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남준  | 출판사 : 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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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만이 희망이다!어디를 둘러봐도 소망이 없다.모두 모호하고 불확실한 가정과 예측만을 내놓을 뿐 어느 누구도 희망으로 향하는 비상구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당신은 들어보았는가복음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단호하고 취소될 수 없는 저 거룩한 도발은 절망을 격파하는 그분의 고통스런 몸짓을복음을 잘 안다는 선입견을 버려라당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은 초보에 지나지 않았다. 죽을 목숨. 결딴난 인격, 깨진 관계를 원상 봉합하는 신비한 능력이 감춰있다.지금 불꽃 김남준 목사와 함께 심자가의 가슴팍 밑을 들춰보라. 거기서 '다 이루었다'의 피묻은 메시지를 무릎 꿇고 접수하라.복음만이 희망이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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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같은이야기 제2196-2198에 소개

"저는 안타까움과 기쁨 속에서 내가 발견한 지니의 빛을 신학교 학생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깨달은 내용을 작은 프린트물로 만들어서 신학교 클래스에서 읽혔습니다.(13페이지)"
신학교에서 김남준 교수님을 만나 그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실은 어쩌면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는지 모릅니다. 책의 서두에 나오는 그 프린트물을 받아 읽은 사람중에 한사람으로서 그때의 순간들이 아련하게 떠 오릅니다. 프린트물보다도 프린트물을 복사한 복사본이 더 많이 돌아다녔던것 같습니다. 그때 '십자가'라는 복사본 책을 다른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친구에게 빌려 줘는데 아직도 반환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 출판사에서 근사하게 표지를 바꿔 다시 출판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흐릿하게 복사되었던 복사본이 그립습니다.
'진정한 복음의 맛을 보는 참 복음 회복서 -피묻은 복음에 빠져라'는 1997년도에 출판된 책인데,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심장이 뛰게 하는 근사한 책인것 같습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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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십자가와 고난의 신앙

성경책의 가장자리 부분을 붉은 색으로 칠한 까닭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순교의 붉은 피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펴서 복음 진리에 접하는 순간마다 자신에게까지 도달한 이 영광스러운 복음이 순교자들의 피 뿌리는 헌신을 통하여 전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금박으로 물들인 성경이 유행하는 것처럼 신앙에 있어서 고난과 희생보다는 현세의 번영과 성공이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덕목인 것처럼 오해되고 있습니다.


2.불꽃같은 사랑으로

우리의 영혼 한복판에는 우리의 마음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십자가를 향한 사랑에 불타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값없이 주신 이 아름다운 구원을 헛되이 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얻은 구원인데 악하고 더러운 옛 삶으로 물러갈 수 있겠습니까? 순결하고 흠 없으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것이 우리의 허물과 죄악인데 놀라운 사랑 받은 우리가 어찌 또다시 주님을 욕보일 수 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는 것은 십자가를 안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대하여 낯설다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낯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십자가 사랑에 대한 불꽃같은 감격에 벅차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불꽃처럼 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3.기차 대합실에서

가을이 되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기차를 타고 놀러 가던 공휴일의 가을날이 기억납니다. 한나절을 유원지에서 놀다온 사람들은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를 타려고 일찌감치 대합실에 모이기 시작합니다. 기차를 기다리며 대합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대합실 의자에 누운 채 모자를 얼굴에 덮고 잠이 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대합실 마당에서 동전 던지기에 내기를 걸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대합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화투를 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대합실 안에서는 몇 개 안 되는 의자를 서로 차지하려고 서로 승강이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창구에서 기차표를 팔고 이윽고 열차가 당도하면 그들은 술병도 버려 두고, 깔고 앉았던 신문지나 좋은 자리를 다투던 의자도 버려두고 모두 기차에 올라탑니다.
모두들 가버린 한가로운 기차역의 대합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대합실 문을 비집고 들어온 가을 바람에 낙엽처럼 구르는 휴지와 쓰레기들뿐, 아무도 없는 그곳에는 남아있는 이의 가슴을 시리게 하는 외로운 적막이 감돌뿐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함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옥이라는 기차를 기다리고 어떤 사람은 천국이라는 열차를 기다린다.”


4.전도상은 신형 승용차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우선적인 특징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에 대한 연민입니다. 오늘날 조국 교회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복음 전도의 열정은 교회의 영적인 현실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구원받은 감격에 넘치는 때를 제외하고는 주님의 심장으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한 적이 없습니다.
어느 교회에 말씀을 전하러 갔는데 본당 앞 로비에 웬 반짝반짝하는 새 승용차 한 대와 대여섯대의 오토바이가 서 있었습니다. 교회 건물 안까지 차가 들어와 있는 것이 하도 이상해서 옆에 있는 그 교회 교역자에게 이것들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이번 전도기간 중 1등한 사람에게 줄 상품입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인간의 탐욕이라도 자극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업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도라는 행위가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복음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어찌하든지 교인들을 많이 모아서 교회 건축하느라고 진 빚을 갚아야겠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식으로 세상의 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리어 교회에 나오게 된 사람들이 자기를 인도한 교인이 승용차를 타 가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5.슬피우는 아이들

“그 지방에서는 어른들이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는 소식을들은 어린 아이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지옥불을 보고 두려워하던 중 예수님께로 피하자며 기도에 힘썼다. 아이들이 커다란 영적 감화를 경험하고 흐느껴 울기를 시작해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자 어른이 그 아이들에게 우는 이유를 물으니 그들은 ‘십자가의 예수님은 자기를 많이 사랑하셨는데 자기들 마음 속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가슴 아프다’고 고백하며 밤새워 기도하였다.”
1906년경 인도 카아시 지방에 부흥이 찾아왔을 때 레이 놀즈 선교사가 기록한 한 광경입니다.
 

6.부흥의 중심, 십자가

참된 부흥과 거짓된 부흥은 집회의 열광적인 분위기나 모이는 사람들의 수나 기적의 유무에 의하여 구별되지 않습니다. 가장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열광적인 집회라고 해도 영혼의 회복과는 무관한 집회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격렬한 종교적인 감성이 아니라 그들이 거기서 무엇을 깨달았으며 어떤 진리를 체험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참된 부흥은 언제나 감격적이고 뜨겁고 격렬합니다. 잃었던 하나님과의 평화를 회복하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감격적인 곳에는 언제나 뜨거운 정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열광적인 것이 곧 부흥이라거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반짝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금이라고 단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입니다.


7.어리석은 상징

예수님 당시의 문맥에서 보면 십자가는 사형수를 못 박는 형틀에 불과하였습니다. 인류 역사에 생겨난 종교 가운데 이렇게 끔찍한 형틀을 종교적 상징으로 채택한 종파는 없습니다.
그들은 보다 고상한데서 상징을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회교의 상징이 초승달이고, 불교의 상징이 만(卍)자인 것은 종교를 상징하는데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상식을 깨고 죄수를 죽이는 형틀을 종교적 상징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것도 십자가 처형이 아직도 유효하고 있던 당시에 가장 신성한 신앙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의 이 같은 행동은 마치 오늘날 사형장에서 쓰다버린 오랏줄을 가지고 “그러나 내게는 이 오랏줄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하고 말하려는 것과 같이 말도 안 되는 시도였다는 것입니다.


8.나 만나서 뭐할래?

제가 알고 있는 신실한 형제가 하나 있습니다. 영적인 어둠 속에서 고통하다가 복음 진리를 깨닫고 큰 은혜를 받은 형제였습니다. 여름 수련회를 앞두고 하나님께 오직 하나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그것은 다시한번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오랜 기간 동안 그 한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드디어 수련회가 시작되었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수련회는 끝나가는데 하나님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 제목이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 처참하고 실망한 마음으로 금식하며 엎으려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만나야 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서 만나 주시옵소서” 어느 순간 뜻밖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나를 만나서 뭐 할래?”
“... ...”
“살아가거라. 네게는 이미 내가 준 말씀이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거라”


9.당신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여기 한 시금석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참된 신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길은 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관심사 뒤에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이든 간에 그의 행함이 그가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말해주지 못합니다. 그의 지식이나 소유가 그가 누구인지를 정직하게 말해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욕망은 그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말해줍니다. 한 사람의 인격을 다스리고 있는 지배적인 욕망이 무엇인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의 통치에 목말라 하는 대치할 수 없는 갈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가 만약 세속적인 사람이라면 세상의 즐거움에 그렇게 목말라 할 것입니다.


10.최고의 가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거룩을 잃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는 형식적인 신앙 생활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그렇고 기도를 해도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배드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올 때에는 잡다한 생각을 가지고 나왔다고 하더라도 돌아갈 때에는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느끼면서 거룩한 삶을 위한 목표에 의식과 마음이 고정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서 최고의 가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리가 그러한 가치를 이루어 나가는 가장 중요한 방편입니다. 


11.이데올로기를 조심하라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영성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추구한 결과로 획득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도덕적인 삶은 신앙의 목표라기 보다는 성화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윤리가 아니라 거룩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해 가는 것은 구원 이후의 선택 사항이 아나라 구원 그 자체입니다.


12.그 사랑 잊지 말라

오늘날 우리의 몸과 마음은 너무나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늘의 축복과 영적인 부요를 인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살아갑니다. 하늘에 속한 영광스러운 복음들은 땅에서 환영받는 천박한 복음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신앙을 빌미로 이 세상의 탐심을 만족시켜 보려는 마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삶에 대하여 시인은 말합니다.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시17:11)


13.조국 교회에 필요한 것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지고, 복음을 듣는 죄인마다 이 십자가 앞에 참회하는 것 말고는 세상은 희망이 없습니다. 교회는 이 일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십자가를 등진 채 고통하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대답은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이 모든 세상의 비참한 죄악은 해결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을 고치도록 부름 받은 조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금이나 은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피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감격하며 십자가를 삶으로 보여주는 그리스도인들과 그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에 불붙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소명을 따라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날이 속히 오기를 기다립니다.


14.교회가 피묻은 복음을 소유하는 대신

교회가 피묻은 복음을 소유하는 대신, 세상의 사조에 적당히 희석된 복음을 전할 때 세상과 교회는 점차 그 구별이 모호해집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감격한 교회가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 진리를 능력있게 선포 할 때, 구속의 장엄함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스럽게 드러나고 세상의 거짓된 것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15.영혼은 안녕하십니까?

참된 신앙은 깊은 겸손과 깨어져 상한 마음, 겸비한 심령, 은혜와 거룩함을 향한 목마름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상태는 건강한 영혼에서 비롯됩니다.
여러분은 영적 생활에 얼만큼의 시간과 마음을 바치고 있습니까?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함 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함으로 영혼을 보양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은밀한 지성소 한 가운데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하십니까? 하나님을 뵙지 못하는 형식적인 기도생활에 고통을 느끼리만치 깨어있는 기도의 영으로 살고 있습니까? ⓒ 김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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