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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고후1:2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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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멘토 (고린도후서 1장 21-24절)
<인생의 나침반 >
어느 날, 먼 바다에서 한 배가 침몰했습니다. 그때 모두 구명보트에 옮겨 탔는데 한 사람이 안보였습니다. 거의 침몰 직전이라 나머지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때 마지막에 한 사람이 선실에서 나와 극적으로 구명보트에 올라탔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나온 그가 꽉 쥔 손을 폈습니다. 거기에는 나침반이 들려있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을 놓고 오는 바람에 하마터면 모두 죽거나 큰 어려움에 처할 뻔 한 것입니다.
인생에게는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인생의 나침반일까요? 가장 중요한 인생의 나침반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도 인생의 나침반입니다. 흔히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 대단한 어떤 현상으로 오해하지만 성령 충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자 목적은 바로 성령의 선한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 외에 또 하나의 인생의 중요한 나침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좋은 멘토입니다.
< 좋은 멘토가 되는 길 >
좋은 멘토의 도움은 인생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이제 좋은 멘토를 구하고 좋은 멘토가 되는 비전을 가지십시오. 오늘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멘토가 되려면 어떤 덕목이 필요한지 4가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선해도 사람들은 악하다.” 그래서 성도는 늘 파당을 주의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예수파의 4개 파가 있었습니다. 그런 파당 싸움으로 바울의 반대파는 나중에 바울의 사도권까지 부인하고 심지어는 “말이 어눌하다! 우리처럼 방언도 못한다!”는 인신공격까지 했습니다.
또한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겠다고 말했다가 그 계획을 변경하고 방문하지 않은 것을 꼬투리로 삼아 사도 바울을 믿지 못할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과 관계회복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본문 21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하게 되자!”고 말합니다. 그 말은 서로 간에 오해를 풀고 하나가 되자는 말입니다.
살다 보면 오해할 일이 많습니다. 인간의 이해력에 한계가 있고 대개 자기 위조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멘토가 되려면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기 위주의 생각이 대개 보면 갈등과 문제의 제일 원인입니다.
어느 날, 돼지가 먹이를 주는 주인을 보며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먹여 살리려고 저렇게 수고하는구나! 정말 기특한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은 반대로 생각합니다. “내가 이 돼지를 잘 길러서 이번 잔치에 잡아 요긴하게 써야지.” 그처럼 자기 위주의 생각이 얼마나 많은 오해와 착각과 손해를 불러일으킵니까? 항상 남을 생각하고 남의 입장도 이해해주십시오. 그러면서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좋은 멘토가 될 것입니다.
2. 격려
본문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대 시대에 인치는 행위는 공문서가 변조되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동시에 소유권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를 인 쳤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된 존재이고 하나님의 소유란 뜻입니다. 그 사실을 누가 보증합니까? 성령님이 보증합니다.
요즘 보증을 서는 일로 여러 문제들이 생기면서 가까운 가족들조차 보증을 서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보증인을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실상 우리 같이 부족한 존재를 위해 누가 보증을 서겠습니까? 사람의 보증을 아예 기대하지 마십시오. 보증이 필요할수록 더욱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를 책임지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실 가장 위대한 보증인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리가 다 성령이 보증한 존재다!”라고 하면서 그들의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이 말씀도 오해를 풀고 새로 좋은 관계를 가지려는 사도 바울의 바람과 격려가 담긴 말씀입니다. 그처럼 멘토는 격려를 잘해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강철 인간이 되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도 쉽게 낙심합니다. 오히려 나쁜 사람들은 더 낙심하지 않습니다. 강도와 사기꾼이 낙심하는 것 봤습니까? 그들은 낙심하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다시 사기를 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성도는 그렇게 쉽게 낙심하고 상처도 잘 받습니까? 의와 선에 대한 거룩하고 세심한 갈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큰 상처를 당하면 그때마다 머리의 메모리 장치가 손상되어 아이큐가 조금씩 떨어집니다. 그래서 상처를 많이 당하는 목회자의 아이큐는 대부분 두 자릿수란 말이 있습니다. 그처럼 살다보면 힘든 일이 많이 생기고 누구나 한두 가지 이상의 고민거리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격려가 필요합니다. 복음은 사람을 살리고 세워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안에서 서로 용기를 주는 격려자가 되고 결코 남을 낙심케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가장 큰 진노를 내리는 사람은 사람을 낙심케 만드는 사람입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 중에 열 명이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가나안 땅은 좋지만 그곳에는 우리가 당하지 못할 강한 족속들이 삽니다. 우리는 도저히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들의 성벽은 난공불락이고, 강철 수레가 있고, 그들은 모두 거인이고 군사 숫자도 많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만도 못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백전백패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온 백성이 낙심해서 밤새도록 모세를 원망하며 통곡했습니다. 그 우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진노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40일을 40년으로 환산하여 광야를 헤매게 하셨고 60만 3550명의 장정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제외하고 전부 광야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특히 백성들을 낙심케 만든 정탐 10명은 재앙으로 죽었습니다. 그처럼 성도를 낙심케 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누군가 거룩한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갈 때 그를 실망시키거나 낙심케 하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말은 의욕을 잃게 만들고 과도한 비판과 책망은 자신감을 빼앗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마십시오. “집사님! 좋은 목표입니다. 한 번 해 봅시다. 우리는 약해도 주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잘 했습니다. 앞으로 잘 될 겁니다. 제가 기도해드리겠습니다.” 그런 말을 체질화시켜야 진정한 멘토가 될 수 있습니다.
가족끼리도 서로 격려해주십시오. 배우자에게 “참 잘 했어요!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많이 해주고 자녀들에게도 이렇게 격려하십시오. “얘야! 너는 너만의 재능이 있어! 너는 가능성이 많아. 하나님이 반드시 널 도와주실 거야.” 시험에서 55점 맞아도 이렇게 말하십시오. “그래도 틀린 것보다는 맞은 게 많구나! 앞으로 더 열심히 해라.” 교회에서도 수고하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격려하십시오. “정말 수고했습니다.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매번 “저 집은 이런데. 저 교회는 이런데”라고 하면 누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남과 나는 형편과 처지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남은 이런데.”라는 모욕적인 말을 하지 말고 자신의 형편에서 잘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모세가 상처 후에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자 아론과 미리암이 비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그래 너는 정말 잘났구나!”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모세는 내 대화 파트너다! 모세를 욕하면 모세를 세운 나를 욕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리암이 문둥병에 들게 하셨습니다. 그처럼 교회 일군을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릅니다.
이제 이렇게 서로 격려해주십시오. “집사님! 잘 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더욱 좋아질 겁니다!” 그처럼 낙심한 사람을 일으키고, 실망한 사람이 용기를 갖게 하고, 시험에 든 사람이 시험을 이기게 하십시오. 사람은 사람 때문에 넘어지기도 하지만 사람 때문에 일어서기도 합니다. 그처럼 남을 격려하고 일으켜주는 좋은 멘토가 되십시오.
3. 인내
본문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한다.”고 한 말은 자신이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아도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진실한 말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런 진실한 말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를 방문하지 않은 것은 인간적인 뜻을 따라 계획을 변경한 것이 아니고 고린도 교인들을 아끼는 마음의 발로였음을 강조합니다.
만약 사도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서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을 치리하고 징계하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해가 생겨도 그들에게 잠시 생각하고 회개할 시간을 주려고 고린도 교회 방문을 유보한 것입니다. 그런 깊은 마음을 모르고 일부 교인들은 그런 사려 깊은 행동까지 싸잡아 비난한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항상 상황과 시간에 대해 넉넉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회해조차 너무 서두르지 말고 가장 적절한 하나님의 때에 화해를 도모하십시오. 좋은 일도 너무 서두르면 좋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멘토가 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4. 섬김
본문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이 구절을 보면 목회가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목회는 ‘양들의 믿음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양들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의 권위가 있었지만 그 권위를 버렸습니다. 그처럼 진정한 권위는 권위를 자발적으로 버릴 때 주어집니다.
믿음은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생깁니다. 아무리 탁월한 사람도 믿음을 주관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만 주관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누군가 믿음을 가지게 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그가 기쁨을 가지도록 도우십시오. 그런 목회적인 배려를 가지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주려고 고린도 교회의 방문계획을 취소한 것입니다. 그처럼 멘토는 권위의식을 버리고 섬김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멘토링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기를 얻으려면 멀찍이 서라! 그러나 마음을 얻으려면 가까이 서라!” 가까이 가면 자기의 인간적인 모습이 다 드러나기에 인기를 잘 관리하려면 멀찍이 서는 게 좋습니다. 그처럼 멀찍이에서 멋진 설교를 하면 “저 목사 참 멋있다.”고 하면서 인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인기를 얻는 자’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언제 움직입니까? 가까이에 설 때 움직입니다.
물론 가까이에 서면 허물이 잘 보이면서 상처의 가능성도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서 마음을 줄 때 잘못되면 상처의 가능성도 크지만 잘 되면 그때 인격과 인격의 깊은 만남이 이뤄집니다. 그러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사람이 변하게 되고 결국 그 변화된 사람이 나중에 거룩한 비전을 이루는데 요긴한 최고의 동역자가 됩니다. 그처럼 가까이에서 남을 이해해주려고 할 때 변화의 가능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멘토 >
미국에 테디(Teddy)란 5학년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 일에 잘 참여하지 않았고, 수시로 우울해졌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담임인 미스 톰슨(Miss Thompson) 선생님은 단체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어눌한 그에 대해 별로 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스스로 짜증 섞인 말을 했습니다. “왜 테디는 저렇게 말을 듣지 않을까? 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저렇게 자기중심적으로 살까?”
마침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그때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선물들을 하나씩 끌러보았습니다. 깜찍한 선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테디의 선물포장을 끄르자 그곳에는 쓰다 남은 향수와 낡은 팔찌가 들어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낄낄 웃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테디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진지하게 그 팔찌를 껴보고 향수도 조금 뿌려보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이 웃음을 그쳤습니다.
수업 후 테디가 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팔찌를 낀 것을 보니까 저의 엄마가 낀 것 같아요. 그리고 향수를 뿌리니까 선생님에게서 저의 엄마 냄새가 나요.” 톰슨 선생님은 갑자기 마음이 찡해졌지만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정말 그러니?”
그날 테디가 귀가한 후 톰슨 선생님은 급히 사무실로 가서 테디의 학적부 파일을 들춰보았습니다. 학적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1학년 생활기록 - 조용한 학생임, 집에 큰 어려움이 있어 보임. 2학년 생활기록 - 조금씩 학생들과 어울림. 엄마가 큰 병에 걸림. 3학년 생활기록 - 좋은 학생이지만 마음이 많이 혼란함. 엄마가 돌아가심. 4학년 생활기록 - 남보다 늦게 움직이는 스타일임. 아빠가 관심이 없음.” 그 학적기록을 보고 톰슨 선생님은 그제야 왜 테디가 그렇게 산만한지 이해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학생들이 등교했을 때 테디는 새로운 여선생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톰슨 선생님이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선생님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톰슨 선생님은 짜증과 귀찮음의 옷을 벗어던지고 사랑과 이해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테디를 위한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가동시키면서 그를 사랑으로 가르치고, 인도하고, 개인적인 멘토링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테디의 삶은 극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후, 톰슨 선생님은 테디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톰슨 선생님! 감사해요. 제가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반에서 2등으로 졸업하게 되었어요.” 4년 후, 그녀는 다시 편지를 받았습니다. “톰슨 선생님! 감사해요. 제가 곧 대학을 졸업하는데 전체 1등으로 졸업하게 되었어요.” 몇 년 후, 그녀는 또 편지를 받았습니다. “톰슨 선생님! 감사해요. 제가 내일부터 의사로 병원에 처음 출근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이제 얼마 후에 제가 결혼하는데 그때 저의 어머님 자리에 있어주세요.”
얼마나 감동적인 변화입니까? 그런 변화는 누구에게도 가능합니다. 힘들고 외로운 사람의 사정과 사연을 알아주고 그를 이해해주면 됩니다.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비판자로 부르지 않고 치유자로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을 따라 정죄의 눈이 아닌 사랑의 눈으로 그를 보고 그의 신을 신고 그가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를 가주십시오. 그러면 그때부터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톰슨 선생님과 같은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멘토>를 필요로 합니다.
요새 우리나라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게 지냅니까? 얼마 전만 해도 고등학생들은 저녁 6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그 후에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자습하고 그 후에 새벽 1시까지 학원을 다니는 획일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재능과 창조성을 기를 틈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 얘기가 유럽의 한 TV에서 <믿거나 말거나>란 프로그램에 방송되자 그 방송을 보던 그 나라 학생과 학부모들이 한국 학생들이 너무 불쌍해서 울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제 자녀들에게 자녀의 옷에 맞춰 살게 배려해주십시오. 그처럼 누군가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일으켜주면 하나님도 그런 격려자들을 더욱 높은 축복의 고지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 좋은 멘토를 만나지 못해서 자신의 가능성을 따라 살지 못하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좋은 멘토나 후원자가 되면 그는 멋지게 일어나 자신의 기대 이상으로 멋진 삶을 펼쳐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총회 후 뉴욕에서 6시간 거리에 있는 캐나다국경 인근의 쉘브룩에서 사역하는 여승훈 선교사님 집을 일행 5명이 함께 방문했습니다. 쉘브룩은 퀘벡 내의 도시로서 아직도 프랑스어를 사용합니다. 그곳에서 선교사 훈련학교를 마치고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원래 목표였던 프랑스 모슬렘 선교를 못 떠나고 지금은 비자를 기다리며 퀘벡의 현지인 교회와 주위의 소수민족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 집에 가보니까 낡은 집에서 최저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4년이 지났는데 아직 핸드폰도 없었습니다. 모든 일행이 마음 아파했습니다. 처음에 선교사로 파송 받을 때는 후원을 약속한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길이 자꾸만 막히고 실질적인 선교열매를 내놓지 못하자 지금은 대부분의 후원이 끊겼습니다. 그래도 우리만은 열매와 상관없이 계속 선교사님을 후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원래 준비했던 선교헌금 외에 저희들이 가진 100불짜리 지폐를 다 털어 선교사님께 전달했습니다.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이제 곧 임대한 집이 만료되어 이사해야 하는데 밀린 월세와 공과금 등을 다 지불하는데 필요한 비용과 실제 이사비용이 아직도 많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비록 지금 선교사님이 멋지고 화려한 사역의 열매를 내놓지 못해도 그의 뒤에서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해줄 때 언젠가는 더욱 멋진 사역의 열매를 ‘사람 앞에’가 아닌 ‘하나님 앞에’ 내놓아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처럼 누군가 힘들어할 때 그의 곁을 변함없이 지켜주어야 진정한 멘토와 진정한 후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제도와 시스템에 많은 신경을 씁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도와 시스템은 어떤 규칙으로 원격조정을 하기 때문에 사람 관리는 해주지만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거나 사람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또한 현대인들은 명성과 인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유명한 사람에게 환호는 해도 그에게 깊은 마음을 주지는 않습니다. 누구에게 마음을 줍니까? 개인적으로 깊이 터치하는 사람에게 줍니다.
저의 온라인 새벽기도 회원 중에는 우리 교인처럼 가까워진 사람도 많습니다. 누군가 댓글을 달면 저도 시간이 있는 한 거의 답장메일을 그분에게 보내기 때문입니다. 매일 말씀으로 소통하고 게다가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인격적인 대화까지 오고가다 보니까 교인처럼 가까워진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선교사님들을 많이 후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얼굴 없는 후원자들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있는 온라인 새벽기도 회원 5623명 중에 자신의 사역처럼 최고로 헌신해주는 <동역후원자>는 2명입니다. <천일조 회원>처럼 그런 분이 5명만 있으면 저희 선교후원 사역의 재정적인 문제가 상당히 해소될 것입니다. 또한 정기적으로 후원하거나 가끔 목돈을 후원하는 <일반후원자>는 <백일조 회원>처럼 50명이 약간 넘습니다. 그 모든 후원자들이 말씀 안에서의 인격적인 깊은 만남을 통해 연결된 분들입니다.
저는 아직도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지 못합니다. 그래도 컴퓨터로는 문자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컴퓨터 앞에 있는 한 거의 답장문자를 보냅니다. 사람들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일일이 답장하느냐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일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시간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입니다.
또한 저는 목소리도 가급적 권위적인 쉰 목소리보다는 맑은 하이톤 목소리를 쓰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얼굴표정도 권위적인 표정보다는 밝게 웃는 표정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 모습들이 권위의식으로 멀리 있기보다 섬김의식으로 가까이 하려는 저 나름대로의 작은 실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서로 가까이 가서 섬겨주려고 하십시오. 가까워짐으로 생길 수 있는 상처와 배신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어떤 보답과 보상을 위해 섬긴 것이 아니라 “섬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려고 섬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남을 섬겨주면 언젠가 자신을 섬겨주는 좋은 멘토와 후원자를 반드시 얻게 될 것입니다. 항상 누군가의 좋은 멘토와 후원자가 되어줌으로 더욱 위대한 멘토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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