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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페늘롱<예수님 마음찾기/순전한나드>
내영혼을 깨우는 페늘롱
1.손안에 쏙 들어오는 이 책은 <순전한 나드> 출판사 편집부에서 한번 읽어보라고 보내온 책입니다. <순전한 나드> 출판사는 역사는 짧지만 깊은 영성에 대한 좋은 책을 많이 펴내는 출판사입니다.
페늘롱은 명문 귀족 집안 출신으로 1651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카톨릭 주교였던 삼촌의 영향으로 어릴적 부터 그가 가지고 있던 예민한 감수성과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신학교를 거쳐 사제가 되었고 38세에 루이14세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을 후계자를 가르치는 책임자가 됩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중 정적주의의(靜寂主義者)주도적 인물인 잔느 귀용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그동안 지적으로 이해했던 신의 존재를 직접 체험하면서 그의 신앙은 격랑의 소용돌이로 빠집니다. 페늘롱에 의해 만들어진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세 가지 색깔은 프랑스의 국기가 되었을 정도로 페늘롱은 프랑스 사회에 지금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2.<하나님을 아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는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읽은 것, 들은 것을 통해 알기는 하지만, 그것은 영적인 경험이 결여된 지식적인 앎에 불과합니다. 우리 중 대부분이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 조차도 대인관계에서 사랑보다는 두려움에 기초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그분 자신을 목적으로 그분을 사랑할까요? 비록 소수의 사람일 찌라도 이러한 사람들이 언제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내적으로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하면, 그 말은 마치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가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당신 자신의 마음의 깊은 곳보다 더 멀고 알려지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요? - p.301-302 중에서
3.지난 300년간 영적 깊이와 통찰력의 상징적인 인물인 페늘롱의 글은 주님과 더 깊은 동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로서 읽혀져 왔습니다. 이 책 <예수님 마음 찾기>는 300년 전에 쓰여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를 세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영성 분야의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주님을 갈망하고 그분과의 교제가 더 깊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책이 될 것입니다.ⓒ최용우
책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부분 몇 곳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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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간절한 열망에 관하여
영성을 높이거나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종이라는 확신을 얻고자 지독한 열심과 야망을 갖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기 사랑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높여주는 이런 종류의 성공을 추구합니다.
눈부신 거룩함의 성장을 통해 자신의 야망을 충족시킨다거나, 유명한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자신을 높이는 자기 사랑을 억제하고, 스스로를 낮춰 무명함과 업신여김마저도 사랑하며 주님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완전함에 대해 듣거나 읽는다고 완전해 질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이기보다 조용히 주님께 귀를 내어 드리십시오.
모든 허례허식을 버리고 진정한 거룩함에 전념하십시오.
말을 줄이고, 누군가에 보일 것을 신경 쓰지 말고 행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나 어떤 영적인 책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알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난한 심령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외에 무엇을 더 알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오직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고전 8:1)
주님의 자비에 집중하고 그 안에 자족하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 사랑 때문에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자 한다면 무슨 그렇게 위대한 지식이 필요하겠습니까?
당신은 실제 행함보다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또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 하지 말고,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의 반만큼만 행해보십시오. 논쟁과 호기심을 통해 진일보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큰 기만인지요! 항상 낮은 곳에 거하고, 절대 사람으로부터 하나님께만 속한 것들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2.사람들로부터 받는 칭찬의 위험
참회와 같은 굴욕적인 상황은 성공보다 훨씬 유익합니다. 괴로움은 이전에 몰랐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해 주는 반면, 권위와 성공, 칭찬은 자기만족에 빠지게 합니다. 이런 자기만족은 결코 겸손과 양립할 수 없기에 최선의 삶을 망쳐 놓을 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연약함을 망각하지 않는 만큼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함에 대해 철저히 자각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영혼이 눌리고 괴로워신음할 수 있겠지만, 이런 신음은 "썩어짐의 종노릇"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 위한 끊임없는 기도로 이어져야 합니다. (롬 8:21)
자신의 허물에 압도되는 순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망극한 은혜를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마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자신의 공로라고 생각하며 자족하는 자들에게는 화있을진저!
말씀과 기도를 위한 시간을 따로 구별해 놓으십시오.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외부 일에 참견하지 마십시오.
옳은 일이라도 자기 의견을 주장하기보다 무정한 판단을 멈추고, 기분을 절제하는 가운데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십시오.
필요이상으로 남의 일에 참견하다가 영원이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망각해 온 자신에 대해 발견하는 순간을 겸손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주변의 모든 불확실성 가운데서도 온유와 겸손을 지킬 때, 은혜와 내면의 평강, 성령님의 축복이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3.자기사랑의 기만
일반적으로 비상한 영적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들은 연약한 상상력을 상하게 합니다. 이런 경우 수준 높은 책을 읽었으니 어느 정도 고도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자기 사랑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상황에서는 아예 그런 책을 보지도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상의 은사에 대한 허영심이 얼마나 큰지를 드러내는 길입니다.
기이한 일을 무시하라는 단순한 지시와, 기이한 일을 도모하려는 사람에게 이러한 것은 태초에 없는 것으로 여기라는 요구와 같이 허영심을 상하게 하고, 망상의 빛 가운데 드러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많은 은총을 받았던 십자가의 요한(John of the Cross)은 이러한 빛 너머 단순한 믿음의 박명(薄明)에 거하기를 충고합니다.
은사가 진짜라면 이와 같은 초연함은 그 은사가 영혼에 유익으로 작용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타협 없는 믿음이야말로 기만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타당성에는 거스르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확실한 인도하심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런 태도는 진기한 은사를 통해 은밀한 자기만족을 도모하는 허영심을 괴롭힐 뿐입니다.
이 허영심이야말로 우리 삼에서 잘라내어야 할 부분입니다.
은사들이 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객관적이고 선할지라도, 이로부터의 초연을 배워 단순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은사로부터의 초연함이 탁월한 은사보다 낫습니다.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31)
바로 안목이나 느낌, 경험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가장 귀한 한 분을 향한 순종에 매인 믿음과 사랑의 길입니다. 이 길은 단순하고 실재적이며, 똑바르고, 교만의 덫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4.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평강 안에 머무십시오. 하나님께 헌신하려는 마음이나 그분을 섬기려는 열정은 당신 자신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온전히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당신의 의지 뿐입니다.
당신의 의지를 조건 없이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임을 즐기고 있는가?" 라는 질문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나도 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당신의 부족함을 시인하십시오.
세상의 것들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당신 자신 보다 그분을 더 사랑하십시오.
당신의 생명보다 그분의 영광을 사랑하십시오.
이런 것들을 소원하지 않는다면, 소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당신에게 오셔서, 당신의 마음 속에 그분의 평화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5.친구관계의 위험
당신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은 인생에 있어 큰 즐거움을 주지만, 친구 관계에는 수많은 위험이 있습니다.
특별히 당신이 서로 친밀한 관계를 가진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신은 더 이상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려고 모이는 그룹에서는 특별한 친구관계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신은 더 이상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려고 모이는 그룹에서는 특별한 친구관계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특별한 친구관계에는 파벌과 당 짓는 영을 불러들일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알기에 다른 어떤 것보다 신속하게 공동체의 분열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곧 비밀스럽게 음모를 꾸미거나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불화감이 스며들어 결국 모든 것을 채우게 됩니다.
물론 당신 스스로는 비난받을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옳은 것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해로운 일입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좋지 못한 모범을 보였고, 또한 교묘한 방법으로 그들이 당신을 편들도록 압력을 넣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똑같은 한 사람을 특별하게 좋아하는 두 사람 사이엔 질투심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각각은 다른 사람이 더 가까운 친구가 될까봐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겠습니까? 더군다나 당신에게 특별히 더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그 친구를 곤란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종종 공동체 모두의 질투와 비평의 대상이 됩니다.
또한 그들은 둘 중의 하나는 하기를 원합니다.
그들도 역시 특별한 친구관계 가운데 들어가거나, 아니면 그러한 관계를 가지려는 사람을 비판하는 것 둘 중에 하나 말입니다.
때때로 의심과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보다는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결국은 당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몰두되어 당신의 삶 속에 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잊어버리고, 그분을 바라보는 영적인 시력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그분과 홀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 것입니다. 당신의 친구들을 깊이 생각하면서도 당신의 주님은 무시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은 "나는 이 모든 관계를 조율할 수 있어." 라고 말할 것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어떤 한 사람만을 편애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요구하시는 모든 사람들을 똑 같이 사랑하십시오. 당신이 한 친구와의 관계에 몰두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조금씩 그것을 고쳐 나가십시오.
모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 그들의 장점과 단점들 -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그들에 대한 비현실적인 낭만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자아의 본성으로 이런 건강하지 못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당신이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당신의 친구들을 사랑하십니오. 그들이 당신에게 주는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이기적이 되지 마십시오.
6. 비판에 관하여
당신에게는 타인의 허물에 대한 보다 너그러운 태도가 필요합니다.
안 보려고 해도 보여서 결국에는 왜 그러는지,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판단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짜증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타인의 명백한 허물을 인내하며, 판단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면 충분합니다.
또한 타인을 향한 반감이 들면 이를 물리치십시오.
이것은 이웃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할 뿐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오히려 남의 불완전함을 품으며, 모든 사람과 더불어 지냅니다.
우리는 존귀한 영혼들 안에 명백한 허물이 보일지라도 인내하며, 주님께서 그 가라지를 서서히 제거하시기 위한 신호를 보내시기 전까지 건드리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마저 뽑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가장 걸출한 사람들에게 그 탁월함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듯한 연약함을 남겨놓으십니다.
이는 마치 땅을 경작한 사람이 그 흔적을 남김으로써 광범위한 개간 작업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를 표시함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어디서부터 그 일을 시작하셨는지 보이기 위한 흔적을 남겨놓으십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수준에서 자아 개선을 위해 힘쓰되, 동시에 타인의 결점을 인내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아마 당신도 교정이 쓰라린 것임을 경험해 보아 알 것입니다.
아는 타인을 향해 조심하면서도 부드럽게 대하십시오.
남을 교정하고자 하는 열망은 당신의 몫이 아닙니다.
사실상 당신의 완벽주의야말로 그들을 향한 당신의 마음을 닫게 만드는 것입니다.
7.구별되는 것
사랑의 주님을 알아가면서 어떻게 주님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 당신께서는 온전하게 아름다우시며 선하십니다.
또한 주님의 장엄한 능력과 권능 그리고 관대하심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피조물이라도 감탄할 정도로 놀랍습니다.
이렇게 당신의 놀라우신 사랑으로 제 마음을 깊숙히 만지시니 감사 드립니다.
주님은 제가 감히 다가가 사랑을 고백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 계신 분이 시지만 제가 다가갈 수 있도록 스스로 낮아지셨습니다.
제가 다가가는 것을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아니, 이 표현으로 부족합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당신을 더욱 사랑하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 그 모든 헛된 인정을 구하던 자리에서 내려와 주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오 거룩한 사랑이신 주님, 당신께서 제 심장에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주여, 오셔서 저를 고쳐 주소서.
아니 오히려 당신께서 저에게 주었던 흔적을 취하셔서, 더욱 더 깊고 선명하게 새겨 주소서.
모든 창조물로부터 저를 구별하여 주소서.
더 이상 삶을 지연시키며 방해하는 창조물에는 만족 할 수 없나이다.
주여, 당신 한 분만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제가 당신외 그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길 원합니다.
8.의에 굶주리기
우리에게 왜 이런 주리고 목마름이 없습니까?
왜 우리의 육체처럼 우리의 영도 굶주림을 느끼고 목마름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몸은 아프다는 것을 음식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것으로 알 수 있지요.
그렇듯이 우리의 영이 음식도 음료도 아닌 우리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양식을 찾지 않을 때 아픈 것입니다.
영의 양식은 진실과 의로움입니다.
좋은 것으로 채워지고 강건해지기 위해 우리에게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굶주림으로 그 음식에 손을 뻗고 취하여 섭취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불쌍한 거지처럼 작은 빵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기대하며 서십시오.
자신의 약함과 실패를 깨달으십시오.
자신의 약함을 잊을 때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우리의 타는 듯한 갈증을 풀기 위해 우리의 영을 배 불릴 수 있도록 신앙서적을 읽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님만을 바라는 목마름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자만이 신령한 하나님의 양식을 얻기에 합당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으로 인해 만족할 때까지 그분께서 주시는 신성한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9.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알려주신다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막상 성령님이 정말로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줄 때는 겁을 먹곤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정도에서 벗어나 잘못 가고 있다는 느낌을 인식할 때,
우리는 날로 걱정을 하게 되지만 우리의 비껴난 걸음을 고치는 대신 하나님을 기꺼이 따르기 원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연약함을 호소하는고백만으로도 하나님께는 이만하면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버리는 수준까지 가길 원합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이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생각들을 불어넣기 원하시는지 들어보십시오.
우리 안에서 역동하는 영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해보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이 확실하다면 그분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에 주저하지 마십시오.
시편기자는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행할 수 있도록 가르쳐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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