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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순결과 권징 .....

사도행전 이정원 목사............... 조회 수 1945 추천 수 0 2011.06.15 18: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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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4:36-5:11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10·04·09

초대 교회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오늘도 기적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적의 강도와 빈도가 훨씬 약해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들이 시도되어 왔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교회의 순결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신앙의 순결이 약화되면 교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약화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능력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신앙의 순결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계속되는 사탄의 공격
  

초대 교회에 성령이 임하시고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자 사탄은 교회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사탄은 당시의 권력자들을 충동질하여 교회를 핍박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이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의 위협을 단호하게 거절했으며, 교회는 합심하여 부르짖음으로 다시금 성령 충만을 받고 더욱 담대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는 자기의 소유를 유무상통하는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고, 심지어는 불신자들까지도 교회를 두려워하며 칭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사탄의 첫 번째 공격은 이렇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실패하자 사탄은 이번에는 내부로부터 교회를 공격했습니다. 사실 교회의 외부에서 오는 시험보다 내부에서 오는 시험이 훨씬 위험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교회는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탄의 공격은 의외로 교회의 가장 아름답고 칭찬 받는 부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탄은 교회 안에 은근히 악을 심어 이처럼 아름답게 시작된 교회의 교제를 망치려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생활을 이용한 시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4:32-35)
  그 중에서 요셉이라는 사람의 기사가 본문에 간단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 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4:36-37) 이 사람은 그러한 선행으로 많은 칭찬과 존경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사도들은 그에게 바나바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이 말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착하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런데 사탄은 이렇게 아름다운 초대 교회의 선행을 이용하여 교회를 공격했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이 그 착한 일로 인하여 이렇게 칭찬과 존경을 받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자기들도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왔습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5:1) 여기까지는 요셉이 한 일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 부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려운 형제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요셉처럼 칭찬과 명성을 얻고 싶어서 자기들의 재산을 팔아 가지고 사도들에게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땅 판 돈의 일부를 감추어 두고 일부만 가지고 왔습니다.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5:2)
  이들이 돈의 일부만을 가지고 와서 드리자 베드로는 그들이 하나님을 속인 것이라고 책망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야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5:3-4) 결국 이 부부는 좋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점들
  

이렇게 무서운 심판을 받은 이 부부에게서 우리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이라는 아름다운 제도를 통하여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부부로 맺어 주셨는데, 창세기 2:18에는 ‘돕는 배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의 뜻은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남편이 성격이 급할 때 아내가 차분하게 인내한다면 서로 보완이 되고 조화를 이루어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두 사람이 함께 불같은 성격을 참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남편이 교회 지각생인데 아내마저 함께 늦는다면 그 부부는 평생 지각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오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함께 죄악을 도모했습니다. 1절에 보면 ‘더불어’라는 말이 나옵니다. 남편이 그런 계획을 말했을 때 아내가 “여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진실하게 행동합시다.”라고 충고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서로 도우며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부부들이 되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들이 회개의 기회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범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며, 우리가 회개할 때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회개하지 않아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후 그의 아내 삽비라가 들어왔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8절) 이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삽비라는 회개를 거절함으로 역시 무서운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어떤 죄를 범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십니다. 이 기회를 거절하지 말고 철저히 회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려운 징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 사건입니다. 문제가 많고 타락한 교회라면 몰라도 그토록 성령이 충만하고 은혜로운 교회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또 이 사람들이 범죄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 죽음을 당한 것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비록 일부를 숨기기는 했지만, 안 바친 사람도 있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서 바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왜 많은 물질을 바치고도 죽어야만 했을까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헌금 드리는 것을 거부한 죄가 아니었습니다. 일부를 가져왔다는 것도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에는 가진 것을 반드시 내야 한다거나, 낼 때는 전부를 내야만 한다는 식의 규칙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죄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죄는 일부를 드리면서 전부를 드리는 체했다는 것, 즉 거짓의 죄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하나님께 거짓말을 했다고 책망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면서 속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의문은 가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죄로 꼭 죽어야만 했을까요? 만일 이러한 엄격한 심판이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면 예배가 끝날 때마다 죽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러한 징계를 받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당시에 이 사람들은 왜 그러한 징계를 받았을까요?

교회의 순결
  

본문에서 가장 놀라운 일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일이라기보다는 초대교회의 순결이라고 보아야 더 정확합니다. 도대체 초대 교회는 얼마나 순결했기에 이정도 죄를 지은 사람이 견뎌 낼 수 없었을까요? 초대 교회는 성령의 지배를 받아 사랑이 충만했으며,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고, 생명력이 넘쳤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이 다반사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초대 교회에 거짓이 들어왔던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엄하게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혹 아나니아가 부자라고 해서, 그렇게 많은 헌금을 드렸다고 해서 눈치를 본다거나 마음이 약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드로가 저주를 내려 그로 하여금 죽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죽은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이만한 죄악을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순결했으며, 성령께서는 초대 교회의 순결과 교회의 앞길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이처럼 준엄한 심판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교회에 이 같은 권징이 계속 시행되지 않을까요? 오늘 교회에서는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즉시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오늘까지 교회가 초대 교회처럼 순결한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이러한 권징이 계속 실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타협함으로 순결이 약화되자 권징도 약해지게 되었습니다. 만일 순결이 약화되었는데도 권징이 그대로 실시된다면 과연 교회에 몇 사람이나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회는 사실상 권징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담 없이 편하게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의 순결이 약화되면 권징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능력도 약해져 버립니다. 초대 교회가 이만한 죄악을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은 초대 교회의 순결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권징의 결과
  

본문은 권징의 결과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11절).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생각할 때 주로 그 은사와 축복과 기쁨들을 생각합니다. 반면에 성령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생각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에 성령이 충만한 결과 범죄한 사람들이 준엄한 심판을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곳에서는 죄에 대한 징계가 더욱 준엄하다는 것을 우리는 교회의 역사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대각성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 교회를 대적하던 사람이 거꾸러진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역시 비슷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1907년 평양에서 길선주 전도사가 설교하던 첫날 밤 집회 때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재하셨는데, 그 광경을 목도했던 정익노 장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 날 밤 그의 얼굴은 위엄과 능력이 가득 찬 얼굴이었고, 순결과 성결로 불붙는 얼굴이었습니다 … 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죄에 대한 굉장한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죄를 떨쳐 버릴 수 있을까 하며 몹시 번민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있던 어떤 사람들은 너무 괴로워 예배당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 전보다 더욱 근심스러운 얼굴과 죽음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와서 ‘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죄를 강하게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40-50년 전만 해도 한국 교회에는 죄 지은 사람에 대해 권징이 비교적 철저하게 시행되었습니다. 교회는 죄 지은 성도를 사랑으로 엄하게 권징했으며, 권징을 받은 성도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여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성도들은 권징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진정한 사랑으로 조심스럽게 권면하는 말 한 마디도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만일 교회가 범죄한 성도를 권징하면 대부분 반발하고 다른 교회로 떠나버립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잘못된 일입니까? 현대교회에 신앙의 순결이 많이 변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권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교회의 능력도 크게 약화되어 버렸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을 속이고 베드로에게 권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들의 죄를 징벌하셨습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들은 사람들이 다 두려워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권징을 통하여 자신들의 입술의 고백과 신앙적인 태도에 거짓이 없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두려움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임했습니다. 교회가 오순절적인 능력과 모습을 되찾을 때 세상은 교회를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세상이 왜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오늘 교회가 왜 능력이 없습니까? 교회가 순결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순결을 잃으면 성령께서 강하게 임재하지 않으시며, 그렇게 될 때 교회의 능력이 약화되고, 세상은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 봅시다. 우리는 순결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하는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했으며, 단 시일에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또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자기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죄와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순결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바로 이 부분을 공격해왔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을 팔아 일부는 감추고 일부를 가지고 와서 전부라고 하면서 드렸습니다. 교묘하게 선행으로 위장된 죄악이 침투해왔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사탄의 공격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이들을 책망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의 진노를 당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 초대교회의 생명과도 같았던 순결을 지켜나가게 하셨습니다.
  오늘 교회가 능력을 상실해버린 것은 바로 신앙의 순결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와 타협하여 편하게 예수를 믿는 동안 성령의 역사는 점점 약해져왔습니다. 오늘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타협 없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세상과, 죄악과 타협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이제 다시는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기로 결단합시다. 죄와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오늘 우리 가운데 성령충만과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능력 있는 교회가 되고, 죄와 세상을 이기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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