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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blog.daum.net/hk0804/159490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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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 고후13장13절의 원문엔 "있을찌어다" 동사 가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교제)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여기까지다- (있을찌어다-원문에 없다) "
아래의 헬라의 원문을 보듯이 이 문장에는 동사가 없다. 그리고 교통하심이 아니라 교제하심이다.
그러니 원래의 해석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교통이 아니고) 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아멘. 여기까지이다.
교회에서 목사가 가지고 있는 절대 권한이 몇 가지가 있는데, 축도권도 그 중의 하나다 라고 한다. 축도란, 말 그대로 복을 빌어주는 기도이다. 왜 복을 빌어주는 기도가 목사의 권리이며 그것도 목사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일까? 참으로 우숩기 그지없다.
축도 의미는 기독교 백과사전에서 "목사가 예배 시간에 회중을 위하여 드리는 축복 기도로서 보통 고린도후서 13장13절에 있는 말씀을 외운다. 그리고 이 축도 때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오래전 부터 내려오는 관습이며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축도를 가장 엄숙한 순서로 인정하여 사제는 예복을 입고 이를 선언한다" 라고 되어있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축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적은 없다.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가르치신 기도, 도고, 감사 등의 기록은 있으나 축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6:28), 이러한 말씀은 목사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고 일반적인 모든 성도에게 주신 말씀이다.
목사들의 주장은 그렇다. '복을 내리신 이는 하나님이시고, 따라서 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축복하는 것이다. 만일 평신도가 축복을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뭐 이런 논리가 다분히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논리는 이미 말 자체에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축복하는 성도가 불경스레 신성한 영역을 넘어선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말이다.
이 논리에는 축복이라 말과 복이라는 말에 대한 개념적 혼란뿐만 아니라, 일종의 계급주의적 차별 의식이 숨겨져 있다. 교회 내에 목사, 장로, 집사, 평신도라는 계급을 만들어 놓고, 그 중에서도 목사라는 계급의 권위를 절대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권력 상징으로서 축도권이라는 것을 규정한 듯 싶다.
권리가 어떤 특정 집단에게만 허용될 때, 그 권리는 권력이 된다. 축복하는(복을 비는) 기도가 권리가 되고, 더 나아가 그 권리가 목사라는 직분에게만 허용이 되어진다고 했을 때 이는 권력의 도구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목사가 전도사를 대할 때에도, 감히 축도권도 없는 주제에 라고 내세울 수 있는 힘이 주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손을 높이 들고 하는 축도는, 성도들로 하여금 손을 든 순간 하늘로부터 복이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절묘한 연상 장치로서 가능케 보인다. 연상 작용이라는 게 있다. 비슷한 모양은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믿게끔 만드는 심리적 작용을 말한다. 그저 눈감고 하는 것보다는 손을 들고 하게 되면, 목욕탕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모양을 연상하게 됨으로써, 심리적 작용에 의해 복이 쏟아질 것 같은 믿음이 생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했고, 이삭이 야곱에게 했고, 야곱이 아들들에게 했고, 숱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했던 축복 기도(복을 비는 기도)를,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목사를 제외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이 할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은 정말 해괴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구약엔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백성을 축복하는 권한을 하나님께서 부여하셨다(레9:22-23, 민6:22-27).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오늘날 강단에서 목사들이 하는 축도의 기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구약의 축복기도는 중보의 기도로서 대제사장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대제사장(히3:1, 히4:14)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딤전2:5).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고(히6: 19-20)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요(딤전2:5)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한 대언자이신 것이다(요일2:1).
오히려 우리는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성도나 모두 주 안에서 형제이다(히2:11, 마23:8).이와 같이 아론의 대제사장적인 축도권에서 그 기원을 찾아 축도한다면 누구도 축도를 할 수 없다.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딤전2장8절에'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축도의 모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손을 들고 기도하던 관습(시63:4, 119:4)에 따라 말한 것 뿐이고 다투기 보다 서로 기도하기를 힘쓰라고 하는 권면이다.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은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는 경건한 풍습이었다. 또 어떤 이들은 서신서 말에 있는 축원을 축도로 오해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목사만이 축도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이는 편지의 끝인사로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편지로나 말로 서로를 축복할 수 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고린도 후서 13장13절의 말씀이나 유다서 23-24절의 말씀은 예배시의 축도가 아니라 분명한 서신의 끝인사이다.
서로를 위한 축복 기도는 모든 성도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새해에 복많이 받으라고 빌어주는데, 성도간에 축복하는 일이 어떤 직분에 의해서 제한받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특별한 위치에 있는 바울이 자기가 세운 고린도 교회를 위한 축복이었고 또 오늘날 개교회에서 행해지는 축도를 목사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자주 흔히 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신 일은 부활 후 승천하실 때 단 한 번 뿐이었다(눅24:50-53). 멜기세덱도 마찬가지다(히7:6, 창14:19 ). 멜기세덱은 인류 최초의 제사장으로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인물이다. 그가 제사장이라는 특별한 위치에서 아브라함을 축복한 것은 일회적인 사건이었다.
이삭도 야곱을 축복하였으나 에서는 축복하지 않았다(창27:34-38). 에서는 동생에게 축복을 다 빼앗긴 후에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니까"(창27:38)하며 애원하였다. 그럴지라도 아버지의 위치에 선 이삭은 또 다시 축복할 수가 없었다. 만일 성도들을 위한 종노릇하는 목회적인 특별한 위치에서 자기 교인들을 위해 축복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자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목사가 은퇴할 때나, 혹은 목사가 죽을 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매 주일마다 자기 몸에서 무슨 복(福)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양 손을 들어 강복의식을 행하는 것은 자판기에 돈만 넣으면 커피가 쏟아지는것처럼 그런경우가 아니라는 것이다(신18:22).
(신20:22)에는'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라고 했다.
축도가 복을 비는 기도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간절히 축원하노라?" 가 왠말인가? 복을 비는 사람이 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종교적 지위를 이용해서 스스로를 격상시키려는" 건방지고 야만적인 행위인 것이다. "내가 복을 비니까 너는 들어라"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비는 자는 권위를 포기해야 한다. 기도의 첫번째 태도가 구하기 위해 높은 자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또 축도가 기도라면 그것은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빌지 않는가?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을 부탁하셨는데(요14:13) 목사는 왜 이 중요한 원리를 깨뜨리고 망가뜨리려는가? 오히려 기도로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복을 비옵나이다. 아멘" 또 축도가 기도라고 하면서 그 기도를 꼭 카톨릭 에서처럼 예복을 입고 해야만 하는 까닭은 또 무엇인가? 물론 오늘날에는 사복을 입고 축도를 하는 목회자들도 있지만 그러나 대개 그런 경우는 주기도문 암송을 시킨다. 목회자 까운을 입고 하는 기도와 벗고 하는 기도의 구별은 누가 만든 것인가?
축도가 기도라고 하면서 그 기도를 대예배나 공 예배와 같은 정해진 시간에만 하도록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이 의식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 기도는 때와 장소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기도 드려야 한다. 축도가 복을 비는 기도라면 기도할 수 있는 자와 기도할 수 없는 자의 구별이 있는 까닭도 있을수 없다. 위엄과 권위와 자만의 태도로 기도한 바리새인보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18:13)라며 겸손히 기도하는 자가 의롭다함을 얻고 돌아간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익히 잘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금껏 목사들에 의해 의식화 된 신자들은 축도를 복받는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축도를 한 그 목사에 의해서 복이 좌우되는 것처럼 헛되이 맹신 하고 있다. 그러나 축도는 비복음적인 용어이며 하나의 의식행위 이다. 이는 로마 카톨릭에서 교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며 성도들의 기복신앙을 이용한 발상이다. 본래 축도를 베네딕숀(Benediction)이라 하는데 이는 신부와 평신도를 구분하기 위해 베네딕트 신부가 만들었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다는 개신교가 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성경에도 없는 일을 자기들 각자 교단 헌법에 만들어 놓고 방자히 행하고 있다.
목사들은 교권이라는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아야 한다. 분명히 목사는 그 신분에 있어서 교회의 회중들보다 높지 못하다. 교인들이 앉아있는 위치보다 조금 높게 한 강단에 있다고 해서 높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목사까지를 다 포함하여 죄인으로서 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은혜를 입음으로 영생을 얻는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예수 한 분으론 부족한 것처럼 어떤 대리자를 세우고 그를 통하여 복을 받으려고 하는 성도들의 태도는 더이상 성경적인 자세가 아니다.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다. 목회자를 더 의롭게 하시고 목회자가 아니 라고 해서 덜 의롭게 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교회에서 주일 학생 예배가 끝난 후 한 학생이 교육 전도사에게 질문을 했다."전도사님, 왜 예배 끝날 때 손들고 하는 기도 안 해요? 어른 예배 때는 주기도문 대신에 그거 하던데. 우리도 그렇게 해요."그러자 전도사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그건 목사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단다. 목사와 전도사가 급이 다르다는 사실을 그 아이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옆에 있던 한 아이가 끼어 들었다. "어? 영국에서는 모두 다같이 하기도 하구 그랬는데."
그 아이는 몇 년 간 영국에서 살다가 얼마 전 한국에 돌아온 아이였다. 영국에서 누구나 할 수 있었던 것을 한국에서는 목사만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아이에게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직분도 없는 어린이들까지도 다같이 했던 축도였던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축복이라는 개념과 복이라는 개념이 아무 생각 없이 혼용되고 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이 말은 아주 잘못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축복하실 수가 없다. 축복은 복을 비는 것인데, 말 그대로라면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복을 주라고) 빌고 있다는 뜻이 된다. 복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축복 즉, 복을 주라고 누군가에게 간청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기도하다니 이런 망발이 어디에 있겠는가. 바른 표현은 '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인간은 복을 비는 것(축복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세상 사람 누구나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라' 로마서에 있는 말씀이다. 바울이 굳이 목사들만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다.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핍박하는 자까지도 축복해주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축복하는 기도는 누구나 하는 것이며, 목사들만이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목사에게만 축도권이 한정됐다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에, 세계 모든 교회가 비 성경적인 십일조를 없애 버린것처럼 세계 거의 모든 교회가 일반 모든 성도에게도 축도권 뿐만 아니라 당회장권 까지도 열어 놓고 있다.
한국교회는 축도를 주로 예배를 폐회 하는 순서에 넣고 선언으로서 끝 맺음한다. 그러나 축도가 예배가 끝맺음 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끝나는 개념이 없고 생활속에서도 계속적인 것이기 때문이다.초대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후에 만찬으로서 그 모임을 마무리하고 서로 교제하였다(행20:7-11,고전11-). 저들의 모임은 말씀을 강론하고 떡을 떼며 교제하고 헤어졌던 것이다. 예배는 끝나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계속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다같이 서로에게 열심히 축복해 줘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하심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기도해야한다. 끝부분을 '있을찌어다'라고 함으로써, 쓸데없이 언어적 위엄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
댓글 '10'
김양천
권고자
축도에 대한 강조를 하면서 마치 예배당에 들어와 예배만 드리면 목사의 축도로 축복을 받는 다는
이상한 성경에도 있지 않은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수준의 논리 입니다. 이것을
마치 목사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성경에 도 없는 이상한 논리 입니다. 그리고
개역이나 개정 한글 성경에는 이런 어투의 글이 마지막 인사에 나오는데 영어 성경에는 다르게 나옴
니다.축도니 축복권이니 하는 것으로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한국의 교회가 이제는 변화 되어야 합니다.
사실 성경적으로 (참 교회라면) 목회자나 교인이 다 같은형제 입니다. 일하는 기능이 다를뿐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에베소 교회에 니골라당에 대한 말이 나옵니다. 니골라당이란 평신도를 억압하는
성직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도 목회자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작은 목자
"복" 이란 단어와 "벌" 이란 단어를 가지고 겁주고 사기치고 노략질하고 온갖 못된 짓을 다하고,옛 봉건적이고 유교적인 습성을 교묘히 활용해 마치 제국의 임금인양 살아가면서 양심의 가책이나 어떠한 것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현실속에서 하늘나라의 예수님 이름을 팔아먹는 그런 무리들도 있음을 볼때에 심히 개탄스럽고 측은함까지 느낄때가 있다, 과연 그러한 자들이 성령을 체험하기는 한것일까,? 알기나 하는것일까,? 한마디만 하고 싶다, 예수님은 누구에게 세례를 받으셨는가? 그당시에 대제사장이 누구였으며, 과연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줄수있는 직분의 위치에 있었는가,? 성도라함은 예수님 안에서 모두가 성도요 자녀일진대 어찌 성도라는 명칭속에 목사라는 직분은 특수 계급으로 분리하려는지? 목사라함은 공동체에서 많은 사람들이 질서없이 중수난방으로 있다보니 그러한 질서를 관리하라는 직분인 것이지 무슨 그직분을 남용해서 못된짓만을 골라서 하라는 것이 아닌것이다, 공무원들이 주인인 백성들을 기만하고 우롱하고 폭행과 폭언등, 수많은 악행으로 주인을 없신여기는것은 머슴주제를 알지못함과 같은니 목사들또한 이와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성경을 보라 얼마나 무서운 말씀들이 많은가,? 자기 자신에게 합리화 시키려는 맞춤식 해석이나 또는 이상한쪽으로 비유한다거나 또는 상상하지들 말고 성서의 글을 있는그대로 봐야 할것이다, 성경 어디에 목사들만 축도를 할수 있다고 되여 있는가,? 목회자에게 사도적 계승권이 있다니? 사도바울은 자칭 사도라 하였는데 과연 그가 제사장 출신이었던가 아니면 목회자 이었던가,? 성경 어디에 그렇게 되어 있는가,? 신.구약 66권 어디에도 없는 말들을, 배움의 과정에서 잘못배운것들을,.. 독일에서 오랜 신앙생활을 해오든 나로서는 이해부족과 ,오히려 분노마져 느낄때가 있다, 독일의 목사님들은 모두가 잘못되었고 한국의 목사들은 바른 믿음생활과 행동들을 하고 있는지,? 화살과 같이 빠른 세월이다, 하나님은 멀지않은 시간속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계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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