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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2] 심령이 가난한자의 복

마태복음 김동명 목사............... 조회 수 2766 추천 수 0 2011.07.13 19: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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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3 
설교자 : 김동명 목사 
참고 : http://cafe.daum.net/jesusinto/HfEY/34 

<팔복강해 2>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마5:3-

지난주에 저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돈, 건강, 성공 등등]의 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의 1~2%에 불과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1~2%의 복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98%의 복을 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98%의 복 중에서 주님께서 첫 번째로 꼽고 있는 복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 말씀을 한 번 더 읽어봅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누가복음에서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6:20) 라고 말씀해 줍니다. 이 두 기록을 두고 학자들은 주님은 [가난한 자]의 복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이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곁들여 [심령이 가난한 자]로 기록하였다고 봅니다. 일리가 있는 견해입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 중에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등식은 사실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조금 소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겸손하지 않고, 다 깨끗하고 다 정결하지 않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잘 기울이고, 전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라 해서 다 천국을 사모하고 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물질에 대해 더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도 많고, 돈이 신분의 상승과 삶의 가치와 행복을 가져올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더 강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투지에 불타서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궁리하느라 바쁘고, 적은 돈에도 시험 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심령이 가난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에 대해서 말씀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된 가난입니다. 그럼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Ⅰ.영적 가난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물질적 풍요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을 합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세상 자체가 물질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 곳이 바로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 속에 살아도 그런 물질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들은 그런 물질적인 것으로는 심령의 깊은 만족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입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아서 돈을 벌어보지만 돈을 소유함과 함께 근심과 염려에 빠지고, 오히려 돈 때문에 인간성이 파괴되고 양심이 마비되는 것을 느끼면서 돈을 가치로 여기며 사는 삶에 환멸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가진 돈을 기부하거나 포기하고 스스로 가난하게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나 성공, 인기 등등을 추구합니다. 그런 것에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취해도 마음의 평안이나 만족이 오지 않을 때 사람들은 실망을 합니다. 이렇게 실망할 때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더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한 방향이고, 아예 그런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그런 것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 속에 살면서 사람의 사랑을 구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을 믿고 사랑하고 살아가다가 많이 실망하고 많이 상처를 받습니다. 이럴 때 반응 역시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사람이 아닌 다른 대상을 찾는 것입니다. 산을 찾거나 애완동물을 기르는 데에 마음을 쏟거나 사람이 아닌 다른 대상에게 사랑을 쏟는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종교를 찾는 것도 같은 경우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을 증오하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사람에게 아픔을 당한 사람은 부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심을 갖고 있습니다. 여자에게 실연을 당한 사람은 종종 자기가 사랑했던 여성과 같은 직업을 가졌다거나 외모가 비슷한 여자, 심지어는 옷을 입는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증오심을 품기까지 합니다. 그런 증오가 종종 끔찍한 범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부정적인 반응과 달리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을 믿고 살기보다는 사람은 그저 사랑하고 거기서 멈추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월적인 인간애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 돈이 별 것 아니라는 생각 속에서 스스로 가난하게 되는 사람이나 건강이나 성공, 인기 등등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순수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 또는 사람에 대한 사랑에 집착하지 않고 초월적인 인간애를 가진 사람, 이런 사람들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천국에 가까운 사람이기는 하지만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아닙니다. 천국 문 앞에 가까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천국 안에 들어서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서 천국문 안에 들어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천국 문 안에 들어서는 것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다. 그 아들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어느 날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는 예수님에게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계명을 말씀합니다. 그러자 이 청년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것은 제가 어릴 적부터 다 지켰나이다.” 여기까지 말한 이 청년의 상태는 마음이 가난한 상태가 아닙니다. 마음이 부자인 상태인 것입니다. 이런 상태는 천국과 거리가 아주 먼 상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그 청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마19:21, 막10:21, 눅18:22). 여기서 주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재산을 처분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 하신 것과 그리고 나서 나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너는 먼저 마음이 가난해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천국에 자동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나,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돈을 초월하는 것 등은 마음이 가난해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은 내 마음의 부를 가져오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마음에 진실하게 자신의 주님으로 믿은 사람, 예수님을 돈이나 세상의 인기나 권력, 사람의 사랑보다 소중히 여기고 보화로 여기고 복으로 여기는 그 믿음, 예수님을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보다 크게 보고 믿으며, 그를 즐거이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 이 사람이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고,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난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자신이 천국에 이미 입성하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며,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Ⅱ.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구원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에 대해서 논하기 위해서는 선과 악, 의와 죄의 문제를 반드시 다루게 됩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악한 자가 아닌 선한 사람이 가는 곳이고 죄인이 아닌 의인이 가는 곳이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악인과 죄인이 가는 곳이 지옥이라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이냐? 죄가 무엇이고 의가 무엇이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과연 선하나 악하냐? 내가 죄인이냐 의인이냐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선과 악, 죄와 의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하며 살게 됩니다. 선을 행하면 기분이 좋고, 악을 행하면 아무래도 마음이 괴롭습니다. 선을 행하면 복을 받을 것 같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을 행하려고 합니다. 악을 행하다가도 하지 말아야지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렇게 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안에는 선도 있고 동시에 악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만 행할 수도 없고 악만 행할 수도 없습니다. 완전하게 선한 사람도 없고 완전하게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다 고만고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떤 사람은 선에 대한 갈망이 강합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려고 무척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선을 행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갈라집니다. 첫째 부류의 사람은 아, 나는 참 선하구나. 난 선하게 살고 있어. 난 대단해. 난 복 받을 거야. 나 같은 사람이 천국의 주인공이야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 부류의 사람은 첫째 부류의 사람과 동일한 수준의 선한 삶을 살고도 아, 나는 못됐어. 내가 이정도 밖에 안 되다니, 나는 참으로 무능하고 약하구나. 나는 선하지 못해. 나는 참 악하고 비열해. 어쩌면 내가 이렇게 악하고 비열할 수 있지? 도대체 왜 그런 거지? 어떻게 하면 내가 선할 수 있지? 라고 안타까워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진짜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누가 천국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둘 다 선하기는 하지만 앞 사람은 천국과 아주 멀고, 뒷사람은 아주 천국과 가깝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을 행한 양은 똑 같은데 누구는 천국에서 멀고 누구는 천국에서 가깝습니까?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자신이 행한 선에 만족을 하므로 더 이상의 것을 추구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선을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천국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행세를 합니다. 그는 아주 높은 마음이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한껏 높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그는 사람 앞에서 마음이 교만하고 하나님 앞에서 더욱 마음이 교만합니다. 그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아니라 자기가 행한 선을 자기의 부로 누리는 부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천국에서 먼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자신이 선을 행하려고 했지만 진정한 선에 이르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열 가지 중에서 아홉 가지의 선을 행했을지라도 행하지 못한 한 가지 악에 대해 슬퍼합니다. 그리고 그런 악으로 인해 자신이 아주 부족하고 연약하다는 사실 앞에서 자신이 선하지 못하며, 선에 이를 수 없는 무능과 부패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행한 선을 부로 누리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과 달리, 자신이 이를 수 없는 선에 대한 부담감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천국에 가까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두 부류의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 반응이 완전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 천국에 이를 수 없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그 모든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이런 복음을 들으면 두 사람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자신이 선을 행한 사람이며, 그래서 자신을 선하다고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선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부패 무능한 존재임을 아는 사람은 비록 그가 선한 삶을 추구하며 어느 정도 선한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왔다 할지라도 자신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이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그 구원을 갈망하며, 구원의 복음의 선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천국에 속한 사람이요,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천국을 누리는 것은 선을 행함으로서가 아니라 죄 사함과 구원을 경험할 때에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자신이 행한 선이라고 하는 공로를 자랑삼지 말고, 자신이 진정한 선에 이를 수 없는 악함을 가진 부패 무능한 존재임을 깨달으십시오. 내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십시오. 그 죄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고 저주를 받을 무서운 것임을 아십시오. 그리고 그런 죄와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시어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리하여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고 구원을 누리므로 천국을 소유하고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Ⅲ.부자나 권력자들의 경제적 수탈과 사회적 억압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부자나 권력자들에 의해 경제적으로나 인권적인 면에서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북한 정권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북측 주민들과 같은 경우는 최악의 경우이고,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지의 빈국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그 다음입니다. 그리고 중동지역의 회교에 의해서 탄압받고 있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고, 비록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등에 의해 소외되고 고통 받고 있는 이들도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사회나 제도, 독재자나 부자 등에게 억압받고 고통 받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라거나 천국에 들어가는 데에 어떤 특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천국에 가깝기는 하지만 천국을 저절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난으로 인하여 겸손함과 구원의 갈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것처럼, 부자나 권력자들이나 제도와 사회 구조적 모순에 의해 업압과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이로 인하여 겸손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리스도의 구원을 요청하지 않으면 그들 역시 천국을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론 이것입니다. 영적 가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갈망 외에 다른 것에 소망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기에 오직 하나님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구원을 갈망하고 요청하는 사람이 천국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자신이 비록 선을 행하고자 하나 선을 행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의 부패 무능을 절감하며,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 구원받는 길은 십자가의 주님을 믿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서 주 예수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천국의 주인공이요, 독재자나 부자, 사회 구조적 모순과 제도에 의해 억압과 고통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이들만이 천국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을 미덕으로 여기지는 마십시오. 마음의 겸손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갈망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공로를 의지하고자 하는 믿음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만이 진정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을 얻을 사람이요 천국을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사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의 가난은 복입니다. 육신적 물질적 가난이 복이 아니라 영적 가난이 복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만큼 마음이 겸손한 사람이 복된 자입니다. 고통과 아픔을 통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에 소망을 두는 사람이 복된 자입니다. 천국은 이런 자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심령의 가난이라고 하는 복은 모든 복으로 통하는 통로가 되는 복입니다. 마음의 가난이 없는 사람은 그 어떤 하나님 나라의 복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난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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