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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위기를 기회로

창세기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422 추천 수 0 2011.06.23 2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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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35:1-15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가정, 위기를 기회로
창35:1-15

요즈음 가정들을 보면 겉으로는 부러울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위기를 맞은 가정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가정 위기의 3대 질병은 외도, 중독, 가정폭력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과거에는 남자의 전용물이었는데 이제는 남녀 구분이 없다고 합니다. 주부의 외도, 중독, 가정폭력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여 여전히 가정폭력의 피해자 70% 이상은 여성이지만 매맞는 남편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내 학대는 2005년부터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남편학대는 꾸준히 증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내에게 맞아 중경상을 입고 입원한 남편들이 서로 하소연하였답니다. 서로 맞은 이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30대 아침밥 달라고 하다가, 40대 어디 전화했냐고 묻다가, 50대 누구 만나러 가냐고 묻다가, 60대 반찬 투정하다가, 70대 집에만 붙어 있다고, 80대 밤에 잠자고 안 죽고 눈 떴다고 얻어맞았다는 것입니다.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 일 것입니다. 뿔뿔이 헤어져서 하루의 모든 일들을 마치고 돌아온 가족들이 마음과 마음을 터놓고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용서와 사랑의 보금자리가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삶의 안식처입니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데는 좋은 일만 계속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 위기를 무난히 잘 극복하면 이전보다 더 건강하고 성숙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지만 가족이 위기에 휘말리면 가족들은 불행해지고 가정은 파탄이 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위기”(危機)라는 낱말은 한문으로 [위험]이라는 "위" 와 [기회]라는 "회"자의 합성어입니다. 위기는 위험한 시기이지만 잘만 대처하면 기회입니다. 히브리말로는 "마스베르"입니다.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쓰는 출산용 의자를 말합니다. 위기는 고통이 있지만 조금 지나면 새 생명의 탄생에 대한 환희와 영광이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상담학에서“위기란 어떤 외적인 위험에 대한 개인의 내적인 반응”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에게 불청객으로 찾아오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여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위기가 거침돌외 되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야곱의 가정으로 통하여 어떻게 우리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것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교훈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겠습니까?

1. 위기 때 위기를 세겜이 아니라 벧엘로 올라가는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위기를 가져주는 세겜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 벧엘로 올라가는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어긋한 방향을 바로 잡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 야곱의 가정은 엄청난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외동 딸 디나가 어느 날 갑자기 외출했다가 강간을 당하였습니다. 야곱이 삼촌 집에서 거부가 되어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부자가 되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형에게 준 선물만 보십시오(창32:13-)
"암염소 200백마리, 수염소 이십, 암양 이백 수양 이십, 젓나는 약대 삼심 암소 사십, 황소 열, 암나귀 이십, 새끼 나귀 열" 홀홀 단신으로 출발하여 20년 만에 자수성가한 것입니다. 요즈음 말하며 빌딩도 사고 부동산도 사고 이제 살만한 재물을 마련한 것입니다. 평생 원수지간으로 지냈던 형과도 화해를 했습니다. 이제 세겜 땅에서 부러울 것 없을 정도의 행복한 삶이 보장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가정에 날벼락이 닥친 것입니다. 모른 체하고 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상대가 10년 동안 살고 있는 세겜 땅 추장 세겜이었습니다. 잡아 두고 결혼을 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결혼시켜 주지 않으면 못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이 말은 듣고 복수를 다짐합니다. 거짓말로 결혼을 시켜준다고 하고 세겜 사람 남자들 모두 할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들은 야곱의 재산이 탐나서(34:23)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 받은 지 3일이 되었을 때 디나의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급습하여 모든 남자를 죽여 버리고 동생 디나를 구출하여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어떤 위기인가 34장 30절을 읽어 보세요.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이 가만히 놓아 둘리가 없습니다. 숫자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쌓아 놓은 모든 재산을 잃게 되고 가족의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 때 위기의 현장에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사람은 위기를 당하면 외면하시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위기를 당한다하여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말씀으로 우리에게 위기를 기회로 사용하여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위기를 당한 야곱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네 가지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첫째는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벧엘에서 거주하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아주 명료한 처방전입니다. 사람이 큰 위기를 당하면 가장 먼저 없어지는 것이 이성적 판단력입니다. 멍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기를 당하면 이런 저런 사람들의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항상 내편의 말을 듣습니다. 식구들, 친구들 내 편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바르게 판단하지 못합니다. 위기가 디딤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침돌이 되어 버립니다. 위기가 좋아지는 기회가 아니라 더 나빠지는 계기 되는 것입니다. 이 때 그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해주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인간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야곱은 지금 절망적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인생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쌓아 놓은 재산과 가족을 모두 한 순간에 잃어버릴 위기입니다. 야곱이 지금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고 엎드려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고 실의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자빠져 포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해결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형이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없고 삼촌이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요즈음 말하며 시집에 갈 수도 없고 친정에 갈 수도 없고 죽어 버려야 하겠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은 절망적인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벧엘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 갈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라고 했습니다. 그 때 계산적인 야곱은 하나님이 세 가지를 해 주시면 세 가지를 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자신을 지켜 주고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게 해 주시면 세 가지를 꼭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는 첫째는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고 둘째 자신이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셋째 주신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레겠다고 했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을 만난 하나님의 집으로 야곱의 인생 중에서 가장 괴로울 때 가장 뜨겁게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장소입니다. 야곱이 가장 가난한 마음을 가진 곳입니다. 가장 진지했던 곳입니다. 첫 약속을 받은 장소입니다. 첫 은혜를 받은 장소입니다. 첫 만남을 가진 장소입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형을 피해 도망할 때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아버지의 하나님, 할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하나님을 체험한 장소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진 장소입니다. 가장 순수한 심정으로 가장 진실되게 신앙을 고백하였던 서원의 장소입니다. 오늘날 말하면 첫 번 은혜 체험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는 의도적으로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켜 주시고 그를 거부로 만들어 주고 형과도 화해하여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올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그는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제는 다 되었다고 그저 푸른 초원이 있는 곳에서 세상과 어울려 그것이 전부인체 10년 동안 산 것입니다. 세상에 출세하고 잘 된 것이 자기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처음 예수님 만난 신앙도 잃어버리고 적당히 어울려 산 것입니다. 세겜에서 신앙 생활하지 않은 것 아닙니다. 33장 20절을 보십시오. 그곳에 땅을 사고 제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형과 화해하고 세겜에 갔을 때는 자신과 벧엘 계약을 맺어주시고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부여해 주신 그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해 '강한 자로서시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엘'과 '...의 하나님'이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교회는 멀어지고 세상은 가까워진 것입니다. 세상 재미에 취해 교회를 짓고 십일조를 하겠다는 이야기는 옛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벧엘은 광야입니다. 세겜은 초원입니다. 짐승들을 기르기에 좋은 땅입니다. 세상적인 성공이 보장된 땅처럼 보인 곳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신앙생활, 안전히 살 수 있는 곳은 벧엘입니다. 인생 밑바닥에서 뜨거운 체험을 한 곳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광야 같지만 그곳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뜨거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루스) 하나님의 집으로 변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위기를 당하면 어긋한 길을 바로 잡는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인생의 바른 방향을 다시 한 번 붙드는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인생이 궁극적으로 가야할 길이 어디인가를 확인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2. 위기 때 위기를 개안이 아니라 개선의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불행을 가져오는 영적 정신적 쓰레기를 더 쌓아 놓는 것이 청소하는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가정에 위기를 당하면 어떤 사람은 쓰레기를 더 모아 가정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쓰레기 더미로 만드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위기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쓰레기를 청소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좀 더 고상한 말로 하면 위기를 자기 개혁의 기회로 활용하는 사람과 위기를 자기 개악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극단적인 실화를 소개하겠습니다.
1994년 6월에 일어난 박한상군 사건을 아마 모두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의 가족은 교회에 출석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피택 장로였습니다. 당시 47세인 박군의 아버지는 고교 졸업 후 한의원 종업원으로 일하였습니다. 가난을 극복하고 사회적인 출세를 하는 길은 돈을 버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는 열심히 독학하여 한약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40대에 특수 대학원에 들어가 졸업을 하고 그 졸업 사진을 걸어 놓고 지낼 정도로 공부에 대한 한이 많았습니다. 그는 100억대 가까운 돈을 모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약협회 서울지부장까지 되었습니다. 남부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돈으로도 이룰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젊은 날 하지 못한 공부의 한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하여 자식 교육에 집념이 강했습니다. 박군은 큰 아들이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한의대에 갔는데 큰 아들이 못 간 것입니다. 한의대를 보내고 싶은데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위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책망하고, 윽박지르고, 비교하고, 무시하고 쓰레기를 더 만든 것입니다. 딱 한 번 칭찬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열 살 때 부모에게 칭찬을 한번 받아본 뒤 13년간 단 한 차례도 칭찬은 들어보지 못했고 합니다. 박군은 국교 3년 때 '운 좋게' 전과목 만점을 받아 부모님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비디오를 선물로 받았으며 이후 칭찬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지방 대 토목과에 갔습니다. 그래도 자식보다는 아버지 입장에서,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자식을 미국에 보내었다가 6개월 만에 참극을 당한 것입니다. 부모를 칼로 처절하게 살해하고 그것을 은익하기 위하여 집에 불을 지르기 까지 하였습니다. 위기를 쓰레기를 더 쌓는 기회로 사용하여 비극적인 가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극단적인 예를 소개했지만 이런 예는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부부가 사소한 말다툼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해소하지 못하여 이혼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란히 방송국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했답니다. 천생연분 이라는 단어를 빨리 설명하고 맞히는 문제였답니다. 할아버지가 문제를 설명했습니다. "우리와 같이 사이가 좋은 걸 뭐라고 하지?"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웬수!" 그러자 할아버지가 "아니 두 자(字) 말고… 네 자로 된 단어로는?" 그러자 할머니가 정답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평생~ 웬수~!"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방청객은 깔깔대었지만 이 노인 부부에게 위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두고 보라 화가 난 할아버지가 방송국을 나와 무단횡단을 한 것입니다. 지나가던 트럭 운전사가 깜짝 놀라 "야~ 이 바보, 멍청이, 얼간이, 머저리, 쪼다야! 길 좀 똑바로 건너! 나이 값 해" 이 말을 들은 할머니가 “당신 아는 사람이요”라고 소리쳤답니다. "아아니."하며 할아버지가 쓰러졌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그런데 당신에 대해 어쩜 그렇게 잘 알아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했는데 치료가 끝나고 정신이 들자 그 옆에 서 있는 아주 예쁜 간호사를 보고는 기분이 좋아 "여기가 분명히 천국이지요?"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화가 난 목소리로 "천국은 무슨 천국 빨리 정신이나 차려요. 이 덜떨어진 양반아." 그러자 할아버지가 체념한 듯 "그러면 그렇지 여기가 천국이면 내 마누라가 있을 리가 없지?" 그래서 퇴원하여 이혼했다고 합니다.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위기를 쓰레기를 청소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개악의 기회로 활용해서는 안됩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야곱은 어떻게 합니까? 순수해 졌습니다. 자존심으로 망설이지 않습니다. 유 불리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어떤 지혜보다 위대한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은혜를 받지만 복은 순종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중적 자세를 청산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위기를 당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던 자신의 부귀영화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이 이제까지 지혜롭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처럼 생각하며 이룬 것들이 심각한 위기 앞에 별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 세상에서 문화 생활하는 것이 멋진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위기를 당해 보니까 손들고 예배드리는 모습이 가장 멋인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가장 귀한 선물은 외간 남자의 선물이 아니라 아무리 볼품없는 것처럼 보여도 남편의 선물이 진짜 행복하게 하는 선물인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위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2절을 보십시오. 가족들에게 네 가지 명령을 합니다. 첫째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고 합니다. 둘째는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셋째는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말합니다. 삶의 스타일을 바꾸라 넷째는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지고 합니다. “버리라. 깨끗하게 하라. 바꾸라. 올라가자”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기 위해서입니다. 가정과 인생의 회복과 보장과 부흥을 이루려면 버릴 것 버리고 더러운 것 깨끗하게 하고 바꿀 것 바꾸어 버려야 합니다.
위기가 아니면 무엇이 우상인 줄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위기가 우상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위기를 우상을 청산하는 기회로 사용합니다. 부적 귀고리를 빼는 기회로 활용합니다. 아버지 유산을 물려받는 드라빔을 제거하는 기회로 활용합니다.
위기가 아니면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으로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만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기를 당하면 자신이 얼마나 약하고 더러운가를 깨닫습니다. 위기를 자신의 더러운 치부를 드러내는 기회로 활용합니다. 정신적인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데 사용합니다.
위기가 아니면 자신이 얼마나 세속화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위기를 당하면 세속화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위기를 세상에 익숙한 스타일을 변화시키는데 사용합니다. 그러면 위기를 통해 가정은 우선순위가 정립되고, 거룩한 가치를 사모하게 되고, 신앙적 문화의 산실이 되며, 가족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보장된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다윗과 사울이 다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초대 왕 사울은 백성의 지지도가 흔들입니다. 인기가 떨어졌습니다.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합니까? 그 위기를 개선의 기회로 활용하지 않습니다. 결국 가정이 패가망신당합니다. 다윗도 간음하고 살인하여 왕으로 인생의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개선의 기회로 활용합니다.

3. 위기를 야곱이 아니라 진정한 이스라엘이 되는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원리적인 말씀으로 정리하면 위기를 탈선한 자리에서 제자리를 찾는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위기를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어느 날 제가 문목사님과 양목사님, 전도사님, 제 아내 이렇게 점심밥을 교회 식당에서 먹었습니다. 그 때 제가 양목사님은 ‘애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전도사님이 문목사님은 ‘기처가’라고 했습니다. 제 아내는 저를 ‘무처가’라고 했습니다. 무심한 남편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말 들으면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습니다. 그날 밤에 가서 내가 왜 ‘무처가’냐고 따지고 싸웠다면 오늘 제가 이런 말을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정말 ‘무처가’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이제 가정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고 일어서면 저희 가정의 더욱 좋아지는 것입니다. 제가 남편의 자리를 바로 찾는 계기로 삼으면 그것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네 가지 면에서 제자리로 돌아 왔습니다.
첫째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신분이 제자리로 돌아 온 것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뒤꿈치를 잡다, 빼앗다' 혹은 '약탈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탐욕의 노예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얍복강 가에서 바꾸어 주었습니다. 창32:28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8)”라고 말씀합니다. 그 삶과 신분과 인격에 극적인 변화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우세하다', '싸우다', '왕비'라는 뜻의 '사라'와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의미하는 '엘'이 결합된 형태로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뜻입니다. 다른 의미는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란 뜻입니다. 인간적 실패의 이름이 영적 승리의 이름으로 축복받은 것입니다. 벧엘 언약(28:10-15)에 근거하여 야곱이 실질적 언약의 후계로서 하나님에 의해 정식 비준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실제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명목적 신앙에 머물렀습니다. 이름과 걸맞은 자리가 가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세겜에서 세상 사람과 비슷하게 살았습니다. 아니 더 악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한 의식을 가지고 사람을 살인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의사가 의사답지 않게 살면 얼마나 수치스럽습니까? 목사가 목사답게 살지 않으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아버지가 아버지 자리에, 어머니가 어머니 자리에, 자식이 자식 자리에 있지 않으면 얼마나 콩가루 집안이 됩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하신 하나님 다시 야곱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9절 10절을 보십시오. 이스마엘이라고 부르시면서 축복을 해 주십니다.
둘째 영적 리더십이 제자리로 돌아 왔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아버지에게 내어 놓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것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어 버립니다. 위기가 왜 찾아 왔습니까? 아들들이 아버지의 영적 리더십을 무시합니다. 딸 디나가 겁탈 당했을 때 아버지에게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습니다. 아들들이 아버지 역할을 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살육하고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는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철부지 아들들이 일만 벌여놓고 수습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이 위기를 아버지가 신앙적으로 해결합니다. 아버지의 영적 권위, 영적 리더십이 회복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 있을 때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하나님 자리에 서 있게 되신 것입니다.
5절에 보십시오. 하나님이 사면 고을을 두렵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보호자, 하나님이 가정을 지켜 주시는 자로 서 계신 것입니다. 아무도 추격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넷째는 예배가 제자리에 온 것입니다.
벧엘에 이르러 거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고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의 삼대 고문을 물고문, 예배 고문, 헌금 고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야곱의 가정에서 예배는 고문이 아니었습니다. 부담이 아니었습니다. 형식적인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예배가 지루함이 아닙니다. 6절을 보십시오. 루스가 벧엘이 됩니다. 루스는 떵 빈 땅입니다. 공허한 곳입니다. 사막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곳에서 예배들 드리면서 엘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위기를 탈선한 자리에서 제자리를 찾는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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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1 누가복음 차별화된 인생 눅7:1-10  김필곤 목사  2011-06-23 2913
5390 시편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시57:1-11  김필곤 목사  2011-06-23 2767
5389 사무엘상 시각을 바꾸면 길이 보입니다 삼상14:6-15  김필곤 목사  2011-06-23 2737
5388 에배소서 신령한 복 엡1:1-12  김필곤 목사  2011-06-23 2964
5387 야고보서 계획 점검 약4:13-17  김필곤 목사  2011-06-23 1948
5386 고린도전 마음과 생각을 바꾸라 고전13:11  한태완 목사  2011-06-19 3843
5385 출애굽기 미래전망과 과거회상 출14:10-14  이성희 목사  2011-06-19 2391
5384 히브리서 기도와 소망을 나누는 코이노니아 히13:18-25  이덕재 목사  2011-06-19 2176
5383 베드로후 부르심과 택하심 벧후1:5-11  박조준 목사  2011-06-19 2847
5382 느헤미야 비전을 품은 자의 자세 느2:1-6  김형준 목사  2011-06-19 2260
5381 잠언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잠22:6  이정수 목사  2011-06-18 2923
5380 고린도전 몸나를 버리고 얼나로 솟는 날 고전15:1-58  이정수 목사  2011-06-18 1734
5379 마태복음 꼬-끼-요! 마26:31-35  이정수 목사  2011-06-18 1983
5378 마태복음 용서에 대하여 마18:21-35  이정수 목사  2011-06-18 2486
5377 마가복음 섬김에 대하여 막9:33-37  이정수 목사  2011-06-18 3175
5376 마태복음 지극히 작은 것에 대하여 마25:14-46  이정수 목사  2011-06-18 2765
5375 야고보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삶 약1:26-27  이정수 목사  2011-06-18 2747
5374 마태복음 좋은 큰 나무 되게 하소서 마7:15-20  이정수 목사  2011-06-18 2514
5373 마가복음 옥토 되게 하소서 막4:1-20  이정수 목사  2011-06-18 2254
5372 요한복음 바람 되게 하소서 요3:1-15  이정수 목사  2011-06-1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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