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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의 <가족구원>을 읽다

끝나지 않은 가슴앓이 '가족구원' 이라는 머릿글을 달고 있는 이 책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첫 걸음'을 표지그림으로 사용하였다.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그림에 대해 궁금하여 찾아보니, 고흐가 1890년 생레미 요양원에 갖혀 지내는 동안 고흐는 창살 아래서 과거를 회상하며 그림을 그렸고, 창 밖으로 펼쳐지는 농촌 풍경과 농부들의 모습을 보며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밀레의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림 모작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가장 아픈 이름이라 부른 '가정을 묘사하는 것으로써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한 가정을 누구나 꿈꾸지만 실상은 그와 다르다. 그래서 아픈 이름으로 가슴에 새겨지게 된 것이 바로 가정이다. 특히 신자들에게 있어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해서 주 안에서 하나를 이룬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가정은 늘 뼈아픈 마음의 응어리로 인식되는 곳이다. 나를 사랑해주는 부모와 형제가 있지만 그들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예수님에게 대해서는 무정하고 무관심하다는 것은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때론 무관심이 아닌 핍박과 조롱으로 신앙에 있어서 만큼은 이웃보다 거리가 먼 사람들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리라.  부디 아직 가족구원을 이루지 못한 분들은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가족구원에 도전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추천 한방!  -최용우

책을 읽고 밑줄친 부분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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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늘나라에서 온 편지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로부터 두루마리로
된 편지 한 통이 내려왔습니다. 하늘로부터 미끄러지듯 내려온 두루마리는 제 앞에서
펼쳐졌습니다. 거기에는 제 아버지께 속히 편지를 쓰라는 간곡한 사연이 짤막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며칠동안 연거푸 세 번을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아버지께 복음을 전하라는 메시지인 줄 알았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어
달 후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께 무어라고 말씀드릴까 마음이 아픕니다. 그 때 제가 편지라도
써서 복음을 전했더라면,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간 어느 여성도의 고백입니다.

2.열매맺는 영성

우리가 하나님을 많이 만나고 성경을 깊이 이해하고 수많은 설교를 들어서 모든 내용을 꿰고 있다고 하더라고 우리와 같이 은혜의 세계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슬픔이 없다면 우리의 영성은 거짓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쌓인 지식으로 교만해졌을 것이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삶과 분리되는 영성이나 현실과 격리된 영적인 특성들에 대해 말한 바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나무는 멈추지 않고 뿌리를 뻗고 줄기와 가지를 내어 잎과 꽃을 피우고 마지막 열매를 맺는 것처럼 살아있는 영성은 그의 삶을 통해 넉넉히 드러납니다.

3.복음 전파의 동기

주님의 큰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 사랑에 감격하면 할수록 우리는 주님을 몰랐을 때 생사를 같이하고 운명을 같이 했던 내 동포, 내 가족, 내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체험이 진실하지 않은 것이든지 그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릴 줄 모르고,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마주해야 할 영혼들에 대한 슬픔이 없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교회 속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신령한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오는 기쁨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4.슬퍼하는 마음을 잃은 사람들

길선주 전도사와 장로 한 사람에 의해 우리나라에 새벽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무 광고도 하지 않았는데도 사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와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그들이 그 새벽을 가르고 교회당으로 달려왔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구원받지 못한 자기의 가족과 동포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르는 채 죽어 가는 영혼들에 대해 슬퍼하는 마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 교회가 이미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를 거부하는 교회가 되어 버렸다는 표증입니다.

5.가장 큰 걸림돌

오랫동안 말로 뿌려놓은 복음을 어느 한 순간의 이익에 눈이 멀어 쏟아 버림으로 가족들이 복음에 대해 차가운 마음을 가지게 하는 일은 우리 주위에서 언제나 일어납니다.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야말로 자신의 가족들에게 복음이 전해지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가족 복음화 비율이 적은 것은 결국 먼저 믿은 사람들의 미성숙함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좀 아시게. 그 사랑 없이 어찌 사는가?" 이렇게 말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의 말은 뜬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뿐입니다.

6.주님 앞에 가져야 할 믿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온 가족이 하나님께 돌아올 그 날을 꿈꾸십시오. 어둠의 일을 버리고 그동안 쌓였던 불화와 반목을 청산하고 사랑해야 할 사이면서도 서로 가슴에 상처를 주던 날들을 모두 버리고, 손에 손을 맞잡고 밝은 햇살을 받으며 복된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가족이 되는 꿈을 꾸십시오. 온 가족이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어 서로 슬픔을 위로하고 고난 중에 서로 격려하며 어두운 세상을 빛처럼 살아가는 가족이 되리라는 신념을 가지십시오. 이것이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탄원하는 우리가 주님 앞에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7.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 가운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 가운데 인간을 사용하지 않고 홀로 행하시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행하시지 않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대표적인 두 영역이 성화와 전도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을 닮은 인격으로 변해 가는 일은 하나님께서 홀로 행하시는 일이 아니라 주님을 닮아가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을 사용하셔서 성령님께서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사람들을 찾아가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그 사랑을 경험한 우리를 통해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그 일을 행하십니다.

8.복음을 대하는 태도

전도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운명과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여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진지한 복음을 너무나 경박하고 신중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단지 막연하게 '교회에 나가면 참 좋을 것이다'하고 생각할 뿐입니다.
한 중년 부인이 어느 목사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너무나 자상하고 참 훌륭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희 가정은 너무나 행복하답니다. 그런데 우리 남편이 예수를 믿으면 지금보다 더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은 이 부인의 말  속에서 복음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는 분명히 신앙에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바른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9.진정한 가족 사랑

진정한 가족 사랑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많이 희생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모든 면에서 이해하고 양보하는, 그래서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바보 같은 사람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이용하려 하면 좀 이용당해 주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을 속이려고 하면 좀 속아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 그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10.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해 작정하며 기도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버지의 영혼, 동생의 영혼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 베푸시는 날이면 저는 더욱 슬픈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제 가족의 영혼을 돌아오게 하지 않으시므로 저는 슬픈 사람이 되었습니다."하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습니까?
가정의 복음화는 흘릴 피를 다 흘리고 쏟은 눈물을 다 쏟고 찢을 살을 다 찢기 전까지는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이것은 소풍가서 보물찾기  하듯이 요행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11.가족이 주께 돌아올 때까지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뼈아프게 비석의 묘비처럼 가슴에 새겨진 사람들, 그 영적인 묘비를 샘솟듯 솟아나는 눈물로 적시는 여러분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인데 당신의 자녀인 여러분이 그토록 오랜 세월 영적으로 이미 죽어 있는 가족들을 붙들고 거듭남의 역사를 달라고 밤낮 없이 눈물을 쏟아 내는 것을 그냥 외면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눈물이 아직 채워져야 할 잔에 다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위해 흘린 우리 마음의 피가 충분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마음을 잘 지키지 못해서 영혼이 고갈되어 비참한 눈물을 흘릴 때에도 하나님이 아파하시는데, 전해주는 자가 없어서 구원을 얻을 만한 지식이 없고, 그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전해주지 않아서 탄식하며 지옥으로 내려가는 영혼들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이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를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12.진실한 사랑을 품으라

믿음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가장 커다란 고통 가운데 하나는 가족들이 함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자기가 변화되기 전까지는 가족들이 함께 예수 믿고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지 않는 것에 대해 그리 아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고 나면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회심하지 못한 자기 가족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사람은 누군가가 그를 위해 울어 주어야 할 만큼 불쌍한 사람입니다. 가족을 단순한 전도의 대상자로 여기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은 대충 속일 수 있지만 가족은 속일 수 없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진실하고 깊은 사랑이 가족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13.화목을 이루는 자가 되라

우리는 폭풍처럼 한 영혼을 사로잡아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한 채, 가족들을 그대 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참고 인내하며 인격적으로 그들을 설득하고, 착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가족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가족들을 돌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도 바울의 경고와 권면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가족을 돌아보는 첫 번째 일은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임을 기억하고, 무엇보다도 가족 안에 화목을 이루는 사람으로 부름 받은 자신의 소명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14.가족들을 무조건 섬기라

20세기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복음서를 잘 읽어보면 "얘야, 나의 사랑을 모르는 이 세상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나와 함께 죽자!"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린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죽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이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우리는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백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았으니 힘닿는 대로 주님을 알지 못하는 가족들을 섬겨야 합니다.

15.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라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집안 식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말입니다. 우리 가정은 우리 고유의 사명의 자리입니다. 다른 누구에게 대신 맡길 수도 없고, 다른 일에 열심을 내어 벌충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족은 구원받았습니까? 내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을 부르시면 그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마지막 벼랑 끝에서 지옥을 향해 떨어지며 여러분을 향해 살려달라고 손을 내미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인생에 이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목표는 없을 것입니다.

16.마음과 힘을 다하라

언젠가 다른 교회에 다니는 한 자매가 찾아와서 교회 가까운 병원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매일기도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복음을 전하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으니 목사님이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방문에서 복음을 전해달라고 애원을 하였습니다. 그 자매의 사연이 너무 가슴 아파서 찾아가 열심히 복음을 전했고 결국 그분은 병상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저는 어버이날만 되면 그 자매 생각이 납니다. 우리 교회에 있는 지체들도 믿지 않는 부모 때문에 저렇게 눈물을 흘리고 어버이날이나 명절이 되면 시골 교회에 찾아가서 저렇게 애원할까 하고 말입니다.

17.분명한 복음 전파  

우리에게 화면만 나오고 소리가 안 나는 텔레비전과, 소리만 들리는 라디오가 있다면 우리는 어느 것을 택하겠습니까? 화면 없는 라디오를 듣고 이해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분명한 복음 전파가 결여된 그저 아름다운 행실은 소리가 나지 않은 텔레비전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삶의 모습은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 많아도 분명하게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의 삶은 아름다운 화면은 없지만 메시지는 또렷하게 전달해주는 라디오와 같습니다.
직접 붙들고 복음을 전하는 일 없이는 여러분의 마음의 부담도 아름다운 삶의 행실도 심지어 여러분의 기도도 그 열매를 거두기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18.정확한 복음을 제시하라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 관한 어떤 인상하나를 가지고 하나님을 평가하고, 좋지 않은 느낌 하나로 기독교 전체를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할 때 정확한 복음을 제시하지 않고 "우리 교회 한번 갑시다. 교회 가면 이러저러한 것들이 참 좋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음 전파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정확한 복음을 제시받아 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하게 복음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많이 성화 되고 아름다운 행실로 내 가족이 충분히 감화 받아야만 그들이 예수를 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19.그리스도의 사신(使臣)

우리는 복음을 말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돌아섰을 때 '못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해도 우리는 복음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격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사신의 자격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설마 여러분의 가족이 진지하게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의 따귀를 때리겠습니까? 또 때리면 좀 어떻습니까?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 채찍질을 당하고도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습니다.(행5:41)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20.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이유

이 세상이 너무 강퍅해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그들의 죄로 인해 슬퍼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일도 구원받지 못한 이 세상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핍절한 사람을 살아가는 이유가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들의 죄를 자기의 죄처럼 생각하며 가슴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고,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21.정결함을 잃어버린 사람들

우리는 왜 구원받지 못한 우리 가족을 위해, 그리고 구원은 받았으나 복음의 원리를 따라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가족을 위해 충분히 울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게 울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죄에 대해서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심령이 정결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22.누가 울어주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안에 날마다 자기 깨어짐을 경험하는 정결한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여러분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 때가 언제였습니까? 우리가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울어주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울어주고 기도하도록 우리를 먼저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신자가 되려고 애쓰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사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죄와 야합해서 적당히 손잡고 살며, 죄를 버리고 정결해지기 위해 회개하는 진지한 기도생활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삶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23.우리에게 생사를 건 기도가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 가족은 제 생명과 결탁되어 있습니다. 함께 죽이시든지, 함께 살려 주셔야 합니다."라고 울부짖는 기도가 있습니까? 밥 먹다 문득 생각나서 습관적으로 "우리 가족을 구원해 주세요"하는 기도말고 진지하게 구원받지 못한 가족, 교회는 나오지만 회심하지 않은 가족이 있는 것이 가슴에 한이 된 것처럼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자신의 가슴에 박힌 못을 빼내어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4.우리는 죽는 날까지

우리는 죽는 날까지 우리 가족의 영혼을 끌어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주님이 우리를 오래 참으신 것처럼 오래 참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그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의 기회를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기도가 우리 가족의 강퍅함을 능가하지 못하고, 우리의 구령의 열정이 냉담하게 식은 그들의 가슴을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지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잃어버렸던 기도제목을 다시 붙들고 눈물로 탄원하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서 생명의 길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