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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의 <젊은 세대를 위한 신학강의3/탈출의 하나님>을 읽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부분을 조금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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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람 이야기 곧 하나님 이야기

구약은 거대한 이야기 보따리라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거야. 그 이야기 속에는 노래도 있고, 말 그대로 옛날 이야기도 있고, 논문도 있고, 드라마도 있고, 속담 모음도 있고, 회고담도 있는데 신통하게도 그 모든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두 기둥이 있단다.
절간에 가면 일주문이라고 해서 기둥 두 개로 버틴 대문이 있잖니? 구약은 두 기둥으로 세운 거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두 기둥의 하나는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야.  
인간 없는 이야기가 있을 수 없다는 건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하나님이 없었다면 '구약'이라는 위대한 책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게다.

2.사람은 사람이기에 사람답게 살아야 해

그건 권리이자 신성한 의무지지. 그의 피부가 어떤 색이든, 그가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든, 그런 것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제한 할 수는 없어. 그런데도 사람들은 같은 사람을 피부색으로 구분하고 이런저런 계급으로 나누고 성(性)으로 차별하고, 그 결과 사람이 사람을 업신여기고 괴롭히고 마침내 죽이기까지 하는 부끄럽고 그릇된 역사를 만들어왔구나. 아니, 그런 수치스런 역사를 지금도 만들고 있구나. 모세가 태어난 시절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절이나 그런 점에서는 크게 다른 것이 없어.

3.하나님의 일은 떳떳하게

얘들아, 중요한 얘기니까 마음에 잘 새겨두렴.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비밀스럽게 일하시지는 않는단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에는 '대외비'라는 게 없어. 사람들이 하는 일도 마찬가지야. 떳떳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일을 어둠 속에서 쉬쉬하며 하겠니? 뭔가 두렵거나 켕기는 구석이 있으니까 비밀로 하는 거지. 그러니까 비밀이 많을수록 올바른 일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고 보면 틀림없어.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이 세상의 음모를 꾸미는 자들처럼 비밀회의를 할 수는 없는 거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일은 떳떳하고 당당하게 내놓고 해야 해.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그런 길만이 하나님의 길이라고 할 수 있어.

4.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사람들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하셨지. 세상에 진주를 돼지에게 주는 사람이 어디 있니? 예수님이 그런 말씀 안 하셔도 미친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그런 짓은 안 해. 그러면 왜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건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어. 있어도 아주 많았지. 진주같이 귀한 자신의 몸을 탐욕이라는 돼지한테 내어 맡기는 거야. 그러면 어찌 되겠니? 탐욕은 끝이 없고, 결국 그의 일생은 영원히 만족할 줄 모르는 목마름과 굶주림 속에서 비참하게 끝나고 말겠지. 예수님은 바로 그 점을 경계하신 거야.  

5.삼독(三毒)

불교에서는 사람을 괴롭히는, 그래서 끝내 사람답게 살 수도 없고 영원히 괴로움 바다에서 허우적대게 하는 세 가지 무거운 집이 있다고 가르치지. 그걸 세 가지 독(三毒)이라고 하는데 탐욕,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더라.
탐욕은 뭔가 끝없이 가지려고 하는 마음이야. 돈도 가지고 싶고, 명예도 가지고 싶고, 권세도 가지고 싶은데, 그 가지고 싶은 마음이 밑 빠진 독이거든. 아무리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 그게 바로 탐욕이지. 많은 사람이 바로 이 탐욕 때문에 한평생 목마르게 헤매고 다니는구나. 가져도  가져도 모자라기만 한다면 그 노릇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탐욕은 끝없이 목마르게 하면서 마침내 성을 내게 만들지. 가지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가질 수도 없지만, 가지고 있는 것을 잃기도 하는 게 어쩔수 없는 '인생'이거든. 가질 수 없으니까 성을 내고, 가졌던 것을 빼앗기니까 성을 내고... 그래서 한 평생 붉으락푸르락 성을 내면서 살아가는 거야.
그런데 이 탐욕과 성냄이 모두 어리석음에서 나온다는 구나.

6.어린양의 피

'어린양의 피'라는 말에는 '억울한 죽음'이라는 뜻이 숨어 있는거야. 죽어야 할 이유 없이 죽는 생명. 티 없이 깨끗하고 그래서 죽는 것 자체가 억울한 그런 생명이 곧 '어린양' 이라는 말이지.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어린양'을 한 식구로 기른 사람들, 그 억울한 피로 자기 집 문설주를 붉게 물들인 사람들만이 파멸의 날을 해방의 날로 바꿀 수 있다는 그런 얘기야.

7.종살이 마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엉겁결에 애굽을 떠나 약속된 땅으로 탈출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종살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잠재의식)이 남아있음을 아셨어. 종살이를 그리워하다니, 무슨 말이냐고? 글쎄, 얼핏 들으면 그럴 수가 있겠냐 싶지만 사실이 그러했단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이나 위험보다는 시키는 대로하고 그 대가로 얻는 배부름과 안락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뜻밖에도 많이 있었거든, 아니, 그런 사람은 그때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어. 그들은 이렇게 말하지.
"차라리 일정(일정)때가 좋았어" "그래도 박정희 시절이 좋았지. 노사분규 없이도 잘들 살았으니까."

8.만나와 사유재산

-사유재산이란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공동의 재산이었던 것을 어떤 사람이 빼앗아 독점한 것이야. 사유(사유)라는 말의 영어인 'private'는 라틴어 '프리바레(privare)'에서 나온 말인데 프리바레는 '빼앗다'라는 동사란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유재산이 아무도 다칠 수 없는 성스런 것으로 여겨지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는 사유재산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것이지. 저 유명한 초대교회를 보렴.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4:32)

9.율법과 예언은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이요, 엘리야는 예언을 대표하는 인물이지. 율법이나 예언이나 그 내용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命)이란다. 둘러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율법이라는 옷을 입고 나타나기도 하고 예언이라는 옷을 입고 나타나기도 했다는 얘기야.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 다만, 율법은 어떤 고정된 틀로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명)이고 예언은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명령)이라고 보면 돼. 그러니까 그 둘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니는 본질적인 생각을 그대로 살리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틀'이라고 할 수 있지. 하나님의 말씀이 지니는 본질적인 성격이란, 얼핏 들으면 서로 모순되는 것 같지만, 한결같은 것  이면서 언제나 새롭게 바뀐다는 거야. 하나님의 말씀은 한결같아 바뀌지 않는 것이면서 동시에 순간순간 새로워지는 것이거든.

10.보이지 않는 하나님

세상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몸만 봐도 그렇잖니? 보이는 몸(신체)이 있고 보이지 않는 몸(마음)이 있어서 이 둘이 하나를 이룰 때 우리는 그것을 '몸'이라고 부르는 거야. 이 둘은 서로 떨어져서는 있을 수 없는 존재란다. 둘은 둘인데 별개인 둘이 아니라 하나인 둘이라는 얘기지. 중요한 얘기니까 명심해 두렴. 아마 내가 열 두 번도 더 얘기했을 게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보이는 몸(신체)의 때만 열심히 닦고 보이지 않는 몸(마음)의 때는 덕지덕지 그대로 둔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럽고 냄새가 나겠니? 우리는 보이지 않는 몸의 때도 깨끗이 닦아야 해.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음의 때 닦기를 게을리 하는 구나. 그래서 세상이 자꾸만 시끄럽고 살기 힘들어지는 거야.

11.존재의 바탕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결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니? 천지 만물 그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물론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예를 들어, 태양이 없다면 저 앞뜰의 모과나무가 있을 수 있겠니? 없지. 그런데 어떤 모과나무가 "나는 태양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해서 정말로 그 모과나무가 태양 없이 저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란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존재 자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존재의 바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12.요셉의 실수

-요셉의 실수라는 게 뭔고 하니, 풍년이 들었을 때 그냥 '거두어들였던'(창세기41:48) 곡식을 흉년이 들자 돈을 받고 '팔았다'(41:56)는 바로 그 점이야.
값없이 거두었던 것이니 줄 때도 값없이 주었어야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법에 어울리는 것을 텐데, 돈을 받고 팔았으니 아차 하는 사이에 요셉은 애굽 온 땅을 백성의 손에서 바로의 손으로 '소유권 이전'을 시키고 말았구나!
어디 땅만 넘기고 그것으로 끝났더냐? 나중에는 백성 스스로 바로의 노예가 되었어! 이게 웬 일이냐? 무서운 흉년에서 살아남은 건 좋았는데 그 대가로 땅과 몸뚱이까지 바치게 되었으니 안타깝구나. 이것이 어리석은 인간들의 역사라는 것일까?

13.한국인과 유대인의 재산

-한국 사람은 돈을 벌면 땅을 사는데 유대인들은 보석을 사 둔다는 구나. 자기 땅에서 쫓겨나 본 적이 없는 우리는 '땅'이 가장 믿음직한 재산일 수 있지만 처음부터 남의 땅에서 더부살이를 해야만 했던 유대인들에게는 땅이란 믿을 수 없는 재산이고(언제 빼앗길는지 모르니까), 부피가 작아서 지니고 다니기 쉬운 보석이야말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재산 아니겠니?

14.최초의 도시 이름은 '에녹'

-도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 태어난  것이라기 보다는 조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라기 보다 인간이 '건설한 것'이란 얘기야. 창세기 그 어디를 봐도 하나님이 도시를 지으셨다는 얘기는 없구나. 도시는 인간의 산물이거든. 맨 처음 이 땅에 도시를 건설한 사람이 누구였을까? 우리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도시 창설자의 이름은 아우를 죽이고 고향에서 쫓겨난 비극의 주인공 '가인'이란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창세기4:16-17)
여기서 '성'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원문 '이르'는 성벽을 둘러친 성채를 가리키는 말로 '현대 도시'하고 모양은 다르겠지만 성격은 같다고 할 수 있어. 하나님의 간섭이나 도움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살아보겠다는 교만한 의지를 그 속에 감추고 있는거야.

15.돌아가는 사람들

모든 개울이 바다를 바라고 흐르는 것은 바다가 개울의 뿌리(근본)이기 때문이지.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바뀌지만 저마다 제 뿌리로 돌아간다"고 노자도 말씀하셨어. 나뭇잎이 낙엽 되어 어디로 가던? 제 뿌리 한테로 돌아가는 거야. 그게 바로 '존재의 원리'라는 거지. 뿌리는 모든 것의 시작이면서 끝이야. 모든 것이 거기에서 나왔다가 거기로 돌아가는구나.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셨어. 그 뿌리(宗)로 돌아가는 길(道)을 가르치는 것이 곧 종교(宗敎)지. ⓒ이현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