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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마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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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동명 목사 |
참고 : | http://cafe.daum.net/jesusinto/HfEY/38 |
<팔복강해 6>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마5:7-
8복의 말씀 중에서 오늘은 다섯 번째인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침착하게 살펴볼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좀 재미가 덜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팔복 설교를 시작할 때 재미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으니까 이해를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설교에서 재미를 느끼기보다는 진리를 듣는 기쁨을 추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에 붙잡혀 살아가기를 갈망하기를 바랍니다. 이 설교는 ①본문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을 먼저 한 다음에 ②긍휼이라고 하는 말의 일반적인 의미와 ③하나님과 긍휼에 대해서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④우리가 긍휼을 실천하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Ⅰ.본문 말씀을 성경 문맥 속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을 한 번 더 읽어 봅시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면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표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마18장에 나오는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유의 말씀들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거나 용서를 받기 위해, 구원을 받기 위해 무엇인가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으로 말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일관된 선포는 우리가 주님께 용서를 받거나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 구원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행위가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을 은혜로, 값없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가 긍휼히 여겨야 하는 것은 긍휼히 여김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긍휼히 여김을 받고 용서와 구원을 받았다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긍휼히 여기는 삶,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긍휼이나 용서는 긍휼히 여김을 받고 용서를 받기 위한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긍휼히 여김을 받고, 용서를 받은 자의 삶의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김을 받기 위해 긍휼히 여기라는 말씀으로 이 말씀을 받을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김을 받았으니 긍휼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아 용서와 구원을 받은 사람의 마땅한 자질은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는 것임을 알고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doing(행위)을 말하기 이전에 being(존재)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존재:being)가 되었기 때문에 행위(doing)가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8복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여덟 가지 자질들에 대한 말씀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그렇게 살 수 있는 자질이 부여되었고 그러므로 그렇게 살라는 말씀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되었기 때문에 그런 자질들을 다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가득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8가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자질들을 가짐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나타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주님의 요구를 우리가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백성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 못된 태도는 자신이 알곡이 아닌 쭉정이임을 증명하는 것이 되고, 양이 아닌 염소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그러나 아직] 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천국에 입성하기 전까지는 주님의 자녀답게 살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처럼 절실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얄팍한 꾀로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긍휼이 있는 성도가 되기를 절실히 사모하고 힘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Ⅱ.‘긍휼’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 대지에서는 두 가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긍휼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서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긍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긍휼’이라는 말은 현대인들이 잘 쓰지 않는 말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교회 밖에서 긍휼이라는 단어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긍휼은 마치 교회에서만 사용하는 특별한 용어처럼 이해되고 있는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여러분은 긍휼 하면 얼른 그 단어의 의미가 마음에 와 닿거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용어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먼저 필요할 것입니다.
긍휼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가엽게 여겨 돌보아 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불쌍히 여겨서 돌보아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긍휼이라는 말은 [불쌍히 여긴다]는 말이나 [동정], [연민] 등과 동의어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불쌍히 여긴다, 동정한다, 연민을 느낀다 등에 대해서는 여러분에게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해가 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휼이라는 말이 여러분의 마음에 잘 와 닿지 않거든 불쌍히 여긴다, 동정한다, 연민을 느낀다 등의 말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긍휼에 대한 사전적 의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때 “가엽게 여겨 돌보아 줌”이라고 한다고 했다는 데에 주의를 집중하기 바랍니다. 긍휼은 어떤 사람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감정과 그 감정을 가지고 실제적으로 돌보아 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긍휼은 단순한 감정에 머물면 긍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감정을 따라 실천을 해야 진짜 긍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긍휼이 단순한 감정 이상이라는 것을 예를 들어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참된 긍휼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인, 선한 사마리아인 이 세 부류의 사람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쳤고, 선한 사마리아인은 실제적으로 돌보아 주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도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불쌍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들의 긍휼은 감정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은 관심뿐만 아니라 그를 돌보는 수고를 하였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긍휼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실제적인 돌봄,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적인 도움의 손길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복 된 사람임을 말씀해 줍니다.
Ⅲ. 하나님의 긍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긍휼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란 ①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②우리를 특별히 돌보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지 않으면 안 될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그저 보고만 계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우리를 돌보셨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않으면 안 되는 좋지 않은 상황,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 한 없이 불쌍해 보이는 어떤 모습을 갖고 있었다는 얘긴데, 그게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에 대해 가장 잘 밝혀 주고 있는 성경이 저는 사도 바울의 서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에베소서2장 4-5절을 함께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자극할만한 어떤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말씀해 줍니다. 그리고 그 비참한 상황은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상태”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비참한 상황을 바울은 엡2:1-3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 말씀은 우리가 처한 비참한 상황에 대해 두 가지로 말씀해 줍니다.
첫째, 죄로 인하여 우리는 죽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었다는 것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죄로 인하여 죽었다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할 힘과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물리침을 받게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비참한 것은 개선 가능성이 없을 때 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아질 수 있다면 소망이 있고, 그 소망이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러나 죄에 빠진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의 운명을 개선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저주 가운데 있고,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이 확정된 것입니다. 죄 가운에 있는 인간은 사형판결을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비참한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둘째, 인간의 비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죄만으로도 영원한 형벌이 확정되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삶, 죄에 죄를 더하고, 그래서 진노에 진노를 더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는 사형판결을 받고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가 난동을 부리고, 살인을 저질러서 사면의 가능성까지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것과 같은 상태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 가운데 태어난 것만도 비참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보다도 천만 배 불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서 행하면서 일생을 살므로 사면의 가능성이 완전 제로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면의 가능성조차 없다는 것,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용서조차 구할 수 없다는 것, 이보다 비참한 상황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 처한 것에 대해 성경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진노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는 잡혀서 죽기 위해 태어난 짐승보다도 못한 형편입니다. 짐승은 죽음으로써 생과 함께 고통도 끝납니다. 그러나 죄인 된 인간은 죽음은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죽음 이전의 고통과 죽음 이후의 고통은 비교할 수도 없이 큽니다. 성경은 그곳을 지옥이라고 부릅니다. 지옥의 고통에 대한 성경의 진술은 이렇습니다. “불과 유황 속에서의 밤낮 쉼 없이 세세토록 고난을 받으리라”(계14:10~11). 1분 1초도 멈추지 않고 고통은 계속됩니다. 휴식 시간이 없습니다. 숨 돌릴 시간이 없습니다. 지옥에 던져질 때에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은 세세토록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끝이 없습니다. 애원해도 소용없고, 빌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거나 그 형벌을 그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비참한 지경에 처해 있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아담이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 자신을 비참한 지옥에 던져 버린 직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마음으로만 불쌍히 여기신 것이 아니라 그 비참한 운명에서 벗어나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서 죽고, 도무지 자신의 운명을 개선할 힘도 능력도 없이, 마귀의 종 되어 진노에 진노를 더하며 살아가는 비참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성경은 이 하나님의 긍휼을 “불붙는 긍휼”이라고 말씀합니다(호11:8). 하나님께서는 지옥의 불꽃 속에서 몸부림을 치며 고통 받는 영혼들을 바라볼 때 자신이 불로 태움을 받는 아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기까지는 영광도, 안식도, 평화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 아들로 하여금 인생들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저 마음으로만 긍휼히 여기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는 참혹한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그 살리시는 긍휼 덕분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긍휼을 아버지가 되어서 조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내 자식이 아파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면서 타는 듯한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내 자식이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혼의 깊은 고통을 경험하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조금 더 깊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눈물로 호소하여도 듣지 못한 채 멸망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온갖 고통과 고난을 다 당하면서도, 온 몸과 마음과 삶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거의 죽다시피 하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이킬 줄 모른 채 완고하고 완악하게 불신앙의 삶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참 가슴이 아파서 울고 또 울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하나님 아버지의 불붙는 긍휼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또 이 땅의 경건한 부모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긍휼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병든 자식, 방황하는 자식, 자꾸만 어둠의 길로만 가는 자식을 바라보면서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을 기도실에서 자주 만납니다.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천만갈래로 찢어지는 아픔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나를 보시는 주님도 저러셨을 테고, 지금 내 모습을 보시는 주님도 저러실 텐데 하는 생각에 하나님 앞에 눈물을 쏟으며 울곤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을 떠나 저주의 길을 가고 있을 때 주님은 아파하셨습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흘리신 눈물이 자 강물보다 많고 대양의 물보다 많을 것입니다. 이 긍휼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 긍휼이 지금 이토록 믿음 없고, 넘어지기 잘하고 쓰러지기 잘 하는 우리들을 살리고 회복시키고 자라고 성장하게 합니다. 오늘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끊임없이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Ⅳ.긍휼을 입은 사람으로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긍휼에 대해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긍휼을 입었기 때문에 우리는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용서를 받았기에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은 자는 사랑을 베푸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복을 받은 자는 그 받은 복을 나누어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긍휼이 부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연쇄적인 긍휼의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온 땅과 만민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맛보게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긍휼을 먼저 입었기 때문에 긍휼을 나타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한 사람들은 모두 긍휼을 베푸는 사람으로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받은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사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삶은 그들이 주님을 믿고 신뢰한 것이 사실임을 입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1:15-16).
이 말씀은 자신 같은 죄인이 긍휼을 입은 것은 이 세상 그 어떤 비열한 죄인도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시는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델로 삼기 위해서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긍휼히 여김을 받은 사람으로서 긍휼히 여기는 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긍휼의 빚, 사랑의 빚을 얹어주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긍휼히 여김을 받았다면 이 세상 그 어떤 죄인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긍휼히 여기심을 받았다면 나는 그 어떤 사람도 긍휼히 여기는 데에서 제외시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비열한 죄인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의 회개와 하나님께 대한 돌이킴에 대한 소망을 잃지 맙시다. 그 어떤 사람도 긍휼히 여길 대상자 명단에서 빼지 맙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 애통하는 자가 되고, 그들이 주님께 돌이킬 때까지 온유함으로 섬기고, 주께서 우리를 위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가진 것을 영혼을 살리는 데 쓰기에 아끼지 않도록 합시다. 배고파하는 자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아파하는 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슬퍼합시다. 억눌린 자 갇힌 자를 동정하여 그를 자유케 하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긍휼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날마다 주님의 긍휼을 묵상하면서 뜨거워지고, 긍휼히 여기는 자의 삶을 살면서 주님의 긍휼을 이해하고 느끼면서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지침이 없이 살아갑시다. 이런 긍휼의 삶을 실천해 나갈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평안과 안식과 영광이 있는 천국으로 부르시고, 우리에게 주님의 영광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한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긍휼을 실천하라고 주신 자원들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많은 자원들이 있겠지만 시간 관계상 세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돈은 세 가지 용도로 쓰여져여 한다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그 첫째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와 가정을 위해서 쓸 것입니다. 셋째는 이웃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긍휼의 실천을 위해 쓸 것입니다. 물론 나 쓰기에도 부족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나를 위해 쓸 것을 아껴서 이웃을 위해, 긍휼의 실천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쓰는 것은 소비가 아니라 하나님께 심는 것(투자)입니다. 반드시 하늘의 보상이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 지식입니다. 어느 고등학교(ㅈ 고등학교)에는 “공부해서 남 주냐? ······”는 프랭카드가 걸려 있답니다. 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공부해서 남 주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수련회 때 여러분도 들었을 것입니다. [돈 벌어서, 공부해서 남 주는 인생이 되자!]. 이 구호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역시 이렇게 할 때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예를 얻습니다.
셋째, 복음입니다. 물론 이 복음이 세 번째로 중요한 게 아니라 첫 번째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세 번째 말하는 것은 첫째 둘째는 안하면서 복음 전하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에 빠질까 우려해서입니다. 세상의 소망은 이 복음뿐입니다. 죄로 인해 죽은 이들을 살리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 밖에는 없습니다. 영혼들을 지옥과 이생의 불행과 고통과 무가치한 삶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이 복음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하십시오. 이 복음을 나눠 주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최대의 긍휼임을 아십시오.
이렇게 우리에게는 긍휼을 베풀 수 있는 자원을 하나님이 넘치도록 주셨습니다. 이 자원들이 흘러나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도록 마음의 둑을 터놓으십시오. 거침없이 흘러가서 하나님의 살리는 역사를 이루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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