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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매체에 실린 최용우의 글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실린 매체를 찾을 수 없어서 올리지 못한 글도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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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가 얼어붙은 날
눈 녹여 라면 끓여먹어도 재미있기만 하네
계곡 얼음을 깨고 물을 떠다 씀(사진:최용우)
영하로 내려간 기온 탓에 모터가 얼어붙어 며칠째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을 전체 물이 나오는 구멍이란 구멍은 다 얼어붙어버린 모양입니다. 받아놓은 물로 하루는 견뎠는데, 그 물 떨어지자 계곡에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와 허드렛물로 사용하였습니다. 우선 먹을 물은 가게에서 생수 두 개 사와 급한대로 해결하고, 화장실도 사용 금지, 세수는 물론이고 씻는 것도 금지입니다.
물도 안나오는 촌구석 동네로 가족들 끌고 들어와서 고생시킨다고 깽깽거리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대전의 아는 분 집으로 피난을 나가버렸고, 저는 졸지에 홀애비가 되어 라면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뉴스에 보니 전국적으로 5천 곳이 넘는 동파 사고가 나서 물이 안 나온다고 합니다. 물도 안 나오는 산골짜기 동네가 아니라, 겨울엔 어디에 살든 상관없이 물이 안 나올 수도 있는데...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이런다면 아마 하루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날씨 풀리면 다시 전처럼 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오히려 눈을 떠다가 녹여 라면을 끓여 먹어도 재미있기만 합니다. (눈 녹여 라면 끓여먹는 맛 - 군대 안 다녀온 여자들은 모른다).
물을 물처럼 쓰다가 물이 없으니 그 동안 물을 물처럼 쓸 수 있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니 오히려 전화위복인데 말야, -조금 불편하기는 합니다.
먹을 물만이라도 떠오기 위해 큰 주전자와 빈 생수통 두 개 들고 날망(동네 이름)에 올라갔더니 동네도 역시나 마찬가지입니다. 집안에 있는 수도만 살아있고 밖에 있는 수도는 다 얼어붙어버렸습니다. 우정장회관에서 물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다가 그만 쭈루룩 미끄러져 물을 다 쏟았습니다. 오메, 주전자 어디 안 찌그러졌냐, 살펴보니 다행! 주전자 찌그러지면 난 마누라한테 찌그러져붑니다.
미끄러지니 조심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당부하셨던 우정장회관 아주머니의 얼굴을 다시 볼 면목이 없어서, 이번에는 이장님 집 문을 두드려 다시 주전자에 물 채우고 정말 살~금~살~금 살~금 저속으로 다리를 운전하여 무사히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최용우 (2003-01-20 오전 10:38:40)
조회수 : 472회
눈 녹여 라면 끓여먹어도 재미있기만 하네
계곡 얼음을 깨고 물을 떠다 씀(사진:최용우)
영하로 내려간 기온 탓에 모터가 얼어붙어 며칠째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을 전체 물이 나오는 구멍이란 구멍은 다 얼어붙어버린 모양입니다. 받아놓은 물로 하루는 견뎠는데, 그 물 떨어지자 계곡에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와 허드렛물로 사용하였습니다. 우선 먹을 물은 가게에서 생수 두 개 사와 급한대로 해결하고, 화장실도 사용 금지, 세수는 물론이고 씻는 것도 금지입니다.
물도 안나오는 촌구석 동네로 가족들 끌고 들어와서 고생시킨다고 깽깽거리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대전의 아는 분 집으로 피난을 나가버렸고, 저는 졸지에 홀애비가 되어 라면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뉴스에 보니 전국적으로 5천 곳이 넘는 동파 사고가 나서 물이 안 나온다고 합니다. 물도 안 나오는 산골짜기 동네가 아니라, 겨울엔 어디에 살든 상관없이 물이 안 나올 수도 있는데...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이런다면 아마 하루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날씨 풀리면 다시 전처럼 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오히려 눈을 떠다가 녹여 라면을 끓여 먹어도 재미있기만 합니다. (눈 녹여 라면 끓여먹는 맛 - 군대 안 다녀온 여자들은 모른다).
물을 물처럼 쓰다가 물이 없으니 그 동안 물을 물처럼 쓸 수 있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니 오히려 전화위복인데 말야, -조금 불편하기는 합니다.
먹을 물만이라도 떠오기 위해 큰 주전자와 빈 생수통 두 개 들고 날망(동네 이름)에 올라갔더니 동네도 역시나 마찬가지입니다. 집안에 있는 수도만 살아있고 밖에 있는 수도는 다 얼어붙어버렸습니다. 우정장회관에서 물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다가 그만 쭈루룩 미끄러져 물을 다 쏟았습니다. 오메, 주전자 어디 안 찌그러졌냐, 살펴보니 다행! 주전자 찌그러지면 난 마누라한테 찌그러져붑니다.
미끄러지니 조심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당부하셨던 우정장회관 아주머니의 얼굴을 다시 볼 면목이 없어서, 이번에는 이장님 집 문을 두드려 다시 주전자에 물 채우고 정말 살~금~살~금 살~금 저속으로 다리를 운전하여 무사히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최용우 (2003-01-20 오전 10:38:40)
조회수 : 4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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