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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매체에 실린 최용우의 글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실린 매체를 찾을 수 없어서 올리지 못한 글도 많습니다. |
[쉴만한 물가] 2002.9 - 참으로 감사한 일 다섯가지
월간<씨엠>테마가 있는 글 최용우............... 조회 수 3241 추천 수 0 2002.11.13 22:18:58원고/cm 2001.9월호-(테마가 있는 글 -감사)
제목/ 참으로 감사한 일 다섯가지
최용우 (월간 들꽃편지 발행인)
1. 감기 걸려서 감사합니다.
대전의 소망교회 김대철 목사님과 나눈 대화중에 마음에 닿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암에 걸린 사람은 감기에 안걸린다지요. 암세포가 어찌나 쎈지 감기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잡아먹어버린다는거예요... 그러니 감기에 걸렸다는 것은 암세포가 내 몸속에 없다는 뜻이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아침에 밝은이가 콜록콜록 기침을 하길레 짜증이 났었는데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모르고 짜증 낸 것 같아 슬며시 부끄러워졌습니다.
2. 요술상자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맨 위 오른쪽 서랍장을 열면, 거기에는 언제나 가지런히 정리된 나의 속옷과 양말들이 상큼한 향기를 내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손끝이 야무지고 알뜰한 아내가 나의 속옷과 양말을 잘 빨아 차곡차곡 개어서 언제든 꺼낼 수 있도록 채워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속옷이나 양말이 떨어져서 못입거나 못신어 본적이 없을 정도로, 마치 이 서랍은 요술상자 처럼 꺼내면 채워지고 꺼내면 채워지곤 하였다. 서랍을 열었을 때 언제든 향기나는 양말을 꺼내어 신을 수 있다는 이 행복!
총각시절, 밖에 나갈 때마다 가장 큰 고민은 뭐니뭐니해도 신고 나갈 양말이었습니다. 빨래할 줄을 몰라서 새 양말만 사 날랐습니다. 한번은 신고 벗어놓은 냄새나는 양말이 방 구석에 50컬래쯤 쌓인적도 있었습니다. 그걸 맘먹고 다 빨아서 옷장에 채워놓으니 얼마나 마음이 부자가 된 듯 뿌듯뿌듯 하던지...(오...아버지...제가 진정 이런 인간이었나이까)
서랍을 열 때마다 아내의 마음이 거기 있음을 봅니다. 바쁜 중에도 빵꾸난 양말 하나도 안 버리고 잘 수선하여 신을 수 있도록 차곡차곡 정리해 놓은 야무진 사랑의 손을 거기서 봅니다.
3.헌금 많이 하도록 봉투를 미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날 교회 헌금 바구니에서 이상한 건축헌금 봉투가 한 장 나왔습니다. '건축헌금 100원 -최좋은' 봉투를 열어보니 아무것도 없는 빈 봉투였습니다.
좋은이의 이름으로 헌금을 하지는 않았는데 '최좋은' 이름이 삐뚤빼뚤 적힌 봉투가 헌금바구니에서 나온걸 보니 분명 최좋은이가 넣은 모양입니다. 이제 막 자기 이름 석자를 배운 최좋은이가 어른들이 하는 대로 교회 입구 헌금함 위에 있는 헌금봉투를 발돋움하여 내려 가지고 자기 이름을 쓰고 숫자를 맘대로 적고 헌금함에 넣은 것입니다. 세상에, 새 봉투묶음을 꺼내 놓은 지 얼마 안되었는데, 그 많은 봉투에 죄다 지 이름을 적고 숫자를 그렸으니...
감사헌금 100원, 건축헌금 40원, 맥추감사헌금 1천억원... 아직 돈이 뭔지 모르는 좋은이가 손에 잡히는 대로, 맘 내키는 대로 이름을 쓰고 동그라미를 쳤을 것입니다. 야단을 칠 수도 없고, 칭찬을 할 수도 없고... 그래, 그 믿음대로 앞으로 헌금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라. 그런데 생일감사헌금 100억은 화끈하지만 건축헌금 40원은 너무했다야,
벌써 오래 전 일인데 그때 좋은이가 저질러 놓은 헌금봉투를 엄마아빠가 지금까지도 가지고 다니며 헌금시간마다 한 장씩 소모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4. 좋은이에게 토끼 두 마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가끔 한번씩은 하늘을 날듯한 신나는 일이 있어야 이 세상을 사는데 지치지 않고 삶의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정집사님에게 토끼 두마리를 얻던 날 정말 모처럼 우리 좋은이가 "끼아~~" 소리를 지르며 좋아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한 학기 동안 먼 거리를 버스타고 다니느라 지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집에서는엄마에게 공부에 시달린(?) 스트레스를 다 날려 버릴 만큼 정말 신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만큼은 특별히 토기를 집안으로 가지고 오도록 허락 하였습니다. 아빠 밀집모자에 토기를 담아가지고 와서 삼촌이 사다 준 <애완동물 기르기> 라는 책을 펴들고 어떤 사진을 가리키며 "너야, 너" 토끼에게 보여주고 있는 좋은이에게 오늘은 정말 신나는날입니다.
(사진)
5. 산책을 읽어서 감사합니다.
온 가족이 오후에 호숫가로 산책을 하였습니다. 늦장마로 가득 찬 호수의 물결을 한 줄로 서서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가슴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루종일 책방에서 책을 읽었지만 그것은 혼자 읽은 것이고, 이렇게 온가족이 함께 웃으면서 온 몸으로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살아있는 책'은 산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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