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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남준 목사님의 첫 번째 설교집이며, 성경의 위대한 장 설교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사야 53장 강해설교입니다. 이사야서 53장은 모두 12절로 되어 있는데 한 절을 한 토픽으로 해서 모두 12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조금 딱딱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는데 그래도 참고 억지로 읽었습니다. ㅠㅠ
다음은 책을 읽다가 밑줄 그은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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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짧은 생애 동안 살면서 주님은 단 한 순간도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려서 하나님을 섬겼고 고통받는 이 세상의 백성들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시고 모든 것을 버리시는 그분을 향해 세상의 마지막 대접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었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높이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못박는 자들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 자기의 유일한 생명을 스스로 못질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좋으신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세상이 행한 일이었습니다.  

2. 질고와 멸시를 당하셨도다

많은 인간들이 자기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가 필요 없다고 가르치는 사상과 생각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창조하신 것을 알지 못하고, 인간의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일이 바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비참하게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하면 메시아를 통해서 그분과의 거룩한 교제에 이르러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3. 시대 정신

한 시대 안에는 항상 그 시대의 정신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시대에 태어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시대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그분을 메시아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정신보다는 구약성경이 증거하는 메시아의 예언에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증언보다는 시대의 정신에 더 충실하였고,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시대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불행한 어리석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인 과학을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미신적인 신념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4. 두 가지 인생

이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 인생밖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께 순종하는 인생과 반역하는 인생입니다.

5.우리는 마치 양 같아서

우리들의 문화권에서 양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기질적으로 양순하고,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고, 다른 가축들과 다툴 줄 모르는 순한 성품을 가지고 있고, 인간들과 가까이 지내고, 목축을 위하여 잘 길들여지며, 비교적 친근하고 깨끗한 짐승이라는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들이파란 풀밭에서 한가로이 뛰노는 그림과 같은 장면을 연상하며 거기에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중동지방에서의 양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이러한 생각과 상충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란과 이라크 같은 중동지방에서 통용되는 가장 상스러운 욕중의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뜻밖에도 "양 같은 놈"이라는 말입니다. 그 지방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돼지 같다"는 말과 같이 천박하고 치욕적인 욕설입니다.

6.하나님과의 평화

주님은 당신의 일들을 이루실 때에 당신께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도구로 살기 위해서는 그것이 큰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고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과정을 통해서 당신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십자가는 맹목적인 용기로 지는 것이 아니고 그 십자가를 지는 자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확신으로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평화 속에서 사는 것이 그것 없이 열렬한 헌신 속에서 사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7.그리스도인의 목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거룩한 목표가 없는 사람은 그 자체가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열렬한 기도가 없습니다. 죄악 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결정적인 특징인 사랑의 감격과 결단의 용기도 없을 것입니다.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거룩한 목표를 응시하고 달음질하며 사는 신실한 몸부림도 없을 것입니다.
아아,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인생길을 지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재앙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주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랑으로 구원을 얻은 여러분에게 주신 섬김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 중에 사명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아직도 살아 있는 이유입니다.  

8.세상은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길가의 구르는 돌처럼 흔한 것이 일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불순종하며 살아가고 있고 회개치 아니하는 죄인들이 많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느냐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종사할 때 그것은 단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일하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와 거룩에 영향을 받으며 우리 자신의 성품이 주님을 닮아가지 아니하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친교로 말미암는 거룩한 성품의 변화 없이 섬기는 것은 겉보기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단지 자기 스스로 택한 일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섬김과 교제의 신비입니다.

9.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라

우리가 아무리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펑펑 우는 감격 속에서 나날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여러 날 동안 입을 열어서 누군가에게 이 크고 놀라운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감격은 십자가에 대한 값싼 감상(感傷)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까? 입을 열어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거룩을 범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복음으로 열매 맺어 하나님께로 거두어지기를 사모합니까?

10.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오늘날 자기의 욕심을 따라 탐욕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이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런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 역시 세상 사람들 못지않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했던 그 탐욕스러운 죄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두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부활의 소망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현세에 대해서만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위해서는 애쓰고 수고하며 많은 것을 쌓아 두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는 아무 것도 쌓아 둘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모두 그 꿈이 세상에만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십자가를 지지 않는 신앙 생활로 만족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11.거룩한 자존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다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싶어 하지만 십자가의 복음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과 함께 부활과 영광의 약속에 참여할 것은 소망하지만, 그런 소망을 가진 자들에게 몸소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삶의 모범을 따르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길은 아무나 걸어가는 길이 아닙니다. 참 신자의 길은 아무나 걸어갈 수 있는 길이 결코 아닙니다. 멸망으로 이르는 길은 넓고 많은 사람이 그 곳을 지나기에 외로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으로 이르는 길은 지극히 협착하고 위험하며 외로운 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고 싶고, 구원이 초라해 보이지 않도록 거룩한 자존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고 싶다면, 우리의 신앙이 피묻은 복음의 반석 위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12. 무감각한 그리스도인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십자가에서 자기의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슬픔과 비례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신령한 슬픔이 깊으면 구속받은 기쁨도 큰 법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수많은 그리스인들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목표 없이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보십시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잊고 살아갑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바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인함인데, 십자가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단지 로마의 병정들이나 당시의 간악한 종교 지도자들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