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각종 매체에 실린 최용우의 글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실린 매체를 찾을 수 없어서 올리지 못한 글도 많습니다. |
[샘물] 2002.12- 동방박사는아기예수를못만났다.
월간<씨엠>테마가 있는 글 최용우............... 조회 수 2489 추천 수 0 2003.10.06 08:04:24
원고/cm 2002.12월호-(테마가 있는 글 - 성탄)
제목/ 동방박사는 아기예수를 못만났다
최용우 (월간 들꽃편지 발행인)
국민학교 2학년 성탄절에 있었던 이야기. 교회 휘장에는 하얀색으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글씨가 붙어 있고 은은한 종소리로 녹음된 케롤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성탄절 공연 총연습이 시작되었다.
나는 연극의 동방박사역을 맡아 열심히 연습을 했다. 피아노 옆에 세워둔 크리스마스 츄리에는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집에서 가져온 가지각색의 양말들이 걸려있고 교회당 안을 빙둘러친 오색 깜빡이는 어둠속에서 신비한 빛을 내며 아름답게 반짝인다.
드디어 막이 오르자 먼저 유치부 어린이가 나와서 귀엽게 인사말을 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메리크리스마스' 할 때 총연습을 지켜보시던 목사님과 장로님, 몇 분 집사님들이 짝짝짝 박수를 치면서 깨물어주고 싶도록 귀엽다고 껄껄 웃으셨다.
엉망진창 옆 친구와 부딪치랴 구석에서 지도하시는 선생님 보랴 정신없는 유치부 율동, 6학년 언니와 1학년 동생자매의 중창, 중간에 한번 틀려서 처음부터 다시 친 남자아이의 피아노 연주, 한마리 나비처럼 가벼운 중고등부 언니들의 환상적인 발레 순서. 그리고 조명무대, 지도를 맡은 담당 선생님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마지막 마무리에 여념이 없다.
그래도 프로그램 중 가장 하일라이트는 연극이다.
드디어 기다리던 예수 탄생연극 제1막이 오르자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들이 평화롭게 졸고 있고 빨강 전기불에 솜을 둘러싸서 만든 모닥불은 정말이지 야- 소리가 나올만큼 멋진 솜씨이다.
제2막이 열리면 아기예수를 안은 마리아 앞에서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이 경배를 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시작된다.
한 어린 목동이 대사를 잊었는지 더듬더듬 하다가 그만 눈물을 주르르 흘려버린다. 소매깃으로 눈물을 훔치는 아이를 선생님이 "괜찮아,내일은 잘하면 돼!" 하며 달래었다.
드디어 동방박사들이 나갈 차례이다. 아이 머리만한 돌에 종이를 입혀 노란물감 칠해 만든 황금덩이를 가슴에 안고 다른 두명의 박사들과 함께 무대에 나가니, 갑자기 조명이 비추고 아래 넓은 교회당에 목사님과 장로님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앞이 캄캄했다.
한 동방박사가 유향을 바치고 그 다음 내가 아기예수님께 공손히 절 한 다음에 황금을 바치려는 순간, 아기예수를 대신하던 어느 선생님의 사랑스런 갓난 아기가 그만 앙- 하고 울어버린다.
소란스런 분위기와 낯선 엄마품이 편하지가 않았나보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아기는 퇴장 시키고 대신 인형을 가져와서 연극을 계속했다.
아기예수께 경배하고 무대뒤로 돌아오니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 옷이 축축히 젖어 있었다.
'내일은 온 교회당 가득 사람들이 몰려와서 볼 텐데 그러나 떨지않고 잘 할꺼야' 다짐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흰눈이 내리는 밤길을 걸어 집에 오는 길은 너무 신나는 길이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흰눈이 소복히 쌓인 성탄절 아침이 밝았다.
그런데 밖에서 떠들썩 하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사람이 얼어죽었다" 고 한다.
우리집은 장터 근처에 있었다. 장터를 떠돌아 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잠도 장터의 빈 가게 아무데서나 자던 거지가 한사람 있었는데,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놀려대던 그 거지가 얼어 죽었다고 한다.
아빠 뒤에 숨어서 가슴 졸이며 지켜보니 웅크리고 죽은 거지를 순경아저씨들이 쭉 펴더니 나무관에 넣고 새끼줄로 꽁꽁 묶어서 번쩍 메고 가버렸다.
저녁이 되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죽은 거지 생각으로 무서워서 도저히 교회에 갈 수가 없었다. 갑자기 골목에서 그 거지가 불쑥 튀어나올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오늘처럼 중요한 날 이런 일이 생기다니, 시간은 자꾸 가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와 하다가 울먹이는 나를 아빠가 보시더니 그 큰 손으로 내 작은 손을 덥썩 잡고 "내가 데려다 주마" 하시는 것이었다.
예정시간보다 훨씬 지난 늦은 시간에 아빠에게 매달리다시피 급히 뛰어서 교회에 도착했지만 그러나 연극은 이미 끝나고 말았다.
선생님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급히 뛰어오시더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말에 나는 그만 들고있던 황금덩어리를 떨어뜨리며 엉- 하고 울고 말았다. 내가 오지 않아서 동방박사 두사람만 예수님께 경배했다고 한다.
그해의 예수님은 유향과 몰약의 예물만 받으신 것이다. 너무 미안하고 섭섭했다.
교회 뒷 자리에 서서 아직 남은 다른 순서들을 오늘 처음 얼떨결에 교회에 나오신 아빠와 함께 보았다. 아빠의 손을 꼬옥 잡으니 그 손 은 너무도 따뜻했다.
'아기예수를 못만나 예물도 드리지 못한 겁장이 동방박사'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그때를 생각하며 혹시 지금도 나는 세상 근심이나 걱정, 두려움, 욕심 때문에 예수님께 드려야 될 것을 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 조용히 돌아보게 된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