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9788984812000.jpg 인터넷에서 찾은 표지   

 1795.jpg우리집에 있는 구판 표지
절판이어서 책을 구입할수는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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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소개의 말
2. 세상 사는 맛
3. 막다른 골목에서
4. 목마른 사람들
5. 형제여, 무엇이 보이는가?
6. 개가 된들 어떠랴
7. 그대들 의젓하고 잘생긴 사람들아
8. 믿어지지가 않는군
9. 한 아기에 대한 회상
10. 우리는 왜 그를 죽여야만 했던가
11. 보세요.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12.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13. 당신, 낫기를 바라시오?
14.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15. 새벽 닭 울음소리 들으며
16. 재수 없던 날
17. 엠마오 가는 길에서

본문 한편 소개 ''''''''''''''''''''''''''''''''''''''''''

4.목마른 사람들

  세상이 나를 개로 여기면 나 또한 세상을 개로 여기면 그만이다. 처음에는 원망도 했고 멍에처럼 씌워진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도 쳐봤지만 그럴수록 더 큰 좌절과 환멸을 맛볼 따름이었다. 나는 여자다. 사람 축에도 끼이지 못하는 여자다. 그것도 사마리아 여자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유대인, 그 가운데서도 더욱 오만한 바리사이파 남자들이 이런 기도를 드린다는 것쯤,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여, 저를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하셔서 감사드리나이다. 또한 저를 죄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하셔서 감사드리나이다. 오, 전능하신 하느님이여! 저를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하셔서 더욱 감사드리나이다.  
  여자란 이방인과 죄인들이 서 있는 줄 끝에 초라하게 매달려 있는 존재다. 그 오만한 남자들의 꼬락서니란 참으로 구역질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어미의 탯집에 누워 있던 시절을, 그 젖가슴에서 따스한 생명을 나눠 가지던 시절을, 그들은 그러한 것들을 어디에다 구겨박고 이제는 저토록 목을 곧게 세우고는 여자들을 발 아래 밟고 서 있는 것일까?
  모세의 계명'에도 여자는 남자가 소유하는 재산목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 "
  남자들은 나의 젖가슴이 부풀어오르며 웬만큼 일을 할 수 있게 되자 탐욕의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이기도 한 남자는 만족할 만큼 돈을 지불할 수있는 다른 남자에게 나를 팔았다. 나는 그의 재산이 되었다. 밤이면 그의 정욕을 받는 쓰레받기가 되었고 낮이면 힘줄이 늘어날 만큼 일을 해야 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란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허위에 찬 선전일 뿐이었다. 그런 것은 옛날 이야기에나 나오는 것이었고 나의 현실에서는 꿈조차 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나를 맨 처음 소유했던 남자는 마침내 나에게서 싫증을 느꼈다.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한테서 도대체 무슨 매력이 풍겨나겠는가? 남자들은 싫증 난 여자를 더 이상 먹여 살리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그는 나를 내보냈다. 아무가 이 여자를 소유해도 좋다는 쪽지(그걸 그네들은 '이흔장'이라 불렀지!) 한 장을 붙여서. 나는 다시 다른 남자의 소유물이 되었다. 남자의 소유물이 되지 않고는 여자 혼자서 살아갈 수도 없는 세상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싫증 난 남자들에 의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는 여섯 번째 남자다. 앞으로 또 몇 남자를 새 주인으로 모셔야 할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나의 '주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도 나의 참된 순종과 존경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이 나를 아무렇게나 물건 취급했으므로 나 또한 그들을 그렇게 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나의 몸뚱이를 세상의 시궁창에다 던지고 나니 두려울게 없었다.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 없으니 아까울 것도 없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 누구의 손가락질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아직은 몸이 건강하고 또 성기도 쓸 만하다. 이것들이 병들고 지치면 내 인생은 막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그들이 나를 때때로 아쉬워할 것이고 '창녀'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멸시하면서도 밤을 타서 접근해올 터이므로 살아갈  수가 있으리라.
  아아, 그러나 이것이 어찌 인생이란 말인가? 세상을 향하여, 아니 남자들을 향하여 표독스런 증오를 내뿜고 복수의 기회를 노리며 살아가는, 이것이 어찌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눈먼 짐승처럼 꿈틀거리며 타고난 본능에 따라 살아간다 하지만 나에게도 참된 사랑에 대한 갈증은 있었다. 애써 그것을 숨기고 억압했지만, 그러나 어쨌든 나도 사람이었다!
  이 타는 갈증을 적실 수 없어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으로 옮기며 헐떡거려도 보았지만 그 모든 것은 오히려 더욱 목마르게나 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낮이었다.
  여느 때처럼 늦잠에서 깨어나 한껏 게으른 몸짓으로 물동이를 이고 동구 밖 우물로 나갔다. 우리의 조상인 야곱이 팠다는 우물이다.
  그런데 그 우물가에 한 남자가 피곤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가까이 이르러 보니 뜻밖에도 그는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유대인이었다.
  검은 턱수염에는 먼지가 뿌옇게 묻어 있었고 발등은 땀과 때로 얼룩져 있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윽한 눈길이었다.
  나는 말없이 돌아서서 그를 피하려 하다가 그러려고 하는 본능을 억제하고 발끝에 힘을 주며 그의 곁을 지나 우물에 다가갔다. 그는 아주 먼 길을 걸어온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우리네를 개만큼도 여기지 않았다. 유대인인 그가 이 사마리아인의 작은 마을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유대 지방에서 갈릴래아 지방으로 갈 때에도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는 직선도로를 버리고 일부러 돌아서들 다녔다. 그네들이 우리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니 우리 또한 그들을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아마도 무슨 까닭인가 있어서 도망쳐 다니는 유대인이겠거니, 혼자 짐작하며 나는 깊은 우물에다 두레박을 던져넣었다. 스스로 메시아라고 주장하며 산적떼를 만들어 행인들을 괴롭히는 유대인들이 쫓겨 다니면서 때로는 체포되어 예루살렘 뒷산에서 처형당하기도 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두레박을 끌어올려 물동이에 부으려고 할 때였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나에게 그 물을 좀 주오."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얼른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다시 말했다.
  "그 물을 좀 주오."
  남자가 그것도 유대인 남자가 여자인 나에게 그토록 부드럽게 말하다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명령조로 말을 했다.
거리에서도 그랬고 침대에서도 그랬다. 나의 귀는 처음부터 남자들의 단조롭고도 딱딱한 명령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것도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을 주는 것도 잊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유대인 남자고 저는 사마리아 여잡니다. 어떻게 저에게 물을 달라 하십니까?"
  그가 조금 웃는 듯하더니 이내 정색을 하고 말했다.
  "누구든지 목이 마른 사람은 물을 달라고 할 수 있지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당신의 얼굴을 보니 당신이 나보다 더 목이 마르군요. 당신은 나에게 야곱의 우물물을 줄 수 있지만 나는 당신에게 끝없이 솟는 샘물을 줄 수 있다오."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이 우물은 깊고 또 당신한테는 두레박도 없는데 어디서 물을 길어 저에게 주겠다는건가요? 게다가 이 우물은 당신 말대로 야곱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물려주신 유산입니다. 그분이 처음 마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마르지 않은 우물이지요. 그런데 이 우물보다 더 좋은 물이 딩신한테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가 다시 말했다. 점점더 못 알아들을 말이었다.
  "그렇소. 이 우물물은 아침에 마시면 저녁에 목이 마르지요. 마셔도 마셔도 자꾸만 목이 마를 것이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두번 다시 목마르지 않습니다. 당신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샘물로 솟아날터이니까·..."
  나는 그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건 결코 농담이나 놀리는 말이 아니라고!
  그는 너무나도 진실한 말투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의 말대답이 그를 조롱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바닥 없는 늪처럼 나의 온몸을 삼켰다. 이미 나는 그로부터 등을 돌리거나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고 따라서 여기까지 물을 길으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말했다.
  "좋아요. 그러나 한 가지 먼저 할 일이 있소. 당신 남편을 이리로 데리고 오시오."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뭐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 이 젊은 나이에 다섯 남자를 거쳐 지금은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데, 그를 데리고 와야 할 것인가? 그러나 이내 발음도 똑똑하게 나는 대답을 했다.
  "남편은 없습니다."
  그가 다시 웃는 듯 마는 듯 하더니 실바람처럼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당신은 다섯 남자를 거쳐 지금은 여섯 번째 남자와 함께 살고 있지만 그 남자도 당신의 남편은 아니니까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지요. 당신은 참으로 목이 마른 여자로군요."
  나는 들고 있던 두레박을 놓아버렸다. 텀벙! 소리도 요란하게 두레박은 깊은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두레박을 놓아버리면 물을 마실 수가 없지 않소?"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 평생 처음 진심으로 남자 앞에 꿇어보는 무릎이었다.
  "선생님은 예언자십니다!"
이것은 겨우 내가 꺼낸 말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그가 뭐라고 말을 하기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는 길로 정신없이 마을로 달려갔다.
  사람들은 내 말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 우물가에 있어요. 같이가서 봅시다. 그분이 메시아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여느 때처럼 그들은 나를 비웃었다.
  "네 과거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러나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글쎄, 그분은 달라요. 우리 마을 사람도, 사마리아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유대인이었어요."
  "아니, 그럼 유대인을 만났단 말이냐?"
  "그가 나보고 물을 달라고 했지요. 아니, 물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거냐?"
  "어서 가 봅시다. 그분은 틀림없이 메시아이십니다."
  "그가 정말로 우리 마을 우물가에 와 있단 말이지?"
  그들은 서둘러 걸어가는 내 뒤를 엉거주춤 따라왔다.
  우리가 우물가에 다가갔을 때, 거기에는 열 사람쯤 되는 일행이 모여 있었다.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던 남자를 둘러싸고 서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의 두 번째 남편이었던 엘르아잘이 횐수염을 바람에 날리며 그들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우리 마을의 어른격인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을 방랑과 모험으로 보내고 이제는 고향에 돌아와 쉬고 있는 참이었다. 그는 아는 것도 많았다.
  엘르아잘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우리 마을 계집에게 물을 청한 사람이오?"
  "그렇습니다."
  그가 역시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의 말이 계속되었다.
  "내가 바로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한 목이 마른 사람이올시다."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맞아요. 한때 영감님의 여인이기도 했었지요."
  엘르아잘의 얼굴색이 달라졌다.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묻겠소. 우리는 저 산에서 야훼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당신네 유대인들은 꼭 예루살렘에서만 드려야 한다니, 어찌 된거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시오?"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아요. 예배하는 장소가 문제되는 그런 시절은 이제 지났습니다. 하느님은 바람과도 같은 분이시라 어디서든지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알아주시고 사랑하시지요."
  "그렇다면 선생은 예루살렘 아닌 데서도 하느님께 예배드릴수 있다는 말씀이시오?"
  "그렇습니다."
  엘르아잘이 뒤를 돌아보며 엄숙하게 말했다.
  "이분을 마을로 모실 차비를 하라. 이분은 정녕 예언자시다!"
  그러고는 그에게 허리를 굽혀 절하며 말했다.
  "선생님, 우리 마을에 가셔서 좋은 말씀 좀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무례했던 건 모두 용서하시고..."
  그와 그의 일행은 이틀 동안 우리 마을에 머물렀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들은 우리와 함께 먹고 잔 처음이자 마지막 유대인들이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은밀히 해준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어여쁜 여자여, 하느님의 딸이여, 사람들이 그대를 개처럼 여긴다고 그대 자신까지 그대를 개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오.사람들이 그대를 물건처럼 취급하거든 그대는 그대를 천사처럼 받들구려. 사람은 남이 만들어주는 대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대로 정해지는 법이오.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봐요! 그대에게 한 방울의 자비를 바라는 목마른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이는 하느님이 언제나 그대 곁에서 목마르시기 때문이오. 사람이 짓는 죄 가운데서도 가장 고약한 것은 남을 버리는 것보다 자기를 버리는 것이라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을 버리는 것이면서 또한 하느님을 버리는 것이니까."
  그리고 또 그는 엘르아잘을 비롯하여 나를 거쳐 지나갔던 모든 남자들에게 말했다. "여자와 아이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들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죄인들을 추방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안아줘야 합니다. 거지들을 구박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과 모든 것을 나눠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하느님 앞에서는 여자와 아이처럼 약한 존재요 죄인이며 거지이기 때문입니다.
  정신 차리고 내 말을 들으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바야흐로 이루어졌소! 당신들은 낡은 생활을 청산하고 새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시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가르는 장벽,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고 의인과 죄인을 가르고 남자와 여자를 가르는 모든 낡은 시대의 장벽을 허물어뜨리시오. 남이 무너뜨리기를 기다리지 말고 당신들이 먼저 무너뜨리시오. 우리들은 이제 야곱과 에사오의 후손으로부터 한 사람 아담의 후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장 위대한 화해의 역사를 이룩해야 합니다. 원수들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들이 곧 우리의 형제임을 뜨겁게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유대인이요 나자렛 사람 예수며, 이 형제들은 모두 갈릴래아 출신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여기 이 여인은 하느님의 딸입니다. 우리가 손을 잡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러면서 그는 나의 손을 잡았다. 숯불덩이처럼 뜨거운 손이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누이여, 목이 마르군, 물 한 그룻만 주오!"
  나자렛 사람 예수와 그의 일행.
  그들은 바람처럼 머물다가 바람처럼 떠나갔다. 그러나 나의가슴에는 그가 남겨준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나는 정말 새 사람이 되었다. 내가 새 사람이 되니까 세계도 따라서 새세계가 되었다.
  나는 모든 남자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멸시했지만 그 멸시의 따가운 눈총을 내 가슴의 샘물로 꺼버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가 뒤집어쓴 여러 죄목들 가운데는 사마리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을 사람 대접한 것도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 그리고 그는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내가 목마르다!" 소리지르며 죽어갔다는 것이다.
  남의 메마른 가슴에는 샘물을 파 주면서 자신은 끝내 목말라야 했던 그 사람, 그 하느님이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이었다. (요한 4, 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