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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행13: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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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현대인들의 큰 특징 한 가지는 매우 바쁘게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바쁘게 살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생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모두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며, 성공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중요한 일과 바쁜 일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급하지 않은 중요한 일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뭔가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열심히 했는데도 남는 것이 별로 없게 되고,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는 것이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깨닫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일생을 바쁘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하나님 앞에서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시기는 것은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직접 하지 않으시고, 천사를 동원해서 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사람, 즉 당신의 백성들을 사용하여 이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위해서 누군가가 가서 복음을 전해야야만 합니다. 그런데 누가 가야 할까요?
믿는 자는 본질적으로 모두가 선교사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땅 끝까지 복음 전하라는 명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선교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것을 생각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특권과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를 후원하고 누군가를 전도하기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이번 베스트 전도에서 모두가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한 일은, 표면적으로는 안디옥 교회가 한 것 같으나, 성령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성경은 성령께서 이들을 보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에 가서”(4절) 사실 안디옥 교회나 보냄을 받은 사람들은 다 같이 성령의 역사에 쓰임을 받은 것뿐이었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일이며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 때문에 항상 성령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진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온전한 선교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2절을 보면 성령께서 친히 선교사를 지명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성령께서 이렇게 지명하신 사람이 선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부르시면 그의 마음에 열정이 일어나고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선교사들의 경우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전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전도자로 지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가족이 심한 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영생의 문제, 구원의 문제를 놓고 우리가 어떻게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전도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마음이 편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평생을 이런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내가 복음에 빚진 자라’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요 가장 중요한 목적인 복음 전도를 위하여 성령께서 당신을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선교가 우리에게 가장 크고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사명감에 불타는 뜨거운 마음으로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살라미에서
성령의 보내심을 받은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을 출발하여 실루기아 항구로 가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갔습니다. 그들이 구브로를 첫 선교지로 택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습니다. 구브로(kyprus)는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매우 아름답고 기후가 좋은 섬입니다.
그들은 구브로의 가장 큰 도시인 살라미에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해외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회당을 지어서 그 회당을 중심으로 살아갔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그의 선교전략에 잘 활용했습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가장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고 믿은 유대인들은 현지 선교사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사방에 흩어 놓으신 것은 선교를 위한 세밀한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은 선교의 거점과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이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많은 시련과 고난을 당해왔습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만주를 비롯한 각지로 이주하거나 망명했습니다. 그 중에는 스탈린에 의하여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불행한 역사를 통하여 현재는 중국에 200만 명에 달하는 교포가 살고 있으며, 중앙 아시아 지역에도 상당수의 한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지의 문화와 언어에 잘 적응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지도록 계획해 놓으셨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들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이 지역들은 선교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곳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잘 깨닫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바보에서
바나바와 사울은 살라미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섬을 횡단하여 바보(Paphos)라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구브로 섬의 횡단거리는 200km 이상 되는데, 그들이 무작정 그 섬을 횡단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면서 여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그들의 긴 여정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고, 다만 바보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복음의 적대자를 만났으나 성령의 역사로 그를 제압했으며, 그 섬의 총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구브로 섬의 총독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으로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서기오 총독 곁에는 바예수라는 유대인 박수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총독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자기의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총독이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를 했습니다.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이 마술사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6-8절)
복음을 전할 때, 그리고 사람이 예수를 믿으려고 할 때는 이러한 방해가 있게 마련입니다. 복음을 전하여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일은 영혼을 사탄의 세력에게서 건져오는 일이기 때문에 사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치열한 영적인 전투가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미신이 많았던 시절에 교회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될 때 얼마나 많은 방해가 있었습니까? 때로는 공포와 두려움을 통해, 때로는 안 믿는 가족이나 문중 사람들을 통하여 많은 방해와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도 복음이 전해지는 현장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방해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며, 복음 전파를 방해하며, 교회를 반대하는 모든 일들은 결국 사탄이 조종하고 역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성령의 도우시는 능력으로 이겨야 합니다.
바울은 박수 엘루마가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하는 것을 보고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호되게 책망했습니다. “바울이라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9-10절). 그리고 그를 저주했더니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11절)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단지 개인적인 감정과 과격한 성격으로 엘루마를 공격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강권하심을 따라 그렇게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놀라우신 능력으로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을 벌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전도하는 데 무한한 격려와 힘이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반대와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사탄이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탄의 세력을 능히 파하시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무엇도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성경은 우리에게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본문에서 바울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또는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할 때 사탄이 우리를 대적하며 방해합니다. 이 사탄을 어떻게 물리칠까요? 바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박수 엘루마를 주목하고 호령하며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성령의 능력으로 사탄이 결박되고 엘루마는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총독은 놀라며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려면 먼저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과 지혜와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사탄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사탄이 우리를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우습게 여기며 농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에 힘쓰며 성령 충만하면 귀신이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귀신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 귀신을 대적하고 쫓아내려면 기도해야 하며, 성령 충만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박수 엘루마를 주목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귀신을 대적하겠다는 자세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전투이기 때문에 겁을 내고 피하려고 하면 벌써 지게 됩니다. 눈을 떠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가 똑바로 바라보면 귀신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자꾸만 피하려 하며, 아예 눈을 감아 버리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기억하고 담대하게 눈을 떠서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귀신을 꾸짖어야 합니다. 바울은 엘루마를 향하여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꾸짖어야 합니다. 귀신에게 명령하고 호령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자꾸만 화나게 만들고 불안한 마음을 조성하고, 우리 가정에 문제를 일으키는 귀신을 예수 이름으로 꾸짖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가 귀신을 대면하여 예수 이름으로 꾸짖으면 귀신이 떨며 물러갑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성령 충만하여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바울
본문에서부터 사울이 비로소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9절) 엄밀히 말하면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다기보다는, 유대식 이름인 사울 대신 로마식 이름인 바울이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이방인의 전도자로 쓰시려는 시점이므로 이제부터는 유대식 이름보다는 로마식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후로는 사울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바울이라는 이름이 사용됩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방인 선교를 위해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면서부터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구브로 교회
사도행전 13장에서부터 21장까지에는 세 차례에 걸친 바울의 전도여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울은 그의 제1차 전도여행의 첫 번째 코스로 구브로를 방문했습니다. 이 때 총독이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의 제3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올 때 다시 구브로를 방문하게 됩니다. 그 후 구브로의 교회는 계속 성장하여 A.D.325년 니케아 회의 때는 3명의 주교를 파송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은 이와 같이 귀하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교회가 없는 시골 동네에 교회를 개척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네에 살면서 복음을 전했을 때 한 사람씩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작은 예배당이었지만, 학생과 장년들이 가득 찬 가운데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그 어떤 불모지라도 복음이 전파되어 열매가 맺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불모지와 같은 심령에도 복음이 전해지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담대하게, 성령을 의지하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번 가을에는 전도의 열매를 많이 거두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비전을 더욱 크고 분명하게 가져야겠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외국인들이 많은 이 지역의 특수 사정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우리가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겠습니다. 외국의 근로자들을 초청하여 외로운 그들을 위로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철저하게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선교사의 역할을 감당하게 만들면 우리는 수백 명의 선교사도 파송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성도들이 준비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때가 되면 구체적으로 헌신하여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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