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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간형의 모델 '마리아'

누가복음 김송자 자매............... 조회 수 2371 추천 수 0 2011.06.14 14: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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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38 
설교자 : 김송자 자매 
참고 :  

sgsermon.jpg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새로운 인간형의 모델 '마리아'
(누가복음 1:38)
2011년 5월 8일 어버이주일
여선교회헌신예배 말씀증거
김송자 자매

 

태초에 말씀이계셨다 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상대 하시려고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련한 근원으로부터 들려오는 사랑의 속삭임이며 삶의 아픔으로 좌절하는 모든 자에게 들려오는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고 그 말씀이 영혼에 부딪친 사람마다 그들에게는 놀라운 삶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서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이러한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헌신한 주님의 참 제자들의 간증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의 삶에 특히 여성들의 삶에 많은 의미를 줄 수 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너무 멀리 했던 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생각하며 21세기를 살아가는 크리스천 여성들에게 많은 힘과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모델로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실 현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은 최소한 정치적, 제도적, 법적으로는 평등이 보장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회나 가정에서도 여성의 위치는 마리아가 살던 시대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좋은 여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체적이고 해방된 여성으로서의 마리아의 모습, 사회 속에서 역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가는 마리아의 모습, 그리고 개인적 고난과 슬픔 역경을 승화시켜 예수 사후에도 그 뜻을 이어가는 참 제자로서의 마리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오히려 지금까지 누렸던 기득권을 놓칠까 두려워 기존질서와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고 그에 맞추어 가는 그리고 타인과의 연대나 공유보다는 이기적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실현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사실 메시아 탄생에서 인간 남성이 배제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인간형의 탄생이라는 인류사적 의미가 있으며 인간의 해방과 평등의 시대를 열어 가시고 자 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강력하게 표출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 마리아가 예수를 가부장제에 길들어지지 않은 동정녀로서 출산했다는 것도 지금까지 여성과 노약자의 굴레인 성차별이나 가부장제와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며 새로운 인간형 새로운 구원세계 안에는 더 이상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나 관습 따위는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마리아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새로운 인간형으로 변화된 모습을 재조명하여 지금 우리의 삶속에 서 어떻게 도움을 받아 우리도 그러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주체적 여성으로서의 마리아의 모습은 누가복음1:38에 “마리아가 말 하였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응답은 그렇게 쉽게 내려진 결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서에는 마리아가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내려진 결단이라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으며 오히려 마리아의 주체적 결단의 모습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것으로 예수의 신성만 부각시키는 도구로서만 기능한 듯 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가 주체적 인간으로 살기를 원하시며 그것은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희망 때문에 상대할 가치도 없는 인간을 상대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심으로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죄의 역사 때문에 하나님의 수난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체성을 허락한 대가로 그분은 당신의 전능을 유보한 채 수난으로 연결되어 십자가 까지 지신 분입니다. 군림하여 위에서 베푸는 절대자가 아니라 상대하여 영향을 받고 인간의 고통을 마음 아파하시며 피조물의 고통을 함께 겪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마리아에게 다가와 새로운 세상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가 나의 동역자가 되어주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을 때 마리아의 눈이 밝아지면서 하나님의 나라 곧 새 하늘 새 땅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나라는 지금 마리아가 살고 있는 온갖 부조리와 불법과 탐욕이 판치는 나라가 아니고 해방과 평등 자유 소망과 사랑이 넘치는 나라였습니다. 마리아는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으며 누구의 강요도 받지 않았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을 온전히 개방하여 동참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결단이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정신을 지닌 주체적 여성으로서의 결단 있는 모습과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얼마나 두렵고 놀라웠겠습니까? 마리아가 살던 시대는 너무도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제국주의 로마의 지배와 동족 헤롯의 폭정, 거기에 종교 지도자들의 착취 그야말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여성들은 인간의 축에도 끼지 못하였고, 내일 아침거리를 걱정하며 잠자리에 들던 시대였습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도 미혼모의 위치를 감안한다면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아버지가 불투명한 아이를 낳는 다는 것은 곧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인간적 두려움 보다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의 광채 앞에서 마리아의 두렵고 의심스러운 마음은 사라졌으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예“라고 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과정은 인간 개개인의 그 길에 대한 믿음의 결단을 필요로 하며 결단 뒤에는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책임 있는 행동과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수 천 년 동안 주체적이지 못한 인간으로서 학습되어진 여성들이 그렇게 쉽게 바꾸어지지는 않겠지만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다면 반드시 이루어 질것입니다. 이러한 마리아 상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간형의 모습으로 이 땅에서 구체화 되어 왔던 것입니다. 2000년이 훨씬 지난 현대 사회 속에서 저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아직도 남성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규정하고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에 자유롭지 않은 상황을 생각한다면 주체적 여성으로서의 마리아의 모습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봅니다.

 

두 번째는 누가복음 1:46~55절 마리아 찬가에 나타난 해방된 여성으로서의 마리아의 모습에서 힘 있는 자들에 대한 모든 지배체제 구조가 전복되고 평등으로 바뀌는 새 역사의 탄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체적 결단을 통해 메시아 탄생을 이끌어낸 마리아는 사회 속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에 대한 연민과 또 그러한 깨달음을 공유해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당시의 습관대로 보고 배우고 그렇게 사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뜻을 깨달아 가면서 인간 해방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속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로워야 하며 억압과 착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범주에도 끼지 못했던 한 여성의 주체적 결단을 통해 메시아 탄생을 현실화 시킨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피조물들의 평등과 자유로움을 체득하게 합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모습은 해방자로서 예수 역사의 시작인 것입니다. 마리아는 고난을 겪고 억압당하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해방을 노래합니다. 이 점을 직시한다면, 오늘날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교회는 억압받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해방과 자유에 대한 최우선의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러한 해방의 과정에서 교회는 종으로써 이들을 섬겨야합니다. 또 교회는 자유와 해방의 실현을 위해 마리아가 지닌 해방의 영성을 가져야하며 이를 통해 모든 차별을 허물어야 합니다. 새로운 질서와 해방을 열망하는 여성들의 연대는 미리암-한나-엘리사벳-마리아로 이어져 그 영성을 키워왔으며 이러한 마리아의 해방정신은 마리아 혼자 것이 아니고 해방적 영성을 갈망하는 모든 여성들의 영성 안에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요한복음 기자는 수태고지(受胎告知)를 통해 마리아를 최초의 모범적 제자로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도래는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과 신앙을 통해 가능했으며 다른 사람들이나 세상 법에 종속당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자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마리아의 응답은 책임 있는 그녀의 행동으로 나타났으며 그것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단력 있고 성숙한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마리아의 위대함은 생물학적 어머니로서 만 이 아닙니다. 예수에게 가족이라는 유대관계보다는 제자들이 더 중요 했습니다. 예수는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나의 형제이고 누이고 모친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리아의 특별한 위치는 예수를 출산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으로 제자들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을 볼 때 마리아가 모성애로서가 아닌 신앙과 제자의 모델로서 우리에게 남아있어야 합니다. 또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에서 그녀의 진정한 관심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며 무엇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모습은 하나님께 대한 개방성과 창조적 순응성이 이웃에게 확대되었으며 특히 힘 있는 남성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섬김의 의미를 깨닫고 이러한 순응성을 통해 예언자적 비전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민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희생을 강요하는 모든 힘에 저항할 수 있는 강한 마리아의 모습에서 진정한 제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제자 도는 고난과 고통을 겪었던 모든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모범이 되어야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데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네 번째는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메시아에게 생명을 주고 메시아의 의미를 가르쳐준 어머니로서 또 이를 통해 구원사역을 가능케 했으며 교회공동체의 탄생을 가져 왔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겠다는 그녀의 결정은 곧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서 메시아 탄생을 가능케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파괴된 인간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온전히 자신을 개방한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러한 결단은 이스라엘민족의 역사적인 투쟁과 전통에 몰두해 있던 한 유대 여성의 의지와 의식을 통해 가능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선택의 대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추방을 당 할 수도 있고 신명기 법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지만 메시아를 낳기로 결심했으며 결국 세계를 구원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는 진공상태에서 성장 한 것이 아닙니다. 해방의 열망을 가슴에 품은 어머니의 교육과 가르침을 받고 성장한 것입니다. 아들이 어떤 메시아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그녀의 바램은 그녀의 노래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리아가 그 시대를 뛰어넘는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 시킨 것처럼 예수도 하나님의 뜻을 실현 시키고자 하는 성실성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그의 생애 가장 힘들고 눈물겨웠던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성서에 나타난 예수의 새로운 인간형은 마리아가 그 모델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신성으로서 예수의 모습을 한낱 촌부에 불과했던 마리아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되지 못했던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12살 된 예수를 3일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다시 찾았을 때 일반 아이들처럼 어머니에 대한 반가움을 표시하기는커녕 “왜 나를 찾나요? 내가 아버지 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것을 모르십니까?” 했던 예수님의 태도, 여러 사람 앞에서 “누가 나의 어머니입니까?” 반문한 예수의 태도로 인해 느끼게 되었을 굴욕감과 상처, 또 예수가 유대교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할 때에 느끼는 불안감, 그녀가 평생 따랐던 유대 법을 아들인 예수가 무너뜨려 나갈 때 느끼는 혼란들, 그리고 무엇보다 고문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는 아들과 그를 떠나는 제자들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악몽의 시간들은 마리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마리아가 “예”라고 응답함으로써 예견된 고통들이었습니다. 더 큰 비극은 아들에 대한 그녀의 신뢰가 결코 세상 사람들에게 정당화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실망하지 않았고, 처음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비전 즉 해방, 평등, 자유와 기쁨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를 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믿고 따랐던 하나남의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앙공동체에 더 열심을 내어 아들이 생전에 길을 열어주었던 선교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슬픔과 죄책감에 빠져있던 제자들을 위로하고 독려하여 신앙공동체가 더 퍼져나가도록 노력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그 정신의 계승으로 승화시키면서 예수의 제자들 중 그 누구보다 더 공동체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예수라는 한 개인의 어머니에서 공동체의 어머니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마리아의 주체적이고 해방되고 참 제자로서, 또 교회어머니로서의 거듭난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인간형의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새길공동체 여선교회 회원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나서 딸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또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규정할 때 가부장제의 규범이나 질서에 따라서가 아닌 자신이 이 우주 안에서 무엇을 의미하며 자신의 실제가 무엇인지 자신의 결단에 따라 정의 내리며 살아왔음을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습니까?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여성들 자신이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너무 부창부수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요? 남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판단하기 보다는 여성들 자신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판단 할 수 있는 습관을 들인다면 무조건 적인 부창부수는 없으리라 봅니다. 어느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고 합니다 이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식민지는 여성이다. 이 세상 모든 억압들이 철폐된다 해도 여성에 대한 억압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가 여성들 자신이 영적 육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두 번째 이유는 세계의 모든 고등종교들이 여성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을 100% 긍정으로 받아드릴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갑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하여 십자가까지 지셨는데 왜 우리는 아직도 주체적이고 해방된 여성으로서의 자리매김을 못하고 있는 것인지? 가정이나 사회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해방과 자유의 복음을 선포해야 할 교회 공동체에서도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는데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십자가까지 지셨는데 왜 돌아서면 딴 짓거리인지 많이 배운 남자들일수록 더 지능적이고 권위 적으로 지배하고 착취하려 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지만 그것은 극히 소수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리매김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과 여성들 자신에 대한 학습일 것입니다. 제가 이대신대원에서 공부 할 때 여성신학 강의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한 기억이 납니다. 다음 학기부터는 학생들을 뽑을 때 남자 반 여자 반으로 뽑는 것이 어떻겠느냐? 여성들에게만 교육시키는 것보다는 여성에 대한 여러 가지 악습을 만들어 내는 남성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는 질문을 하자 그 교수의 답은 그렇지 않아도 옆 동네 남자 신학대학원에서 합치자는 건의가 여러 번 들어왔는데 NO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처음에는 여성들의 뜻대로 잘 되어가는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결국 남성들이 모두 지배하게 된 다는 것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낙심할 것 없습니다. 오늘도 역사와 피조물의 구원활동에 참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여러분 여성들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동역자들은 언제나 작은 자, 낮은 자, 약한 자, 애통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더 이상 내려 갈 곳도 비울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가치관 혼란으로 마리아가 살던 시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위기의 시대입니다. 선진화와 경쟁력이라는 체제를 쓴 국가는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으며 깨어있는 시민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현 정부는 시민사회를 옥죄며 민주주의 시계바늘을 되돌리고 있습니다. 시대를 거스르는 4대강 사업이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재앙을 보고도 명품원전이니 친환경원전 수출국 구호를 외치는 정부, 경악할 부산저축은행 비리 등은 저들이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시간위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은 반드시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생명을 창조하고 보존하며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그 생명들이 원래적인 모습으로 회복될 종말론적인 완성의 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생명의 완성은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질 역사의 마지막 날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회복과 완성의 날이 도래하고 있음을 믿고 전심전력을 다해 그 세계에 투신하는 것이며 일상 속에서 마리아와 같이 새로운 인간형의 모습으로 즉 거듭난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삶은 세상 사람들이 보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 즉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사는 삶일 것입니다. 그것을 성서에서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면서 결코 변개치 못할 최종적인 선언을 하실 하나님 앞에 설 것이라는 사실 앞에 옷자락을 여미며 오늘도 한 생명으로서 다른 생명을 존중이 여기며 믿고 사랑하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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