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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죠이] 그래, 그게 목숨 바친 사랑의 증거야

기독신문잡지 최용우............... 조회 수 2095 추천 수 0 2004.08.15 22: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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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게 목숨바친 사랑의 증거야"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왜 부끄러워 하는가

최용우 9191az@hanmail.net [조회수 : 123]

얼굴이 보기 흉한 곰보 엄마를 가진 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심통을 부리며 엄마에게 대들었습니다.

"엄마는 왜 그렇게 흉하게 생겼어? 아이들이 놀린단 말이야. 창피해서 학교를 못다니겠어. 왜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예쁘지 않냔 말이야."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딸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엄마, 얼굴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말해주마. 옛날 네가 아기였을 때 우리집에 큰 불이 났단다. 그때 네가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발만 동동 구를 뿐 아무도 들어가 건져내주지 못하더라. 그래서 내가 뛰어들어가 내 옷을 벗어 너를 싸안고 나왔다. 그리고 내 옷에 쌓인 너는 무사했지만 옷을 벗은 나는 이렇게 몸과 얼굴이 탔단다. 나도 옛날에는 예쁘다고 소문난 여자였단다. 그렇지만 그 예쁜 것보다도 나는 네 생명이 더 소중했단다."

엄마의 말을 들은 딸은 엉엉 울며 엄마에게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그 뒤론 학교에 가서 아이들이 놀릴때마다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우리 엄마는 곰보야! 그렇지만 그게 목숨걸고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야. 그래. 너희들 엄마는 너희를 목숨 걸고 사랑하니? 그 사랑의 증거가 있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왜 부끄러워 합니까? 그게 바로 생명바쳐 나를 사랑한다는 사랑의 증거입니다. 부처를 보세요. 그 인자한 얼굴을. 모나리자처럼 우아하게 웃고있는 관세음보살상을. 경주 불국사의 아침 햇살을 받아 얼굴에 광채가 나는 부처의 신비스러운 얼굴을. 공자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러나 거기에는 자신의 목숨을 바친 뜨거운 사랑의 흔적이 없습니다. 석가모니나 공자나 자신의 수명대로 만수무강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얼굴은 어떻습니까. 사형수의 피범벅된 고통스러운 얼굴입니다. 33살 꽃다운 젊은 나이에 십자가 사형틀에서 사형당한 한 젊은이. 피범벅된 십자가의 예수를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예수의 얼굴이 아니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피묻은 예수의 얼굴을 슬그머니 뒤로 밀어두고, 세상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기독교, 재미있는 기독교, 흥청거리는 거대한 쇼프로그램 같은 기독교, 세련된 고급 기독교, 성전으로 표현되는 맘모스 기독교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위장을 하고 포장을 해도 결국에는 우리의 부모인 예수는 가난한 목수요 무식쟁이 신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식쟁이 종교에서 귀족이, 지식층이, 부자들이 들어와 기독교를 세련되게 회칠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구하는 도구로 삼게 해서도 안됩니다. 로마의 황제들은 신부와 사제들에게 귀족 옷을 입히고 성당은 왕궁처럼 지었습니다. 그리고 사제들은 가난하고 순수한 예수를 버리고 임금과 귀족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귀족 종교로 전락시켰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복음에 인위적으로 다른 것을 덧붙이거나 희석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 십자가의 예수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요즘 교회개척, 전도 안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예수사랑을 당당하게 전할 때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부차적인 것에 시간과 물질을 많이 투자하여 분주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예수님만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단순화시켰습니다. 로마 시민권도, 최고 학부에서 공부한 졸업장도 버렸습니다.

가난한 기독교는 더욱 단순무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뿐입니다. 인위적인 것, 인간 중심적인 것에서 벗어나 내 아버지는 '예수'라고 선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귀족이, 부자들이 들어와 기독교를 세련되게 회칠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구하는 도구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 없는 더욱 단순한 기독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04년 08월 14일 18: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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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임홍규

2004.08.15 22:41:21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옷을 입고
천하고 낮은 곳 곧 죄악의 세상에 친히 내려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위하여 자기를 존귀를 버리고 비워 종의 형체로 오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의 신분으로 말구유와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섬김을 받기위하여 오지 않으시고
되려 자기를 스스로 비워 종의 입장을 취하여 가난하고 헐벗기우며 배우지 못하고 천대 받는 고아와 과부같은 천한 자들의 친구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는 매우 차원이 높고 귀족화 되어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신학과 박사도 많고 목사의 칭도 낮아서 이제는 거대한 대기업의 회장과 같이 '당회장'이라는 거창한 세상이름까지 붙여서 회장실을 삐가뻐적하게 장식하고있습니다.

로마의 카돌릭이 하나님의 성전(회당)을 짓되 솔로몬과 같이 하는것이 하나님의 섬김의 전이라고 생각하고 성당을 고딕으로 높이짓되 그안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그 위엄에 한수 접히게(주눅들게) 합니다. 누구든지 그 안에 들어가면 그 위엄(엄숙?)에 눌려 인간 자체가 상실되고 그 어떤? 위력만이 있게 합니다.
이름하여 거룩한 성전의 위엄입니다.

하여 그들은 예수의 이루신 대속 진리안에서 강압함이 아닌 진리로 고귀하며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역사는 그 본연의 정신을 인간들의 안목에 의하여 희석당하며 공공연히 물질화 되어 왔습니다.

"아는 것이 곧 잘 믿는 영성이다"라는 착시로 인하여 인간은 끊임없는 자기들의 교만한 지식 바벨탑을 열심히 싸아 자기를 높여가고 왔습니다.

인간의 머리로 아는 지식이 높다면 그 얼마나 높을 것입니까?
어떤이는 자기가 하나님이라하며, 자기만이 하늘의 비밀을 다 아는 냥 교만을 떨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행적과 같이 우리는 돕는 은혜와 은사가 필요합니다.

높은 지식에 앞서 그들의 심령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며 순전한가에 더 많은 촛점을 맞추어져야 합니다. 심령이 더러운 그릇 안에는 하늘의 진리가 들어가도 그는 자기를 높이며, 그 지식으로 인간의 영혼을 유린하는 독사의 자식이 되기를 마다않고 자기의 지식으로 자기의 높임과 육신의 정욕을 체우는 일에 사용하게 됩니다.

하여 하나님은 늘 그들의 심령을 감찰하심으로 사람의 진솔성을 체크하십니다.
그 진실성과 순전함은 그 심령이 곧 예수(아들)의 마음(정신)안에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믿음이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루신 대속 진리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의 지고하신 그 높은 품위와 학식에 있습니까?

그래서 당신은 저 미천한 배우지 못한 무식한 자들과 같지 아니하여 차원이 다릅니까?

오늘날 수없이 설교되어지는 그 설교들은 과연 저 배우지 못한 무식한 자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모든것이 전문화, 고도화 되어진 현대의 교회 마다, 그 영성이 뾰족탑과 같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 그 누가 그 높은 영성에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를 믿으려면 요즘은 아큐 최소한 100 이상에 돈도 좀 많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정도는 배우고 믿을 만한 여건이 갖추어 져 있는 자들 만이 예수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시각에는 보잘것 없는 그였으나,

그는 하나님의 본체이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였느니라!

그는 죄인(눌린자)들을 더 사랑하시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예루살렘에 권세잡은 화려한 예복을 입은 자들에게는 엄한 책망의 심판을 하신 분이시였다.

믿음은 심플(단순, 순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믿음은 박사화 되어 있습니다.
더 높은 영성?이란 높은 목표를 두고(우상) 이에 미치지 못할 자들의 심령을 옥죄고있습니다.

너희 모두는 이와 같이 높은 영성에 성경박사가 되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다? 라고 하는 더 높은 커트라인을 설정하여 그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합니다.

과연 누가 그 구원에 들것입니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할 지어다!!"
"평안히 가라!!"

교회 사업의 지속화를 위하여서는 더 많은 목표를 그들에게 안기우고
더 많은 시간과 물질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열심은 지나침이 없는 것이니-무엇이든지 열심을 내게하여 구속?할 것이다.

그리하여 각인은 '너 보다 낫다'는 경쟁의식을 고취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지식이 부족한 자들에게는 불안감을 조성하여 안주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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