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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부탁해 (Take Care of Daddy)

사무엘상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434 추천 수 0 2011.06.29 16:59:48
.........
성경본문 : 삼상17:41-47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09.6.21(김 영봉 목사)

아빠를 부탁해 (Take Care of Daddy)
--사무엘상 17:41-47

1.

Happy Father’s Day!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께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기원합니다. 저는 지지난 주말부터 약 일 주일 동안 플로리다 게인즈빌 한인교회의 수양회 인도와 버지니아 연회 참석차 출타했었습니다. 모든 일을 은혜 중에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신 교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5월,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가지고 ‘가정의 달 특별 연속 설교’를 할 때, 어느 교우께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과거에는 어머니들이 고생했지만, 지금은 아버지들이 더 고생합니다. 특히 이민 생활을 하는 남편들은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박소녀씨도 불쌍하지만, 박소남씨들도 불쌍합니다. 언제 날 잡아서 <아빠를 부탁해>라는 설교도 좀 해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날을 잡았습니다. 사실, 한국에 살고 있든 이민자들이든, 아버지들 혹은 남편들의 삶의 실상은 불쌍하다 싶을 때가 많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업무 능력에 있어서 탁월성을 발휘하도록 스트레쓰를 받습니다. 잘못하면 후배들에게 밀려납니다. 그래서 발버둥을 칩니다만,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이내 깨닫습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문화가 만들어 놓은 ‘강한 남성상’으로 인해 “꺾일 지언정 구부러지지 않으리라!”는 자세로 버팁니다. 그러다가 무참히 꺾입니다.

한국에서는 남성들이 너무 이른 나이에 사회적으로 폐기 처분되는 분위기입니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40대와 50대의 나이에 직장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에서 밀려나면 가정에서도 힘을 잃어 버립니다. 자식들 보기가 ‘미안’해지고, 아내 보기가 ‘두려워’집니다. 그렇게 되면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무력해지고, 때로는 그로 인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까지 받게 됩니다.

이민자들의 외적인 상황은 한국과 약간 다릅니다만, 실상을 알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 직장에서의 경쟁은 한국보다 더 치열하고, 그로 인해 받는 심적 부담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개인 사업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도 그렇고 안 될 때도 그렇고, 마음 편히 다리 뻗고 잘 날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쉴 새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때로는 “내가 종으로 팔려왔나?”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는 말씀을, 누구에겐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곳 문화에 젖어 성장한 아이들은 자라가면서 점점 남이 되어 갑니다. 부엌에서 엄마랑 소곤소곤 대던 아이가 아버지가 나타나면 재빨리 제 방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아버지들은 외롭습니다.

2.

김현승 선생의 시 중에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의 한 대목에서 그는 한국 아버지들의 외로움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이같이 불쌍한 박소남씨들에게 저는 오늘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lectionary)에 나오는 성경 본문 중 하나를 통해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아버지들에게 드리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어머니들에게도 해당 사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이니,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둘째 임금 다윗이 아직 소년이었을 때, 즉 이름 없는 목동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에 지중해 연안에서 군사적으로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가 불레셋이었습니다. 그 불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킵니다. 불레셋 군은 에베스담밈이라는 언덕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군은 맞은 편에 있는 엘라 평지에 진을 칩니다. 이렇게 대치하고 나서 불레셋 군의 대장인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에게 제안을 합니다. 군대 전체가 싸울 것 없이, 자신과 겨룰 사람 하나만 나오라는 겁니다. 둘이 싸워서 승부를 내자는 것입니다.

말은 좋은데, 골리앗을 상대할만한 사람이 이스라엘 군에 없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3미터 정도였고, 그가 몸에 지닌 갑옷과 투구와 신발 그리고 그가 손에 든 무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풀릴 정도입니다. 그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면 마치 커다란 확성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골짜기에 울려 퍼집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골리앗은 무려 40일 동안이나,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이렇게 이스라엘 군대에게 겁을 주곤 했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버틸만큼 버티다가 자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40일이 지났을 즈음, 다윗이 그 골짜기에 나타납니다. 전쟁에 참가한 형들에게 소위 ‘사식’(집에서 만든 음식)을 전해 주기 위해섭니다. 그 날도 골리앗은 어김없이 나타나 겁을 줍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완전히 사기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군대를 보고 놀랍니다. 다윗은 자신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섭니다. 사울왕은 가당치도 않게 생각했습니다만, 다윗이 계속 고집하자, 그렇게 하라고 허락합니다.

소년 목동 다윗을 골리앗 앞에 내세울 때, 사울은 이미 패배를 각오한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패하면 전쟁은 끝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마도 사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항복할 찰나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다윗이 나타나 싸우겠다 하니, 죽기 전에 한 번 ‘꿈틀’이라도 해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말씀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을 내보내는 사울도, 다윗이 골리앗 앞으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본 이스라엘 군대도 “이젠 죽었구나!” 싶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모습을 본 골리앗과 불레셋 군대는 “이젠 다 이겼구나!” 싶었을 것입니다. 헌데,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일이 일어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겁니다.

3.

골리앗을 마주한 이스라엘 군대를 생각합니다. 이 당시의 이스라엘 군인들의 마음이 오늘날 많은 아버지들의 마음을 닮았다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아버지들이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번영과 행복을 위협하는 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실직’이라는 적을, 어떤 분은 ‘경제적 위기’라는 적을, 또 어떤 분은 딱히 이름을 지을 수 없는 커다란 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적은 마치 골리앗처럼 거대하고 강해 보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공략할 수 없어 보입니다. 버틸만큼 버티다가 항복하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도저히 싸워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적 앞에 섰을 때, 이스라엘 군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두려움은 이스라엘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용기를 갉아 먹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자, 골리앗은 실제보다 더 커 보였습니다. 사실, 골리앗과 불레셋 진영의 작전은 ‘두려움’으로 이스라엘 군인들을 질식시키자는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상대해야 할 적이 어떤 존재든지 상관 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이미 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버지들이 대면하고 있는 싸움은 분명히 쉽지 않습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경제 문제가 어떤 분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적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 떨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먼저 대면해야 할 적은 ‘두려움’이라는 적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군인들과 달랐던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골리앗을 보고서 그는 두려움에 질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무서웠을지 모릅니다. ‘뭐, 저런 괴물이 있나?’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옆에 있던 병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할례도 받지 않은 불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26절)

다윗이 자기에게 나오는 것을 보고 골리앗이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로 나아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는 것이냐?”(43절)고 말하면서 저주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45, 47절).

다윗이 골리앗을 얕잡아 본 것은 아닙니다. 그는 골리앗을 있는 그대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골리앗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함께 보고 있었습니다. 골리앗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랬기에 그에게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그랬기에 그는 골리앗을 있는 그대로 보았습니다. 두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 보았기 때문에 다윗에게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던 골리앗의 허점이 보였습니다. 전신 무장한 가운데 딱 한 곳, 정수리만은 노출되어 있었고, 바로 그것이 다윗이 무릿매로 공략할 수 있는 허점이었습니다.

4.

1930년대, 미국이 경제 대 공황의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새로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가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대상이 있다면 두려움 자체입니다. 뒷걸음질을 전진의 발걸음으로 바꾸려는 모든 노력을 마비시키는, 이름 모를, 이치에 닿지 않는, 정당화할 수 없는 공포 말입니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most is fear itself?nameless, unreasoning, unjustified terror which paralyzes needed efforts to convert retreat into advance.) 그렇습니다.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싸워보기도 전에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나 일을 당했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철렁 내려 앉고, 손 발이 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다리에 힘이 쪽 빠집니다. 정신이 멍해 집니다. 이렇게 되고 싶지 않기는 하지만,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하지만 두려움의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것은 불신앙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당한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게 되면, 그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분명 믿음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이치상 그렇습니다. 모한다스 간디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원리상 이것이 진리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길을 가는 우리는 종종 두려움에 머물러 삽니다. 때때로 목소리 높여 기도하지만, 그것은 그냥 몸부림일뿐입니다. 기도하기 전이나 기도한 후나,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의지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참된 기도는 가장 먼저 우리 마음에 평안을 회복시켜 주어야 마땅합니다.

믿음이란 한 번 소유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마다, 고비마다 하나님과 관계맺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주 자주 손을 멈추고 지금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 46편 10절의 말씀과 같습니다.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전능의 창조자이시며, 나를 사랑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 독생자이시며, 또한 지금도 내 삶 속에 역사하고 있는 성령이시라면, 그것을 진실로 믿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두려움을 벗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들이여, 믿음 안에 머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위협하며 으르렁대는 문제에 함몰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에 머물러 살지 말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남자의 자존심으로 버티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십시다. 두려움이 마음을 흔들 때마다 무릎 꿇으십시다. 하나님 앞에서 약해지십시다. 그러면 그분이 강한 사람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십시다. 그러면 그분이 다시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두려워 떨며 우리의 두려움을 고백하십시다.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5.

오늘의 이야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또 하나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고집을 꺾지 않자, 사울은 골리앗과 대결할 것을 허락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군장을 다윗에게 주어 입게 하고 자신의 무기를 들게 합니다. 하지만 소년 다윗에게는 사울의 군장이 맞질 않습니다. 걸어다니기조차 불편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군장과 무기를 다 내려 놓습니다. 그리고는 목동의 옷차림으로, 시냇가에서 주은 돌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늘 가지고 다니던 무릿매(돌맹이를 넣어 던지는 기구)를 들고 골리앗에게 나아갑니다.

다윗에게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을 다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47절에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 지고 이기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무기를 구하는 것이 아님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와 패배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므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있는 그대로, 목동의 차림으로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을 만나 두려움이 찾아들면,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음을 회복하여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 적을 상대해야 합니다.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 때, 우리는 또 다시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내가 맞설 상대에 비해 내가 너무 약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거대한데, 내가 가진 것이 별 것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군사를 모으고, 신예의 무기를 구하고, 전술을 연구합니다. 이런 것이 많아지면 이길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승리와 패배는 우리가 가진 것에 달려있기보다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게 달려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기도문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느 어부가 드린 기도문입니다. “사랑의 주님, 제게 은혜를 베푸소서. 바다는 너무나 넓고, 제 배는 너무 작습니다.” (Lord, have mercy on me! The see is so wide and my boat is too small.) 막상 문제를 대면하여 싸울 때, 우리 마음에는 이같은 생각이 자주 듭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작은 배면 충분합니다. 그 망망대해를 건너기 위해 더 큰 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배를 저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윗에게는 목동의 옷과 목동의 도구만 있으면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대면하여 싸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 위에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 위에 서 있기만 하다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맞서도 이깁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한 삶을 살고 있다면, 지금 당한 문제로 인해 짓눌릴 것 같지만, 그분이 우리를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우리의 본분을 다한다면, 우리의 이 작은 배로도 망망대해를 건너갈 수 있도록, 그분은 도우실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때로는 속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 미래를 걸고, 그분을 믿고 그분께 헌신하며 살아간다면, 우리가 가진 보잘 것 없는 무기로도 우리의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들이여, 우리에게 없는 것을 두고 좌절하거나 불평하지 마십시다. 이미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그것을 가지고 담대히 나아가십시다. 내 가진 것이 다윗의 무릿매처럼 보잘 것 없고 한 어부의 작은 배처럼 작아 보여도, 좌절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에 서 있기만 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하나님께 미래와 희망을 걸고 그분께 충성한다면, 우리가 지금 가진 것으로도 지금 당한 싸움을 이기고도 남을 것입니다.

6.

제가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문제를 제대로 몰라서 이렇게 낙관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직접 당한 것은 아니지만, 교우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 어둠의 밀도와 그 절망의 깊이를 짐작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몰라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어느 정도 알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서강대 교수였던 고 장영희씨가 마지막으로 낸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에서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을 하나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어려움을 당하여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법석을 떨면, 장 교수님의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그렇게 야단법석 떨지 말아라. 사람은 뼈만 추리면 산다.” 장교수님은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141쪽).

그렇습니다. 제 아무리 어려운 상황, 제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뼈만 추리면 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그분이 그분의 시간에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에게 패배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나라에서라도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진실되게 의지함으로 두려움을 벗어 버립시다. 우리가 당한 싸움에서 이기려고 내게 없는 것을 구하려고 두리번 거리지 마시고,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나가십시다.

중요한 것은 내 손에 무엇이 쥐어져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길에 서 있느냐입니다. 하나님의 길에 서 있기만 하다면, 내가 가진 것이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결국 그것으로써 이길 것입니다. 인생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전쟁은 칼과 총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전쟁의 성패는 내가 누구 편에 서 있는지에 의해 갈리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 특히 믿음의 길에 들어선 모든 아버지들께서 이 길을 걸어 인생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어린이들이 나와서 우리의 아버지들을 응원하는 노래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이 세상의 풍파에 맞서 싸워 이기는 아버지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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