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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민들레교회 간 <배움의 도>
이 책은 민들레교회 최완택 목사님에게 선물 받은 100면짜리 자그마한 소책자입니다. 비매품으로 가격이 없는 책이며 책을 받자마자 그 내용이 좋아서 모두 타이핑을 했습니다.
아래 몇편을 나눕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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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의 뜻
사물(事物)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것이 곧 道다 배우는 과정에서 사물이 어떻게 발생하는가? 그것이 배움의 道다. 사람 말로 표현되는 '가르침의 길'은 사람이 알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니다.
무슨 일이 배움의 장(場)에서 일어나는지, 그것은 설명될 수 없다. 설명될 수 있는 것은 배움의 장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배움의 장(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따로 알고자 하는 일 없이, 그것을 알고 있어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판단하지 말고, 그것에 자신을 열어 놓아라.
사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것이 도다.
116 .말 없이 가르침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반대편 짝이 있다. 그것들은 저마다 세상에 있기 위해 짝이 있어야 한다. 선(善)과 악(惡), 가득참과 텅 빔, 부(富)와 가난, 흑(黑)과 백(白).
그러기에, 슬기로운 교사(敎師)는 말 없이 가르치고 하는 일 없이 한다.
모두 그가 이룬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는다. 일이 다 끝나면, 그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117 일삼아 하지 않음
슬기로운 교사는 누구를 내세우거나, 내세우려고 높은 점수를 주거나, 그러지 않는다. 그러면 다툼과 시새움만 자란다.
슬기로운 교사는 일삼아 하지 않음으로, 잘못 배운 것을 지워 버림으로, 가르친다. 그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네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버리게끔 도와주고,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는 일삼아 하지 않음을 연습, 실천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기가 받은 선물을 발견하게 된다.
118 바탕
道는 그대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도는 토대(foundation)와 같다.
토대는 건물이 서 있도록 받쳐주고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道는 배움을 받쳐주는 토대들의 바탕이다. 道는 바탕을 받치는 바탕이다. 道는 끝없이 넓고 끝없이 깊어서, 배우고 가르치는일을 끝 없이 할 수 있게 하며, 결코 닮아 없어지지 않는다.
119 중도(中道)
道는 치우치지 않는다. 道는 선(善)과 악(惡)을 함께 안다.
슬기로운 교사는 치우치지 않는다. 모든 학생을, 선하면 선한대로 악하면 악한대로, 품어 안는다.
道는 바람과 같다. 그것은 텅 비어 있다. 그러면서 큰 힘을 부린다. 그대가 그것을 잡으려고 애를 쓰면 쓰는그만큼 그대는그것을 못잡는다.
배울 때에는, 그대 중심(中心) 가까이에 머물러 있어라.
120 열려 있음
배움의 도는 만물(萬物)을 낳는다. 그것은 텅 비어 있다. 그러면서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道는 그대가 좋아하든 말든, 쓰임받기 위하여 언제나 여기에 있다.
다만, 그대가 그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자신을 닫을 때 도는 자신을 감춘다.
121 놓아버림/여기 있음
교사는 학생들을 위해 여기 있다. 그거나 그들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는다. 그들은 '그의' 학생들이 아니다.
교사는 자신을 놓아버림으로써 학생들을 섬긴다. 자신을 놓아버림으로써 교사는늘 여기 있고 그리고 늘 가득 차 있다.
122 물처럼 흐르기
학생은 저 자신이 되어야 한다. 배움의 장(場)에 속임수는있어서 안된다.
장애물은, 괴어 있다가 사방으로 넘치는 물과 같은, 에너지를 발견하게 해준다.
그대가 배움 안에 생명이 절로 흘러 넘치게 하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 몰랐던 것들로, 예고없이 나타나게 두어라. 그전 일이 일어날 때, 교사와 그가 가르치는 내용은 전혀 새로운 것을경험 할 수 있다.
123 멈출 때
말을 너무 많이 하면 학생들은 안 듣는다.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학생들은 지쳐 떨어진다. 너무 열심히 하면 길을 잃고 만다.
교사와 학생들은 배우기를 멈추고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거리(distance)가 교사와 학생에게 학습으로 돌아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해 준다.
슬기로운 교사는멈출 때를 안다.
124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서
그대는 누구를 가르칠 때 그 일을 왜 시작했는지 기억할 수 있는가? 그대는 장애물들 앞에서 유연(柔軟)할 수 있는가? 그대는 영문 모를 어둠 속에서 마음으 눈으로 밝게 볼 수 있는가? 그대는 남을 잡아 끌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이끌어 줄 수 있는가? 그대는 길을 뻔히 보면서도 남이 스스로 그것을 찾아 내도록 기다려 줄 수 있는가?
기르는 방식(murturing way )으로 가르치기를 배우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서 도와주기를 배우라.
지배하려 하지 않고 가르치기 - 과연 한번 시도해볼 만한 일이렸다.
125 비어 있음
바퀴살이 모여서 바퀴를 이룬다. 그러나 수레를 움직이는 것은 바퀴 복판에 비어있는 구멍이다.
질흙으로 항아리를 빚어 만든다. 그러나 항아리를 쓸모있게 만드는 것은 텅 빈 속이다.
학교 건물을 이루는 것은 건축 자재들이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은 교실의 비어 있는 공간이다.
학생들은 틀과 구조물을 가지고 공부한다. 그러나 비어 있음과 침묵 도한 배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126 안에서 보기와 밖에서 보기
만져지지 않는 것을 보기. 아직 드러나지 않은것을 마음에 그리기. 배움의 길을 찾아 가는 학생들에게 시선을 빌려주어라.
슬기로운 교사는 가능성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기 위하여 초-시선(super-vision)을 마련해준다.
안에서 배우는 것과 밖에서 배우는 것 사이의 긴장은 성장(成長)을 위하여 반드시 있어야 한다.
교사는 자신이 안에서 보는 것을 신뢰한다. 그는 생각(아이디어)들이 오고 가는 것을 허용한다. 그의 가슴은 하늘처럼 열려 있다.
127 성공(成工)
배움의 장(場)에서 학생은 성공(成工)을 조심해야 한다. 남들이 그대를 성공했다고 할 때,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위험한 짓을 멈출 일이다.
그대가 받는 좋은 평판에서 거리를 두고 멀리 하는 일이 중요하다. 희망과 두려움이 그대 자리를 균형있게 지켜줄 수 있다.
그대 자신을 돌보듯이 남을 돌보아라. 지속되는 성장(成長)을 신앙(信仰)하라. 그러면 그대는 배우면서 여전히 그대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128 몸 풀기
그대가 볼 때,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대가 들을 때, 그것은 들리지 않는다. 그대가 손으로 잡을 때, 그것은 잡히지 않는다.
배움의 장(場)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분명 하지 않을 때, 그것을 밝혀보려고 지나치게 애쓰지 말아라.
그 대신, 몸을 풀고 그대 마음의 눈으로 하여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게 하여라. 그대의 인식(認識)과 직관(直觀)으로 하여금 그대를 안내하게 하여라.
그대는 모든 것을 알 수는없다. 그러나 모르는 것에 대하여 자신을 열어놓고, 신비로운 것 앞에서 편히 쉴 수는 있다.
모든 사물의 근원에 대하여 깨달아 알 때, 그대는 지혜의 심장(心臟)을 안다.
129 교사의 교사들
교사의 교사들은 본보기를 보여 주었을 뿐이다. 교사 자신만이 자기 길을 낼 수 있다. 교사는 학생들이 알아 들을 때까지 기다린다. 자기가 얻은 결론에 이르도록 학생들을 몰아치지 않는다.
무서움이 배움의 장(場)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무서워하면서 배우는 일은 지속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하여 배운다. 어른들은 배우기 위해서 논다. 심각한 배움 속에서도 놀이정신은 있을 수 있다.
130 힘 나누기
살아가는 일에도 그렇지만 배우는 일에도 힘(power)은 마당히 분배되어야 한다.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은 배움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 상대에게 힘을 준다.
학생이 짝과 더불어 공부할 수 있을 때에 훨씬 많은 것을 얻는다. 서로 번갈아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되어, 교사와 그가 가르치는 내용을 다시 만들어 간다.
교사의 일이 다 끝나면, 그는언제라도 손을 뗄 준비가 되어 있다.
131 조산원(助産員)교사
슬기로운 교사가 가르칠 때 학생들은 그가 있는 줄을 잘 모른다.
다음가는 교사는 학생들한테 사랑을 받는 교사다.
다음은 학생들이 무서워 하는교사다.
가장 덜 된 교사는 학생들한테 미움받는 교사다.
교사가 학생들을 믿지 않으면 학생들도 그를 믿지 않는다.
배움의 싹이 틀 때 그것을 거들어 주는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진작부터 알고 있던 바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가 일을 다 마쳤을 때 학생들은 말한다.
"야, 대단하구나! 우리가 해냈어."
132 혼돈 속 질서
배움의 道가 잊혀질 때, 순명(順命)과 복종(服從)이 생겨난다.
학생들의 지성(知性,intelligence)이 줄어들 때, 잔꾀와 속임수가 늘어간다.
배움의 장(場)이 혼돈에 빠질 때, 질서가 머리를 내민다.
133 중심(中心)에 머물러 있기
우월(優越)과 오만(傲慢)을 없애버려라. 학생들이 행복해 할것이다. 판정과 규칙을 치워 버려라. 학생들이 바르게 처신할 것이다. 빡빡한 과제와 등급을 내다 버려라. 아무도 잔꾀로 속임수를 쓰지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치 못하거든, 그대 교실 중심(中心)에 머물러 있어 학습으로 하여금 저절로 제 기을가게 하여라.
134. 지혜 가르치기
평범하고 일상적(日常的)인 것들을 가지고 가르쳐라. 그것들을 해석하는작업을 통하여 어떤 특별한 것을 창출(創出)하여라. 해석을 한 뒤에야 학생은 특별한 가르침이 어떻게 있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날마다 교사는 학생들을 이해(understanding)로 이끌 행위를 되풀이 한다. 날마다 나무를 자르고 물을 긷는다. 교사는 단순한 일을 실천으로 보여주며 가르치고, 그것은 사람을 단순한 진리로 이끈다.
일상(日常)으로 되풀이 되는일 없이는 배움도 없다. 놀람 없이는 지혜도 없다.
135 .道와 하나되기
그대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그대를 슬프게 하는 씨앗도 된다.
배움의 도를 경험하는 일에서도 스스로 자유롭도록 하여라
교사는 학생들을 데려갈 수 없다. 다만 길을 가리켜줄 다름이다.
헤어진 뒤에, 학생들이 돌아와서 여행담(談)을 들려줄 수는 있다.
136 역설(逆說)
교사의 역할(role)은 학생의 역할과 다르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긴장이 배움의 세계에 음양(陰陽)을 이룬다.
만일 한 교사가 전체이기를 바란다면 그는 부분이 되어야 한다. 곧고자 한다면 스스로 굽어야 한다. 가득 차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텅 비어야 한다. 다시 나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죽어야 한다. 얻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슬기로운 교사는, 배움의 道를 통하여,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된다.
교사가 자신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가 보여준 본보기를 즐거이 받아들인다. 교사가 재확인이 필요한 짓을 도무지 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에게서 자신을 확인하게 된다. 모든 일이 가능하기 대문에, 교사는 그의 가르침에 성공(成工)을 약속 받는다.
옛날의 교사들이 "모든 것을 얻고자 하거든 모든 것을 버리라"고 했을 때, 그들은 진실은 진실로 말한 것이다.
교사가 道와 함께 있을 때, 그는 참으로 자기 자신일수 있다.
137 침묵
꼭 해야 할 말을 하여라. 그러고는 침묵하여라. 저 자연세계처럼 되어라.
바람이 불 때는 그냥 바람이다. 비가 올 때는 그냥 비일 뿐이다. 구름이 걷히면 해가 빛난다.
그대가 만일 배움의 道에 자신을 열어 놓는다면, 그대는 조화(調和)와 균형 속에서 그것을 온전히 껴안을수 있다. 그대가 만일 깊은 성찰(省察)에 자신을 열어 놓는다면, 그대는 상실과 슬픔으로 더불어 하나 되어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받아들일 수 있다.
침묵하라. 그리고 배움의 道에 자신을 열어놓아라. 그대의 자연스런 발전(mataral processes)을 신뢰하여라. 수수께끼는 풀릴 것이다.
138 놓기
발끝으로 서면 기우뚱거리에 된다. 너무 빠르게 가면 멀리 못간다. 그대가 만일 우쭐대면서 자기를 내세우면 그대 자신의 빛을 스스로 어둡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학생은 자기가 누군지를 정말 모른다. 남에게 힘을 부리는 교사는 자신에게 힘을 주지 못한다. 놓을 줄 모르는 교사는 살아 있는 그 어떤 것도 창출(創出)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만일 배움의 道를 알고 싶다면, 그냥 그대 일을 하여라. 그리고 놓아라.
139시작(始作) 이전
우리와 함께 배우는 사람들은 전체의 부분이다. 시작 이전에 배운 사람들도 역시 전체의 부분이다. 우리 뒤에 배우는 사람들로 마침내 원(圓)은 완성된다.
다만, 각 사람의 교실만이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참된 배움과 가르침은 시작 이전(以前)있었고 끝 뒤에도 이어질 것이다.
140. 바탕에 뿌리 내림
자기 뿌리를 알고 있는 교사는, 균형을 잃는 일 없이, 말썽꾸러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
바탕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은, 교사가 온 종일 배움의 장(場)을 떠나지 않고 여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러 유혹이 있음에도 그는 싸움 마당에서 오히려 고요하다.
교사가 어째서 이런 저런 논쟁(論爭) 따위에 빠져들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을 바람에 날려가도록 버려둔다면, 그는 뿌리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한 곳에 요지부동(搖之不動)으로 굳어져 있다면 자기 자신됨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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