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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믿음

야고보서 이중표 목사............... 조회 수 2998 추천 수 0 2011.06.25 15: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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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약2:14-17 
설교자 : 이중표 목사 
참고 :  

살아있는 믿음
본문: 야고보서 2:14-17

우리는 예수를 어떻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이며 어떻게 믿는 것이 복받는 신앙이 되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다시 말하면 행동하는 신앙은 살아있는 것이요,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14절)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 말씀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처럼 보입니다. 성경 속에는 서로 상반되는 신앙의 두 원리가 있습니다.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라고 하여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 원리를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어떤 행동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14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왜 이렇게 두 사도를 통하여 상반된 원리를 말하고 있을까요? 당시에 유대인 가운데는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율법을 지켜야 된다. 그리고 할례를 받아야 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킨다고 구원받는 것 아니다. 할례를 받는다고 구원받는 것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야고보 사도가 행위를 강조한 것은 믿음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심했습니다. 때문에 성도들을 격려하면서 환난과 핍박과 많은 시련을 겪을지라도 끝까지 사랑과 선행으로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손의 바닥과 등처럼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말하지만 그것이 살아있는 믿음이냐 죽어있는 믿음이냐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 2:8-10)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는 선한 일을 하도록 구원받은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구원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구원의 근거는 은혜요, 둘째,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요, 셋째, 선한 일을 위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행동하는 믿음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나도 유익하고 남도 유익한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자기도 아무 유익이 없고 남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17절)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유익하게 하고 남도 유익하게 행동하며 사는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오래전에 안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느냐"는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가장 많은 응답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언행일치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기독교인들에 대해 "신앙은 정통인데 행동은 이단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행동으로 믿음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동을 나무로 표현한다면 나무의 뿌리는 믿음이요, 그 열매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 믿음은 행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6-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듯이 좋은 신앙에서 좋은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내가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성찰해봐야 합니다.
"너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이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 오늘날 실용주의자들은 유익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봐서 유익이 있는 것에 가치를 두고 행동합니다.

사랑의 실천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15-16절)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곧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유익하게 하는 사람은 사람을 유익하게 합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7-18). 진실한 행동을 통해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그런데 율법사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서 또 한번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그때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행하는 신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내가 예수 믿고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예수 믿고 무슨 변화가 있는가 어떤 사람은 수십 년 믿어도 전혀 행동이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살아있는 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살아있는 믿음은 행동하는 신앙입니다. 한 장애자가 교회에 나와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건강한 몸으로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데 자기는 장애자라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몸이 불편해서 봉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도 주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때 성령의 감동이 왔습니다.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건강한 얼굴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해라" 그 때부터 그는 휠체어에 앉아서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맞이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칭찬에 대한 소망

어느 교회에서 영성 수련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전도사님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영성수련회에 초청했습니다. 그 중에는 척추장애인으로 태어나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소녀도 있었습니다. 척추장애인이라 창피해서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있었는데 전도사님의 초청으로 영성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세미나 강의를 맡은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밖에 나가서 하늘을 보고, 산을 보고, 땅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선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세요."

세미나가 끝나자 너도 나도 선한 일을 찾아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소녀는 몸이 불편해서 늦게 겨우 찾은 곳이 쓰레기통 옆이었습니다.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 쓰레기통 옆이 주어지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곳에 앉아 있는데 한 청년이 쓰레기통 옆으로 와서 쓰레기통을 뒤지더니 캔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서 뭐하세요." "캔을 줍는 겁니다." "그것 가지고 뭐하려고 그럽니까?" "이걸 주워다 팔면 양로원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약을 사드릴 수 있습니다." 그때 소녀는 '아! 쓰레기도 쓸모가 있구나! 나같은 사람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겠구나'라는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돌아와서 목사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를 양로원으로 보내주세요. 장애자들이 있는 곳에 보내주세요. 그곳에 가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겁니다."

목사님은 소녀를 양로원에 보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도우면서 밤이면 그들의 눈이 되어주고 낮이면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습니다. 오히려 키 크고 건강한 사람보다 키가 작은 소녀가 더 일하기 좋았습니다. 소망을 발견한 그는 노인들에게 천사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척추장애인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이 파송한 천사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자기 선 자리에서 얼마든지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배우면 배운대로, 약하면 약한대로 선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잃고 선한 일을 행하지 않으므로 내 믿음을 병들게 하고 죽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성한 자존심을 가지고 소망을 품으면 자기 존재를 얼마든지 위대하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위대함은 학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배우고도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생긴 얼굴로 못된 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못된 짓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에게 선한 일을 하라'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최후의 심판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내놓아야 할 착한 일이 있어야 됩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눅 6:32-33)

최후에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우리는 칭찬 받는 행동으로 상급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가정에 돌아가면 칭찬 받는 자녀가 되십시오. 칭찬 받는 시어머니, 칭찬 받는 며느리, 칭찬 받는 직원이 되십시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 살아있는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이요, 행동하는 믿음은 사랑으로 이웃들에게 선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 칭찬 받는 존재로 서는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몸이듯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살아있는 영혼의 구체적인 증거가 칭찬 받는 행동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께서 기쁘게 맞이할 것입니다.
/이중표 목사


댓글 '1'

명랑

2012.01.25 08:48:18

야고보가 행하란 것은 '자기부인'으로 믿음을 행하란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에서, 아브라함과 라합의 예를 들잖아요. 착한행실을 말 하던가요?
4장 말미에, 장사해서 이윤 얻겠다는 사람들에게 "죽을지도 모르는데 니들 판단으로 된단 보장있냐?"
그러니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옳다고 하면서
행하는 믿음을 '그러므로'란 접속사로 이어 말 합니다. 이 '그러므로'를 사람의 선한행실로 생각한다면
이 문장은 말이 안 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 명령 무지 어기다가 이삭 바칠 때서야 '내가 하나님 앞에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다 주님이 준비 하시리라'
하는 믿음을 보이자 의인이라 칭함 얻은 것이고요,
라합도 자기 민족을 배신한 행실을 선하다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자비를 구한 행실을 칭찬한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만이, 자기부인적 고백만이
성도가 살아야할 신앙자세이며 이것이 야고보가 말한 행하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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