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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의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을 읽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무엇인가?
성도로서 거룩하게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솔직히 잘 안 읽혀지는 책이지만, 인내를 갖고 읽다보면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 이해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이
쉽게 이해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음은 책을 읽으면서 밑줄친 부분이다. -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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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시기에 선하였다

어떤 사람이 집을 지었다고 칩시다. 그는 집을 짓기로 결심한 다음 설계에서 시공에 이르기까지 직접 많은 인부들을 거느리고 여러 날 동안 일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집을 다 짓고 나서 보니,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자 말했습니다. "아아, 참 좋다." 이때 '좋다'라는 고백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건축된 집이 그것을 짓고자 할 때에 가졌던 계획과 목표에 충분히 부합한 것에 대한 만족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창조된 세계가 당신의 신성의 영광의 충만을 드러내게 하시려는 의도가 충분히 성취되자 그것을 보고 만족스러워 하신 표현이 바로 "보시기에 선하였다"(창1:4)입니다.

2.고통의 궁극적인 원인

인류의 역사 이래로 세상의 많은 지혜로운 사람들은 질문하였습니다.
"도대체 인간의 고통의 원인은 무엇이고, 이 고통을 제거하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중의 하나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고통의 원인은 환경에 있다." 예를 들자면 가난, 질병, 파괴된 인간 관계, 무지... 이런 것들로 인하여 인간은 악과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이것이니, 앞서 말씀드린 것들이 인간의 불행의 궁극적인 뿌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 뿌리가 인간의 죄에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많은 고통은 단지 그가 죽음이라는 질병에 걸린 징후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가난, 질병, 인간관계의 파괴, 무지, 이 모든 것들은 인간 불행의 궁극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영혼이 죽음이라는 질병 상태에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이라는 병을 가져다 준 병원체는 바로 죄입니다.

3.죄와 악

우리는 흔히 죄와 악을 혼돈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부도덕하거나 정직하지 못하거나 뭔가 남에게 불편한 해를 끼치는 모든 행동을 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죄가 아니라 악입니다. 이러한 악은 죄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비참은 그러한 악이 가져온 일종의 열매입니다. 즉, 악은 죄의 증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뿌리가 사과나무의 뿌리이면 반드시 거기에 사과나무 잎사귀가 매달리고 꽃이 피고 열매 맺게 되는 것처럼, 인간 사회에서 경험되는 모든 악은 바로 죄라는 뿌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4.죄란 무엇인가

성경에서는 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두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하지 말라고 명하셨는데 그것을 하는 것, 혹은 하라고 명하셨는데 그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법에 온전히 순종하기에 모자라는 것입니다. 전자,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자기 자신 속에 능력이 모자라서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5.이미 의지가 있었기 때문

우리들은 선악과에 관련하여 흔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들어놓으셨는가? 선악과가 없었다면 인간의 범죄도 없었을텐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이렇게까지 생각합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못하게 좀 말리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러나 선악과를 거기에 두신 것이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와가 그것을 보고 유혹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자신 안에 하나님께 대한 의존의 관계를 이탈하려는 불순종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혹은 우리 안에 없는 무엇인가 악한 것을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이끌어낼 뿐입니다.

6.세상 자원을 찾는 인간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되는 하늘자원이 끊어지자 인간은 영적인 궁핍을 채우기 위하여 땅의 자원을 소유하려고 투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뺏고 뺏기는 투쟁의 역사입니다. 하늘로부터 공급이 끊어진 자원을 대체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다른 이에게서 자원을 부당하게 뺏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도저히 자원이 될 수 없는 그릇된 것을 자원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삶의 자원을 뺏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삶의 자원은 내 안에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인간의 힘으로 부족한 자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처지는 결코 절망적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해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비참함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결코 그러한 세상 자원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7.조국교회를 위한 기도

아아, 교회 안에서 피묻은 복음의 살 떨리는 외침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보다 큰 재앙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조국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시려거든 부디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가셔도 우리에게 복음의 위대한 역사를 주시옵소서. 이 시대 조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그 복음을 경험하게 해 주시옵소서."

8.하나님의 계획

하나님께서 이렇게 캄캄한 세상에서 죄 가운데 무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거두지 않으시고 이 땅에 살려 두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이 기쁘시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복음을 듣고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어 그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주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만물의 영장답게 다스리고, 단 하루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죽게 하시려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구원하심에 있어서 당신이 직접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의 기쁨을 아는 우리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기를 기뻐하십니다.

9.하나님의 사랑 때문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면서까지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려고 하셨을까요? 우리가 그렇게 가치 있는 존재들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그렇게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가치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죄는 맨 처음 창조의 목적을 떠나 행했던 범죄보다 더 큰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한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10.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상태

마음은 실제적으로 사람이 움직이고 행동하는 본질이며 본체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에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존 오웬이 지적하는바와 같이 빛은 생각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총명이라는 것으로 적용되어 나타나고, 마음은 그 빛을 사용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4:18). 이것은 거듭나지 못한 삶들이 단지 빛에 대하여 무지한 것이 아니라 완강하게 반항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입니다.

11.중생은 신의 성품을 갖는 것

중생과 삶의 개혁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거듭났다고 해서 즉시 도덕적인 삶의 개혁이 뒤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거듭나기만 하면 그 사람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광범위한 개혁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중생이란 사람 안에 새 생명의 원리를 심으시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중생은 인간의 전 본성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합리주의와 도덕주의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의 신령한 특성들을 이 세상의 도덕으로 바꾸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개개인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경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전 본성을 새롭게 하시는 중생이 없이도 얼마든지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신앙을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 중생이란 인간의 영적인 본성이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혁신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생을 통하여 다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은 단지 새로운 행동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신령한 역사로 말미암아 새로운 기질, 새로운 능력, 새로운 경향성과 영적인 기능을 갖게 된 사람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신의 성품'이라고 부릅니다.(벧후1:4)  

12.율법적인 회개와 복음적인 회개

회개는 율법적인 회개와 복음적인 회개로 나눕니다.
율법적인 회개는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에 대한 두려운 때문에 죄에 대하여 일시적으로 갖게 되는 후회나 가책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회개는 동기 자체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받게 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불명예에 대한 슬픔 같은 것이 아니라, 지은 죄에 대하여 형벌 받음으로써 손해보게 될 자신에 대한 이기적인 집착입니다.
복음적인 회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죄를 미워하고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셨고, 자신이 지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죄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바로 자기를 용서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 때문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13.믿음이란 무엇인가?

저는 신앙을 갖게 된 순간부터 예수를 믿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까지, 심지어는 신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믿는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저 뿐만 아니라 예수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굳게 믿는데, 자신이 지금 믿는 이 믿음은 정말 구원받을 믿음인가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신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성경에서 구원을 얻기 위한 믿음으로 제시하는 믿음과는 전혀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 경우가 훨씬더 심각합니다. 그가 소유한 믿음을 가지고는 구원받을 수 없는데 자신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하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은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라는 말은 내가 믿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에게 구원을 주실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받을 때 손을 내미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결코 공로적인 의미에서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14.믿음의 내용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은 무엇을 믿는 믿음일까요? 간단하게 말해서 그것은 바로 선포된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는 믿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에 대한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 사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바뀔 수 없는 내용입니다.

15.절대 의존의 믿음

언젠가 가정법원에서 이혼을 하고 나온 부부가 아이를 서로 맡지 않으려고 다투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다투는 동안 엄마, 아빠의 옷자락을 붙잡고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아빠가 먼저 돌아서자 "네 아빠 따라가라"고 떠미는 엄마를 붙들고 자기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처절하게 울며 매달리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밖에는 자신에게 더 이상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매달리는 믿음이 바로 이 아이와 같은 믿음입니다. 아이를 꼭 끌어안고 안심시키는 엄마의 품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그 아이에게 위로가 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하시는 친절 밖에 내게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하는 절대 의존의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16.하나님의 자녀의 특권

하나님의 집안의 자녀가 된 우리는 놀라운 특권이 있습니다.
하늘 자원의 핵심은 '영생'입니다. '영생'의 문자적 의미는 영원히 사는 것이나 영생은 결코 그저 무한히 긴 인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를 갖고 하나님의 신적 성품에 참여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며, 비록 육신은 죽지만 그 육신의 껍질을 벗은 후에는 보다 완전한 영혼의 생명을 누리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기도의 실천을 통해 하늘 자원뿐 아니라 이 땅의 자원도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는 언제나 하늘과 땅의 자원이 넘쳐납니다.

17.끝나지 않은 싸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동안 우리를 장악하고 있었던 사단의 권세, 죄와 사망의 법을 산산이 부숴 버리십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더 이상 진노아래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죄의 법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백성들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우리 안에 생명과 성령의 법을 심으셨습니다. 이제 멸망에 이르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죄의 지배를 받으며 죄의 노예로 살아갈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단은 허리가 부러져서 설설 기어다니는 상태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 세상에는 죄가 남아 있고 악한 영들의 세력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마치 전쟁은 끝났지만 도망가지 못한 패잔병들이 남아 사람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듯이 말입니다.  

18.세 가지 구원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이야기 할 때 그 시제를 과거, 현재, 미래 세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째로, 과거의 구원이란 우리들의 영혼이 이미 구원받은 것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제 다시는 정죄함이 없도록 구원된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둘째로, 현재의 구원이란, 성화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셋째로, 미래의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썩을 몸을 변화시키셔서 영화롭게 하시는 구원입니다.

19.구원의 첫 열매-성령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반드시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주도적으로 역사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고, 예수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분명한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아주 놀라운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돈이 많으면 행복하고, 어려움이 생기면 슬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쁨과 슬픔의 이유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어도 여전히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0.천국의 맛보기

여름철에 인력거를 끌고 다니며 수박을 파는 상인들의 인력거 위에는 항상 맛보기 수박 하나가 올라가 있습니다. 맛보기로 올려놓은 수박은 파는 수박 중 가장 상품입니다. 그래서 맛보기로 올려놓은 수박 맛을 보고 사 가면 그것만 못할 대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맛보이는 하늘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맛보기는 너무 좋은데 실제 하나님의 나라는 신통치 않은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맛보기 역할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맛보다도 더 맛있게 보여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근접한 맛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21.신약과 구약

밤나무와 감나무, 그리고 대추나무, 이 세 종류의 나무가 있습니다. 이 세 나무는 생김새도 다르니 열매까지 달려 있다면 세 그루의 나무를 혼동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흙에 뒤덮인 뿌리만 남은 나무를 보고 그 나무가 어떤 열매를 맺는 나무인지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만 보고 그 나무에서 무슨 잎이 자라고, 어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는지 생각하기 힘든 것처럼 신약을 모르는 채 구약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만약 구약만으로 모든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신약의 계시를 허락하셔서 성경을 쓰게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22.예수님의 재림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누구도 알아주는 사람 없이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특별한 믿음의 눈을 가지고 계시를 받은 자 이외에는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영광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그 날은 도적이 오는 것과 같이 올 것이지만 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렇지 않으며, 찬란한 영과 가운데 이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23.육체의 부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신자들은 태어난 날짜도 다르고, 성화의 정도도 다르고, 죽음을 통하여 성화가 완성된 날짜도 다릅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자들이나 나중에 죽은 자들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에 차별이 없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영혼과 나누어진 그들의 육체를 다시 살리셔서 성화의 완성된 상태에 있는 영혼을 결합시켜 영화의 상태로 데려가시고, 아직 죽지 않고 살아서 주의 재림을 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그들의 성화도 완성하시고, 그들의 영혼도 영광스럽게 하셔서 불멸의 몸을 만드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

24.천국과 지옥

성경에는 천국을 가리키는 두 단어와 지옥을 가리키는 두 단어가 나옵니다. '낙원과 천국'이라는 단어와 '음부와 지옥'이라는 단어입니다.
낙원은 때로 아브라함의 품으로 묘사되고, 음부는 고통받는 것이라고 묘사되기도 합니다.
신학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신자의 영혼은 낙원에 이르고, 불신자의 영혼은 음부에 이르러 심판의 날까지 대기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믿는 자는 낙원에 있던 영혼과 땅에 있는 육체가 결합하여 천국에 이르게 되고, 믿지 않는 영혼들은 음부에 있던 영혼과 땅에 있는 육체가 결합하여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