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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매체에 실린 최용우의 글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실린 매체를 찾을 수 없어서 올리지 못한 글도 많습니다. |
원고/cm 2005.5 월호 (테마가 있는 글- )
제목/ 책방에서
최용우 (월간 들꽃편지 발행인)
저의 작은 공간인 책방에 전화가 한 대 있습니다. 인터넷 연결 때문에 신청한 전화인데, 받는용도일 뿐 제가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 달에 한 두통이 고작입니다. 그런데 전화기 성능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누군가 썼던 전화기인데 아마도 직직거리는 잡음 때문에 쓰기를 포기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고장인 줄 알고 고장신고를 했더니 서비스 기사가 와서 수화기를 빨래 짜듯 몇 번 비트니 통화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전화기를 사용할 때는 마치 수화기에서 소리를 짜내는 것처럼 몇 번 비튼 다음 사용합니다.^^
그 전화가 한번도 안 울리는 날은 저는 정말이지 가족들 외에는 하루종일 말 한마디 안하고 삽니다. 아이들 아침에 학교에 가고 아내마저 학교에 가는 날은 하루종일 만나는 사람도 없어 이 세상에 나 혼자 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적적하다거나 쓸쓸하다거나 우울하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마음이 넉넉하고 자유롭고 천연덕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주변을 한번 더 눈여겨보게 되고, 그동안에 숨죽이고 있던 사물들이 와글와글 살아나 내게 말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새소리, 바람소리, 꽃이 피는 소리, 두더지 땅파는 소리, 먼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고, 까치가 깍각거리는 소리, 풀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토끼가 뛰어가는 소리, 골짜기에 물이 흘러가는 소리, 참새 소리......
비로소 대화 상대가 생긴 저는 눈에 생기가 돌며 말이 통하는 이들과 소리의 파장이 아니라 마음의 파장으로 전달되는 대화를 재미있게 시작합니다.
오전에는 책방에서 주로 글을 쓰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국인데요. 내년도 전화번호부를 만들기 위해서 확인 전화를 드립니다. 들꽃피는교회 맞습니까? 주지 목사님 되십니까?”
“네? 주지 목사님이요?”
“교회에서 제일 높으신 목사님 있쟎아요. 주지 목사님 아니세요? 전화번호부에 교회 이름과 번호가 들어가는데, 광고료를 조금 내시면 교회 이름을 고딕체로 눈에 잘 보이게 해드리고, 그 밑에 주지스님 목사님 이름과 교회 표어도 넣어드려요.”
“네? 주지스님 목사님이요?”
...?? 이분은 계속 주지스님, 담임목사님을 혼동하며 구별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년에 보은 전화번호부엔 어쩌면 이런 오타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땡땡사 담임스님 땡땡땡 043 -543-5432
땡땡교회 주지목사 땡땡땡 043 -543-5431
떼렐렐렐레레레........
“여보세요? 고추농사 지으시나요? 이번에 고추를 잘 말려주는 보일러가 나왔는데...”
“안녕하십니까? 인삼 액기스를 무료로 드리는 사은 행사에 당첨이 되셨습니다.”
책방에 있으면 별별 전화가 다 옵니다. 텔레마켓팅이 좋은 홍보수단이기는 하지만 하루종일 몇 통씩 전화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참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장애인 단체나 노인복지회 같은데서 오는 전화는 거절하기도 그렇고 거절 안 하기도 그렇고 한 참을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상대방이 한 참 설명을 하는데 수화기를 놓기도 그렇고 다 듣고 있기도 그렇고... 그래서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냥 끊어버리기에 민망한 전화가 오면 코를 막고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지금 거신 전화는 결번이거나 없는 전화번호이오니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하시고 전화를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딸깍!”
앞으로 곤란한 전화가 오면 꼭 이 방법을 써야지. ^^
저의 작은 공간인 책방에 다른 곳에는 없는 의자 하나가 있습니다.
저는 참, 따분하군... 뭘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의자 하나만 갖고도 몇 시간, 아니 며칠을 놀아라 해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뭘 해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 미칠 지경입니다. 와하하
작년 일년동안은 정말로 의자 하나 갖고 놀았습니다.
좋은이 밝은이가 아주 어려서 밥상이 너무 높아 머리만 쏙 올라왔을 때 의자의 다리를 적당히 잘라서 밥상의자를 만들어준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자라서 그 의자가 필요 없어지자 책방 구석에 버려져 있었는데, 어느날 그 의자에 예수님이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얼른 먼지를 털어내고 <예수님이 앉으시는 의자>라고 써 붙였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저는 소파에, 예수님은 의자에 앉아 아침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나눈 이야기를 <내영혼이 주를 찬양>이라는 제목의 詩로 썼는데 300편을 썼고 지금도 의자대화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뭐, 심심할 겨를이 없는 것이지요.
“뿌지직~~”
갑자기 마루바닥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깜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마룻바닥을 살펴보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에이~ 주님, 놀랐쟎아요.”
다시 한번 “뿌직!”
“차~암, 진짜 놀랐다니까요”
그러고 보니 주일 아침에 책방에 와서 예배시간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그만 깜빡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책만 들면 그 자리에서 정신없이 책 속에 빠져 들어가 버리는 저를 가끔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신 차리게 해 주십니다. (좋은 습관인지 나쁜 습관인지)
어느 때는 까치가 바로 창가에까지 날아와 깍!깍! 거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커피포트에 빨간 불이 들어오기도 하고, (어째 주님께서 점점 더 과격해지시는 것인지) 오늘은 마룻바닥이 부서지는 소리로 저를 일깨워 주시네요.
빨리 빨리 서둘러 책방에서 나가야 겠습니다. 예배시간 늦겠습니다.*
최용우 손전화번호 011-9696-2464
cmessag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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