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남준  | 출판사 :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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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서게 하라오늘날 조국교회는 일상적으로 강단을 오르내리는예배 인도자가 아니라 불붙는 설교자를 필요로 합니다.단지 사람의 지혜로운 말을 들려줄 강단이 아니라충천하는 화염과 같은진리에 불붙은 강단이어야 합니다.목회자는 자기를 설교자로 세우신 하나님만 사랑하고,진리를 선포하는 일에 자신을 다 드려야 합니다.이젠 교인들을 살마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할 때입니다.진리의 거봉들을 누비며 하나님을 만나고 온 신령한 설교자가그리워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가슴이 시리도록......[더보기▶]





김남준 목사의<청중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설교자>를 읽다

신앙과 은혜경험시리이즈 다섯 번째로 나온 이 책은 '설교'에 대한 책이 아니라 '설교자'에 대한 책이다. 학교다닐 때 '하늘로부터 온 사람 - 세례요한'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을 읽고 요약한 적이 있어서 두 번째 읽은 셈이다.
오늘날 조국교회는 일상적으로 강단을 오르내리는 예배인도자가 아니라 '불붙는 설교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강단의 문제이고, 강단의 문제는 설교의 문제이고, 설교의 문제는 곧 설교자의 문제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내내 불꽃같은 설교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꿈틀거림을 느꼈다. 설교사역을 시작하려는 예비 목회자들이나 자신의 설교사역을 점검해보고 싶은 분들은 꼭 읽어야 될 책이다. ⓒ최용우

밑줄그은 부분 몇 토막

1.설교는 설교자입니다.

설교자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커다란 저수지를 생각합니다. 산기슭을 여러 개 돌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으면 드넓은 들판, 그 많은 물길들이 가뭄으로 인하여 염려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어 수문만 열어 주면 개울물이 목마른 물길을 한걸음에 달음질하며 온 들판을 물댄 동산처럼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영적으로 원숙해져 갈수록 설교자와 설교가 얼마나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세계적인 설교 원고를 가졌다 할지라도 설교자의 사람됨이 그러하지 못하면 그 설교는 동네적인(?)설교도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설교사역을 계속 할수록, 설교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수는 설교자 자신의 영적인 변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설교자의 영적 변화와 거룩한 인격의 성숙, 모든 생활에 있어서 성화의 진전이야말로 더 높은 수준의 설교를 하는 비결임을 깨닫게 됩니다.

2. 세례요한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고 외치는 동안
서기관들은 율법책의 글자를 베끼는 일에 전념했고
율법사들은 사람들의 유전을 궁리해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외식하는 종교생활에 바쁘고
사두개인들은 로마에 아부하여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느라 여념이 없었고
셀롯 당원들은 민족의 해방을 위해 무장봉기 하느라 분주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시대에 태어났지만 각기 다른 일로 분주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일에 분주했지만 세례 요한 이외에 어떤 사람들도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3.남다른 준비

무엇이 들판에서 야생초처럼 자라온 요한을 하나님의 눈 앞에 '큰 자'가 되게 하였을까요? 복음서는 그가 태어난 기사를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선포 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광야에 있던 기간에 대하여는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눅1:80)
이로 미루어 보건대 요한은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에 이미 광야로 보내어진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는 약 3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뛰어서 곧바로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때는 그가 이미 "큰 자"가 되어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그가 "하나님의 눈 앞에 큰 자"로 되어간 것은 광야에서 있었던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4.광야에서 경험한 하나님

세례요한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큰 자로 만들어 준 것은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곳입니다. 성경은 그곳이 "빈 들"이었다고 가르쳐 줍니다.(눅3:2)
선지자 세례요한에게 말씀이 임한 곳이 빈 들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왜 제사가 드려지는 화려한 성전이 아니었을까요? 왜 유능한 랍비들이 열심히 율법을 강론하던 회당이나 따뜻한 부모의 사랑이 있는 가정이 아니었을까요? 왜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는 예루살렘의 거리나 율법을 배우던 공부방이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질문은 실로 진리의 사람이 채 되기도 전에 단지 인간적인 의욕에 불타 목회의 현장으로 달음질치는 이 시대 사역자들의 뒷덜미를 붙잡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교자에게는 하나님과의 독대(獨對)를 위한 거룩한 외로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상의 온갖 속된 것에서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홀로 진리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그러한 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빈 들"은 이러한 일에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5.거룩의 사람

오늘날 설교 사역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사람들을 참회시키는 도구로서의 기능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설교를 통해서 자신들의 죄를 지적 받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거짓과 위선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진실한 삶을 살도록 회개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위하여 설교를 사용하시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설교자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사모함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설교 사역 속에 함께하는 성령의 역사가 없거나 매우 약하기 때문입니다.

6.성직자의 권위

역사적으로 볼 때 성직자의 권위주의는 항상 교회의 참된 영적 권위가 사라질 때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교회가 하나님이 세우신 특별한 기관임을 보여주는 일에 실패할 때 교회는 건축 양식이나 예배당의 구조 및 복잡한 성직 제도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권위를 강요하는 일에 골몰하여왔습니다.
강단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매진하고 설교자들이 외치는 진리가 교인들의 가슴에 능력 있게 다가오던 시대에는 설교자가 자신을 제사장인 것처럼 내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가 선포하는 말씀은 그가 영적인 사람임을 입증해 주었고 그가 증거 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기운이 깃들여, 듣는 자들은 그 진리에서 영적 권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진실성과 영성이 감퇴되자 교회는 참된 권위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설교자들은 진정한 영적 권위를 대신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마치 구약 시대의 제사장의 후예인 체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7.크고 놀라운 일

1993년에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 우주에서 일어날 것을 예보하였습니다. 지름이 1키로미터가 넘는 21개의 혜성 조각들이 목성에 충돌하는 일이었고 그것은 실제로 충돌하였습니다. 이때 발생한 폭발력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1억배 가량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솟아오른 불기둥은 지면에서 약 1000-3000키로미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눈을 감고 묵상을 하거나 눈을 뜨고 하늘의 별들을 우러러 보아도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지를 실감나게 느끼지 못합니다.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땅덩어리 위에 펼쳐진 하늘과 우주를 매일 보면서도 그 넓이과 높이와 길이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의 천문학자들이 모두 주목하던 이 엄청난 대폭발도 우주 전체의 규모에 비춰 보면 넓은 운동장에서 티끌이 먼지에 부딪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넓고 광대한 우주를 누가 만드셨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8.설교자가 명심할 일

설교자는 이 말씀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그는 설교 사역에 종사한다는 이유 때문에 교인들과 구별된 사람이 아니고 단지 설교한다는 일 때문에 거룩해지거나 능력이 많아진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설교자를 특별한 사람으로 구별하는 것은 그가 하고 있는 설교 때문이 아니라, 그가 체험한 하나님 때문이며 그와 동행하고 계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물론,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설교할 수 있고 설교 사역에 합당한 능력이 없이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인에게 있어서나 교회에 있어서나 불행한 일입니다.

9. 설교자, 하나님의 증인

설교는 설교자 자신이 좋아하는 성경 본문을 가지고 자기 사상을 교인들에게 설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설교자에게 그런 권한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설교는 단지 성경을 논리적으로 가르치는 교수행위가 아닙니다. 설교 속에는 반드시 설교되는 내용을 목격하고 체험한 설교자의 증언이 깃들여야 합니다. 성경의 중심이 그리스도시니 성경을 설교해야 하는 설교자의 증언의 중심 도한 그리스도셔야 합니다.
한 설교자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증거 하는 설교를 한다면, 그는 자신의 설교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한지 상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증언이 거절당함으로써 자기가 무시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자신이 목격한 진리가 거절당함으로써 사람들이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은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10. 증거하러 온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교인들에게 전해질 때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일과 같은 진리의 영향력은 성령으로 인한 것임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가 최선을 다하여 설교를 준비하였다 할지라도 자신이 해놓은 준비가 아니라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땀을 흘리며 설교의 내용들을 준비하고 기도의 눈물로 준비된 내용을 반죽하여, 마지막으로 성령의 불길로 그 반죽을 구워 진리의 떡을 만들어야 합니다.

11.설교할 내용을 마음에 불붙이는 작업

찰스 스펄전 목사의 설교 준비 방법을 소개하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정규 교육으로 치자면 고등학교 정도의 교육 밖에 받지 아니하였지만, 그는 아주 열심 있는 독서가였습니다. 평소, 성경을 열심히 탐구하던 그는 설교하고자 하는 본문이 정해지면 종종 자기 아내를 불러서 서재에서 본문에 관한 여러 주석들을 읽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설교의 기본적인 골격을 잡은 후에 즉시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가리켜서 스스로 말하기를 "설교할 내용을 마음에 불붙이는 작업"이라고 부르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주일 전날 이루어졌습니다. 자기가 설교하고자 하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에게 말씀하시도록 하는 것이 "설교할 내용을 마음에 불붙이는 작업"의 시작이었습니다.  

12. 두 종류의 복음주의자

복음주의자 가운데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뇌된 복음주의자이고, 또 하나는 경험한 복음주의자입니다. 세뇌된 복음주의자는 자신의 체험적인 확신 때문에 그러한 신학적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을 배우고 익히며 다른 사상들을 거절하는데 숙달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사람입니다. 복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을 받았던 설교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성품에 대한 특별한 영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령한 경험들은 그들로 하여금 은혜로운 정서가 충만한 설교를 하게 하였고, 그분을 주인공으로 하는 성경 속에서 끊임없이 생수의 샘을 길어 내게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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