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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임재를 경험하는 길- 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575페이지나 되는 두툼한 책이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금방 읽힙니다. 저는 천천히 쉬어가면서 읽었는데도 3일밖에 안 걸렸습니다.
오늘날 이세상에 많은그리스도인들이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며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삶을 삽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언젠가 이 땅에서 생명이 다하는 날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으며 삽니다.
그러나 현재, 지금, 이 자리에서의 삶은 어떠한가요? 성경은 지금 이 순간에도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안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지치고 피곤하여 눌린 삶 가운데 있으며 천국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자유로움과 영광과 빛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천국을 경험해야 합니다. 나중에 죽은 후에는 당연히 그 기쁨과 영광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겠지만, 지금도 천국의 중심 원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동일하게
천국의 그 놀라운 평화와 기쁨을 맞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책에서 그 원리를 알려 줍니다. 실제적으로 그 원리를 적용하고 경험한 간증들도 책의 뒷부분에 달려 있어서 굉장히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삶 가운데 적용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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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9장- 예배를 통하여 열리는 천국 - 내용 일부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장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중심은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주간의 피곤한 일을 마치고 휴일이 되었을 때 비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휴식이나 오락, 취미 생활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이 되면 가장 먼저 예배로부터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은 항상 예배를 통하여 표현 됩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결혼을 하게 될 때 그리스도인들은 결혼예배를 드립니다. 그것은 결혼식이 아니고 결혼 예배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새로 시작하는 가정이 주님의 지도와 인도하심 가운데 있기를 기대하며 그 가정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개업 예배를 드립니다. 사업장에 여러 믿음의 자녀들이 모여 같이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며 주님께서 그 사업장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그 공간에 임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먼저 하늘 나라에 부름을 받게 되었을 때도 믿음의 사람들은 예배를 드립니다. 그것은 장례예배입니다. 단순히 사랑하는 이들의 떠나감을 슬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하며 그들의 삶을 주장하셨던 주님께 대한 감사와 신뢰를 고백하는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뿐 아니라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즐겨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사를 하게 되면 이사예배, 여행을 가게 되면 떠나면서 예배를 드리며 도착해서도 도착예배를 드립니다.
아침에 잠시 드리게 되는 큐티를 통한 말씀의 묵상도 일종의 예배라고 할 수 있으며 하루를 마친 후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드리는 기도의 시간도 역시 넓은 의미의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삶의 중심에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삶의 모습니다.

그러나 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며 삶의 중심에 모시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살며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삶의 목표를 결정하고 추진합니다.
비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대치하여 드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조상을 위한 제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섬기지 않으므로 일의 잘되고 못됨이 조상의 복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명절이 되어 가족들이 함께 모이면 제사를 드리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명백합니다. 제사는 하나님의 금하시는 것이며 그것은 조상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고전 10:20-22)

제사를 드릴 때는 조상의 영들이 오는 것이 아니라 귀신의 영들이 와서 그 제사를 받으며 제사를 드린 영혼을 사로잡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귀신들에게 드리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느냐, 귀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느냐 하는 것은 그 영혼의 소속을 천국으로 하느냐 지옥으로 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예배의 중심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의식에 그치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의 형식 가운데는 기도가 있고 찬송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다 있다고 해서 온전한 예배가 다 드려진 것은 아닙니다. 예배란 근본적으로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찬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에는 예배의 중심 의미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2)

메시지는 명백합니다. 예배란 곧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비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삶의 모든 중심이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드리는데 그것은 자신을 하나님께 양도하는 행위입니다. 그리하여 삶의 모든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게 됩니다. 그리하여 모든 삶, 모든 목적과 의미의 중심에 주님이 계신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주인이었던 삶에서 내려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몸과 영혼을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께 드려진 자로서 주님을 높여 드리고 그분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아마 믿기 전에는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그분을 삶의 중심으로 시인한 후에는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이전의 삶에 속한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 형제가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믿고 나서 생각해보니 자신이 친구들과 더불어 여태까지 많은 이야기를 하고 듣고 했는데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결국은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이야기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재미있는 통찰력이고 깨달음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아직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매사에 자신을 높이기 원하며 자신이 인정받기 원하며 자신을 드러내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두움의 영계, 지옥계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고 영혼의 눈이 뜨여질수록 그는 자신을 높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며 그분만을 높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예배의 삶인 것입니다.

예배의 중심은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며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그에게 천국의 영계가 열려지게 됩니다. 즉 그의 육체는 아직 이 땅에 있으나 그의 영혼은 천국의 빛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며 기쁨과 행복감으로 가득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며 잘난 척을 할 때 그의 육체는 그대로 이 땅에 있으나 그의 영혼은 어두운 곳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어떤 이들이 주를 시인하고 영접하여 그의 주인으로 고백하게 되면 그는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며 몸은 이 땅에 살지만 천계와의 교류를 가지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천사들이 그를 돕기 위하여 파송되며 그를 둘러싸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자신을 높이며 잘난 척을 하게 된다면 천사들은 귀를 막고 사라지게 됩니다. 그들은 그러한 것들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순간에 그의 영혼은 어두운 곳으로 떨어져 악한 영들이 그를 누르고 사로잡게 됩니다. 그는 천사들이 곁을 떠났기 때문에 보호를 받을 수 없으며 영적인 어두움 속에서 고통을 겪게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감이 아주 둔하고 마비된 사람은 그것을 잘 감지할 수 없습니다.
피상적으로 주를 믿으며 영적 세계로부터 오는 은총과 능력을 알지 못하는 이들도 영들이 오는지 가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영감이 있는 사람은 곧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자기 자랑을 시작할 때 주위의 공간은 흑암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곧 영혼의 느낌이 허무하고 삭막해지며 머리가 아파지고 심장에는 고통과 압박감이 오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게 될 때 거기에는 지옥의 영들이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공간에서는 지옥이 시작됩니다. 지옥의 영들은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며 자기가 주권자인 것처럼 여기는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영적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영적 법칙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 잘난 척을 하고 자신을 높이며 남을 비난하는 등의 대화를 나눌 때 그 곳에는 어두움의 영들이 가득 채워져 있으며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거기서 상처를 받고 불쾌함을 느끼며 헤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영이 아주 마비되어 지옥의 영으로 사는 이들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 남을 비난하고 자신을 높이는 데서 기쁨을 얻기도 할 것입니다. 남들이 인정하는 것을 통해서 기쁨을 얻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지옥의 영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내면의 영적 감각이 마비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교통의 기쁨을 알고 내면의 영적 기쁨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은 그러한 교제와 대화가 몹시 고통스러우며 심령이 몹시 아픈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높이게 될 때 거기에는 천사들이 오며 순결한 기쁨과 천국의 빛과 영광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것은 대화를 통해서든 예배의 형식을 통해서든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는 곧 이러한 천국의 빛과 영광을 경험하고 맛보기 위한 놀라운 통로입니다. 즉 예배는 어떤 형식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이들의 심령과 중심의 동기에 의해서 주의 영이 임할 수 있는 것이며 혼자서 드리던 둘이서 드리던 회중이 드리던 간에 그 천국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오래 전에 어디선가 이런 간증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신실한 그리스도인 남자가 독일에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공부를 하며 생소한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해야할 과제는 많았고 진도를 따라잡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고 교제할 대상이 전혀 없어서 너무나 외로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주 무력감과 고독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이제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몹시도 지치고 힘들었던 어느 날 저녁 그는 무심코 길을 걷다가 한 비어있는 교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처량하게 앉아 있다가 그는 갑자기 찬송을 부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없는 교회당에서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치고 피곤하고 슬프고 외롭던 마음이 이상하게 찬송을 부르면 부를수록 힘이 나고 마음이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무려 두 시간동안 그렇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나서 교회 문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는 조금 전에 지쳐서 교회에 들어왔을 때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외로움과 슬픔, 낙담, 무기력이 다 사라지고 그의 심령 속에서 생기와 기쁨이 넘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체험 이후 그는 자주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에 혼자 와서 몇 시간이고 찬송을 부르곤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힘을 얻어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귀국한 후에도 그는 계속 그렇게 혼자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삶에 아주 중요한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배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큰 소리로 힘을 다하여 찬송하는 것 ...그는 그렇게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깨닫지 못하던 순간에 예배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 예배를 통하여 그에게 임하시고 그에게 하늘의 위로와 힘을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살아있는 천국을 가져다 주는 천국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우리가 순결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주께 드리고 주님을 높이고 찬송하며 고백할 때 그 곳에는 천국의 임재가 시작됩니다.
이상하게도 피곤하고 힘들고 낙심이 되다가도 계속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고백드릴 때 우리는 어느 순간 그 공간이 바뀌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영은 신선해지며 천국의 기쁨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것은 천사와 주님의 성령이 그 공간에 임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능력과 천국의 광채로 채우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배가 있는 곳에는 천국이 있습니다. 주님을 높이는 곳에는 반드시 빛의 영들이 오게 됩니다. 그 예배가 반드시 음악과 노래를 동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입술의 고백으로 드릴 수도 있으며 마음 속의 언어로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드려지는 형식이 어떠하든지 그 중심의 고백과 헌신에 따라 천국의 영과 임재는 오기 시작합니다.
천국과 영계는 보이는 물질계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들이 다 똑같은 영계를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물리적인 공간에 있으며 같은 예배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각자가 경험하는 천국의 빛과 영계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주께 드리며 주님을 높이고 앙망하는 그 중심의 자세의 차이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즉 좀 더 깊이 중심으로 주님을 높이기 원하는 이들에게는 좀 더 강력한 천국과 기름부음이 임할 것이며 그러한 갈망이 그다지 크지 않은 이들은 천국의 외곽의 작은 빛을 경험할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주님을 높여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천국의 빛과 영광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끝없이 만족감과 행복감, 사랑과 평화와 기쁨을 안겨주며 주님의 임재에 대한 더 깊은 인식을 허락해 줍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외형적으로는 주님을 믿지만 그의 심령은 지옥과 같은 상태에서 삽니다. 불안과 근심과 분노와 음란과 탐심과 온갖 악성과 눌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주님을 높이지 않고 자신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예배하지 않고 자신을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영들이 그에게서 멀리 떨어지며 지옥의 영들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여러 재앙의 생각과 감정을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의 중심은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천국의 중심도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예배를 통해서 천국의 세계는 열리며 우리는 그 영광의 세계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진정한 예배자로서 살아가야 하며 더 깊은 예배와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예배와 주님을 높이는 것에서 발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천국의 중심과 실제를 좀 더 많이 누리고 맛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원

*들꽃편지 243호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