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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3] 애통하는 자의 복

마태복음 김동명 목사............... 조회 수 2805 추천 수 0 2011.07.13 19: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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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4 
설교자 : 김동명 목사 
참고 : http://cafe.daum.net/jesusinto/HfEY/35 
<팔복강해 3>
애통하는 자의 복
-마5:4-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보는 TV 프로그램이 개그 콘서트나 웃찾사와 같은 개그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에 나온 개그맨이 새로운 유행을 주도해 가고, 온 나라의 청소년들이 그 흉내를 냅니다. 이렇게 세상은 웃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8복은 세상의 가치관관 정면으로 배치되는 복을 말씀합니다. 세상은 부요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을 하지만 성경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또 세상은 기뻐할 일이 많은 사람을 복 되다 하는데, 성경은 애통할 일이 많은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가난은 말 할 수 없는 부요로 채워지며, 애통은 또 말 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집니다.
자, 오늘은 말 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지게 하는 애통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깊이 새기는 마음으로 읽어봅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에서 보면 애통은 위로를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애통은 위로가 약속되어 있는, 보장되어 있는 애통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밑도 끝도 없는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이 다하면 기쁨의 바닥에 내려설 수 있습니다. 슬픔이 깊으면 기쁨의 반석 위에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습니다. 그러므로 슬픔에 대해 설교한다고 너무 어두운 얼굴을 하지 맙시다. 슬픔에 대해서 설교할 때 정말 슬퍼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목을 놓아 울만큼 슬퍼합시다. 우리 눈이 눈물을 쏟아내는 폭포가 되고, 우리의 얼굴에 눈물의 강이 흐르도록 슬퍼합시다. 그런 후에 있을 위로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에게 하늘의 위로를 가져오는 애통은 도대체 어떤 애통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슬퍼하는 자가 되어야 주님으로부터 하늘의 위로와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Ⅰ.죄 사함의 은총을 얻기 위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심령의 가난한 자의 복에서 잠시 언급을 했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한 없이 가난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죄로 얼룩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보면 자신의 진면목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 눈 앞에 안 계신다고 생각을 하니까 자신이 선하고 의로운 것 같이 느껴지지,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시면 베드로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부르짖은 것처럼(눅5:8),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6:5)라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바울이 엎드러지고(행9:4), 사도 요한이 죽은 자 같이 된 것처럼(계1:17) 우리도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울며 굴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큰 복인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없는 사람은 죄 사함의 기쁨이나 구원의 기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의 은총으로 나아가는 길은 곧 죄로 인해 애통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가 무엇이기에 우리는 그런 애통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현대의 교회는 죄에 대해서 말할 때에 대개 두 가지의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원죄에 대해 말하면서 조상 탓하듯 죄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나의 책임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음으로써 회개의 촉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죄를 대수롭지 않은 실수, 있을 수 있는 실수로 가볍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마치 복음을 말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죄에 대해 간결하지만 분명하게 말씀을 드리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첫째, 죄의 정체는 하나님께 대한 敵意입니다. 우리가 원죄로 인하여 우리 안에 죄가 내재하는데 그 죄는 하나님께 대한 강한 적의로 내재합니다. 즉 하나님을 원수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마치 악한 자가 원수의 아들을 데려다가 아버지를 원수로 인식을 시켜서 아버지를 향하여 칼을 겨누게 하는 것처럼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복된 것들을 공급받는 은총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적의를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들에게까지 적의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용서와 심판,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와 말씀, 신자들과 신자들이 하는 모든 행위 등에 대해서도 적의를 품고 대합니다.

여러분은 지금은 그렇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과거에 주님께로 돌이키기 이전에는 그랬을 것입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유 없는 적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이유 없이 미워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착한 일 하는 것도 위선과 가식과 전도를 위한 목적을 가지고 쇼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지금도 저처럼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그 적의가 다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은 없습니까? 없다면 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못합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에 즐거이 순종을 못합니까? 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열정을 불태우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적의가 여러분의 신앙의 삶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적의와 적으로 인해 범죄한 것에 대한 애통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죄의 활동의 특성은 대담함과 광기와 맹렬하다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 안에 있으면서 자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막연한 반감이 죄의 유혹을 만나면 급속도로 팽창을 해서 두려움을 이기고 대담하게 죄를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그리고 죄를 거듭 짓게 되면 양심이 마비가 되면서 죄에 대한 두려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까지 코웃음을 치는 단계로 나아가 강퍅해집니다. 죄의식 자체가 희미해져버립니다. 그래서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는 광기화가 됩니다. 게임이나 도 박은 처음에는 재미로 하지만 나중에는 미쳐서 하게 됩니다. 성적 타락도 처음에서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을 하지만 후에는 광기로 바뀌어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폭력도 거듭해 가면 광기가 되어 살인을 불러옵니다. 탐욕도 자라서 광기가 되어 도적질이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심령을 살펴보면 이 광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 광기를 억제하지 못하여 또 범죄를 하게 됩니다. 이 광기를 보고서 우리가 어찌 애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죄의 실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옵니다. 그 죄에 내가 얼마나 깊이 젖어 있는지를 알게 되면 내 심령 안에서 통곡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아십시오. 죄를 묵상하십시오. 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괜한 정죄감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참된 회개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죄 사함의 기쁨과 구원의 기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죄의 확신이 없이는 사죄의 확신, 구원의 확신도 없기 때문입니다.

Ⅱ.성화를 위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첫 번째 애통이 구원 받기 이전의 애통이라면 성화의 과정에서의 애통은 구원 받은 이후의 애통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고, 한 번 용서받으면 영원히 용서받기 때문에 신자가 죄를 지어도 애통할 필요가 없고, 그저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주여 용서 하옵소서 라고 한 마디만 하면 다 용서해 주신다는 식으로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죄를 짓고 나서 아이들이 “앗, 나의 실수!”라고 익살스럽게 말하는 것처럼 회개했을 때 여러분은 용서를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용서를 확신할 수 없는 데도 용서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 그대로 생각일 뿐입니다.

그리고 죄의 문제는 용서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죄는 죄를 깨닫고 진심어린 고백을 통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습관화되고 인격화되어 내재하는 죄를 죽인다는 것은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경험을 해 봐서 알 것입니다.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죄에 빠지고, 고백하고 또 죄에 빠지는 일을 반복해 보았을 것입니다. 마치 늪에 빠진 사람처럼 죄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죄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죄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죄와 더불어 싸우는 사람이 더 죄로 인해 애통해 합니다. 사도 바울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고백은 죄와 더불어 피 흘리기까지 싸워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이 고백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진정의 고백이 성화를 촉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 싸움을 그리스도께 의탁하고, 보혈의 은혜를 의지함으로 그가 죄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내재하는 죄를 죽이는 것은 죄에 대한 분명하고 깊은 인식과 이 죄로 인한 많은 애통,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은혜를 의지하는 믿음, 그리고 죄를 이기기 위한 열렬한 기도의 생활, 끊임없는 말씀 생활을 통한 영적 생활의 훈련을 통해서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죄를 죽이는 과정은 심령의 애통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화는 애통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에 자주 빠지고, 넘어지는 자신을 보며 애통해 하고 있습니까? 거룩하신 주님을 담고자 하는 몸부림의 애통을 갖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복 된 자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힘으로 거룩함에 가까워져 갈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애통이 없다면 여러분이 지금 누리고 있는 기쁨은 거짓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여러분의 기쁨은 슬픔이 되고, 여러분의 행복은 불행이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시는 꿀물은 쓴 물이 되고 여러분이 즐기는 쾌락은 치욕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화를 위해 애통하십시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돼지가 씻었다가 도로 더러운 웅덩이에 돌아가고, 개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 핥아먹는 것처럼 살게 하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살다가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어오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본받아 거룩하게 살다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인격과 삶을 본받아 살므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을 나타내게 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에 상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그의 피로 씻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변화되지 못한 삶에 대해 애통하십시오. 늘 죄에 넘어지고 쓰러지는 자신을 책하며 애통하십시오. 주님의 성품을 닮기 위해 애통과 함께 몸부림을 치십시오. 주님이 그러한 우리들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가시고, 우리를 이 세상에 나타내시고, 그리고 은밀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게 하시다가 우리를 천국에 이끌어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주셔서 위로하실 것입니다.

Ⅲ.세상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구원받고 죄를 떠나서 거룩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며 살다보면 이 세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을 알지만 저들은 모르고, 나는 진노와 저주에서 벗어났지만 저들은 아직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고, 나는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왔지만 저들은 아직도 거기에 매인 채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로 인하여 안타까움과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혼들을 위해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고, 찾아가게 되고 그들을 주님께로 이끌고자 하게 됩니다. 이 애통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세상에 대한 책임으로서의 애통입니다. 이 이 애통은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애통이며, 이 애통을 가진 자는 주님의 위로와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세상에서 살다보면 세상 속에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고, 독재와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으며, 질병과 인생의 불행과 아픔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아파하게 되고 울게 됩니다. 이 애통 또한 우리가 세상 속에서 우리의 책임을 다 하기 위한 애통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 애통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웃음을 잊고 사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주님이 기뻐하셨다는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리고 주님이 파안대소하며 웃으셨다는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 웃으셨더라도 잠깐 미소를 짓는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신 주님이 슬퍼하셨다, 우셨다, 아파하셨다는 말씀은 너무 자주 나옵니다. 나사로의 무덤에 가신 주님은 하염 없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11:33, 35). 타락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시며 주님은 눈물을 강수처럼 흘리며 우셨습니다(눅19:41-46).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눅22:44, 히5:7).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눈물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진한 피를 쏟으셨습니다(눅23:34).
이렇게 주님의 생애는 아픔의 생애, 고통의 생애, 눈물의 생애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은 바로 그 주님의 마음을 알기에 그 애통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을 뒤로 한 채 한 걸음 한 걸음을 눈물로 적시며 살아갔습니다. 기쁨의 카페에 앉아 있기보다는 죄인들과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위해 탄식하는 기도의 밀실에 있기를 구하였습니다. 잔치 집에 찾아가 배불리 먹고 즐기기보다는 소외되고, 버림 받고, 아무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이들 곁에서 마음 아파하며 눈물로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이 애통이 필요합니다. 이 애통을 가진 자가 주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이 애통으로 산 자가 영원한 희락을 얻게 됩니다. 천국의 위로와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즐기라고 말합니다. 웃을 일이 없어도 자꾸 웃으라고 말합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화 있을진저 너희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눅6:25)라고 말씀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웃을 일도 없는데 웃다가 애통을 만나지 말고, 애통해야할 이유를 알고 애통하다가 주님의 위로와 축복을 만나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이 위로를 주시고 기쁨을 주시기까지는 애통하는 자로 주님 앞에 있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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