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0006133822_00.jpg  이현주 목사의<물이 없으니 달도 없구나>를 읽다

1996년 당그레출판사 이춘호 사장님이 어려운 회사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10여권의 책을 그야말로 종이 값만 받고 팔 때 얼시구나 하고 샀던 책 중에 한 권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서너번은 정독을 했고, 수시로 책꽂이에서 빼 읽는 책이다. 이미 햇볕같은이야기에 쪼각글을 올려 함께나누었던 책이다. 이현주가 옮겨 엮은 ‘동양의 지혜’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이 책은 팍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옹달샘 같은 위안과 청송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 같은 사색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부분을 옮겨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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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죽고자 하는 이유

예수 이르시기를,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꼴찌가 되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으뜸이 되려고 ‘일부러’ 꼴찌를 하는 것은 어찌 될까?
영원한 꼴찌로 남겠지.

2.있다

예수 이르시기를, 진주를 돼지한테 주미 말라고 하셨다.
어떤 바보가 진주를 돼지한테 줄까? 세상에 그런 바보가 있을까?
있다.
있어도 아주 많이 있다.
당신은 당신의 진주보다 귀한 생명을 시방 누구에게 내어주고 있는가?
3.잘 가는 사람은

나무 팔러 왔다가 매만 맞고 돌아가는 늙은이.
세상에 도무지 한 일도 없고 이루어 놓은 일도 없다.
모든 때에 모든 사람을 섬기기만 했거늘, 세상 천지 어디에 그의 명예나 빛을 낼 것인가?
그러나 “잘 가는 사람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4.지혜의 책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요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
서재 가득 쌓여 있는 장서라 한들,
읽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엇이랴?
이사할 적마다 짐의 무게나 더하지.
날마다 밤마다 읽는다 한들,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엇이랴?
마음이 되비치지 않는다면
경을 읽어도 아무 유익이 없다.

5.제대로 된 학생

대도무문(大道無門)-큰 길에는 따로 문이 없다.
모든 학생(배우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배움의 길로 들어가는 문이다.
활짝 핀 장미가 동서남북에 밤낮으로 향기를 내뿜듯이
제대로 된 학생은 모든 경우에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배운다.
그에게는 이 세상에 교과서 아닌 것이 없다.

6.귀 있는자는

예수 이르시기를, 귀 있는 자 들으라고 하셨다.
귀 없는 자도 있나?
있다.
같은 라디오에서 헨델이 울려나오는데 어떤 귀에는 그 소리가 들리고 어떤 귀에는 안 들린다.
들리는 귀는 헨델을 자주 듣는 귀요 안 들리는 귀는 헨델을 한번도 듣지 않은 귀다.
먹어봐야 맛을 알고 맛을 알아야 먹을 줄도 안다.
들어봐야 귀를 얻고 귀를 얻어야 들을 줄을 안다.

7.모든 것이 하느님

학문을 하는 것은 날마다 보태는 것이지만
길을 찾아 걷는 것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라고 했다.(노자)
예수 이르시기를,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느님을 본다고 하셨다.
깨끗하다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이런 마음 저런 마음 없이 그냥 마음만 있는 사람 눈에는
모든 것이 하느님이란 말씀이겠다.

8.천사표 황금!

히틀러, 스탈린 따위 폭력을 쓰는 독재자들한테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구리를 금으로 바꾸겠다고 기염을 토하면서 여러 사람 고달프게 한 끝에 어느덧 구리로 바뀌어져버린 천사표 황금! (그들도 갓 태어났을 때는 귀여운 천사였다!)  

9.북극성

북극성은 붙박이별인가?
그렇다.
북극성은 과연 붙박이별인가?
아니다. 북극성이 만일 우주의 어느 한 점(点)에 문자 그대로 붙박혀있다면 이렇게 뱅글뱅글 도는 지구에서 볼 때 언제나 ‘한 자리’에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북극성은 그러면 붙박이별이 아닌가?

10.젊은이와 늙은이

“젊은이로 남는 것과 늙은이로 되는 것, 어느 것이 더 나을까요?”
“늙는다는 것은 뒤에 더 많은 허물을 남기고 앞에 더 적은 시간을 두는 것이다. 젊음이란 그 반대인데, 어느 쪽이 더 낫겠는지를 그대들이 판단하라.”

11.길은

문자(文字)는 말(言語)에서 나왔고
말은 침묵(沈?)에서 나온다.
“돌아감이 길의 움직임(反者道之動)”이라고 했다(노자)
길은, 그것이 참된 길이라면,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
근원은, 그것을 색깔로 말하면 희다(素)고 할 수밖에 없다.

12.천국에는

‘가르침’이 있을 수 없는 곳은 아래 두 경우
1.모든 사람이 멸종된 곳
2.모든 사람이 일어서 있는 곳
천국(天國)에는 교회당이 없다. 또 교도소도 없다.

13.절대진리

저 은하계 너머 알 수 없는 별을 휘돌아 감고 있는 ‘하늘’이
아느냐?
그대 코 끝에 닿아 있음을

14.소화기능

소화 기능에 탈이 난 자에게는 기름진 음식일수록 해롭다.
음식을 넣기 전에 우선 창자부터 비울 일이다.
무슨 말이냐고? 눈치가 그렇게 없는가?  

15.큰 그릇

우유는 담아 마실 수는 있지만 물은 담아 마실 수 없는 컵이나, 고기는 담을 수는 있지만 채소는 담을 수 없는 접시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컵이나 접시 따위는 오히려 작은 그릇이다. 영양을 공급하기로 말하면 사람의 말(言語)만큼 큰그릇이 어디 있겠는가?
참 스승의 가르침은 언제나 이랬다저랬다 한다. 왜냐하면 그는 큰 그릇이기 때문에

16.겸손

“나는 언제나 나를 낮추고 겸손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나의 겸손한 태도 앞에서 우쭐거리고 몸에 힘을 주는 사람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했고, 나의 겸손해 보이는 겉모습에 존경심을 나타내는 사람한테서는 잽싸게 도망쳤지요.”

17.족하다

사람이 죽을 때까지 날마다 밤마다 숨을 쉬지만
온 세상 산소를 다 마실 수는 없다.
잔칫상이 부러져도 술 한 잔 고기 한 점이면 족(足)하다.

18.한 마디

우리 모두 아무리 애를 써도 잊을수 없는 말 한마디씩 지니고 있지.
“너는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반드시 죽는다”

19.불취어상

거듭 말하거니와, 겉모습에 속지 말라!
불취어상(不取於相)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다.

20.만일 우리가

하느님은 한 물건을 모든 각도에서 동시에 볼 수 있는 분이라고 말한 이가 있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처럼 한 물건의 여러 맛을 동시에 ‘볼’수 있다면 훨씬 덜 싸우게 되겠지. 어쩌면 전혀 싸울 일이 없을 는지도 몰라. 너한테서 나를 볼 테니까.
현명한 돌고래는 ‘태평양’과 ‘인도양’ 문제로 다투지 않는다.

21.파계(破戒)

사람이 일층 계단을 밟지 않고 삼층 마루에 설 수는 없는 일이다.
요즘은 기독교 불교 할 것 없이 계(戒)도 없는 놈들이 파계(파계)한다고 설쳐댄다. 꼴불견인 것까지는 좋다. 그 바람에 애먼 사람까지 골탕을 먹는구나. 이 일을 어찌할꼬?

22.깨달은 이 라면

가난하면서 넉넉하기도 어렵지만
부유하면서 (마음이) 가난하기도 쉽지 않다  
깨달은 이 라면 가난하면서 넉넉할 줄 알고 부유하면서 가난할 줄 아는 것이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빌4:2)

23.기도할 때 만족이 느껴진다면

네가 기도할 때 기도한 사실에 스스로 만족이 느껴진다면 차라리 기도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자신의 기도가 흐뭇하게 느껴지거든 진짜로 자신을 낮추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될 때까지 기도를 중단하라.
남보다 더 오래 길게 기도하는 것이 그의 신심(信心)에 보탬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예수 이르시기를,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셨다.
기도는 하느님께서 들으시는 것.
제 기도를 제가 들었으니 흐뭇하게 느껴졌을 터인즉 그것은 하느님의 것을 훔친 것과 같다. 차라리 기도하지 않는 게 백 번 낫지.
그래도 기도는 해야 한다.
그래서 기도를 ‘하지 말라’가 아니라 ‘중단하라’고 한 것이다.

24.느낌

죽은 자에게는 감각이 없다.
저 거리에 가득 찬 인파가 모두 살아 있는 건 아니다.

25.사명

너의 사명(使命)을 기억하라.
잊었거든 전화를 걸어서 물어 보아라.
너와 하늘을 잊는 직통전화는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다.
지금 곧 무릎 꿇어라.

26.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법이라고 ‘러브 스토리’는 말했다. 맞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는 법이다.
네 손이 네 발을 씻어 주었다. 네 발이 네 손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까닭은 입이 없어서가 아니다.

27.화려한 버섯

새로 뚫린 고속도로변의 울긋불긋한 지붕들을 볼 적마다, 길을 향해서 반듯하게 서 있으면서 뒤에는 양철 조각을 댄 상가들을 볼 적마다, 왜 세상은 거짓을 강요하는가 생각해 본다. 겉모양만으로는 안되는 줄 몰라서일까? 아무래도 그러다가는 ‘회칠한 무덤’인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화를 입을 터인데.
안으로는 맑고 겉으로는 흐리며, 누더기 속에 옥을 담는다고 했다.
참을 지닌 자는 결코 겉을 꾸미지 않는다. 화려한 버섯에 독이 있다.

28.말 많으면 쓸 말이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웬 말이 이다지도 많은가! 말이 많은 곳에 쓸 말은 없다고, 우리는 지금 너무나도 시끄러운 말들 속에서 필요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지나 않은지.
노자 이르길, 언자무지요 지자무언이라(言者無知, 知者無言), 말 많은 자 알지 못하고 아는 자 말이 없는 법, 인생의 값은 입술의 말에 있지 아니하고 삶에 있나니!

29.진리는 독차지 할 수 없는 것

진리는 독차지 할 수 없는 것, 자신의 생각과 판단만이 옳고 남의 것은 모두 그르다는 고집이야말로 가장 거짓된 것이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깨우치기 위한 공부를 할 자격도 없다. 우리는 각자 절대적인 하느님 앞에서 모자라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내가 아는 것, 또는 내가 가진 것이 완전한 것이 아님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30.참 벗(友情)

말은 말하는 자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숨은 숨쉬는 자 혼자서 쉬는 게 아니다.

31.천리안(千里眼)

옛날, 망원경이 없던 때에 먼 곳을 잘 보는 사람을 천리안(千里眼)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천리 밖의 일을 다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지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니까 ‘천리안-(명) 먼데서 일어난 일을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이라고 풀이해 놓고는  ‘투시(透視)’와 같은 뜻도 된다고 했더군요. 그래서 다시 ‘투시’라는 말을 찾아보았습니다.
‘투사---(명) 막힌 물체를 틔워 봄. 환히 꿰뚫어 봄.’
결국, ‘천리안’이란 첫째 멀리 보며, 둘째 바르게 보는 눈이라고 하겠습니다.

32.함께 잘 사는 길

키 큰 어른과 키 작은 아이가 악수를 하려면 어른이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안됩니다. ‘함께 잘 사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있는 사람이 그 있는 것을 없는 사람과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또는 나누어 먹지 않을 수 없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뻔한 이치를 모르고 어째서 가진 자들은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지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온통 돈 놓고 돈 먹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 돈이 돈을 벌어들이게끔 만들어 놓고 없는 사람들에게 어서 있는 사람처럼 “잘 살아 보라”니, 누구 약올리는 겁니까?

33.참 말

말과 행동을 언제나 예수님 앞에서 하듯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못합니다. 덕분에 그의 마음은 언제나 맑고 환하여 어디 한 구석 걸리는 데가 없습니다. 답답한 새장에서 벗어난 종달새처럼 휘파람을 붑니다. 참으로 자유합니다.

34.예수쟁이, 예수꾼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쟁이’ 또는 ‘예수꾼’이라고 불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상당히 익살맞으면서도 생각해 보면 바르게 붙여준 별명 같습니다.
‘예수쟁이’ 또는 ‘예수꾼’이라 함은 “예수로 먹고사는 사람” “예수밖에 모르는 사람” “예수에 미친 사람”등, 이런 뜻이 아니겠어요? 얼마나 좋습니까? 적어도 ‘예수꾼’이라는 말을 들으려면 “예수로 시작해서 예수로 끝내주는”사람이어야 합니다.

35.모든 거짓에 종지부를


키에르케르고는 마지막 숨을 거두던 해(1885)에 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에서 “나는 정직(正直)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는 외로웠지만 외로웠기에 그는 세계를 바로잡는 하느님의 일에 큰 몫을 담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땅의 전후좌우 상하 내외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안개 같은 ‘거짓’을 누가 몰아낼 것입니까?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참을 수 없어 불꽃처럼 타오르는 분노! 그런 분노에 가득 찬 사람이 아쉽습니다.

36.말(言語)도둑

말(言語)을 훔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말(言語)은 옳게 쓰여야 합니다. 비뚤어진 뜻으로 사용될 때 말은,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뜻을 앞세워 설립된 어느 결핵환자 요양소에서 직원들에게 좀더 솔직한 사랑의 실천을 호소하는 환자를 병원 질서를 어지럽게 했다는 구실로 내쫓아버렸답니다. 병원 당국자들이 만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질서를 여지없이 깨뜨린 이들이야말로 ‘사랑’ ‘자선’ ‘봉사’등 거룩한 말(言語)을 훔쳐, 돼지처럼 짓밟은 도둑들입니다.
예수께서 왜 유달리 바리사이파 사람들, 서기관과 율법학자들을 미워하셨는지 그 까닭을 알 만합니다. 자기는 조금도 가난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자... 어쩌고 저쩌구 하는 목사들, 자기는 가진 자의 특권을 모조리 찾아 누리면서 고난받는 민중... 어쩌고 저쩌구 하는 것들.. 이 모두가 저주받을 말(言語)도둑놈들입니다.

37.진리를 찾아

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보고 노자(老子)는 “최고의 선덕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였습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저 자신은 이로움을 찾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살게 하는데 우리가 찾는 도(道)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터득하기 위하여 먼 곳을 해맬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이신 예수께서 우리의 바로 곁에, 흐르는 물처럼,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당하고 단순하게 사는 사람은 새삼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38.울음소리

요즘처럼 답답하고 안타깝고 서럽고 억울하고 게다가 무엇이 그리 답답하고 안타깝고 서럽고 억울한지도 잘 모르겠는 때에는 하느님이 커다란 귀(耳)라고 생각됩니다. 그 귀는 그냥 듣기만 하는 귀입니다.
세월이 캄캄할수록, 새벽의 기약이 감감할수록 낭자하게 목놓아 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커다란 귀에 그들의 울음소리 가득차면, 하늘 자락 걷히고 이 땅의 가시덤불에 거룩한 불꽃이 다시 타오를 것입니다.  ⓒ이현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