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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손에 잡히는 느낌이 굉장히 중요하다. 첫 만남은 책의 제목과의 만남이고 그 다음 저자의 이름이고, 그렇게 인연이 되어 책을  잡았어도 손에 전해지는  책의 느낌에 따라  어떤 책은 선택을 받기도 하지만 그냥 다시 제자리에 꽂히기도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책을 고를 때 손에 잡히는 느낌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잡았을때 무척 무겁고 책이 잘 안 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꽂꽂한 조선 선비의 기개 같은.
하지만 이미 책의 내용을 다 읽은터라 실제로는 참 따뜻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기에 한권 모셔왔다.
뉴스엔죠이 신문에 실렸던 글을 모은 책이며,  한편 한편의 글이 맑고 밝고 깨끗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깊은 산속 옹달샘물 같은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을꺼리 게시판에 내용이 다 올려져 있다. 2004.1.30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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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봄길로 오신 예수 <봄길, 정호승>
신앙으로 눈뜨는 것 <저렇게 눈 떠야 한다, 강은교>
순간 속에 영원히 담겨져 있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 인것을, 정현종>
꽃망울 터지니 하늘이 열리네 <꽃들, 박해석>
나, 주님을 기다리는 그 기다림으로 <나 당신을 기다릴 수만 있다면, 이현주>
그리움이 나를 움직인다 <그리움이 먼길을 움직인다, 맹문재>
이 세상에 소풍 온 사람아! <귀천, 천상병>
아, 숨막히는 시대! <틈, 김지하>
흙냄새여, 하나님의 냄새여 <흙냄새, 정현종>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부끄러운 나날이여 <우람찬 건물 앞에서, 박재삼>
부엌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 <부엌이 기리는 노래, 정현종 >
인간 種은 부지런히 멸종해 간다 <생명에서 물건으로, 이승하>
현대인에게 성소는 있기는 하는 걸까 <어머니의 聖所, 고진하>
강력한 폭풍을 기다린다 <예감, 이시영>
하나님은 지금도 흔들리고 계실 지 모른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우는 사람은 아름답다 <갈대, 신경림>
닦고 닦으면 내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마음, 곽재구>
내 욕망을 태워 하늘에 이른다 <굴뚝의 정신, 고진하>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자 달팽이 <어떤 성서, 정현종>
걸레 얘수와 십자가 <너와 나, 안도현 >
내 마음으로 죽이는 타인들 <우리가 죽인 예수, 이승하>
말씀을 품고 살아가야 할 신앙인 <나를 키우는 말, 이해인>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오신 예수 <한번에 한 사람, 마더 테레사>
하늘나라를 사는 비결, 느림 <비결, 이현주>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우리 동네 목사님, 기형도>
교회문을 두드리는 아기 예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정호승>
빗장을 걸어 놓은 교회, 빗장을 푸신 예수 <숨겨둔 빗장, 김상길>
세상으로 파송된 우리들 <평화를 위한 묵상 기도,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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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는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정호승 -

우리 모두는 도인(道人)인 것을

이 세상 태어나서 길을 모른다면 헤매일 것이요, 길을 안다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하고 학문을 하며 예술을 하는 것은 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끝없는 길(道) 탐구를 통해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사는 존재이다.
  
더 나아가 종교라는 것도 길(道)을 알기 위함이다. 진리(道)를 깨쳐 인간을 넘어선 하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하늘의 길)에 따라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종교 아닌가.
  
사람은 인생의 길을 가면서 어떤 면에서 길 위에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도인(道人)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어떤 특별한 존재가 도인이 아니라, 흔한 말로 도통(道通)한 사람이 도인이 아니라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누구나 도인(道人)인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길 중에서 어떤 길을 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넓고 잘 닦여진 평탄한 길을 가기를 바라고, 또 풍요롭고 넉넉한 길을 쫓아간다. 이 세상에는 물질과 명예, 권력을 좇아가는 길이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 길을 좇아 허겁지겁 달려가는 사람들, 우리의 모습에서 그것을 본다. 그러다가 그 길에서 낙오되면 인생의 낙오자로 생각하고 삶을 자포자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가끔 세상 사람들이 잘 닦아 놓은 넓고 안락한 길을 좇은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길이 되어 걸어가는 사람을 본다.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아 자신이 처음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는 세상의 길, 물질의 길, 욕망의 길을 버리고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영혼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봄길이 되는 사람

사람만이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은 길 위에 있는 존재이다. 길을 벗어나 있는 존재는 아무 것도 없다. 나무는 나무의 길을, 꽃은 꽃의 길을, 강물은 강물의 길을, 새는 새의 길을, 구름은 구름의 길을, 바람은 바람의 길을 갈 뿐이다.
  
그러나 많은 길들 중에 처음 길이 있다. 그 처음 길은 새로운 길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길,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생명의 길, 이 모든 길이야말로 처음 길이요, 새로운 길이요, 길 위에 길이다.
  
오늘 시인은 봄길을 노래한다. 봄길이야말로 처음 길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새길이다. 겨울바람 눈서리에 꽁꽁 얼어붙은 땅을 뚫고 새싹을 틔우는 봄은 새로움이다. 아무 것도 없는 빈 가지에 작은 꽃봉오리 내밀고 꽃을 피워내는 봄은 생명의 맨 처음이다.
  
그래서 시인은 계절의 길, 생명의 길이 끝났다고 여기는 계절의 맨끝에서 다시 새길이 되는 봄길을 노래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은 먼저 깨어나 잠든 대지를 흔들어 깨우고, 봄은 먼저 일어나 생명을 일군다. 처음 길, 봄길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덧 우리가 봄이 되고, 우리 가슴이 뜨끈해진다.
  
우리 곁에도 처음 길, 봄길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된 이가 있었다. 그는 늦봄 문익환 목사이다. 그는 어느 누구도 가려하지 않았고 아무도 가지 않았던 새길이 된 사람이다. 어느 누구도 남과 북의 군인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휴전선 군사분계선에는 길이 없다고, 그 곳은 함부로 길을 낼 수 없다고, 그 길을 넘어서면 실정법에 위반되어 감옥에 쳐 박히고 말 것이라고, 그 곳에는 길이 없다고 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늦봄은 "그럼, 내 몸둥이가 길이 되어 가지 뭐!"하며 훌쩍 휴전선을 넘어 새길이 되었다.  
  
늦봄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된 사람이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쉬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이다. 모든 이들이 이기와 욕망으로 가득한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욕망의 길을 좇아가려고 하는 이 때에, 그래서 암흑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 어둠의 시대에 아,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그립다. 빛이 되어 걸어가는 사람이 그립다. 그래서 그 빛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사람이 그립다.

아, 나약한 나의 사랑이여

내 사랑은 봄길처럼 언제나 설레이고 싱그러운 처음 길, 그래서 아름다운 길이고 싶다. 그러나 내 사랑은 금방 내린 가랑비에도 흔들리고, 햇볕에 스르르 녹아버리는 눈처럼 이내 사라진다. 영원한 사랑을 꿈꾸었으나 그 꿈은 가을낙엽처럼 곧 흩어지고 나는 곧 외로워진다.
  
마치 강물이 흐르다가 멈추듯 나의 꿈도 멈추어 버리고, 새들이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듯 나의 사랑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어제 영롱한 꽃으로 피었던 꽃이 오늘 시들어 흩어지는 것처럼 내 길도 낡아진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아, 나약한 나의 사랑이여. 나는 무엇으로 내 길을 갈 것인가. 내가 걸어 가야할 내 인생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걸어 가야할 그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밤을 지새우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내 길을 찾지 않는다면, 나의 삶은 얼마나 무익하고 허망한가. 자기 마음을 비우고 내 살을 찢는 심정으로 아, 내 영원한 사랑을 찾지 않는다면, 나의 사랑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한번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그저 물거품처럼 흩어져 버리는 인생이란 새로운 길, 영원한 사랑, 그 길을 보지 못한 인생이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춰버려도,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아도, 이 세상 모든 꽃은 시들어 흩어져 버려도 아, 내 영혼을 영원 속으로 인도한 생명의 길, 아, 내 생명을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게 할 영원한 사랑, 그 사랑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길을 내가 걸어 갈 수 있다면.  

사랑이 되어 걸어가는 사람, 예수

주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다. 주님은 우리의 길이시오, 진리이시오, 생명이시다. 주님이 우리의 길이 되실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외면한 고난과 고통의 길을 몸소 걸으셨고, 마침내 자기를 온전히 버리는 십자가를 지셨으며,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가는 길을 몸소 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었으나 하늘의 사람이었으며, 그는 불완전한 인간이었으나 완전한 인간이 되었으며, 그는 온전한 사랑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영원히 변치 않는 길, 곧 진리요 생명이 되시었다. 주님은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이 되시어 한없는 봄 길을 걸어가시는 분이다.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는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사랑 그 자체가 되어 걸어가는 사람, 그 분 예수를 우리가 만나 함께 걸어갈 수만 있다면, 예수와 사랑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면 우리의 봄길은 이 세상 어느 길에서 맛볼 수 없는 영원한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신 예수와 걸어가는 길은 예수 홀로 가는 길이 아니요, 예수가 앞서서 가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봄길은 예수와 손잡고 더불어 가는 설레이는 길이요, 빛나는 길이며 아름다운 길이다.
  
봄햇살 따사로이 내리고 파란 새순들 고개 내미는 이 봄날에 예수와 더불어 사랑이 되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되자. 그래서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길, 영원한 길이 되어 보자.
채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