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고후3:1-5 |
|---|---|
|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
고린도후서(10) 누구나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후 3:1-5)
< 하나님의 인정을 추구하십시오 >
본문 1절에서 ‘천거서’는 유력한 사람들의 추천장이나 위임장을 뜻합니다. 당시 어떤 선교사는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유력한 사람의 추천장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여주며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추천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을 정식 추천장도 없는 무자격 선교사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은 사람의 추천이 아닌 주님의 직접적인 위임에 근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도 추천장의 필요성을 전면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도 필요에 따라서는 추천장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문서로 적힌 추천장보다 전도의 열매인 ‘고린도 교인들’이 진정한 추천장으로서 ‘글로 쓰인 추천장’보다 ‘마음에 쓰인 추천장’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2절).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사랑과 정성으로 낳아진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3절).
요즘 말로 하면 신학교 졸업장과 안수증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인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학교 졸업장과 안수증을 철저히 무시하고 그저 뜨겁게 전도하고 기도한다고 해서 무조건 스스로 “나는 성령님이 인정한 참 종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태도입니다. 권위는 성령님의 이름을 빌려 스스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뚜렷한 열매를 통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입니다.
어떤 공적인 질서 아래에서 바르게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을 복음으로 잘 이끄는 열매들이 분명히 있으면 사실상 그 열매가 신학교 졸업장이나 안수증보다 더 확실한 추천장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그런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추천장 논란은 사도 바울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납니다. 결국 사역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얼마나 많은 영혼 구원의 열매(그리스도의 편지)를 얻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 누구나 가능성이 있습니다 >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천거서가 중요하다고 한 것은 스스로의 영광과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4-5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정이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면 우리의 생각보다 더 위대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본래부터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별 볼일 없는 사람이 하나님 손에 붙들려 위대하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은 학벌이 높고 물질이 있고 재능을 갖춘 사람을 쓰지만 하나님은 없는 사람을 택해 그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40세의 왕자를 택하지 않고 80세의 도피한 노인을 택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각으로 쓸모없게 보이는 사람도 하나님 안에서는 엄청난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로 도망쳤을 때 400명의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가 모였습니다. 그들은 자존감이 부족하고, 상처를 쉽게 받고, 세상적으로는 별로 쓸모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을 받아주고 위로해주고 감싸주고 때로는 강하게 훈련시키면서 그들을 변화시켜 마침내 나라를 일으켰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어떻게 변합니까? 사무엘하 23장에 나오는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을 보면 그들은 본래 많은 것을 갖춘 장군들이 아니었고 비참한 아둘람 굴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윗 밑에서 훈련 받아 나중에 어마어마한 용사들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 안에서는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따라 축복 받고 그 축복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멋지게 사는 꿈을 꾸십시오.
초대 교회 당시에 제자들이 주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자 당시 권력자들은 그들을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사는 행복을 고백하자 그들을 귀양 보냈습니다. 귀양지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사는 행복을 고백하자 마침내 그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도 그들은 “죽어서 예수님과 함께 살 생각을 하니 행복하다.”고 하면서 웃으며 죽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삶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편지를 전달하는 우체국과 같이 되고 목사는 그리스도의 편지를 전달하는 우체부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처럼 불신자에게는 확신의 편지가 되고 낙심한 자에게는 용기의 편지가 되고 절망한 자에게는 소망의 편지가 되고 가난한 자에게는 축복의 편지가 되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세상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