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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의 <이름뿐인 신앙에서 벗어나라>를 읽다

이 책의 원래 이름은 <육적 그리스도인 대 영적 그리스도인>인데, 재판을 펴내면서 <이름뿐인 신앙에서 벗어나라>로 바뀌었다. 아내가 책읽는 사모모임에서 필독서로 읽었던 책을 쩍! 쩍! 거리며 읽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었다.
신앙 생활을 무슨 취미 생활하는 것처럼 건성으로 하여서는 결코 거룩한 영적인 성도로 변화될 수 없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중국을 통하여 복음을 믿고 조국 땅에 교회를 세우고 그 복음이 퍼지던 때에 그들은 신앙 생활을 무슨 취미 생활하는 것처럼 건성으로 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경제는 어렵고 타락한 탐관오리들의 괴롭힘으로 힘겨워하는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면 그들의 신앙 삶이 얼마나 처절한 몸부림이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물질이 풍성한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기독교 신앙을 취미 생활의 하나정도로만 여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의 성숙은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고 영적인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미성숙한 성도들만 교회안에 넘쳐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연단의 시기는 치료하는 시기요, 그들은 그때마다 자라나고 있다.' 믿음의 선배들은 연단의 시기를 통해 치료받았으며 그때마다 믿음의 거목들로 자라났다. 그러나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뿌리가 심히 연약하여 바람만 불어도 모두가 뿌리를 드러내며 넘어져버린다. 토마스 브라우닝은 300년전에 찰스 2세의 무서운 핍박이 있었던 시대에 살았다. 그는 노담프톤 감옥에서 그의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복음을 위한 고난의 잔이 더 달고 더 심오해집니다. 고난이 깊을수록 그 잔은 더 답니다. 충성심이 강할수록 밑바닥은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보다 더 행복한 자이다. 그가 비록 감옥에서 편지를 쓰는 처지에 있었고 우리는 푹신한 침대위에 누워있다 할지라도 분명 그가 더 영적으로 행복한 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같은 타락한 육신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도 이처럼 차이나는 신앙의 고백과 삶을 살아가는 것인가?
우리는 왜 영적인 변화를 기대하지 않고 있는가?
'자신의 영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힘겹고 의미 없는 일인지를 깨닫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간절히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힘겹고 의미 없는 일인지를...
다음은 읽으면서 밑줄 그었던 부분이다. 2005.8.10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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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사와 은혜의 차이점

은사는 그 사람의 영적인 성숙과 관계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성장에 있어서 유아기에 있는 사람이라도 은사를 받을 수 있으며, 회심과 함께 거듭나면서 그런 은사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현상들을 경험한다고 해서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은사는 내면 세계의 신령한 변화보다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적합하도록 만들어주는데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은혜는 신자의 내면 세계에 깊이 들어와 성품의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합니다. 죄와 불순종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만들어 주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내면에 존재하는 부패한 본성들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나아갑니다.

2. 이제는 끝내자

변화되지 않는 영혼들의 곤고한 상태를 생각하여 보십시오. 주님을 버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주님만 사랑하기에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집요하고, 세상만을 사랑하기에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의 기억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서도 평안을 누릴 수 없고 교회로 돌아와서도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는 마치 전쟁 가운데서 두 나라를 오가는 이중 간첩과 같아서 어느 나라를 오가든 아군도 적군 같은 두려움에 시달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지 않는 형식적인 신자들은 이처럼 곤고 하고 불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이 이제 지긋지긋하지 않습니까?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등과 좌절을 느끼며 사는 신앙생활이 괴롭지 않습니까? 이제는 세상과 교회 사이에서 오가는 방황을 끝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가장 가련한 사람

이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신앙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부터 멀어져 있으며, 하나님과의 친교의 상태로부터 소외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견고함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신령한 기쁨이 죄와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을 이기는 비결임을 결코 알지 못합니다.  

4.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지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은 의자를 뒤흔들고 기도할 정도의 펄펄 뛰는 육적인 열정이 아닙니다. 진실함에 기초하지 않은 즐거움은 값싼 흥분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열렬해지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진실해지려고 애를 쓰는 것이 보다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5.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표지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뛰어난 이해력을 갖습니다. 비록 미숙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아는 사람입니다. 신령한 은혜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통하여 더 깊은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결정적인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력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이 없거나 현저히 부족하며, 진리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기를 갈망하지 않습니다.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신령한 말씀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진리에 대한 적대감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신자들로 하여금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일에 자신의 사역을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가슴아픈 일입니다.

6.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정직한 인식 없이는 사람들의 헌신은 하나님께 오히려 고통이 됩니다. 자신의 영혼의 위험한 상태를 깊이 깨닫지 못한 자의 헌신은 섬김이란 미명하에 자기 의를 쌓아 가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조국 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교회의 성장이나 목회의 업적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정직한 선포와 성도들의 진실한 반응이 필요합니다.
진실하지 않은 성도는 하나님을 뵈올 수 없습니다. 도덕적으로 살면서 진실하지 못한 위대한 사람보다는 죄 가운데 살았어도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7.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세계에 들어가면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들은 기도 생활에 있어서도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선 우리가 신령한 은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면 이상하게도 하나님 앞에 드릴 기도의 내용이 많아집니다.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을 때에는 기도 시간에도 할 말이 별로 없었지만,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마음속에서 기도가 흘러 넘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단지 하나님께 청구서를 내미는 것 같던 기도가 이제는 구구절절이 사연이 담긴 간절한 호소와 감사로 변합니다. 그리고 기도 속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깊은 기도생활은 짧고 경박한 기도생활로는 이룰 수 없는 위대한 일을 가져다줍니다. 황폐하던 신앙의 인격을 거룩하게 하고, 성화를 촉진하며, 우리를 하나님과의 끊을 수 없는 친교의 경험 속에서 살게 합니다.

8. 피상적인 사고의 위험

오늘날의 조국교회의 영적 상황의 어려움은 신앙에 관한 모든 것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거룩한 나라의 백성들이 되는 일은 간단한 신앙의 구호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신앙의 본질을 믿음 때문에 이 세상에서 복을 받고 잘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죄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구원을 받고 내면의 부패성을 죽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따라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몇 가지 간단한 공식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깨달음으로 먼저 무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지는 거의 악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반역하는 삶과 병적인 유아 상태에 머문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상태는 바로 이러한 무지의 그늘 아래서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9. 어두움 속에 빛이 비칠 때

진리의 빛이 사라진 교회에서는 언제나 어두움의 영들이 활개를 칩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우매한 마음으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께 지배를 받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악한 영들의 세력에 의하여 다스려지게 마련입니다.
목회자들은 종종 자기 교인들을 열렬하게 만들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는데서 오는 열렬함이 아니면 모두 사악한 것입니다.  

10. 설교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지침

1.개인적으로 늘 성경을 읽고 묵상할 것
2.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분명하고 명백하며 확고한 가르침 아래서 살아갈 것
3.부주의한 마음으로 설교를 듣지 말 것
4.설교 중 쓸데없는 생각이나 졸음으로 말씀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할 것
5.설교 중에 다루어지고 있는 교리의 윤곽을 기억하거나 요지를 적어 둘 것
6.설교 중 당신의 영혼에 가장 크게 중요하거나 관심사에 대해 답이 되는 내용들을 특별히 기록할 것.
7.집에서 기독교 교리를 공부하도록 할 것
8.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설교 중에 들은 말씀을 묵상할 것
9.설교내용에 대하여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대답해 줄 수 있을만한 사람들에게 물어 볼 것
10.당신이 이해하고 싶어하는 교리들을 다룬 좋은 책들을 읽도록 할 것
11.지혜와 성령의 조명을 구하며 부지런히 기도할 것
12.당신이 알게 된 내용을 의식적으로 실천할  -리챠드 백스터

11. 하나님이 거절하지 아니하는 기도

하나님이 거절하지 아니하시는 기도가 있다면, 그것은 진리의 빛을 구하는 신자들의 기도입니다. 그들이 비록 병적일 정도로 오래도록 유아 상태에 머물렀던 신자들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기도한다면 소망이 있습니다.
"오 주님, 내 어두운 눈을 밝혀 진리를 보게 하옵소서. 나를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상태에서 신령한 신자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병적인 유아 상태에서 주님의 명예를 현저히 훼손하였던 저의 자난 날들을 용서하여 주옵시고 저를 새롭게 하여 주소서"라고 말입니다.  

12. 의(義)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생각하셨던 성경적인 '의'는 무엇입니까? 본질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롬4:2-5)
그것은 율법을 준수하는 것을 포함하고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그것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고백이며, 하나님 자신에 대한 사랑과 경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절대 의존의 마음입니다.

13. 성경이 말하는 의인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단지 율법의 요구와 일치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결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비록 연약하고 실패했을지라도 그의 내면 세계가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고 사랑하는 신앙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그는 의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사람들에게 진실한 참회를 통해 언제든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도 이러한 사실을 입증합니다.

14. 믿음에 대한 성경적 개념

오늘날에 유행하는 믿음에 대한 개념은 단순히 심리학적인 확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암시나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신념이 곧 믿음인 것처럼 오해되는 대가 많습니다. 자신의 욕망의 만족을 위하여 믿음을 활용하는 것이 신앙심 깊은 행동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본질적으로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한 신뢰입니다. 거기에 자기의 인생을 거는 것입니다.

15.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믿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비슷하게 생활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또 성경의 여러 가지 지식들에 대하여 남다른 지식을 갖게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래도록 익숙해진 기독교 문화에서 자라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볼 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치 체계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도 하나님과 영적인 연합을 이루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주하십으로 실제적인 영혼의 변화가 일어난 결과입니다.
한 사람이 공산주의 사상을 신봉하여도 그의 가치관과 삶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귀신이 들어가도 사람이 변하는데 하물며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성령께서 그 안에 오셨는데 어찌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16.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경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와 다름없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회심할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이후로 이어지는 신앙생활 가운데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영적 생활이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조국교회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좋은 선교적인 환경 때문만이 아니라, 올곧은 신앙생활을 위한 원칙을 지킴에 있어서 이 세상이나 불신자들과 호양(互讓)의 정신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아본 적 없고, 그분을 위하여 무엇인가 포기해 본 적이 없는 것은 단지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포기해야 할 결단의 순간이 수없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보다 소중한 가치가 그들의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가치관 자체를 받아들여본 적이 없거나 한때 받아들였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사건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이 계속되지 않으니 믿음을 따라 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17. 숲속을 거닐어라

성경의 진리를 단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과 영혼 깊은 곳의 체험을 통하여 아는 것과의 차이는 마치 아름다운 숲을 그림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그 속을 거닐어 보는 것과의 차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묵상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체험으로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그 숲의 그림을 또렷하게 해주고 색깔을 선명하게 해주어 회중들에게 좀 더 분명한 영상을 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묘사라 할지라도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이 풍성해 질 수 없지 않습니까?

18. 원색적인 십자가 복음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을 전하는 것은 너무나 원색적이어서 세상 사람들의 지성과 상식에 거스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거기에 적당히 인간의 사상을 가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변천하는 세상 속에서 불변하는 복음으로 승부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거스르며 고통하는 이 세상에는 어떤 소망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한 시대의 사상으로 물 탄 복음이 아니라, 순수하고도 강력한 십자가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벼락치는 것 같은 복음의 도전이 없기에 이 세상은 고통 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19. 싸우며 나아갑시다

이 죄악된 세상에서 의로운 삶을 살아가려 분투하는 연약한 신자들을 보실 때, 하나님은 그들을 얼마나 사랑스러워 하실까요? 그들은 잠근 동산 안에 있는 봉한 샘이며 덮은 우물과 같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눈 앞에서 소돔과 고모라성의 롯과 같을 것이며, 홍수를 앞둔 시대의 노아와 같을 것이며, 멸망을 앞둔 왕국시대의 예레미야와 같을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쳤어도 그들에게는 샘물처럼 그 지식을 흘려 보내실 것이며, 여호와는 당신의 친밀하심을 이처럼 당신을 경외하며 사는 이들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들로 하나님의 면전에 사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실 것이며 그들을 인하여 기쁨을 차마 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즐거움을 보이실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하나님은 당신을 바라보며 즐거워하시는 그들을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