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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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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밑줄친 부분을 함께 나눕니다.
1.시험을 통해 드러난 영성
이 세상에서 행복해지기 보다 거룩한 신앙의 사람이 되는 것을 더욱 사모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지입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이라고 할 때, 그분에게 쓰임 받는 사람은 역사를 움직이는 지렛대와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한 사람을 역사를 움직이는 주인공으로 삼으시는 방법은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과 많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훌륭한 제도, 학문, 그리고 다양한 외적 조건을 통해 역사를 움직이는 한 사람의 영적 지도자가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신령한 사람을 만들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 신령한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알리십니다.
2.통탄할 일
오늘날 교회의 무기력과 자기만족적인 신앙은 역사의식의 결핍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신자가 제일 먼저 배우는 일이 현실에 대한 만족인 오늘날의 현실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도 조국 교회 안에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은혜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큰 갈등 없이 헌금도 하고 교회 봉사도 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 사는 삶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사는 삶도 아닌, 교회에서는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 주고 세상에서는 세상이 요구하는 데로 살아가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삶이 몸에 베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인 행위는 작은 시험 앞에서도 곧 시들해지고 맙니다. 그들이 무엇인가 신앙을 갈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대부분 자신의 고통스러운 정신적 갈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간헐적인 충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3.안타까운 일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초월적인 사람을 부어 주심은 단지 교회를 소금창고나 조명기구 상회로 만드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에 거룩한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은 교회를 통해 당신의 뜻을 역사 가운데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역사에 영향을 주고자 하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위해 존재하고, 교회는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며, 세상은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리스도인에게 제시하는 이러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에게 멀게만 느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개인적인 경건이 역사에까지 확장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4.역사에 대한 소명감
오늘날 조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속한 역사에 대한 소명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충성스러운 섬김의 최종적인 열매는 종교의 부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고자 하시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거룩으로 어떻게 이 세상의 변화를 위해 기여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부흥에 대한 간절한 갈망이 없는 것은 교회가 역사를 위해 부름 받았다는 장엄한 소명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명이 없기 때문에 교회는 가난한 자신의 영적 상태를 인해 아파하지 않고 쉽게 자기만족에 빠집니다. 그리고 모든 신앙생활이 개인의 은혜 유지 차원에 그치고, 신앙은 죄악 된 세상에서 양심을 달래고 종교적인 위안거리를 제공해주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5.어두운 역사 한가운데 깨어 있는 영성
시대가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형식적인 신앙이 유행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법도와 교훈을 우습게 여기게 되고, 교회는 교회다워지기를 거절한 채 세상을 향한 영향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두운 시대에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며, 세상을 향한 영향력을 상실한 교회를 비판하고, 자기 시대의 사람들을 멸시하고, 역사에 대해 냉소적인 비관주의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태도가 아닙니다.
보이는 교회가 무너지자 그것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좌절했고 그들이 신앙을 저버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서책을 고요히 넘기며 역사의 새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6.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우리는 종종 대중 앞에서만 고민하는 체하기를 좋아합니다. 조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부패한 삶과 타락을 이야기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국외자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경박한 푸념이나 비난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빛처럼 비추고 소금처럼 존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였고, 다수의 사람은 빛을 잃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수에 달려 있지 않고 믿음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
7.하나님의 통치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특징
교회의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의 통치를 진심으로 갈망하던 사람들의 인격의 특징은 언제나 기도였습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의 실현에 대해 말하기만 좋아하는 사람인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동기가 되어 진심으로 그것을 갈망하는 사림인지는 그의 기도생활이 말해줍니다. 그가 하나님의 통치를 목말라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8.영적인 대리만족
인간은 어떤 좋은 일에 대해 많이 듣거나 자꾸 말하다 보면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종교개혁가들에 대해 많이 듣거나 청교도에 대해 자주 말하다 보면, 자신이 그들과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인 줄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 속에서 만족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곧 영적인 대리만족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전기를 통해, 우리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투철한 신앙의 삶을 만나곤 합니다. 나는 갈 수 없는 험난한 현장에서,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복음의 수고들을 감당해 내는 사람들을 책을 통해 만나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율과 감격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러한 감탄이 많은 부분 대리만족적인 성격에만 머물 뿐이라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대한 신앙 선배들의 탁월한 삶을 보며 감탄한다고 해서 자신이 그러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감격하고 은혜를 받아도 자신은 자신일 뿐, 그 사람이 될 수 는 없습니다
9.역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실 때 언제나 개인적으로만 다루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개인적으로 다루시는 동시에, 집단적으로 다루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으로뿐 아니라, 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역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손길 속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부름을 받아, 그 세상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세움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민족의 죄악이 차면 그 민족을 징벌하시고, 한 가족의 죄악이 차면 그 가정을 징계하십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손길이고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방법입니다.
10.크신 하나님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고 그분이 내 삶의 진정한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분인가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체험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주인이 되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임의 은혜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하고 인격적으로 승복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11.공의는 주께, 수욕은 우리에게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을 향해 토라진 마음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하나님마저 내편인 것 같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내 앞길을 사사건건 가로막는 분으로만 느껴질 때 우리는 주제넘게도 하나님을 향해 토라지곤 합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정말 분수를 모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향해 토라진 마음이나 삐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존재입니까?
한 시대의 교회나 혹은 개인의 영적 삶이 곤궁해질 때,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깨닫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12.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한 사람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정지신호를 받고 서 있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운전자들은 가끔 다리가 아파 기어를 중립에 놓고 신호대기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때 갑작스럽게 출발신호가 떨어지면, 기어를 중립에 둔 것을 잊고 가속 페달을 밟습니다. 이렇게 되면 '부릉'하는 엔진 소리는 세게 나지만, 차는 출발하지 않습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무리를 기도의 자리로 모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죄를 깊이 성찰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진지한 성찰 없이 큰소리로 기도하는 수많은 군중보다,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겸비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한 사람이 역사에 훨씬 더 기여합니다.
13.거룩한 삶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
자신과 자신을 둘러 싼 환경에 대해서 깨어 있으십시오. 깨어있다는 것은 지금은 자신이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상황에 이르면 자신도 방탕에 흐를 수 있고 염려로 마음이 둔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안팎에서 그런 조짐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환경을 통해 유혹이 어떻게 다가오는가?
그때 내 마음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유혹이 몰고 오는 죄에 대해 나는 싸우고 있는가?
그 투쟁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무엇인가?' 에 대해 전 인격적인 감시 체제가 가동중입니까?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삶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자신에게 실제화시키며 사는 비결입니다.
14.술집으로 변한 교회당
몇 해 전 호주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서 목회하는 어느 목사님의 안내로 시드니의 한 식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가벼운 양식과 맥주등을 파는 레스토랑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교회당 건물이었습니다. 교인이 없어 문을 닫게 된 교회를 주류판매자가 사들여 술을 파는 식당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식당에서는 같은 음식을 먹어도 앉는 자리에 따라 음식값이 다르다고 합니다. 회중석에 차려진 식탁이 가장 싸고, 성가대석은 그것보다 조금 비싸고, 강대상에 차려진 식탁은 그 식당에서 가장 비싸게 음식이 제공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바로 뒤돌아 나왔습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선조들이 지극한 헌신으로 지어진 예배당이, 교인들이 떠나자 유지비를 충당할 수 없어서 팔리고 마는 현실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15.교회의 위기-신자의 내면 생활에서
오늘날 조국 교회 안에 번져 가는 신앙적인 태만함을 보십시오. 많은 그리스도인이 바쁘고 고단한 경쟁 사회에 살면서 자신의 영적인 생활을 위한 의무를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조국 교회의 평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만큼도 기도하지 않고,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시간만큼도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부정직과 타락에 대해 많이 말하지만, 교회가 그러한 사회를 꾸짖고 바르게 할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교회가 가졌던 영적인 열심과 도덕적인 순수함, 그리고 사회적인 정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의 진정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는 교회의 중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개혁하는 일에 있어서 더 철저하고 올곧은 모본을 보여야 합니다.
16.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기독교
언젠가 어느 신문사에서 20-30대 젊은이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한 만족도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으냐?'는 질문에 83%의 젊은이가 '싫다'고 답했습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 나라의 미래가 누구에게 달렸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삼성그룹에 달렸다'고 답변한 대목에서는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종교가 그러한 일을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동의한 사람은 6퍼센트에 불과 했고, 대통령과 종교에 대한 기대를 모두 합해도 '삼성그룹'의 기대치에 한 참 못 미쳤습니다.
17.교회의 핵심 가치
제가 신학교 다니던 시절, 평소에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이 "웬만하면 부목사 생활은 경험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나가는 이야기로 농담 반 진담 반처럼 하신 말이었습니다. 그분이 알고 있는 어느 부목사님이 교회 일이라며 하시는 일이 너무 답답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구청처럼 커다란 현황판을 만들어 놓고 매일 스케쥴을 따라 심방하고는 퇴근길에 교회에 들러 심방한 집을 따라 현황판에 확인 스티커를 붙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너무합니다. 교회가 무슨 보험회사 영업소입니까?"
교회의 핵심 가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보존자이심을 온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세상으로 하여금 그분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하나님의 나라, 혹은 그의 영광을 위한 소명이라고 부릅니다.
18.그 백성을 기뻐하실 때
부흥을 열망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앞당기는 도구로 드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어떻게 해야 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라고 여쭈어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봉사나 자신을 내어드림이 없는 헌금 몇 푼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어긋난 관계를 땜질하려 하지말고, 진실한 태도와 부단한 노력으로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자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19.교회의 회복을 향한 갈망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나라와 우리시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시급한 일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역사 한 구석에 갇혀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뿐 아니라, 자기 시대의 교회와 세상의 거룩한 변화를 위해 부름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모든 초월적인 은혜는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힘 쓸 가장 큰 의무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세워 그들로 이 어두운 시대에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에게 불의와 부정직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서 불신자를 구원하는 것도 바로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있고, 그런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한 이 나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20.소수를 통한 역사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진정으로 깨어있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그들에 의해 움직여 왔습니다. 18세기 미국의 영적 대각성의 지도자로 쓰임 받았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작품을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깊은 찔림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물량적인 성장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순수하게 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단지 인본주의적인 방식에 의해 규모가 커지고, 물량적으로 성공을 이룬 다수의 교회 안에 계시지 않으시고,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려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평생 자신과 자신의 이웃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행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면 자신은 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깨어있는 소수로 살아가는 방식이며,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일꾼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21.우리를 택하신 목적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내신 것은 우리가 사랑스럽거나 고귀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참된 행복은 그 계획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등을 돌려도 되는 사람들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하나님을 이 세상에 역사 하시게 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22.변화된 삶, 변화된 기도
기도 생활을 하다 보면,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래 기도를 하는데도 좀처럼 기도의 깊은 세계가 열리지 않고, 처음에는 가슴에 사무치며 다가왔던 기도 제목들에 대해서조차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점 무디어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점검해 볼 사항은 하나님이 나에게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과 내가 지금 기도하고 있는 것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입니다.
지지부진한 기도생활에 젖어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전향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가슴에 부딪치는 순서대로 말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기도 역시 가슴에 자극이 되는 순서대로 기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삶과 마음과 기도 제목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기에 기도 제목이 바꾸기 위해서는 마음과 삶도 바뀌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변화된 영혼의 사람들만이 변화된 기도 제목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23.하나님의 주재권
하나님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 주시기 위해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를 예수 믿게 만드신 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거룩해진 모습으로 불경건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심은 우리의 존재와 선포를 통해 이 세상을 고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이러한 기대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면, 삶에 대한 인식의 지평도 넓어져야 합니다. 이제는 이 땅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존재들이 아니라 거룩함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해 사는 존재들로서 소명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를 그러한 목표에 기여하는 것으로 정위해야 합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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