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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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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자 사모 지음/2003.2.25초판대한기독교서회/255면/8000원
아, 이 책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입니다.
그동안 [기독교사상]과 [뉴스엔죠이]에 쓴 글을 모은 책인데, 아니, 교회 주보에 매주 썼던 글이 [기독쇼사상]와 [뉴스엔죠이]의 눈에 띄여 옮겨졌던 글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시골교회 목사의 아내로 살면서 일상의 작은 것들 속에 숨어 있는 삶의 맛깔스런 재미들을 풀어놓은 책입니다.
민형자사모님의 글 한편 옮깁니다.
제목: 그냥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할 뿐입니다
특별히 신년심방이라고 해도 우리같이 작은 시골교회는 다 아는 처지라 별 다를 건 없지만 그 동안 여럿이 함께 있어 털어놓을 수 없었던 속 깊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심방이 다 끝난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박 집사님 댁 얘길 빠뜨릴 수가 없습니다.
옛날 연속극에서나 나오는 것 같은 쓰러져 가는 집 마루 문 앞에 서서 털신 두 켤레는 나란히 있지만 크게 불러도 인기척이 없는 쓸쓸함이 왠지 뒷머리가 잡아당기는 듯 으스스 일어서는 게 선뜻 들어가고 싶지 않은 서먹함 마저 느껴졌습니다.
굴속같이 어두운 방안에 혼자 누워 계시던 박 집사님이 우리 내외를 보자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자유롭지 않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앉으십니다. 다른 성도님 댁에서는 심방예배도 드리고 새해 봉사계획과 기도제목도 적었지만 박 집사님댁 에선 그냥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할 뿐 그 어떤 형식도 갖출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소리가 반가워 뒷방에서 건너오신 할아버님이 말 못 하는 박 집사님 대신 말벗을 해줍니다.
"할아버님 요즘은 일을 안하시니까 얼굴이 좋아지셨네요."
"아닌게 아니라 나두 거울을 딜다 보니께 얼굴에 살이 쬐끔 붙었더라구 허허---"
"왜 노인정에 안 가시고 집에 계세요?"
"혼저 밥을 먹을 줄 아나 시간을 아나 노인정에 가믄 밥이야 잘 읃어 먹지만 서두 꼭 즘심 챙겨주구 지녁 나절에나 내려가는걸 뭐---"
"우와 매일 박 집사님 점심 챙겨 드리느라 노인정에도 안 가시고 할아버님이 너무 착하시네요."
"착하니께 저 모냥으루 병신이 됐잖어."
"할아버지 너무 힘드시면 밖에 내다 버리시죠?"
"밖에 내다 버리니 누가 주서 가기나 헐까?"
"왜요? 가끔 쓰레기차가 지나가는데 혹시 알아요."
"그 눔의 차를 만낼 수가 있나 괜히 빨리 못 만나믄 지기랄 얼어죽게---"
농담도 척척 받아넘기시는 할아버지 때문에 웃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주일날은 어떻게 알고 미리 나와 계시나 봐요?"
"알긴 몰 알어 들어갔다 나왔다 시간 두 몰루구 새복부텀 젱일 들락거리는걸 어뜬날은 내가 일삼어 셔 봤더니 꼭 열 번을 들락거리더군. 이런 지기 문이나 지대루 닫을줄 아나 문은 훤히 다 열어놓구선--- 아무리 야단쳐두 헛일이여!!"
그래서 할아버님은 오전 마실은 아예 포기하시고 주일날이나 시간 되면 할머니 교회 보내고 노인정에서 점심 한번 얻어먹을 뿐 다른 날은 할머니를 위해 함께 고단한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시간에 쫒겨 이제 그만 일어서야 하는데 집사님이 옛날 습관대로 이불밑을 들추며 자꾸만 뭔가를 찾고 계셨습니다. 당신 딴에는 헌금을 찾으시지만 그 속엔 아무 것도 넣어두지 않은지 오래였습니다.
울컥 올라오는 아픔을 참고 집사님이 끝까지 믿음 잃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들어 올 땐 선뜻 들어가기가 싫더니 막상 나올 때는 발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친정 집을 뒤로하고 나오는 못난 딸자식처럼 그날 박 집사님 댁 심방은 그렇게 뒤도 못 돌아보고 나왔습니다.
민형자/대덕교회 사모
민형자 사모 지음/2003.2.25초판대한기독교서회/255면/8000원
아, 이 책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입니다.
그동안 [기독교사상]과 [뉴스엔죠이]에 쓴 글을 모은 책인데, 아니, 교회 주보에 매주 썼던 글이 [기독쇼사상]와 [뉴스엔죠이]의 눈에 띄여 옮겨졌던 글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시골교회 목사의 아내로 살면서 일상의 작은 것들 속에 숨어 있는 삶의 맛깔스런 재미들을 풀어놓은 책입니다.
민형자사모님의 글 한편 옮깁니다.
제목: 그냥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할 뿐입니다
특별히 신년심방이라고 해도 우리같이 작은 시골교회는 다 아는 처지라 별 다를 건 없지만 그 동안 여럿이 함께 있어 털어놓을 수 없었던 속 깊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심방이 다 끝난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박 집사님 댁 얘길 빠뜨릴 수가 없습니다.
옛날 연속극에서나 나오는 것 같은 쓰러져 가는 집 마루 문 앞에 서서 털신 두 켤레는 나란히 있지만 크게 불러도 인기척이 없는 쓸쓸함이 왠지 뒷머리가 잡아당기는 듯 으스스 일어서는 게 선뜻 들어가고 싶지 않은 서먹함 마저 느껴졌습니다.
굴속같이 어두운 방안에 혼자 누워 계시던 박 집사님이 우리 내외를 보자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자유롭지 않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앉으십니다. 다른 성도님 댁에서는 심방예배도 드리고 새해 봉사계획과 기도제목도 적었지만 박 집사님댁 에선 그냥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할 뿐 그 어떤 형식도 갖출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소리가 반가워 뒷방에서 건너오신 할아버님이 말 못 하는 박 집사님 대신 말벗을 해줍니다.
"할아버님 요즘은 일을 안하시니까 얼굴이 좋아지셨네요."
"아닌게 아니라 나두 거울을 딜다 보니께 얼굴에 살이 쬐끔 붙었더라구 허허---"
"왜 노인정에 안 가시고 집에 계세요?"
"혼저 밥을 먹을 줄 아나 시간을 아나 노인정에 가믄 밥이야 잘 읃어 먹지만 서두 꼭 즘심 챙겨주구 지녁 나절에나 내려가는걸 뭐---"
"우와 매일 박 집사님 점심 챙겨 드리느라 노인정에도 안 가시고 할아버님이 너무 착하시네요."
"착하니께 저 모냥으루 병신이 됐잖어."
"할아버지 너무 힘드시면 밖에 내다 버리시죠?"
"밖에 내다 버리니 누가 주서 가기나 헐까?"
"왜요? 가끔 쓰레기차가 지나가는데 혹시 알아요."
"그 눔의 차를 만낼 수가 있나 괜히 빨리 못 만나믄 지기랄 얼어죽게---"
농담도 척척 받아넘기시는 할아버지 때문에 웃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주일날은 어떻게 알고 미리 나와 계시나 봐요?"
"알긴 몰 알어 들어갔다 나왔다 시간 두 몰루구 새복부텀 젱일 들락거리는걸 어뜬날은 내가 일삼어 셔 봤더니 꼭 열 번을 들락거리더군. 이런 지기 문이나 지대루 닫을줄 아나 문은 훤히 다 열어놓구선--- 아무리 야단쳐두 헛일이여!!"
그래서 할아버님은 오전 마실은 아예 포기하시고 주일날이나 시간 되면 할머니 교회 보내고 노인정에서 점심 한번 얻어먹을 뿐 다른 날은 할머니를 위해 함께 고단한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시간에 쫒겨 이제 그만 일어서야 하는데 집사님이 옛날 습관대로 이불밑을 들추며 자꾸만 뭔가를 찾고 계셨습니다. 당신 딴에는 헌금을 찾으시지만 그 속엔 아무 것도 넣어두지 않은지 오래였습니다.
울컥 올라오는 아픔을 참고 집사님이 끝까지 믿음 잃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들어 올 땐 선뜻 들어가기가 싫더니 막상 나올 때는 발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친정 집을 뒤로하고 나오는 못난 딸자식처럼 그날 박 집사님 댁 심방은 그렇게 뒤도 못 돌아보고 나왔습니다.
민형자/대덕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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