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이윤기<내려올 때 보았네/비채>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글은 자신의 마음을 형상화 된 어떤 기호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옛사람들은 문장에 능한 '선비'들을 대접했고 선비는 '글과 그림'을 기본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했습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부터 '논술교육'을 시킵니다. 어떤 것에 관하여 의견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논술'이라고 하는데, 이게 억지 공부에 불과할 뿐 엄밀하게 말해서 옛 선비들 같은 '즐거운 글 쓰기'는 아닙니다. 요즘에는 '그것이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느냐? 돈이 되느냐?' 딱 두 가지 경우가 아니고는 글 쓰기를 안 하려고 하는 척박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은근하게, 때로는 현란하게, 때로는 강하고 부드럽게, 노골적으로 해학적으로 자유자재로 표현한 글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마음이 풍성해지는데 그러한 글은 '논술'을 통해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책은 서점에서 오랜만에 만난 옛 선비의 글 같은 산문집입니다. '인문학의 향기, 사람의 향기가 가득한 교양산문의 빛나는 경지' 라는 표지에 적힌 문구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책입니다.
이 책과 같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한 '산문, 수필'집이 많이 읽히는 시대가 정서적으로 풍성한 시대입니다. 마음을 순화시켜주는 음악이나 문학이 삶 속에 녹아있는 서구 유럽 사람들의 삶이 비록 경제적으로는 조금 가난할지 몰라도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던 나에게는 공부가 곧 독서였다. 독서가 곧 공부였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면 나는 대위법이나 화성학을 공부했지 헤밍웨이를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던 나에게 학교는 음악, 미술, 화학, 생물, 수학 심지어 부기법(簿記法)이나 주산(珠算) 놓기까지 강요했다. 항변하는 나에게 학교는, 전인(全人)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공부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전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공부를 자꾸만 방해하는 공립학교를 나의 학교에서 퇴학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빈 들에서의 고단한 삶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31면
이 책의 저자는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중견작가이자 평생 영어를 가지고 먹고 산 번역가입니다. 수많은 책이 그의 손을 통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또한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을 포기하고 외롭게 다른 길을 걸어온 '외인'이기도 합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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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 10년 뒤에 온다'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내가 손을 잡아본 작가나 시인은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뒤에도 독자의 기억에 머무는 시인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서점의 진열대에 저서가 올라가 있는 작가나 시인은 그보다 훨씬 그 수가 적다. 작가나 시인의 생물학적 죽음과 함께 그들에 대한 기억까지 깡그리 사라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지만, 10년 뒤에도 책이 살아 남아있다면 그것도 근사한 일이 아닌가?
노자, 장자, 공자의 어록은 어떤가? 2천 수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있지 않은가? 부처의 말씀은 어떤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또 어떤가? 세익스피어 역시 그가 죽은 지 4백년이 지난 지금도 펄펄 살아있다. 나는 세월로부터 검증 받지 않은 책은 잘 읽지 않는다. 나에게는 10년 뒤에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35-36쪽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