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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의 주님 .....

마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1802 추천 수 0 2011.06.15 18: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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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6:36-46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10·03·27

우리는 평소에 주님의 고난과 구속의 은혜를 너무나도 잊고 삽니다. 그 결과 우리의 마음과 믿음이 많이 식어져 있습니다. 오늘은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입니다. 이 고난주간을 계기로 하여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그 은혜에 감사하며 이제 우리의 남은 생애 동안은 진정 믿음으로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겟세마네에 오시기까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은 왕이신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하고 외면했습니다. 주님을 대적한 사람들은 주로 당시 백성의 지지를 받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성전을 중심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반대는 갈수록 커졌고 적대감은 심해져갔습니다. 그것은 주님 때문에 지금까지 의인으로 행세해온 그들의 죄악상이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그들을 따르던 백성들이 모두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는 사람들의 배후에서 예수님을 대적하도록 조종하는 사탄의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주님께 대한 적대감이 심해지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주님께서는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것은 곧 죽음의 길이었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주님을 환영했습니다. 그 날이 바로 오늘에 해당되는데, 우리는 이 날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금요일에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 한 주간이 바로 고난주간입니다.
  이 고난주간의 목요일 밤에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가지셨습니다. 이 만찬을 사람들은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릅니다. 이 만찬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으며, 가룟 유다의 배신을 예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곧 체포되시고 고난당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만찬석상에서 주님은 세상을 떠나실 때가 다 되신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윽고 만찬이 끝나고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는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통상적인 유월절 만찬 행사를 고려해 볼 때 그들이 만찬을 마친 시간은 아마도 밤 10시에서 11시 사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찬이 있었던 다락방에서 겟세마네 동산까지는 15분가량이 걸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도하러 가심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로 가신 것은 기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십자가가 불과 몇 시간 후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을 알고 계셨던 주님께서는 기도로 십자가를 맞이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누가는 주님께서 ‘습관을 좇아’ 기도하러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평소에도 늘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피곤하고 바쁜 일과가 끝난 후 주님께서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아니면 새벽 오히려 미명에 혼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늘 기도하시던 주님께서 십자가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기도하러 가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당신에게도 이렇게 기도하는 습관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에 힘쓰셨다면 우리야 얼마나 더 기도해야만 하겠습니까? 요즘 우리가 너무나도 기도에 힘쓰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피곤하다는 것이, 바쁘다는 것이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기도에 힘쓸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더욱 기도하는 성도가 됩시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과 비전을 품고 늘 기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승리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며 패배합니다. 주님은 기도로 승리하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도착하신 주님께서는 따로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좀 더 가셨습니다. 세 명의 제자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주님께서 가장 신임하시고 가까이 하시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는데, 거기서 그들은 영광스럽게 변화되신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도 주님께서는 이 세 제자만 데리고 방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죽은 소녀를 살려 일으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들을 따로 데리고 좀 더 나아가신 주님께서는 고민하시고 슬퍼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며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주님께서는 이 세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앞에 두신 주님의 고민과 슬픔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적은 그 때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십자가가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주님께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십자가에서 당하게 될 고통스런 죽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우리는 믿음 때문에 약간의 고통과 손해를 당해본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와 저주를 대신 지는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 길이 없습니다. 당신은 모든 인류가 죄로 인하여 당해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어떤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바로 그 엄청난 무게의 진노와 저주를 당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고민과 슬픔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진노와 저주는 성자 예수님을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여’ 죽을 지경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형언할 수 없는 고민과 슬픔 가운데서 주님은 세 제자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다오.’하고 부탁하셨습니다. 얼마나 절박하고 얼마나 처절한 순간입니까?

기도하시는 주님
  

이처럼 감당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주님은 기도에 들어가셨습니다. 본문은 바로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기도야말로 주님에게 유일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인류의 대속을 위한 모든 일을 감당하실 수 있었던 비결은 단연 기도였습니다. 주님은 기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분처럼 보였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서 보도록 합시다.
  이 기도 가운데서 주님은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주님께서 십자가를 피하기를 원하셨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주님은 사투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최종적으로 주님을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는 일에 대하여 한 번도 흔들려 본 적이 없으셨습니다. 일찍이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신 주님에게 사탄이 시험을 걸어왔습니다. 세 번에 걸친 시험의 핵심은 십자가 없이 영광을 얻도록 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 번의 시험을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그 후 잠시 물러갔던 사탄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다시 주님을 시험해 왔습니다. 그것은 베드로를 통해서였다. 아직도 사람들이 주님이 누구신지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여 주님을 흐믓하게 해드렸습니다. 그 때 주님은 비로소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정색을 하면서 주님을 만류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마16:22하) 주님께서는 베드로 뒤에서 주님을 시험하고 있는 사탄을 보시고 단호하게 이를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하)
  그런데 바로 그 사탄이 마지막으로 주님을 시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목전에 두시고, 온 인류의 죄와 저주와 진노를 한 몸에 당하실 것을 생각하시면서 주님의 마음이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사탄이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이 잔을 치워주시라고 기도하라!” 주님께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신 것은 바로 사탄이 순간적으로 넣어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즉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사탄의 최후의 시험을 단호히 물리치신 것입니다. 누가는 이 때 하늘로부터 사자가 나타나 기도하시는 주님을 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그만큼 목숨을 건 사투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하) 주님의 이 기도는 인류가 구원받는 길이 십자가 외에는 없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보여줍니다. 만일 다른 길이 있었다면, 주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그처럼 처절하게 기도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다른 대안을 택하셨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직 십자가만이 구원의 길임을 생각하시면서 주님은 기꺼이 십자가를 담당하셨습니다.
  이렇게 겟세마네의 기도는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고난이었습니다. 온 인류의 죄와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저주와 진노가 주님을 짓눌러왔던 것입니다. 누가는 이 장면을 기록하면서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라고 했습니다(눅22:43).

잠자는 제자들
  

이렇게 기도하신 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그들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그 안타까운 부탁을 듣고서도 잠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는 본문에서 이런 똑같은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피곤하다 해도 주님의 마음을 그렇게도 모를 수 있단 말입니까? 고민하고 슬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기도에 동참해 줄 것을 부탁하신 주님의 말씀을 그렇게 외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제자들은 주님의 고난과 기도에 전혀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십자가가 가까워질수록 주님은 더욱 홀로 남으셨고 고독하셨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것은 떡을 얻어먹고 배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억지로 주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영생의 진리를 말씀하셨을 때 12제자들 외에는 다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지금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실 때, 특별히 구별하여 따로 데리고 가셨던 세 명의 제자들까지도 주님과 함께 기도하지 못하고 잠만 잘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체포당하실 때 제자들은 뿔뿔이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서 주님은 홀로 보혈을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다짐하고 장담했던 제자들은 주님의 고난에 조금도 동참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실 때 우리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을 때 맞이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자신을 던져 종의 삶을 사실 때 주님을 조금도 도와드리거나 위로해 드린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하실 때 주님과 함께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침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못 박혀 죽으실 때 주님과 함께 있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눈물 한 방울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실 때 털끝만큼도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우리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주님의 마음을 너무나도 헤아리지 못하며,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행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지금도 주님을 위해서 살기보다는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 살기 바쁩니다.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고난당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일을 추구하기에 바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숨어서 섬기기보다는 나를 나타내지 못해 안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주님의 고난에 조금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노라”고 말하면서 살았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멉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피곤하여 기도하지 못하고 잠이 든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고사하고라도 세 명의 제자들도 한 시도 주님과 함께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흐르도록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피곤하다고 잠만 자려 합니다. 새벽기도를 중단한 지 오래된 분들이 많습니다. 심야기도회에도 잘 참석하질 않습니다. 그것은 곧 목사의 말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을, 아니 피맺힌 부탁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기도로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주님의 고난과 사역에 동참하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하지 않으면 각종 시험에 들게 됩니다. 모든 시험은 기도하지 않아서 온 결과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이제는 쉬라.
  

주님께서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 자는 것을 보신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세 번 중 한 번도 주님과 함께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기도하고 오셔서 여전히 자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아마도 우리 같으면 속이 터진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제 모든 싸움을 마치셨습니다. 주님은 기도하시면서 이미 승리를 얻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더 이상 고민하거나 슬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때부터 주님의 마음은 놀라울 정도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체포되시고 대제사장들과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당하실 때도, 군인들이 욕하고 때리며 모욕을 할 때도,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실 때에도, 십자가에 달려 최후의 고난을 마치시고 운명하실 때까지 주님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 겟세마네에서 이미 기도로 승리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마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제는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45절과 46절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날이 새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면 사람들이 가룟 유다를 앞세우고 예수님을 잡으러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동안 제자들에게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잠들어있는 제자들 곁에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 때 주님께서 이 가련한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윽고 새벽의 정적을 깨고 주님을 잡으려고 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깨우시면서 “일어나라. 함께 가자.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주님은 체포되셔서 밤새도록 심문을 당하시고, 다음 날 아침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 오르셨으며, 오전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오후 3시에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은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한 주간,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나를 위해 고난당하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새롭게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서 시험을 이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피곤하다고 해서 잠만 자는 성도가 없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온 밤을 하얗게 밝히시며 기도에 정진하시던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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