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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놀라운 책을 한 권 소개합니다. 평생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평생 예수님의 발뒤쿰치  한번도 못 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예화가 있쟎아요. 어떤 기도 잘하고 경건하고 거룩한 신부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기도소리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일정도였답니다. 그 신부님이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어느날도 변함없이 정기 기도시간에 '주여~!"하고 불렀는데 어디선가 "왜 부르느냐?"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깜짝 놀라 눈을 뜨고 두리번 거렸더니 또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예수님이다." 그 소리에 놀라 심장마비로 죽었답니다. 물론 꾸며낸 이야기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단단히 각오하고 읽지 않는다면 심장마비 걸려 죽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농담이지만.
이책은 작년 봄에 한번,가을에 한번 정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두어사람 손에서 돌고 돌다가 다시 제 손에 들어와 다시한번 세번째로 읽기 시작합니다. 책을 몽땅 외워버리고 싶은 책입니다. 2004.1.10.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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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은 기도입니다.

호흡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흔히 '호흡이 있는 자 마다'하고 말하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이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일반적인 호흡에 대하여 기도라고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는 이상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들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기도는 호흡' 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를 토하고 주님의 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기도는 호흡'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은 기도의 원리에 대한 훌륭한 정의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호흡기도란 그러한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호흡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호흡은 실제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별다른 의식이 없이 본능적으로 하는 호흡을 기도라고 할 수 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단순한 호흡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호흡에 기도를 담고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로서 생각하면서 호흡을 할 때 그것은 아주 실제적인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 호흡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영은 예민해지고 주님의 임재와 가까우신 풍성함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하나의 행위가 아주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일지라도 그 행위가 기도하는 자세, 주님을 의뢰하는 자세로 드려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주님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을 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언어를 주님께 드린다면 그것은 기도입니다. 또한 혀를 주님께 맡기고 지혜를 구하며 성경의 말씀을 전한다면 그것은 설교이며 영감이 충만한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말을 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전혀 초 자연적인 행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행위가 마음 자세에 따라서 주님과 교제하는 기도가 되고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호흡을 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신령하고 특이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호흡을 할 때 이것은 기도가 되는 것이며 주님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의 어떤 이들은 기도가 아주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주님을 가까이 누리고 경험하는 것은 아주 신령하고 영적인 사람들에게나 가능한일이라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추구하기는 하지만 기도를 해도 별 경험도 없고 주님이 멀리 느껴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이들이 호흡 기도를 배우게 되면 아마 생각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호흡기도는 아주 쉽습니다. 누구나 다 배울 수 이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호흡 기도를 날마다 조금씩 시도해 보게 될 때 그는 자신의 영성이 날마다 발전해 가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점점 아름답고 향기로운 기도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호흡은 기도입니다. 아주 아름답고 단순하면서 실제적인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당신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2:7)"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기 전에는  아직 사람은 생명이 없었습니다. 외형으로 보았을 때는 이미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생명이 없었고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코에 생기를 받고 호흡을 시작하게 되면서 사람은 비로소 생명을 지닌 존재로 움직이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호흡을 통하여 생명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호흡을 하지 못하면 사람은 잠시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아도 몇십일을 살 수 있고 잠을 자지 않아도 며칠은 버틸 수 있지만 호흡을 하지 못하면 불과 몇 분만에 사람으 죽게 됩니다. 이처럼 호흡은 사람의 생명의 유지에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것입니다.
호흡에는 생명의 신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호흡을 통하여 마시고 받아들이는 것에는 무엇인가 생명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 생명의 요소는 단순히 공기중의 산소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3차원의 요소를 통하여 생명이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지어졌습니다. 육체에는 육체를 채우는 음식이 필요하며 영혼에는 영혼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육체는 물질적인것이며 그 재료를 이 땅에서 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빗물질적인 것이며 그것은 이 땅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온 것이며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것은 비물질적이며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으나 존재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와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명의 요소는 단순히 산소를 얻었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것은 그 공기, 그 산소의 배후에 존재하는 어떤 영적인 에너지를 사람이 호흡을 통하여 취하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차원과 보이지 않는 차원이 있습니다. 만질 수 있는 차원과 만질수 없는 차원이 있습니다. 공기라는 것은 이 두가지 차원의 접촉점입니다.
우리는 호흡을 통하여 공기를 마십니다. 공기중의 산소를 마십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우리는 호흡을 통하여 영적인 세계, 하나님의 세계로부터 오는 생명의 에너지를 얻는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얻으므로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호흡은 생명입니다. 그것은영적인기운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공기를 얻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믿음을 통하여 전혀 다른호흡을 할 수 있습니다. 여태까지 해왔던 호흡이 아닌 영적인 생기, 생명을 충만하게 마시고 얻는 호흡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성분의 산소를 마시며 호흡을 하기도 하고 호흡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 산소의 성분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공기, 같은 산소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기도하고 주님을 바라보며 의식하며 마시는 호흡의 영적인 분위기, 기운은 전혀 다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임하여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충만하게, 아름답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그 호흡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활동하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3:8)

히브리 말로 '영'이라는 단어는 '루아흐'입니다. 헬라어로는 '프뉴마'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말의 의미는 비슷합니다. 그것은 '영' 또는 '바람' '호흡'과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영이라는 것은 호흡이나 바람과 같이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번역에서는 '성령님'을 '거룩한 숨님'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도 영과 바람과의 관련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은 3장에서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거듭니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바람에 대한 비유를 드셨습니다.
바람은 소리는 있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실체이며 움직임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도 그과 같이 자연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은 아니지만 분명한 실체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바람을 사용하여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를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람의 성격이 성령님의 역사와 흡사한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령님이 강하게 임재하시는 현장에서 우리는 바람소리 같은것을듣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도 보면 성령님의 임하심이 올 때에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은 소리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행3;2) 바람은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묘사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임재가 있을때에 그것을 강한 바람으로 이해하고 느끼며 경험할 수 있습니다.

흔히 사용하는 말에고 '바람났다'든지, '춤바람 났다'는 등의 표현이 있습니다. 아마 음란한 영이나 춤의 영에 사로잡힌 것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그것은 어떠 기운, 어던 영의 역사를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어떤악한 영들, 세상의 영, 유혹의 영에 붙들린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신앙을 떠나서도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곤 합니다. 여기서 바람이라는 것은 어떤 영적인 힘, 또는 성향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세상에는 자연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영적이 아닌, 그저 하늘에서 부는 바람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리적인 바람이 아닌 영적인 기운, 세력이 포함되어 있는 바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주님이 갈릴리 바다에 임하였던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바람을 꾸짖으셨고 바람은 잠잠하게 되었습니다. (마8:26)
이 경우에 만일 바람이 그저 자연적인 바람이라면 주님은 바람을 꾸짖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살아있지 않은, 비인격적인 존재에 대하여 야단을 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주님은 그 바람의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하여 꾸짖으신 것입니다.
호홉은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은 호홉을 통하여 숨을 쉬고 내쉼으로서 바람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자연적인 바람이 있고 영적인 의미의 바람이 있는 것처럼 호흡도 자연적인 호흡이 있고 영적인호흡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무 의식이 없이 그저 본능적으로 하는 호흡은 자연적인 호흡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의식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할 때 호흡은 영적인 어떤 것이 됩니다. 그것은 악한 영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도 있으며 주님의 영을 받아들이고 움직이게 하는 통로가 될수도 있습니다.
호흡은 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영적인 은혜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호흡기도를 통해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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