. 민수기 11:1을 보면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1:27을 보면 "장막 안에서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원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집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늘 원망 투성이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삶을 살면 복이 떨어져 버립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붙지 않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지 않고 원망부터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문제가 일어나자 그 원인을 모세와 아론에게 돌렸습니다.
모세와 아론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문제가 없고 타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원인은 다양한데 마녀 사냥을 하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시킴으로 자신이 그 문제로부터 도피할 명분을 확보하고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 건축이라는 문제가 다가옵니다. 도피의 명분을 타인에게서 찾습니다. 목사님에게, 장로님에게, 교회에 문제가 있으니까 교회를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내가, 남편이 문제가 있으니까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매사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는 원망하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주신 큰 은혜는 보지 못하고 사소한 결핍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배고픈 자유인이기보다는 차라리 배부른 노예의 길을 다시 택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어 자유인된 것을 생각지 못하고 현재의 굶주림에만 집착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망각해 버린 것입니다. 100번 잘해 준 것은 까마득하게 잃어버리고 한 번 잘 못한 것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과거를 과장되게 미화하며 포장하는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옛날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옛날 교회가, 옛날 회사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으면 뭐합니까? 큰 교회, 큰 회사 다녔으면 뭐합니까? 먹지도 못하는 고기, 남의 노예로 남의 고기만 만들어 주는 인생이었는데. 떡을 배불리 먹었다고 과거를 미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심각한 고역을 하면서 살았는데 언제 배불리 먹었겠습니까?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누가 알아나 주었습니까? 아들을 낳으면 나일 강에 빠뜨려야 했습니다. 고역과 압제 하에 기본 생계만 유지하였습니다. 현실이 고달프니까 과거를 미화하는 것입니다. “그 때가 좋았는데, 그 교회에 다녔을 때가 좋았는데, 그 회사 다녔을 때가 좋았는데...” 이런 식으로 과거를 과장되게 미화합니다.

셋째는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장자 재앙을 내렸을 때 차라리 하나님의 손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마음 고생은 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값없이 살려 주었는데도 그 은혜를 망각하고 조금 어려우니까 극단적인 말을 서슴없이 지껄이는 것입니다. 성급하게 감정적으로 단정하고 극단적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며 미래를 부정적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굶겨 죽일 작정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고 단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인체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는 것입니다(4).

모세와 아론은 지나온 과거를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보십시오.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지나온 일은 사실보다 해석의 문제입니다.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태도와 방향이 달라집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셨다고요?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이 인도하여 내어 이런 꼴을 당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모세와 아론이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은 일어난 일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길 원하십니다
결혼하게 된 것, 자녀를 낳은 것, 교회를 건축하는 것, 사업을 하는 것 다 누가 하신 것이라는 말입니까? 과거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인간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되어진 일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데부터 원망의 날개는 접히고 새로운 희망의 날개는 활짝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느 날 소경을 보았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어 봅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이미 되어진 일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금 광야에 있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주고 고통가운데 죽이려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희망의 땅 가나안을 주시고 훈련시키기 위해 광야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과거를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십시오.

2.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은 일어날 일에 대하여 희망을 가지고 기대하시길 원하십니다(3,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기 위해 광야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훈련이라는 것은 늘 편안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군인들이 훈련을 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유사시에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독한 훈련을 시켜 전쟁시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한 전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군인들을 훈련시킬 때 전쟁시 식량이 보급되지 않을 것을 대비하여 생존 훈련을 시킵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살아남는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광야에서 훈련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 그들은 미래에 대하여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래를 주려 죽을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홍해가 앞에서 바로의 군대가 뒤쫓아 오니까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고 원망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통해 홍해를 갈라 주었습니다. 그 후 사흘이 지난 후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쓴 물이 나옵니다. 그러자 또 이들은 마실 물이 없다며 원망합니다(15:22-27). 하나님께서 쓴물을 단물 변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해방된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먹을 음식이 없습니다. 굶주려 죽게 될 것이라고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로 말하며 일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불경기입니다. 갑자기 재난이 다가 왔습니다. 원치 않게 질병이 걸렸습니다. 사고가 다가 온 것입니다. 이러면 어떻게 합니까? 미래의 희망을 접어 버리고 망하고 죽고 끝장 날 것으로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 집에 계속 있으면, 이 회사에 계속 있으면, 이 교회에 계속 다니면 손해보고 망할 것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섭리는 보지 못하고 피상적이고, 부분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으로 미래를 절망적으로 예측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그렇게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미래를 배불리 먹게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어떻게 미래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아침에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광야 가운데서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희망적입니까?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소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금 비록 먹을 음식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메추라기와 만나로 풍성히 채워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대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게 만듭니다. 생소한 하늘의 양식이어 그들은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것이 만나의 이름입니다. ‘마 후’가 헬라어로 만나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어 먹게 한 양식이라고 대답합니다.

얼마를 먹게 하였습니까? 메추라기를 일 개월 정도 내리게 하였습니다.(민11:21,31-35) 만나는 얼마나 먹게 하였습니까? 35절을 보십시오. 40년 동안입니다. 그들 광야에서 먹는 문제로 죽지 않았습니다.
무엇에 근거하여 이렇게 소망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것입니까?
4절 말씀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그렇습니다. 지금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200만 여명이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원망하는 백성의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보다 훨씬 더 크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의 소리에 관심을 기우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만나를, 메추라기를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었습니다. 허황된 말 같습니다. 과학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끌어 오시고 말씀한 것은 반드시 이루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기대를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일어날 일에 대하여 희망을 가지고 기대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의 생각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떻게 미래를 예측하고 기대하느냐에 따라 대부분의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작가 중의 한분인 존 맥스웰이 「생각의 법칙」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생각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의 책 서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성공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할까? 를 질문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대표적인 답은 "성공한 사람들에게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배경이 나쁘다. 전적으로 교육의 차이다. 실패를 하는 것은 운이 나쁘기 때문이다. 머리가 좋고 나쁜 차이다.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게으름 때문이다." 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그것이 이유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실패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믿음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면 기대가 달라지고, 기대가 달라지면 태도가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지며, 행동이 달라지면 실력이 달라지고, 실력이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희망을 말해야 합니다. 진흙땅에서도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쏟아지는 한 줄기 빛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가뭄 가운데 내리는 한 줄기 소낙비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받듯이 이루어집니다. 원망의 소리가 아무리 크게 들려 온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희망을 가지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예비해 놓고 있습니다.

3.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은 문제를 가지고 지금 바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9,10)

우리는 원망할 문제가 발생하면 타인 때문이라고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 때문에 미래에 암울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좋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날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오면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서로 원인을 상대방에 돌리며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육체적인 질병이 다가 오면 그것으로 인하여 죽을 것이라고 절망하기 보다는 그 질병을 통해, 그 경제적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타낼 영광을 소망가운데 기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한다고 원망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다 해결되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 한 가지 더 교훈해 주시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현재 그 문제를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근을 만나자 원망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일이 잘 될 때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는 아담과 하와처럼 풍요롭고 행복한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이 아담과 하와처럼 풍요로우면 유혹에 넘어갑니다.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려고 교만해집니다. 자신이 에덴의 주인 왕이 되려고 합니다. 잘 될 때 하나님의 잘 섬기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잘 못되면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사람입니다. 어려움 당하면 하나님께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찬양하며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고난이 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못되어도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끝없이 어려운 일이 다가오면 원망합니다. 문제는 원망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문제 붙들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굶주림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라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이 굶주림의 문제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임재를 삶의 현장에서 보게 됩니다.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더라.” 질병의 광야, 경제의 광야, 인간관계의 광야를 붙들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면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1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굶주림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더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지금 바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의 원망을 하나님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7,8,9,12). 광야의 문제를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 보다 우리의 사정을 하나님이 더 잘 아십니다. 우리의 미래를 우리보다 하나님이 더 잘 아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이 더 잘 아십니다. 그런데도 왜 침묵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왜 고난이 다가 옵니까? 왜 굶주려야 했습니까? 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신8:3을 보십시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주변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아가면 그 광야를 탈출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자세한 처방전이 나오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한 번 거두어 쌓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거두는 수고를 하라는 것입니다. 5절 보십시오. 제 6일에는 두 배를 거두라는 것입니다. 안식에는 거두지 말라고 합니다. 창조질서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안식일, 주일에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16절 보십시오. 매 사람의 인수 대로 한 오멜씩 취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단위로 2.3ℓ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보리 한 단"을 타작한 곡식의 양입니다. 욕심 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부족함도 남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원망게임에 익숙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20절을 보십시오. 28절을 보십시오. 지키지 않습니다. 광야는 현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훈련의 장입니
다. 나의 율법을 준행하는가 안하는가를 보는 장소입니다. 광야는 말씀을 준행 여부를 시험하는 고사장입니다. 인생의 광야를 만났을 때 우리가 그 광야에서 진정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 붙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말씀 붙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씀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 붙들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말씀 붙들고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전문가의 말을 들어도 병이 치료되고,돈을 벌 수 있고, 실력이 늘어납니다. 전문가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가 그것보다 못합니까? 이 땅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나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요6:48-50을 보십시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모세시대에 하늘에서 내려온 떡은 일용할 양식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은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영원히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은 것 같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공감되지 않은 말씀 같지지만 말씀 붙들고 나가면 광야에서 샘물이 솟아나고 사막에서도 강이 날 줄 믿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부르짖으라는 말씀대로 부르짖으면 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말씀이 나의 마음속에 들어오면 그 말씀 붙들고 광야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사랑하라하면 이성에 맞지 않고 경험에 맞지 않더라도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레 19:13). 용서하라하면 인간적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도 용서하면 되는 것입니다(마 18:22). 그러면 광야가 오아시스로 변화됩니다. 40년 먹어도 지루하지 않는 만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루하지 않습니다. 변화에 목말라 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인간의 기갈은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라고 말씀합니다.

"벼랑 끝에 나를 세워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화진 화장품 부회장인 박형미씨가 쓴 책입니다. 토큰 세 개로 출발해 연봉 12억의 부회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저자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을 소개한 책입니다. 그녀는 1989년 봄,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고 합니다. 나이 스물아홉. 남편의 잇따른 사업 실패로 불어난 빚은 우리 부부가 평생을 갚아도 절대 갚을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를 임신했는데 키울 대책이 없어 유산시키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비용조차 없어 낳아야 했을 정도로 막막했다고 합니다. 이 때 이 세상에는 나 외에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몇 번이나 자살을 해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럴 용기는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신문 구인 광고를 보고 면접하러 가는데 시내버스 토큰 하나가 없어 옆집 아줌마에게 토큰 세 개를 빌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진그룹에 취직하여 부회장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그의 인생을 변화시킨 말은 첫 번 만나 듣게 된 화진 구룹 회장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돈벌기를 원하느냐고 묻더니 "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모습은 모두 여러분 각자가 만든 생각의 그림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서 있는 자리, 살아가는 환경, 모두가 여러분이 원한 것들뿐입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여러분의 정신, 생각, 사고가 지금의 여러분을 만든 것이지요. 이 세상에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불행의 원인이 다 남편 탓인줄 알았는데 자신의 탓이고 자신의 생각이 병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었답니다. 그 후 인생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세일즈에 나선 지 16일 만의 첫 주문을 받았고 입사 6개월이 되던 때부터 지사장에 도전을 해서 8개월 만에 그 자리에 올랐답니다. 세일즈를 하면서 세 번의 고비가 찾아오는데 시작한 지 한 달째와 석 달째, 그리고 6개월째에 마지막 고비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궤도에 진입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말 한마디도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보다 못합니까? 말씀 붙들고 나가면 광야가 어느 날 오아시스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광야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과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16:4)”

이 만나 사건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근본적인 교훈을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일용할 양식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요 아버지시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신 광야가 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말고 신 광야로 인해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일어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십니오(3,6). 일어날 일에 대하여 희망을 가지고 기대하십시오(3,7) 그리고 문제를 붙들고 지금 바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9)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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