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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를 품은 질그릇

고린도후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989 추천 수 0 2011.05.20 1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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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후4:7-15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열린교회 1997년 5월 10일 개척이 되었습니다. 오늘이 12년 7개월 3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번 주까지만 여기에서 예배를 드리고 다음 주 부터는 신축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515평의 부지에 교회를 건축하여 예배드리며 자녀들을 양육하며 더 높고 더 넓게 세상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처럼 다 부족하지만 우리 하나님이 불가능한 것 같은 일을 우리를 통해 결국 이루셨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를 보배를 품은 질그릇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7). 질그릇은 연약합니다. 볼품이 없습니다. 가치가 없습니다. 깨어지기 쉽습니다.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합니다. 그러나 보배를 품으면 가치 있는 보배함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보배는 하나님이 주신 직분도 될 수 있고 생명을 구원하는 구원의 복음도 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합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20)" 우리는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성경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거하시고,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질그릇은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품은 질그릇이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가난하여도, 지식이 없어도, 병들었어도, 성숙하지 못하였어도, 실수가 많아도, 계획한대로 잘 지키지 못해도, 외모가 출중하지 못해도, 능력이 없어도,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우리는 보배를 품은 질그릇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릇의 가치는 그 그릇 안에 무엇을 품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술을 품으면 술그릇입니다. 오물을 품으면 오물 그릇입니다. 독을 품으면 독그릇입니다. 약을 품으면 약그릇입니다. 보배를 품으면 참으로 가치 있는 보석함이 될 수 있습니다. 운전을 하더라도 대통령을 모시고 운전하는 사람과 거지를 싣고 운전하는 사람은 마음 자세가 다릅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보배를 품은 질그릇입니다. 그러면 보배를 품은 질그릇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 보배를 품은 질그릇은 장애물이 있으면 그것을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재료)로 삼아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8-9)
우리는 아무리 귀한 보배를 품었다고 해도 연약한 질그릇이기 때문에 연약하고 깨지기 쉽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연약할 뿐입니다. 8절에 보십시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즙을 짜기 위해 포도를 짓누르다'는 뜻으로 바울이 당한 당시의 고난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면에서 닥치는 고통에 짓눌릴 수 있습니다. 공간적으로 압박을 당하여 궁지에 몰린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다 지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잘 나가던 골프 황제 우즈가 어느날 갑자기 불륜황제가 되어 얼굴을 내밀 수 없게 된 것처럼 코너에 몰릴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바울처럼 답답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어쩌구니 없는 일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빠져나갈 길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면초가의 상태입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해결하라 수 있는 어떤 수단이나 방법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9절에 보십시오. 핍박을 받았습니다.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꺼꾸러뜨림을 당하였습니다. 핍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죽음의 고비를 당하는 것입니다. 얻어맞고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보배로운 복음을 전하다가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고린도 후서 11:23-27절에 옥에 갇히고, 수없이 매를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다고 했습니다. 39대의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했습니다.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다고 했습니다.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였다고 했습니다.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올해도 교역자 생활 28년째가 되는데 그동안 당한 고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12년 전에 이곳에 교회를 개척하여 그동안 목회하면서 당했던 어려움은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목회 생활 중 가장 어려움을 당했는데 제가 교회를 건축하면서 당한 고난은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갖가지 장애물을 만났지만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런 장애물 앞에서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우겨쌈을 당하도 싸이지 않았습니다. 사단을 바울만 제거하면 복음의 문이 닫힐 줄 알고 우겨쌉니다. 목회도 만찬가지입니다. 목사만 제거하면 교회는 흔들입니다. 전쟁에서 제거 대상 일호는 적장입니다. 교회 건축이라는 전쟁터에서 목사만 제거하면 교회는 건축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군이 되어야 할 사람을 갖가지 방법으로 유혹하여 우겨쌉니다. 바울은 사면에서 닥치는 고통에 짓눌렸지만 움츠러들지도 쓰러지지도 않았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에 당황할 때도 있었지만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핍박을 받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그것으로 망하지 않습니다. 얻어맞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달려갔습니다. 장애물을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았기 때문에 바울이 위대한 사도로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만약 장애물이 없는 좋은 환경에서 복음을 전했다면 그만큼 수많은 사람의 존경의 대상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은 것입니다. 오래 불에 달구면 그만큼 가치 있는 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 생활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교회를 건축하다가, 사명의 가지고 사업하다가, 공부하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재료로 삼아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 어떤 산과 어떤 강이 다가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장애물일지라도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까 신지애 선수 동생이 서울대에 들어갔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언니가 골프의 지존이 된 것처럼 물리학의 지존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기사를 읽어 보니 어머니의 교통사고가 그들에게 오히려 디딤돌이 되어 다부진 자매로 만들었습니다. 친구목사님 딸이 서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는 전화연락을 받았습니다. 언니가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장애물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어 좋은 성과를 낸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장애물을 걸림돌로 삼아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디딤돌로 삼아 일어서야 합니다. 장애물을 도피의 수단으로 삼아 핑계거리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장애물로 오히려 보배를 드러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처럼 장애물을 원망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낙심하는 열명의 정탐꾼처럼 장애물을 낙심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원망하며 보배를 보지 못하고 마라의 쓴물만 보고 만나와 메추라기만 보며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쓰다고 신물난다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메뚜기 사고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보배를 품은 질그릇의 사고가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처럼 장애물은 우리의 밥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장애물은 기회입니다. 주를 위해 어려움 당하면 그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고 우리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장애물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장애물은 기회가 되고 그것을 재료로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더 정결해 지고, 더 하나님의 의지하게 되고, 더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더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애물도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영웅은 난세에 나는 것입니다. 장애물을 통해 깨끗한 그릇으로 합격점수를 받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골리앗이 없이 어떻게 다윗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골리앗을 만났기 때문에 다윗은 인기 있는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제들에게 인신매매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 것입니다. 한나를 보십시오. 브닌나의 핍박 때문에 기도하는 여인이 되었고 민족의 지도자 사무엘을 낳아 양육하게 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고난, 장애물을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재료로, 장애물을 재료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 것을 재료로, 고통을 재료로, 박해를 재료로, 비난을 재료로, 가난을 재료로, 질병을 재료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거침돌도 될 수 있고 디딤돌도 될 수 있습니다. 장애물은 상급받을 재료입니다. 칭찬받을 재료입니다.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성공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은 바람을 기다립니다.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은 파도를 기다립니다. 지금의 가난이 영원한 가난이 아니고, 지금의 불행이 영원한 불행이 아니고, 지금의 아픔이 영원한 아픔이 아니고, 지금의 눈물이 영원한 눈물이 아니고, 지금의 고통이 영원한 고통이 아닙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라고 말씀합니다.

2. 보배를 품은 질그릇은 내 힘이 아니라 믿음으로 장애물을 뛰어 넘어 주신 사명을 완성해야 합니다.(7, 10-14)
우리가 쉽게 무너지고 쉽게 깨어지지 잘하는 연약한 그릇인데 어떻게 이렇게 사면에 닥치는 고통에 짓눌리지만 움츠러들지도 쓰러지지도 않을 수 있습니까? 정말로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애매하게 비난의 말을 들으면 분노가 치밀고 밟아 주고 싶은데도 당황하지도 않고 절망하거나 자포자기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가난하면 움추러 들고, 핍박을 받으면 넘어지고, 힘겨우면 쓰러져 포기하고 싶은데 우리가 어떻게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 다시 뛸 수 있습니까?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이기 때문에 장애물이 크면 클수록 쉽게 깨어지고, 넘어지고, 포기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 질그릇입니까? 대단한 건강을 가진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도 무너집니다. 병든 작은 세포 하나에도 육체는 쉽게 무너집니다.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것 같지만 남의 말 한 마디에 기분은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합니다. 대단한 신앙을 가진 것 같지만 작은 유혹으로 얼마나 쉽게 우리의 신앙은 흔들립니까? 개척하여 이곳에서 12년 동안 목회하면서 아내가 어떻게 하여야할지 모르겠다고 힘들다고 하소연할 때가 있었습니다. 목사 사모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능력이 없다고 말하며, 밤에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일 년이면 저보다 더 많이 몇 차례씩 금식 기도를 하며 울부짖는 아내를 볼 때 마음 아플 때가 있었습니다. 목회자인 저야 어차피 십자가를 지기로 작정하면서 출발한 길이니까 그래도 괜찮은데 아내는 목사 사모가 아니었다면 그저 평범한 여인으로 행복하게 잘 수 있을 텐데 목사의 아내가 되었다는 이유로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시켜 미안한 마음도 들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교회 목사 사모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사모들이 참 힘듭니다. 옷을 잘 입고 교회에 가면 ‘사치스럽다’고 수군대고, 옷을 못 입으면 ‘감각이 없다’고 쑥덕댄다고 합니다. 목사인 남편을 도와 열심히 사역하면 ‘목사보다 더 설친다.’고 하고, 가만히 있으면 ‘사모가 뭐하고 있냐.’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당 앞에 앉으면 너무 나선다고 빈정대고, 뒤에 앉으면 성도들을 감시한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식 잘 양육하려고 애쓰면 세상 사람보다 세속적이라고 하고, 자녀가 잘못되면 사모가 되어서 애들 하나 제대로 기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가난하게 살면 지혜가 없어 재정관리 못한다고 하고 부유하게 살면 욕심이 많아 베풀지 않은 결과라고 말합니다. 젊으면 경험이 부족하다고 하고, 늙으면 너무 늙어 젊은 세대에 맞지 않다고 합니다. 자녀를 많이 두면 애들이 너무 많다고 하고, 자녀가 없으면 교인들에게 본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난한 교인 가까이 하면 인기를 끌려고 하다고 하고, 부유한 교인 가까이 하면 돈 있는 사람만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어느 장단에 맞추어 살겠습니까? 우리 교회에는 그런 분이 없지만 자신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사모의 티만 찾는 사모 킬러를 만나면 사모는 육신과 마음과 영이 골병이 듭니다.
아내가 힘들어 할 때 그런 말을 제가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라고, 아무런 잘못도 죄도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침 뱉음을 당하고, 비난받고, 조롱받았지만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지 않느냐고, 부족한 질그릇같은 우리야 얼마나 더하겠느냐고, 어차피 칭찬과 영광받기 위해 우리가 목회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진실은 말하거나 변명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다 밝혀지고 마지막 천국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평가받을 것을 생각하며 살자고...”
우리는 다 연약합니다. 쉽게 감정이 상합니다. 쉽게 사명을 잃어버립니다. 쉽게 복음 사역을포기할 수 있고 쉽게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일어나 뛰어야 합니다. 우겨쌈을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접어서는 안됩니다. 힘이 없고 무능한 질그릇같은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있다고 하면 착각일 뿐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영광스러운 힘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고난을 받은 것이 예수님의 생명을 나타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10-11) 10절을 현대어 번역은 이렇게 하였습니다. “우리 몸은 예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부단히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살아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 속에 예수님께서 살아계십니다. 내 힘이 아니라 그 예수님의 능력으로 장애물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통하여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12). 죽음에서도 살리시는 것을 알았습니다(14). 알 뿐 아니라 그것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는 장애물이 있다고 하여도 담대하게 말하였습니다(13). 현대어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을 믿고 그 믿는 것을 담대하게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장애물을 재료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 수 있었던 비법은 바로 앎을 수반한 믿음에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몰랐을지 몰라도 그는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후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 받은 사람입니다. 루스드라에서 앉은 뱅이를 일으켰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막을 잘 모릅니다. 피상적인 것을 보고 비난하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남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잘 믿지 못할 일을 체험한 것입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지만 찬송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독사에게 물려 서도 죽지 않았고, 광풍 속에서도 죽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는 것을 체험받았습니다. 그는 어떤 장애물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말년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라고 유언적 고백을 합니다.
우리도 장애물을 믿음으로 뛰어 넘어야 합니다. 좋은 일을 한다고 다 지지해 줄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지극히 자신의 이해타산으로 반대와 찬성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명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을 보면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남의 힘으로 장애물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힘으로 장애물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힘으로 장애물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강력한 하나님의 힘으로 장애물을 극복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물리적 힘이 아닙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사명을 붙드는 힘입니다. 죽음으로 사는 역설적인 힘입니다. 섬김으로 섬김을 받는 신비한 힘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보배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을 나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면 하늘로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평양을 헤엄쳐 건널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배를 타면 태평양을 건널 수 있습니다. 우리가 멀리 있는 별을 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망원경으로 보면 멀리 있는 별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세한 세균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미경을 가지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힘이 없다고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전폭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믿음은 보배를 담은 질그릇인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능력을 행합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위대한 선물을 받고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 잃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건강을 잃고, 재산을 잃고 친구를 잃고,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아직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만큼 위대한 재산은 없습니다. 믿음만큼 힘이 있는 것이 없습니다. 중풍병자의 친구의 믿음을 보시고 일어나게 하신 예수님, 폭풍을 보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라고 꾸짖으시며 믿음을 가지라고 하신 예수님, 열두해 혈루증 앓은 여인이 믿음을 가지고 옷자락을 만질 때 낫게 하신 예수님, 많은 군중들의 식사 때문에 염려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꾸중하시던 예수님, 예수님은 오늘도 믿음으로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며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 20:27)"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 15:28)"

3. 보배를 품은 질그릇은 장애물을 뛰어넘은 후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15, 7하)
바울은 믿음으로 장애물을 뛰어넘은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 정도가 되면 자기 자랑 할 만 할 텐데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자신이 고난받는 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였지만 고린도 교인들이 얼마나 바울을 비난했습니까? 서로 파당을 나누어 시기심으로 경쟁합니다. 타락한 세상을 그대로 교회에 끌어들여 부도덕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은 말씀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설교를 못한다고 바울을 비난합니다. 돈을 좋아한다고 비난합니다. 이중인격자라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고난은 고린도 교인들의 유익을 위해 당하는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유익으로 받는 고난이다면 마땅히 감당하겠다는 자세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과 같이 연약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옴으로 그것이 연약한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참으로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바울은 가면 갈수록 더 겸손해 집니다. 나이들면 들수록, 업적을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교회를 더 많이 세우면 세울수록 더욱 겸손해졌습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낳은 자와 같고,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이며, 교회를 핍박한 자고,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한 자이고,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합니다(고전 15:8; 고전 15:8-9; 딤전 1:15).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도 자기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전 9:16)"
오히려 연약함을 자랑하였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기를 원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빌 1:20)"
우리도 믿음으로 장애물을 뛰어넘은 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건축한 후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참으로 힘쓰고 애쓴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새벽에 나와 기도했습니다. 금요 기도회에 나와 기도했습니다. 수요 기도회에 나와 기도했습니다. 집에서, 기도원에 가서 남모르게 기도했습니다. 청소로 주방봉사로 교사로 성가대로 헌신하였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물질로 헌신했습니다. 어떤 성도님의 위로의 말로 헌신했습니다. 모두 산모의 고통을 감당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내가 세웠다.”고 자기 공로를 자랑하며 주인노릇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사람은 장애물을 극복한 후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자신에게 장애물을 극복한 능력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자랑합니다. 교만하게 됩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에게 장애물을 극복한 능력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장애물을 극복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질병에 걸렸습니다. 죽을 병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열심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적들로 물리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축하 사절단이 왔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는 군납고를 보여 주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이 고쳐 주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히스기야의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대하 32:25)" 헤롯은 교만하다 충으로 죽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잘 되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 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도저히 인간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어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극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장애물이 있을 때 그것을 하나님 믿고 의지하여 해결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길 원합니다. 기업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질병으로 쓰러질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복잡한 문제로 깊은 수렁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것 같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재료로 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십시오. 그리고 믿고 하나님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우리에게 있는 갖가지 장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열린교회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오늘 주신 본문의 교훈을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새기고 출발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품은 질그릇입니다.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시대를 출발하면서 다짐합시다.
첫째 어떤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재료)로 삼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어떤 장애물이 있다할지라도 내 힘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 장애물을 뛰어 넘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다 이루어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셋째, 어떤 장애물이 있다할지라도 믿음으로 장애물을 뛰어넘은 후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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