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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 .....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1942 추천 수 0 2011.06.15 18: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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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0:11-18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10·04·02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무덤에 장사되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났던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생생하게 증언하는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육체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을 만날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시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와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원수였던 그가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바울의 인생을 가장 영광스럽고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사도 바울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바울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오늘 당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오늘 우리도 과연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교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니,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는 누구나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길거리에서나 빈들에서나 바닷가에서, 사람들은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병자들은 예수님께 나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에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는 아무나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육체와는 다른 몸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이제 더 이상 육체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을 볼 수 없을까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예수님을 본다는 것은 이제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실망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본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을 볼 수 없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확실하고 정확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보며 만나는 것은 일시적이거나 순간적인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론적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며 주님을 만나며 인격적으로 교제합니다. 이렇게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보며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당신은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보고 있습니까?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부활 후 최초로 나타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던 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몇 명의 여인들은 예수님께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무덤은 비어 있었고, 그녀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가 여자들의 말대로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두 제자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여전히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11절)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과 함께 다시 무덤에 왔다가, 베드로와 요한이 돌아간 뒤에도 여전히 무덤에 남아서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마리아에게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12절) 천사들이 앉아 있던 지점이 정확히 묘사된 것으로 보아 마리아는 무덤 안을 자세히 살펴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천사가 마리아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어디로 옮겨갔는지 알 수 없어서 울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13절) 천사들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난 것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나타나실 것을 미리 전해주는 신호탄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시 것을 보았으나 예수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14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으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왜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지만, 그녀는 예수님을 동산지기인 줄로 착각하고 예수님의 시신을 어디에 두었는지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신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15절)
  예수님께서는 이런 막달라 마리아를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부르시던 대로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말로 랍오니여 하니”(16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처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왜 막달라 마리아인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왜 베드로나 어머니 마리아가 아닌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처음 자신을 나타내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주신 것은 그녀의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무덤이 빈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빈 무덤을 확인하고도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빈 무덤을 확인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 이제 그 시신까지 훔쳐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서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두려움이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버렸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 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을 닫았더니”(19상)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이제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유대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찾건 말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무엇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믿고 따르던 주님께서 죽으셨고, 이제 그분의 시신마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무덤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에게 예수님의 시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볼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자였고, 베드로나 요한처럼 중요한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녀를 고쳐주셨을 때부터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주님을 섬겼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욕하던 자기의 죄를 다 용서해주셨고,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비참하고 소망 없던 그녀에게 새 생명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주님께 뜨겁게 감사했으며, 그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지만 주님을 향한 그녀의 사랑과 감사는 조금도 식어질 줄을 몰랐고, 그날도 마리아는 빈 무덤 앞에서 그렇게 울며 서 있었습니다. 그녀의 사랑을 보신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가장 먼저 이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와 만나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이 사랑과 간절함이 있습니까? 당신도 마리아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감격적으로 만나고 싶습니까? 날마다 주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살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마리아처럼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식어질 줄 모르는 뜨거운 감사와 사랑으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는 주님께서 반드시 당신을 찾아와 만나주실 것입니다.

나를 만지지 말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는 너무나도 기쁘고 반가워서 예수님을 와락 붙들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17상) 그러나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의심하는 도마에게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마리아에게는 나를 붙들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리아가 예수님께 손을 대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나를 만지지 말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에 대한 힌트는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께서 육체로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육체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라가실 것이며,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 안에 계시게 되며,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영적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방법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며,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비밀이며 능력이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면 우리의 마음과 삶이 새로워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살지 않고,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를 붙잡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것을 의미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을 충만하게 받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성령께 온전히 지배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곧 주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나를 다스리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변화되며 아름답고 견고하고 만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전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며, 큰 기쁨과 감사함으로 기꺼이 충성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새로운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무엇보다 성령충만을 사모하며 간구하십시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할수록 당신은 성령으로 더욱 충만해질 것이며, 당신의 모든 것이 더욱 새로워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주시고 막달라 마리아를 보내셨습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17하)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라고 하셨으며, 또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새롭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과 형제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시기도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재화를 더 많이 갖게 되면 그만큼 내가 갖게 될 재화는 줄어들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한정되어 있는 재화를 서로 많이 가지려고 다투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와 능력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무궁무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능력과 지혜와 축복과 은사, 우리의 성숙과 승리는 무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무궁무진하게 얼마든지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는 크고 원대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그릇을 크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릇이 크게 준비된 사람은 그만큼 받게 될 것이며, 또 그만큼 크게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있는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드리십시오. 당신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맘껏 사용해주시라고 늘 기도하십시오. 자아를 버리고 온전히 순종하십시오. 이제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주님 안에서 아름답고 능력 있게 성숙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위대하게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던 그날 아침, 막달라 마리아는 가장 먼저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기쁨과 감격과 영광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슬픔과 절망과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이 빈 무덤은 보았으나 부활하신 주님은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빈 무덤만 보는 것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은 이렇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이며, 성령을 충만하게 받는 것입니다. 단순히 믿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물론 그 믿음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능력 있게 쓰임 받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무궁한 축복과 은사를 누릴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막달라 마리아를 보십시오. 주님을 향한 그녀의 식어질 줄 모르는 사랑과 간절함을 기억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토록 애타게 주님을 찾는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과 식을 줄 모르는 사랑이 있습니까?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빈 무덤만 보는 차원에서 벗어나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뜨겁게 감격적으로 만나는 신앙으로 변화되게 해주시라고 기도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며 성령을 충만하게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인생이 가장 복되고 영광스럽게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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