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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매체에 실린 최용우의 글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실린 매체를 찾을 수 없어서 올리지 못한 글도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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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기독교] 제1628호 최용우의 산골편지
허리띠여, 안녕!
“옛날에 어떤 분이 탄광에서 굴이 무너졌는데 허리띠를 먹고 생명을 유지했다는 거야. 나도 이 허리띠 잘라 먹을 거여. 비상식량이야. 비상식량.”
“참 징하게도 사용하셨구만유~~ㅎㅎㅎ”
가운데가 툭 터져 버린 허리띠를 바늘로 꿰맨 다음 청테이프로 둘둘 감고 있는 저를 보고 아내가 혀를 찹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이 허리띠를 버리지 못하는지. 이 허리띠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을 때부터 제 허리에 붙어 지금까지 무려 25년 동안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제 몸의 일부같은 존재입니다.
아내는 허리띠 하나를 25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더 신기하다고 놀립니다. 다 낡은 허리띠를 보고 어떤 분이 새 허리띠를 사 줬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양복을 입을 때만 찹니다. 그런데 양복을 일 년에 몇 번 안 입으니….
처음 허리띠를 맨 고등학교 때는 다섯 개의 구멍 중 가장 안쪽의 구멍에 맞춰 사용해도 헐렁헐렁할 정도로 날씬한 몸매를 자랑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커다란 배를 타고 세상 좁은 줄 모르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다니다가 말라카 해협에서 해적을 만나 혼쭐이 난 이후로 네 번째 구멍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선원 생활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가서 괴짜 교수님들 만나 리포트 쓰느라 밤에 라면을 주식 삼았더니 허리가 자꾸 비명을 질러대서 세 번째 구멍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요리 맛있게 잘하는 예쁜 아내를 만나고 나서 날마다 행복한 식사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한 달만에 네 번째 구멍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영양가 높고 보기 좋고 향기 좋은 음식으로 남편의 배에 군살을 붙인 자신의 죄는 나 몰라라 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남편의 배를 구박하는 아내의 등살에 못 이겨 열심히 허리운동도 해보고 윗몸 일으키기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 주여! 마지막 마지노선인 다섯 번째 구멍이옵니다. 그렇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절벽에 서 있었던 허리띠가 어느 날 그만 가운데가 툭 끊어져버렸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허리띠와 이별을 준비해야겠습니다. 다섯 개의 구멍이 모두 타원형으로 길게 늘어나 있는 허리끈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되어 좀 아쉽습니다.
최용우/전도사
<햇볕같은이야기(http://cyw.pe.kr)>라는 꽤 괜찮은 인터넷신문을 만들며, 충청도 산골짜기에 있는 목회자 쉼터 ‘산골마을-하나님의 정원’에서 오가는 나그네들을 섬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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