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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재미있고 재치 있는 우화와 이현주 목사님의 기도문이 곁들여진 예쁜 책입니다
"눈에 띄는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속에서 제 눈에 들어오는 숨겨진 이야기를 기도문의 틀에 담아보았어요. 모든 이야기가, 누가 지어낸 것이든 실제로 있었던 것이든, 그 속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안데르센이 미운 오리 이야기를 썼을 때에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에 대고 말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가 있었던 겁니다.…… 이야기 끝에 달아놓은 저의 기도문은, 아하, 이 이야기를 이렇게 읽은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참고하시고 가볍게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기도문 형식이든 편지 형식이든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스스로 이야기 속에서 찾아낸 이야기를 적어보시라고 권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여러분의 작은 이야기를 좀더 재미있고 영양가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가는 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책머리 이야기에서
이 책에는 재미있는, 그러면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재치와 해학, 유머와 깨달음이 담긴 이야기 예순 한 편이 실려 있습니다. 부모가 읽고 아이들에게 한 편씩 편안하게 이야기로 들려주셔도 좋고, 학교나 교회 등에서도 수업 시간에 들려줘도 참 좋을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이 읽고 설교 때 써도 좋을 이야기이고, 스님이 설법하실 때 써도 좋을 이야기지요. 혼자 조용히 읽고 묵상하기에도 좋구요.
누구나가 읽어도, 또 누구나와 나눠도 좋을 수 있는 까닭은 소개된 예순 한 편의 우화는 쉽고도 재미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해석하고, 영혼의 양식으로 삼아가는 과정은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느낌이 다르고, 깨닫는 것이 다른 것처럼, 같은 글을 읽고도 그 맛을 느끼고 해석하는 것도 자신의 처지에 맞게 하는 걸 테니까요. 특히나 우화이기 때문에 해석의 각도가 다양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이현주 목사의 기도문은 바로 그런 해석과 깨달음의 한 예라고 볼 수 있겠지요. 아, 이런 이야기가 이런 기도로 이어지는구나, 이렇게 또 하나의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구나, 하고 발견하는 것도 이 책이 주는 큰 선물입니다.
편안한 느낌의 그림과 함께 어우러진 보는 것마다 당신! 보는 것마다 당신이라. 한마디로 사랑에 빠진 거지요? 빠져도 옴팡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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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맛보기

1.어떤 작은 나라에서

지중해 연안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모나코라는 작은 왕국이 있다. 이야기는 모나코 인구가 7천밖에 되지 않던 옛날로 돌아간다. 당시 모나코 왕은 나라를 운영할 재정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세금을 올려 봤지만 문제는 세금을 낼만한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현실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도박장을 열고 외국인들을 끌어들였는데, 그래서 얼마쯤 수입을 올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라는 가난했고 백성은 굶주렸다.
어느 날, 작은 왕국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살인사건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판사는 전례가 없는 일인지라 어떻게 판결을 내려야 할는지 무척 난감했다. 결국, 오랜 고심 끝에 살인자의 목을 자르는 것으로 결판이 났다.
“훌륭한 판결이군!” 왕이 말했다. “한데 문제가 있어. 우리한테는 단두대도 없고 형을 집행할 사람도 없으니 어떻게 그의 목을 칠 것인가?”
“그래서 생각해보았습니다만,” 법무장관이 말했다. “프랑스 정부에 서신을 보내어 단두대와 집행인을 빌려달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훌륭한 생각일세!” 그래서 왕은 그날로 프랑스 정부에 편지를 보냈다.
얼마 안 되어 사신이 프랑스 국왕의 답장을 가지고 돌아왔다. 법무장관이 큰소리로 그것을 읽었다. “프랑스는 기꺼이 단두대와 집행인을 빌려주겠소. 경비는 일만 육천 프랑만 받겠소.”
“일만 육천 프랑이고?” 왕이 소리쳤다. “건달 녀석 하나 없애는데 그만한 돈을 쓸 수는 없지! 좀더 싼 값으로 죄인의 목을 칠 방법을 찾아보게.”
“이탈리아 국왕에게 요청하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야! 곧 편지를 보내게.”
이탈리아 국왕의 답장이 도착했다. “이만 프랑만 내면 최신형 단두대와 솜씨 좋은 집행인을 당장 빌려주겠소.”
“이만 프랑을 내라고?” 왕이 몸을 떨었다. “그만한 돈이면 국민 일인당 이 프랑씩 주고도 남지 않는가? 생각해보게. 좀더 값싼 해결방법을 찾아보라고!”
“전하,” 장관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형 집행에 군대를 쓰는 게 어떨까요? 어차피 군대란 사람을 죽이라고 있는 것 아닙니까?”
국방장관이 말했다. “이 몇 년 동안 우리 군에서는 아무도 사람을 죽여보지 못했습니다. 총을 쏴본 적도 없어요. 우리는 그저 사열식이나 다른 국가의 행사에만 군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 사형수는 목을 치도록 되어 있는데, 우리 군에는 칼을 쓸 줄 아는 병사가 없습니다.”
왕은 이 문제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해결책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몇 차례 회의를 거듭한 끝에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안을 왕에게 내놓았다. “전하, 죄수를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시켜주십시오. 그러면 전하의 자비심을 보여줌과 동시에 형을 집행하는 경비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훌륭한 생각이군!” 왕이 소리쳤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네. 우리에게는 감옥이 없고 간수도 없지 않은가?”
결국 왕실 부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비어 있는 작은 방 하나를 사람들이 찾아냈다. 죄수를 그 방에 가두고 간수를 하나 세워 감시하면서 먹을 것을 가져다주라고 했다.
연말이 되어 왕실 재정장관이 왕에게 보고했다. “전하, 그동안 죄수를 감옥에 가두고 지키며 먹이는 데 든 비용을 산출해보았습니다. 물론 간수 월급도 포함되었지요. 전하, 그 돈이 무려 육백 프랑이나 되었습니다!”
“육백 프랑?” 왕이 소리쳤다. “말도 안돼! 죄수는 아직 젊고 건강하네. 앞으로 오십 년은 더 살 거야!”
왕실 자문관들이 불려왔다. “좀더 싼 경비로 저 골칫덩어리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보게.”
오랜 침묵을 깨고, 한 자문관이 말했다. “간수를 해고하면 어떨까요? 육백 프랑의 대부분이 그에게 월급으로 지급되었습니다.”
“간수가 없으면 죄수가 도망칠 텐데요.” 다른 자문관이 말했다.
“바로 그거야!” 법무장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놈을 도망치게 합시다! 그러면 그를 가두어두고 먹이는 데 필요한 돈을 내지 않아도 되지 않겠소?”
“기막힌 생각이군!” 왕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곧장 간수를 해고했다.
왕의 신하들이 건물 모퉁이에 숨어 죄수의 동태를 살폈다. 그런데 죄수는 식사시간이 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정오에 문밖으로 나와 간수를 찾더니 그가 보이지 않자 제 발로 왕실 부엌을 찾아가서 자기 몫의 음식을 받아먹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같은 식으로 나와서 자기 밥을 먹고 들어갔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다시 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이번에는 법무장관이 직접 죄수를 만나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어디로든 가도 된다고 말해주기로 했다. 법무장관이 죄수에게 말했다. “우리는 간수를 해고했다. 전하께서는 네가 어디로 도망을 쳐도 화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전하께서 화를 내시든 말든 상관없어요.” 죄수가 말했다. “난 갈 곳이 없습니다. 장관께서 내게 사형을 언도하는 바람에 내 평판이 나빠져서 아무도 나를 고용하려 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이 나라 정부는 한 번 한 말에 책임지는 법을 배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죽이겠다고 하더니 죽이지 않았어요. 다음에는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겠다고 했는데 또 마음을 바꾸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내 간수를 해고시키고는 할 수 없이 내 발로 부엌으로 가서 음식을 받아먹게 했습니다. 더 이상 정부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겁니다!”
왕실 자문관들은 골치가 아팠다. 이 비싼 죄수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머리를 짜내어 궁리한 끝에 죄수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우리는 자네에게 연봉 사백 프랑을 주기로 했네.”
"어림없소!” 죄수가 대꾸했다. “사백오십 프랑을 받기 전에는 꼼짝도 하지 않겠소. 거기에다가 이 방을 내어주는 값으로 오십 프랑을 얹어주시오.”
위원회는 협의를 거쳐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나라에서 받은 돈으로 땅을 조금 사고 채소를 심었다. 해마다 정해진 날에는 왕실로 와서 자기 몫의 돈을 받아갔다. 그는 정말 운이 좋은 친구였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감옥에 가두거나 단두대에 세우는 데 쓰이는 경비를 아끼지 않고 지불하는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

기도: 주님, 잘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게 당연한 상식으로 통하는 곳이 바로 이곳 사람들 세상입니다.
저도 여태껏 그런 상식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하지만, 주님, 이 ‘당연한 상식’을 벗어나
더 이상 상훈도 없고 처벌도 없는 그런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헛된 기대도 없고 터무니없는 두려움도 없는 나라, 오직 사랑만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그런 나라 백성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게 과연 헛된 꿈일까요? ⓒ이현주 (목사)

2.축복과 저주  

어느 날 해질 무렵 예수와 성 베드로가 부잣집 문간에 걸음을 멈추었다. 예수가 집주인에게 말했다. “길 가는 나그넵니다. 고단한 몸을 하룻밤 쉬어갈 수 있을까요?”
여자가 쌀쌀맞게 한 마디 던지고 문을 쾅 닫았다. “여기가 여관인 줄 알아요?”
예수는 한 마디 말도 없이 길 건너 허름한 집으로 갔다. 문을 두드리자 아이를 품에 안은 여자가 나타났다. “길 가는 나그네입니다. 하룻밤 쉬어갈 수 있을까요?”
여자가 친절하게 말했다. “누추한 집이지만 영광입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시장하실 텐데, 여기 불을 쬐면서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아이를 잠재워놓고 곧 드실 것을 마련하겠습니다.”
예수와 베드로는 꼬마 셋이 작은 침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여자가 아이들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꼬마들이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있다가 여인이 급히 나와서  나그네를 위하여 먹을 것을 차려냈다.
이튿날 아침,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식탁에는 근사한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들이 밥을 먹는 동안 여인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져갈 점심 도시락을 쌌다.
이윽고 두 사람이 길을 나서는데 여자가 예수 손에 작은 도시락을 들려주며 말했다. “많지는 않아도 요기는 될 겁니다.”
예수는 여인의 대접에 마음이 움직였다. “당신의 친절한 나그네 대접에 감동했습니다. 나는 예수고 이 사람은 베드로요. 우리가 떠난 뒤에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오늘 하루 종일토록 하게 될 것이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여인은 아이들마저 학교로 보낸 다음, 옷감을 짜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옷감이 그렇게 잘 짜여지고 그렇게 빨리 짜여진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쯤에는 짜놓은 옷감이 온방에 가득 찼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여인은 계속 옷감을 짰다. 마침 그 집 앞으로 지나가던 건너 편 부잣집 여자가 방 안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라며 일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여인은 그날 있은 일을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그분이 주님이신 줄 알았더라면 방을 내드렸을 텐데!” 부잣집 여자가 아쉬워하며 물었다. “혹시 그분들이 다시 온다고 하지 않던가요?”
“한 주일쯤 뒤에 이리로 지나갈 거라는 말을 들었어요.”
“혹시 이리로 오거든 제발 우리 집으로 보내주세요.”
“그러지요.”
며칠 뒤, 예수와 베드로가 다시 그 마을에 나타나 먼저 묵었던 집 문을 두드렸다. 여자가 나와서,
“오늘은 앞집으로 가보세요. 방을 비워놓고 두 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답니다.”
길을 건너가는 예수의 뒤를 따르며 베드로가 투덜거렸다. “그 여자는 우리를 대접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저 선생님 축복을 노리는 것뿐이에요.”
예수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어떤 사람은 축복을 저주로 바꾸기도 한다오.”
그날 밤 두 사람은 대단한 환대를 받았다. 부엌에는 새로 구운 빵이 수북하게 쌓였고, 여자는 바쁘게 부엌과 식탁 사이를 오가며 남편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주전자 좀 올려놔요! 장작도 더 가져오고. 넘어지지 말고 발조심해요!”
예수와 베드로는 하룻밤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 푸짐한 아침상을 받았다. 길을 떠나기 전, 예수가 여인에게 말했다. “우리가 떠난 뒤에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오늘 하루 종일토록 하게 될 것이오.”
두 나그네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남편이 직조기를 차려 놓았다. 아내는 잠시 직조기에 앉았다가, “앞집 여자보다 옷감을 두 배는 짜야지!” 하고는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자기 자신에게 하루 종일 정신 차려 일하자고 다짐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다시 돌아와 직조기 앞에 앉자마자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녀를 벌떡 일으켜 세워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녀는 직조기에 앉았다가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직조기에 앉았다가 밖으로 나가기를 끊임없이 되풀이하였다.

기도: 사람이 축복을 저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도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 저로 하여금 축복을 저주로 바꾸는 어리석음에서 떠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슬기로움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이현주 (목사)

3.사자와 성인

5세기 무렵 예로니무스는 소수의 수도승들과 함께 베들레헴의 한 수도원에 살았다.
하루는 수도승들이 저녁 기도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서는데 사자 한 머리가 수도원 뜰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겁에 질려 달아났지만, 예로니무스만은 태연하게 서서 사자를 바라보았다. 사자가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이윽고 그의 앞에 걸음을 멈춘 백수의 왕이 입을 크게 벌렸다.
예로니무스가 사자 입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커다란 나무 조각이 목젖 부근에 가시처럼 깊숙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그는 얼른 두 손으로 나무 조각을 뽑고 상처를 씻어주었다.
수도승들은 사자가 얼른 떠나주기를 바랐지만, 사자는 그들의 기대와 달리 예로니무스의 오두막 안에서 잠들어 버렸다. 이튿날에도 사자는 수도원을 떠날 마음이 없다는 듯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고, 수도승들은 겁이 나서 몸을 사려야 했다.
하루는 사자의 상처가 잘 아물었음을 확인한 늙은 예로니무스가 수도승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그들 앞에서 사자에게 말했다. “이 수도원에서는 아무도 게으르게 빈둥거리며 살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 몫의 일을 해야 하거든. 그러니 너도 이제부터 일을 하여라. 네가 할 일은 늙은 수도승이 당나귀를 데리고 숲에 가서 땔나무를 해오는 동안 그들을 강도들과 들짐승들이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것이다. 알겠지?”
사자가 알았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수도승들은 모두 예로니무스가 미쳤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자가 나무하는 수도승을 보호하기는커녕 당나귀를 잡아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태는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아침마다 늙은 수도승과 당나귀는 숲으로 나무를 하러 들어갔고 그 뒤를 사자가 어슬렁거리며 따라갔다. 수도승과 당나귀가 나무를 다하면, 셋이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자가 나무하는 수도승과 당나귀를 지켜보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그가 잠든 사이에 지나가던 상인들이 늙은이와 나귀를 끌고 가버렸다.
잠에서 깨어난 사자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늙은 수도승과 당나귀가 보이지를 않는지라, 할 수 없이 혼자서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그것을 본 수도승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저렇게 될 줄 알았다. 저놈이 수도승을 죽이고 당나귀를 잡아먹은 게 틀림없어!”
예로니무스까지도 마음이 흔들렸다. 늙은 예로니무스는 사자에게 당나귀가 하던 일을 감당하라고 명했다. 할 수 없이 사자는 당나귀 대신 나뭇짐을 져야 했다. 백수의 왕으로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자는 좀 멀리 갔다가 자기 친구인 당나귀에 짐을 잔뜩 지우고 지나가는 상인들을 보았다. 사자가 반갑게 달려가자 당나귀도 옛 친구를 알아보고 반갑게 달려왔다. 겁에 질린 상인들이 목숨을 구하려고 곧장 수도원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일이 어떻게 된 것인 줄 알게 된 상인들은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빌었다. “나무하던 노인은 지금 다마스커스에 잘 있습니다. 잘못했으니 용서하고 살려주십시오.”
예로니무스는 먼저 그들을 용서한 다음, 다른 수도승들과 함께 사자한테 용서를 빌었다. 그런데 사자는 옛 친구 당나귀를 다시 만난 것이 기쁠 따름인 것 같았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지금 성 예로니무스(성 제롬)의 초상화에서 그의 발치에 누워있는 사자를 보고 있는 것이다.

기도: 주님, 저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거기서 걸음을 멈추지 말고, 더욱 앞으로 나아가, 아무리 찾아봐도 용서할 상대가 없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현주 (목사)

4.작은 마을의 세 친구 이야기

어느 작은 마을에 세 친구―하나는 무슬림, 하나는 유대인, 하나는 그리스도인―가 서로 인접한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런데 무슬림은 금요일을, 유대인은 토요일을, 그리스도인은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
어느 봄날 정오 무렵,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밭갈이를 마치고 함께 점심을 먹다가 그날이 금요일이라서 무슬림의 밭이 갈려지지 않은 채 그냥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친구가 말했다. “내일 비가 온다는데 그러면 저 친구 밭을 갈 수 없을 것 아닌가? 우리가 마침 밭갈이를 마쳤으니 저 밭을 좀 갈아주세.”
두 사람은 기꺼이 동의하고 무슬림의 밭을 함께 갈아주었다.
이튿날 무슬림이 깨끗하게 갈려진 자기 밭을 보고 속으로 말했다. “내가 당신의 안식일을 지켰더니 알라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밭을 갈아주셨구나.”
몇 달 뒤, 콩을 추수할 때가 되었다. 세 친구 밭의 콩도 모두 잘 익었다. 어느 일요일, 그리스도인 친구가 안식일을 지키고 있을 때 유대인과 무슬림 친구 둘이 자기네 밭의 콩을 거두어들였다. 추수를 모두 마쳤을 때 두 밭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인 친구의 밭에만 익은 콩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게 보였다. 유대인이 무슬림 친구에게 말했다. “저렇게 익은 콩을 그냥 두면 내일쯤에는 콩알이 많이 달아나버릴 텐데, 날이 저물기 전에 우리가 거두어주면 어떨까?”
둘은 기꺼이 동의하고 그리스도인 친구의 콩을 모두 거두었다.
이튿날 그리스도인 친구가 밭에 나가 추수가 잘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말했다. “기적이 일어났어. 내가 안식일을 지키는 동안 하느님이 천사들을 보내신 거야.”
밀을 타작할 때가 되었다.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두 친구가 밭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을 때 유대인 친구는 집안에 머물며 안식일을 지켰다. 그날이 토요일이었던 것이다. 밀 타작을 모두 마치고 무슬림 친구가 그리스도인에게 말했다. “내일 비가 오면 저 친구의 밀밭이 모두 젖을 테고 그러면 추수가 늦어져서 곤란해질 걸세. 우리가 거들어주면 어떻겠나!”
둘은 기꺼이 동의하고 유대인 친구의 밀을 모두 타작해 놓았다.
이튿날 유대인 농부가 밭에 나가 밀이 모두 타작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제가 안식일을 지키는 동안 천사들을 보내어 밀을 모두 거두셨군요.”

기도: 주님, 흐뭇한 이야깁니다. 그런데 어딘지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이야기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려워서겠지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우리네 삶의 현장에서 원천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 아닌가요? 주님,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종교의 다름에 걸리지 않고 친절한 이웃으로, 자기가 천사인 줄 모르는 천사로, 살아가게 도와주십시오.
ⓒ이현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