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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정원<행복한 신앙을 위한 28가지 조언/영생의숲>

  행복한 신앙

1. 식사 기도는 제발 좀 짧게 하라 -세계 평화를 위해서, 삶의 행복을 위해서 식사기도는 짧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식사기도를 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최대한 빨리 기도를 마치고 즐겁게 식사를 하라. 정 하고 싶은 기도가 있으면 밥을 먹고 나서 하면 된다. 부디 거창하고 복잡하게 믿지 말고 단순하고 가볍고 즐겁고 재미있게 믿으라. 신앙이란 형식이 아니고 삶이다. 거창하고 무게 있는 삶이 아니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우며 자유로운 삶이다.

2. 깨어지고 죽는 것이 뭐가 그렇게 좋은가? -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은 '깨져야 한다' '죽어야 한다' 도대체 깨지고 죽는 것이 뭐가 그렇게 좋단 말인가? 계란이 하나 있다. 그리고 계란의 껍질이 깨지면서 속에서 병아리가 나온다. 속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은 껍질이 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있는 병아리가 때가 되어서 밖으로 나오려고 움직이기 때문에 껍질이 깨어진 것이다. 내가 깨지고 죽어야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주님을 바라볼 때 변화된다. 주님의 그 신실하심과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할 때 변화된다.

3. 제발 좀 죄책감을 버려라 -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죄책감으로 시달리는 이들이 참 많다. 이상하게도 착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참으로 악하고 못된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뭐가 그리 악하고 못되었다는 것인지 사연을 들어보면 그렇다고 죽여야 될 만큼 심각한 죄는 아니다. 그냥 애매 모호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주님께서 나의 죄에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4. 과연 하나님이 치시는 게 맞는가? - 잘 나가던 자신을 하나님이 치셔서 망하게 하셨기 때문에 신학교에 오게 되었다는 간증을 참으로 많이 들었다.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아버지처럼 자녀를 징계하신다는 말씀이 있지만 우리가 순종하지 않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징계하고 매를 드시는 것이다. 툭하면 사업을 망하게 하고 매를 들고 즉시로 박살을 낸다면 어떻게 마음놓고 살 수 있겠는가? 물론 하나님께서 치시는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실제로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5. 교회를 옮기면 정말 저주를 받을까? -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주님께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교회에서 영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힘들어한다.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많은 봉사와 일을 하고 교회의 행사에 참여하지만 기쁨이 없고 힘들고 지치기만 할 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모두가 다 각자에게 맞는 교회가 있을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갈망 때문에 몹시 어렵다면 기도함으로 주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갈 사람은 가는 것이 좋고 올 사람은 오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그러한 흐름을 막고 있으면 영적인 장애가 오게 된다. 내게로 올 사람도 오지 못하며 평화가 깨어지고 영적인 에너지를 상실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같이 있을 때는 열심히 사랑하고 헤어질 때는 원수가 되고... 그런 것은 정말 유치한 것이다.

6. 당신의 확신을 강요하지 말라 -대체로 열정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확신이 많다.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확신이 많은 경우에 평화를 깨뜨린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의 견해를 가지게 되는 것은 개인적인 체험이나 연구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대체로는 그가 소속하고 처한 곳의 입장을 받아들여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이들은 참 알아먹기 어려운 난해한 질문을 하는 것을 즐겨서 사역자들을 골탕먹이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에는 우리가 모를 것도 많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에게 다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은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분명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서로 미워하고 피를 만들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남을 비난해야 하는가?

7. 자기 비하를 하지 말라 -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부정적인 고백으로 자기비하는 하는 이들이 참 많이 있다. "저는 참 보잘것없는 인간이에요. 저는 죄인이에요. 저는 벌레만도 못한 사람이에요. 저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런 이야기는 자신이나 듣는 사람을 참으로 지치고 피곤하게 한다. 즐거웠던 기분도 다 엉망이 되어 버리고, 그런 고백을 하는 이도 옆에서 열심히 위로하는 이도 같이 비참해진다. 이런 사람들은 위로 받을수록 더 비극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맞아요. 당신은 정말 부족하군요"하고 맞장구를 치면 큰일나는 수가 있다. 그 사람은 당신이 자기를 모자라는 인간으로 매도를 했다고 그 순간부터 당신을 적으로 생각하고 공격자세를 취할 것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열심히 자신을 비하하고 있을까? 어쩌면 옆에서 "아니야, 당신은 그렇지 않아. 그런 사람이 아니야"이런 식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서 그렇게 엄살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좋은 것은 이러한 어두움의 고백을 하는 이들에게서 될 수 있는 한 멀리 도망을 치는 것이다. 그가 위로를 얻기 위해서이든 아니면 정말 그렇게 느껴서 자기 비하를 하든 그는 그런 고백과 함께 점점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니 굳이 당신이 옆에서 그들을 거들어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비하의 고백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날마다 만들어져 가는 자신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져야 한다.

8.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말라 - 우리가 재미있어하지도 않으며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의무감으로 억지로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우리가 애쓰는 수고에 비해서 별로 열매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투덜거리며 불평을 하면서 해야하는 일이라면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그만 두라.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라. 당신이 즐길 수 있고 보람이 있는 일을 찾으라. 지금은 불행해도 나중에 언젠가는 행복해질 것이라는 말을 믿지 말라. 당신이 지금 불행하다면  나중에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은 더더욱 믿기 어렵다. 지금 불행의 씨앗을 심고 있는데 어떻게 나중에 행복의 열매를 거둘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해져야 한다.

9. 먹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일인가? -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몸의 감각이 발달된 이들은 오직 보이는 것, 느낄 수 있는 것, 몸의 감각을 통해서 주로 만족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맛있는 음식, 육체의 쾌락, 건물이나 부동산 같은 논에 보이는 소유물, 남들이 알아주는 명예... 이러한 이들은 아마 유명하고 큰 건물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성공한 교회이며 성공한 목회자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영혼의 감각이 눈을 뜨고 발전한 이들은 그렇게 보이고 느껴지고 맛보고... 그러한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의 만족을 안다. 음식을 나눔보다 마음을 나누고 내면의 사랑을 나누며 심령 깊은 곳의 평화를 경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영적 세계에서의 아름다운 교류와 풍성한 은총을 안다.
음식을 먹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보다 훨씬 더 놀랍고 귀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10. 사역자에 대하여 기죽지 말라 -목사라는 이유 때문에 대접을 받는 일이 더러 있다. 그런 일을 겪다 보면 좀 낯이 간지럽다. 성도들이 목사를 볼 때 목사 자체를 대우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주님을 대변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주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대접하는 것은 상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성도들이 목회자에 대해서 어떤 일종의 열등의식과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별로 아름답지 않은 일이다. 성도들은 사역자에 대하여 기가 죽을 필요가 없다. 영적인 길과 진리의 길을 제시하는 사역자에게 존경을 품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의 일이나 사명에 대하여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의 부르심은 모두 다 아주 귀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기질과 재능과 관심을 따라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은 목회 못지 않게 중요하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일이다.

11. 원하지 않는 요구를 거절하라 -보증을 서는 일 같은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것은 정말 비극적인 일이다. 관계가 불편해질 것도 걱정스럽고 상황이 어려워서 하는 부탁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너무 매정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만약 잘못 되었을 경우에도 그것을 즐거이 모든 책임을 질 마음이 아니면 성경은 보증을 서는 일을 금하고 있다.(잠언6:1-2) 특히 보증은 배우자와 뜻을 같이 해야 한다. 둘 중 누구라도 반대하면 보증을 서서는 안 된다. 보증 외의 일상의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도 거절을 하지 못하는 이들은 아주 많다. 어떤 이들은 너무 심약해서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결정에 끌려 다니는 것이 편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또한 거절의 대상이 부모님이거나 영적인 지도자일 때는 더욱 힘들다. 목회자, 사역자는 어떤 절대권력자가 아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무조건 사역자의 말이라면 머리를 조아리고 '순종'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역자에 대해서 대적하거나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것이 좋다는 말이 아니라 상호간에 겸손하고 예의바른 자세는 필요하다. 다만 사역자의 요구와 자신에게 주어진 주님의 감동이 다를 때는 겸손한 자세로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12. 사역의 부담을 내려놓으라 - 사역자들은 사역에 대한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주님의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으며 그러므로 이를 위해 마땅히 자신의 열정과 힘을 다 바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성실한 사역자라면 대체로 그러하다. 그래서 그들은 성도들의 여러 어려움에 동참하고 자신의 몸과 상황과 심지어 가족도 돌보지 않고 주야로 뛴다. 아침과 낮고 밤과 휴식이 없이 뛰는 그러한 의식과 부담은 문자 그대로 사역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바람직하고 성공적인 상태일까?
이 시대의 성도들은 지나치게 목회자 의존적이다. 그들은 목회자를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믿는다. 그래서 모든 좋고 나쁜 일에 사역자들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역자들은 중매자이다. 즉 성도와 주님을 서로 결혼시켜 잘 살게 소개하고 인도하는 것이 사역자의 일이다. 그런데 이 중매쟁이가 중매를 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들의 결혼생활에 사사건건 개입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를 알지 못하는 성도는 주를 찾아야 될 상황에서 사역자를 찾는 결국 사역자 중독이 될 수밖에 없다. 사역자들은 대체로 그러한 상황에서 주님께 발걸음을 돌리게 하기보다는 자신이 해결사가 되고 싶은 소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다. 사역자는 일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자기 힘에 지나친 것은 부담 없이 거절해야 한다. 사역자는 뭐든 부탁하면 다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감동이 아니면 움직이자 않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어야 한다

13. 우리는 휴머니스트가 아니다 - 영적으로 건강하고 풍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역을 하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와도 같다. 그것은 영적 자살이며. 더욱 다른 영혼을 죽이는 타살도 될 수 있다. 영적으로 지쳤거나 문제가 있을 때는 쉬어야 한다. 씨름 선수가 몸이 아픈 상태에서 시합에 나간다면 결과는 뻔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현대 교회와 신앙의 체제는 그런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른바 배부른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다시 격려를 받는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모세도, 엘리야도, 요나도, 바울도 일을 하다가 안되면 도망을 쳤다. 무슨 위대한 명분이 있어서 도망을 친 것이 아니라 살고 싶어서 도망을 친 것이다. 우리가 피곤하고 지쳐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주님과의 교제와 안식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14. 신앙은 믿음과 진리다. 또한 신앙은 체험이다. 그것은 논리적인 이해 이상의 놀라운 세계다. 바울, 모세, 기드온, 다윗, 삼손, 무디 모두 하나님 체험을 통하여 새롭게 된 사람들이다. 영혼이 깨어나게 될 때 거기에는 느낌이 있고 감동이 있고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이 생기게 된다. 어떤이에게 악한 기운이 있는지, 어떤 공간에 어떤 방해가 있는지 그 영의 감각은 그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논리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영적 감각이다. 아무런 느낌도 없는데 그냥 '믿음으로' 믿으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점차로 영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런 상태에서 오래 있으면 점차 그 영혼은 메마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를 병들고 무기력하게 한다. 영적 단체를 거대한 무덤처럼 만들어 버린다.

15. 선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쓰지 말라 - 우리 안에 악한 모습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더 나아가 우리는 자신을 옳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다른 이들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면 그것은 참 곤란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심각한 묶임을 준다.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셨던 그것을 바로 외식이라고 한다.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칭찬은 일종의 결박과 같다. 그것은 사람을 중독시키며 자기가 받은 칭찬과 좋은 인상을 유지하고 싶어해서 칭찬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선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행동하는 것은 곤란하다.

16. 밝음과 유쾌함이 우리의 힘이다 - 부흥사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대부분 산에서 나무를 한번쯤은 뽑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부르짖는 기도와 외침의 경험이 많이 있다. 자연히 소리의 은사인 방언과 예언과 몸의 은사인 치유 능력과 불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니 부흥사들이 인도하는 집회는 강렬한 불과 흥겹고 즐거운 영의 흐름이 있게 되는 것이다. 우울하고 어두운 이들은 조금만 소리를 내서 기도해보면 곧 마음이 밝아지고 여유와 웃음이 생기며 삶이 즐겁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밝게 살아야 한다.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유쾌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힘이고 우리의 봉사와 사역을 풍성하게 해준다. 불신자들이 우울하고 피곤하고 지치게 살아가고 있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망과 기쁨의 세계를 보여 주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인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17. 우리는 환경을 창조한다 - '웃으면 복이와요' 는 말이 있다. 이것은 복이 오기 전에 웃었다는 이야기이다. 환경에 의해서 웃은 것이 아니라 먼저 웃었는데 그 웃음의 결과로 복이 오고 좋은 환경이 왔다는 이야기이다. 반대로 '복이 오면 웃어요' 라는 말은 들어보지 않았지만 만약 그러한 말이 있다면 먼저 복스러운 환경이 올 때 비로소 웃게 된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면 평생에 웃을 일이 얼마나 될까.
자, 아픈 사람이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가난한 사람이 돈을 달라고 기도하고, 학생들은 공부를 잘 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만약 기도의 결과 환경이 변화되는 기미가 보이면 기뻐하며 간증을 하지만, 기도해도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으면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런데 이것은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면 응답해 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먼저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하고 기뻐하면 받게 되는 것이다.  
먼저 기뻐하면 나중에 기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생긴다. 먼저 즐거워하면 나중에 즐거워하게 되는 환경이 따라오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의 삶과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18. 맞아서 성화되는 사람은 없다 - 이상하게도 많이 야단맞고 지적당하고 혼이 나야 영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게 맞고 혼이 나고 그래서 영이 자라고 믿음이 자라는 이들은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정말 슬픈 일일 것이다. 믿음이란 악을 멀리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징계를 통해서 이루어질까? 아마도 자기를 마구 때리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받을 때 상대방과 가까워진다. 사랑과 마음을 주고받을 때 사람은 가까워진다. 야단을 맞고 혼이 날 때 마음이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다.

19. 대부분의 억압은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 주님은 우리를 억압하시는 분인가? 그렇지 않다.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고 회복시키며 모든 억압에서 우리를 풀어주시는 분이다. 썬다 씽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갔다. 그는 분노에 차서 왜 하나님은 자기를 지옥에 보내시느냐고 항의를 했다. 주님께서 말없이 그에게 그러면 천국으로 올라오라고 허락을 하셨다. 그러나 그가 막상 천국에 올라오자 그의 영혼은 천국의 그 찬란한 빛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지옥을 향해서 다시 거꾸로 떨어졌다. 그러자 주님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음성이 하늘에서 울렸다고 한다. "아무도 강제로 지옥으로 보내지 않는다. 오직 자기 스스로가 지옥을 선택하여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의 일생은 평생을 지옥과 같은 거짓과 악과 원망과 분노와 어두움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를 천국에 받아들이고 싶어도 그의 영혼은 천국에서 살 수 없었던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에 대하여 어두워서 스스로 많은 어두움과 재앙과 고통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고통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20.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지 말라 -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하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하고 말하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 또 어떤 이들은 매사에 '하나님이 싫어하셔서...'하는 식으로 아예 하나님을 입에 달고 산다. 이렇게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는 말에 대해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아니 자기들이 무슨 선지자들이야?' 하고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  20년 전쯤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 무슨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다. 우선 그러한 음성들이 일단 주님의 음성인 것은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정확하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이라기 보다는 '내적인 감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주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런 감동을 주셨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21. 멀리해야할 사람을 멀리하라 - 어떤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게 된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고유한 영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만나면 그 에너지를 교환하게 된다. 그러한 영적 에너지에는 좋은 에너지도 있지만 나쁜 에너지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고 피해야 할 사람은 피해야 한다. 첫째, 가르치기 좋아하고 지배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피해라. 천국에 속한 사람은 선하고 겸손하지만 지옥에 속한 사람은 악하며 자기가 높아지고 드러나기를 원한다. 둘째, 당신은 당신을 무시하는 사람을 피해라.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그런 하나님의 작품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셋째로, 불평과 원망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을 피해라. 항상 푸념과 하소연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은 어두움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그것을 확대시키는 사람들이다. 공격적이고 지배하려는 이들에게서 떠나라. 당신을 모욕하고 상처를 주는 이들에게서 떠나라. 부정적이고 어두운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서 떠나라. 그리고 항상 감사와 찬송으로 주님께 영광돌리며 매사를 긍정적으로 아름다운 시각으로 보는 이들을 만나라. 어떤 이들을 만나느냐는 현재뿐 아니라 나의 미래에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22. 의무감이 아닌 감동으로 움직이라 - 어느 누구든지 확신이 없고 기쁨이 없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하고싶지 않은 것은 하지 말라는 말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신다. 그러므로 그 감동을 받아 움직여야 거기에는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가 있다. 의무감으로 움직이면 거기에는 힘들기만 할 뿐 열매가 없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고 성령과 동행하면서 기쁨이 충만했다. 그들은 감동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안에는 주님이 계시고, 그 주님은 우리를 감동으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동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하고 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23. 희생이 주는 기쁨이 없이는 희생하지 말라. - '남을 기쁘게 해주기 병'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정말 병이다. 남을 기쁘게 해주려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병이 된다. 자존감이 부족한 이들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한다. 순수한 희생에는 기쁨이 따른다. 영혼으로부터 오는 희생에는 자유함과 만족감이 있다. 거기에는 어떤 보상도 필요 없다. 왜냐하면 희생 자체가 놀라운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분이다. 주님께로부터 온 희생과 섬김이라면 그것은 밝고 생명으로 충만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거기에는 묶임이 있다. 우리는 억지로 희생하고 남을 기쁘게 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요컨대 억지로 희생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기 싫으면 관두면 된다. 아무도 당신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24. 선을 독점하지 말라 -혼자서 선을 독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좋지 않다. 그것은 부자들이 땅을 독점하고 돈을 독점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다. 대체로 완악한 부모 밑에서는 선한 자녀들이 많고, 선하고 착한 부모 밑에서는 자녀들이 완악한 경우가 많다. 선하고 착한 부모들은 대체로 여리고 힘이 없어서 자녀들을 휘어잡지 못하고 자녀들에게 끌려 다닌다. 그들은 혼자서 희생하고 선의 역할을 맡기 때문에 자녀들은 악의 역할을 맡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는가? 바로 부모가 선의 역할을 독점해버렸기 때문에 자녀들이 악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선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일방적으로 희생해서도 안 된다. 자녀에게 역할을 주어야 하고 고생을 시켜야 하고 선한 일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희생과 기쁨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야 한다.

25. 망상에 잠긴 자들에게 멀어 지라 - 자신의 신앙이 아주 좋고 자기의 시식과 지혜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항상 남을 가르치려고 한다. 이러한 이들과 같이 있으면 참 피곤하게 된다. 항상 모든 일에 토를 달고 교훈을 가르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눈에 띄는 모든 이들이 다 잘못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이래서 틀렸고 저것은 저래서 틀렸다고 한다. 자기 같으면 저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요는 자기만이 잘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들과 같이 있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들은 지옥을 전파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가르치려고 하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자세는 바로 지옥에서 나오는 것이다. 천국은 오직 주님만 드러낸다. 오직 주님만을 높이고 그 은총에 감사를 드리며 자신을 낮춘다. 그것이 천국이다. 그러니 이러한 이들은 천국과 멀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보다 좀 더 증상이 심각한 이들이 있다. 바로 망상에 빠진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에 대해 감탄하며 '아, 나는 깊다. 너무 깊다'고 말한다.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무리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나는 깊으며 우리는 깊다'고 말한다. 그들은 과연 깊은가? 깊다. 정말 깊다. 그런데 너무 깊어서 빠져 죽을까 걱정이 된다. 그러니 당신도 이러한 이들을 만나면 조심하기 바란다. 잘못하면 그들이 걸려 있는 병에 감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6.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느껴라 -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는 슬픔과 어두움과 고통들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삶의 아름다움과 여유와 낭만과 향취를 발견해 내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참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작고 사소한 일에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더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27. 늙어 가는 것을 즐거워하라 -흔히 인생의 선배들이 하는 말이 '늙으면 외롭다'는 것이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도 있다. '늙으면 서럽다', 좀 과격하게 '늙으면 죽어야지'하는 말도 들린다. 그 모든 말의 공통점은 늙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다. 늙어 가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젊은 시절에는 사람들이 아주 논리적이 되고 똑똑해진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서 그 논리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노인에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은 몸도 쇠약하고 논리의 날카로움도 줄어들지만 영혼이 발전하게 된다. 정을 느끼게 되고 부드럽게 되는 것이다. 젊었을 때 한 성질 하던 사람도 노년에는 따뜻해진다. 힘으로 사람을 제압하려는 속성도 사라지고 논리로 사람을 제압하려는 속성도 줄어든다. 그리고 차츰 사람 자체를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인생의 황혼에 영혼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시점인 것이다.
노년의 아름다움은 육체가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육체의 힘으로 살지 않고 영혼의 힘으로, 영으로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젊은이들은 노인의 옆에 있을 때 그가 힘은 없지만 그의 영혼에서 놀라운 사랑과 지혜가 넘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그리고 내적 에너지가 충만하게 흘러나와 그들을 채우고 새롭게 해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면 그들은 자주 와서 노인을 보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노인이 단순히 힘만 약할 뿐 그러한 영혼의 감각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사람의 말은 젊은이들에게 '잔소리'로만 들려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노인이 되면 고독한가? 그것은 그들이 살아온, 심어온 인생의 족적에 달려 있다. 사랑을 심고 아름다움을 심은 이들은 말년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

28. 모든 과정은 아름다운 것이다 - 신앙관에 있어서 잘못된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많은 묶임과 눌림 속에 있게 된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 여긴다든지, 인생은 피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든지, 자신을 악하고 더러운 존재로 여긴다든지 하는 사람은 풍성한 삶을 살 수 없다.
여러 기회를 통해 자신의 이러한 과거를 벗어나 새로운 신앙관과 가치관으로 새롭게 된 사람들이 있다면 과거의 그러한 경험들은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빛이 필요하지만, 그 빛이 오기 전에 어두운 기간이 있어야 우리로 하여금 빛에 굶주리게 만든다. 참된 진리에 대해서 굶주리게 만든다.
고난은 아프다. 그것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주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이며 주의 첩경을 평탄케 하는 것이다. 부디 어둠의 계절을 기뻐하시라. 그리하면 당신은 더욱 더 빛의 사람, 주님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